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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93)화 (893/1,004)

893화 내가 두려워할 만한 것은 없네

둘째 날, 조정은 역시 조운의 화물선을 조사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세금을 적게 보고하고 밀매하는 물건을 가지지 않은 화물선에 대해서도 관졸들은 가볍게 처벌했다. 세금을 보충하고 벌금을 물면 배가 뭍에 와서 물건을 부리는 것을 허락했다.

관졸들은 절대 이번 기회로 상인들을 사기 치려는 뜻이 없었다. 도리어 상냥하게 앞으로 더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상인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상인들은 하나같이 감지덕지했다.

그들은 이번에 크게 손해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관졸들은 규칙대로 일을 처리했다.

그렇다, 대다수 상인들에게는 관부에서 규칙대로 대하는 것이 최대로 공정한 것이었다.

마치 월령안이 말한 것처럼 그녀가 관리에게 돈을 주는 것이 상대더러 그녀의 편을 들어달라고 하거나 그녀에게 특권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직 상대가 그녀를 공정하게 대하고 규칙대로 일을 처리하기를 바랐다.

많은 경우에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사치였다.

돈을 보충하고 물건을 받은 상인들은 하나같이 조정과 황제에게 감격을 표했다.

조방 방주 제운은 줄곧 부두에서 화물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었다. 일이 월령안이 어제 말한 대로 흘러가는 것을 보자 제운은 기쁘지 않고 화가 났다.

월령안의 능력은 그가 상상하던 것보다도 강했다.

월령안의 능력이 강할수록 그가 내놓아야 할 대가도 더 컸다.

월령안을 죽이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심복이 그에게 다시 한번 그를 일깨워 주었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약속대로라면 그들은 오늘 월령안을 만나러 가야 했다. 제운은 끝내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망할 것! 그때 월씨 가문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년은 왜 죽지 않았느냐!"

심복은 고개를 수그린 채, 말이 없었다.

그는 방주가 전에 무능한 사람만이 원망하고 실패한 사람만이 소리를 지른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들 방주는 월령안과의 전쟁에서 실패한 쪽인가?

"마차를 준비해. 월령안을 만나러 간다!"

욕을 퍼부은 제운은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제서야 그는 일어서서 밖으로 걸어갔다.

심복은 마음을 가다듬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점심이 지나서야 제운은 월씨 가문의 별원에 도착했다.

월령안은 어제처럼 이중문에서 그를 맞이했다. 두 사람은 어제처럼 다섯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을 때, 한 명은 발걸음을 빨리하고 다른 한 명은 앞으로 맞이했다.

"월 가주, 능력이 좋더군."

어제와 다른 점은 제운 오늘의 분노는 어제보다 훨씬 강했고 시선도 많이 차가웠다.

"저도 제가 아주 능력 있다고 생각해요."

월령안은 전혀 겸손하지 않게 웃었다.

제운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는 이렇게 뻔뻔스러운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제운은 코웃음을 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월령안도 입을 열어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생각이 없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화청으로 들어섰다.

월령안이 앉으라고 말한 뒤, 제운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먼저 입을 열었다.

"제 방주, 저의 능력을 보셨나요?"

"우리 조방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의 가격은 얼마인가?"

제운은 월령안과 기 싸움을 벌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월령안은 웃고 나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럼 제 방주가 어느 정도로 해결하기를 원하시는지 보아야죠."

"월 가주, 말해 보겠나?"

어제 큰 손해를 본 제운은 오늘 말할 때, 많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감히 너무 많은 것을 밝히지 못했다.

"제 방주께서 먼저 말씀하시지 않으니 전 이 해결 정도를 간단하게 약, 중, 강, 세 단계로 나눌게요. 약을 선택하신다면 제가 제 방주를 위해 다리를 놓아 줄 테니 제 방주께서 스스로 최 승상을 찾아가 의논하세요. 중 정도는 율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는 제가 해결해 드릴게요. 다른 것은 법대로 공정하게 처리하고요. 강한 정도의 처리 방법은요……. 제 방주의 보수가 충분하다면 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드릴 수 있어요."

