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7화 죽고 싶다면 홀로 죽어
육삼은 고개를 살짝 수그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
집안도 관리하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호 흠차는 자기 집안도 단속하지 못했다. 관리로서의 능력도 부족한 것 같으니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는 편이 백성들에게 좋은 일이었다.
서재 밖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월령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가서 알아……."
"큰아가씨……."
월령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별원의 집사가 창백한 얼굴로 서재에 쳐들어왔다. 그는 조급하고도 불안하게 소리를 질렀다.
"관졸이 사람들을 데리고 별원을 에워쌌어요. 큰아가씨가 조정의 탈주범이라고 반드시 잡겠대요. 얼른 도망가세요!"
"도망친다고? 어디로 도망쳐!"
집사가 서재에 쳐들어오자마자 칼을 찬 관졸들이 따라서 문을 차고