월령안은 일부러 마지막 말을 강조했다. 그녀는 조방에 얼마나 큰 어려움이 닥쳤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또 제운이 지금 얼마나 난감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었다.

제운은 월령안을 몹시 시기했다!

그들 제씨 가문은 강남에서 백 년 가까이 사업을 했지만 겨우 총독 하나를 끌어들였다. 그런데 월령안은?

그녀는 변경에서 십 년만 지냈는데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었다.

그에게는 재산을 몰수하고 멸문당할 만큼 큰일이 월령안에게는 이익만 충분하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제운은 마음속의 씁쓸함을 애써 누르고 물었다.

"가격은?"

"다리를 놓아 주는 것은 조운 지분의 일 할을 받고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이 할을 받을게요. 강한 정도로 해결하는 데는……."

월령안이 잠깐 멈추었다. 예상대로 제 방주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월령안은 사람을 농락하려는 뜻이 없었다. 그녀는 뜸을 잠깐 들이다가 말했다.

"팔 할이에요!"

"팔 할이라고?"

제운의 동공이 순간 확장되었다.

"아예 다 빼앗지그래!"

그에게 모두 합해서 겨우 팔 할 남짓한 지분이 있었다. 월령안은 그의 돈주머니를 만져 본 것인가?

월령안은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방주께서 뭘 하셨는지 모르시나요? 제가 팔 할을 원하는 게 어때서요? 돈을 써서 화를 면하는 것이 멸문되는 것보다 낫죠. 아니에요?"

"너……."

'월령안은 역시 뭐든 다 아는군.'

제운은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부터 솟구치는 살기를 눌렀다.

"어제 말한 대로 육 할."

"흥정 안 해요!"

월령안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손을 저었다.

"사업을 하는데 흥정을 하다니요? 목숨은 어떻게 흥정하실 건데요?"

제운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내가 팔 할을 주면 정말 우리 조방 전체가 무사해지는 건가?"

청산만 있으면 땔나무 걱정이 없는 법.

조방의 형제들이 있는 한, 월령안이 지분을 차지할 수는 있어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얘기한 것은 제 방주 당신의 목숨이고 골칫거리예요."

'제 방주는 무슨 제 좋은 생각을 하는 걸까?

내가 어디를 봐서 다른 사람 좋은 일을 해 줄 바보로 보이는 거지?'

제운은 월령안이 불 난 틈에 도둑질하려는 속셈인 것을 파악했다.

만약 그가 정말 전체 조방을 월령안에게 넘긴다면 조방의 형제들은 분명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형제들이 죽고, 돈까지 없다면 나중에 그는 어떻게 월령안을 죽일 수 있겠는가?

그는 이 모험을 할 수 없었다.

제운은 잠깐 생각하다가 물었다.

"만약…… 내가 그분만 잠깐 만나고 싶다면 안배할 수 있나?"

"일 할이에요."

월령안은 손으로 표시해 보여 줬다.

"먼저 개인 계약서를 쓰고 다시 관부의 계약서를 쓰러 가요. 전 강녕부의 관계(官契)가 필요해요."

"내가 누구를 말하는지 아나?"

제운은 흥정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 자기에게 흥정할 권리가 아예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성사 사위요!"

월령안은 전혀 거침이 없이 통쾌하게 입을 열었다.

"좋네, 내일…… 원하던 개인 계약서와 관계를 모두 보내겠다. 월 가주가 안배하게."

제운이 응했다.

그러나 월령안이 거절했다.

"전 당신을 못 믿어요. 내일 우리 함께 강녕부로 가서 계약서를 작성해요!"

"우리 둘이?"

제운의 눈빛이 흐려졌다.

그는 월령안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혹시 날 강남성에서 끌어내려고? 그런데 강녕부에만 가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월령안은 강녕부도 내 세력범위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겠는데.'

"저는 육 대장군의 호위병을 데리고 갈게요. 제 방주가 어떤 사람을 데리고 가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강녕부에 도착한다면 제운이 아무리 많은 사람을 데리고 가도 소용없었다.

최일이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월 가주, 길에서…… 무슨 사고라도 날까 두렵지는 않나?"

제운은 실눈을 뜨고 살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모험을 하지 않고서야 부귀를 누릴 수 없죠."

월령안은 비꼬았다.

"혹시 제 방주께서는 두려우시나요?"

"강남에서 아직…… 내가 두려워할 만한 것은 없네. 내일 진시에 성 밖 창운정(滄雲亭)에서 만나세."

제운은 일어서서 월령안에게 공수를 하고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제운은 강녕부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황성사 사위에게 잡혔다!

조계안도 이렇게 크게 품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제운이 강남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데다가 경계심이 높다는 말이 아니면 강남에서 손쉽게 그를 잡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전에 황성사가 강남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위는 강남에서 정상적으로 임무를 집행할 수 없었다.

소문이 나자 하룻밤 사이에 강남의 거리 곳곳에 갑자기 차림이 평범하나 실은 아주 능력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외부인원을 조사하며 다녔는데 일단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면 바로 사람을 때려죽였다.

여기서 제운이 강남에서 얼마나 위세가 높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강남성에서 움직이려면 조계안도 여 총독 등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여 총독 등 사람들이 미리 소식을 얻게 된다면 제운이 도망치든 아니면 죽임을 당해 영영 입을 못 열게 되든 할 텐데, 둘 모두 조계안이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제운은 강남 관가를 숙청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반드시 그를 산 채로 잡아들여야 했다.

가장 작은 대가로 제운을 잡아들이기 위해 조계안은 월령안의 계획을 받아들여 이런 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운을 강녕부로 이끌어냈다.

강녕부는 최일이 진을 치고 있어 유일하게 제운의 눈과 귀를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제운을 잡아들이는 계획은 아주 순조로웠다. 제운은 잡힐 때까지도 이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월령안, 천한 것! 네 이 천한 것!"

사위에게 제압당해 땅에 눌린 제운은 그제서야 자기가 관졸들에게 잡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면서 입으로는 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월령안, 너 이 천한 것, 잡종! 너 기다려…… 내가 나가기만 하면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널 홀딱 벗겨서 내 그 형제들에게 던져 줄 거야. 그들이 널 매일매일……."

월령안은 불쾌한 표정으로 조계안을 흘겨보았다.

"당신의 사람들은 턱 뼈를 뺄 줄도 모르나요?"

"패배자가 미친 듯이 짖는 것뿐이잖아. 신경을 왜 써?"

조계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월령안, 설마 그렇게 속이 좁은 건 아니겠지?"

제운은 계속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월령안, 너 기다려…… 난 널 가지고 놀 뿐만 아니라 또 널……."

달칵!

사위가 듣다못해 제운의 아래턱을 빼서 말하지 못하게 했다.

월령안은 대답하지 않고 차갑게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천한것!"

"날 욕했어?"

조계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월령안을 노려보았다. 화가 나 눈동자마저 붉어졌다.

"연약한 여인이 미친 듯이 짖는 것뿐이잖아요. 신경을 왜 쓰세요?"

월령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계안이 한 말을 반복했다.

"조왕 전하, 설마 속이 그렇게 좁으신 건 아니시죠?"

상업계에서 그녀에게 패배한 사람들 중에 그녀를 욕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녀는 이보다 더 듣기 싫은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듣기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조계안이 갑자기 월령안에게 다가오며 음산하게 입을 열었다.

"월령안, 선을 넘지 마! 내가 너를 봐주기 때문에 넌 그 정도 체면이 서는 거야! 내가 널 봐주지 않는다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다시 한번 이런다면 난 네 입을 꼬매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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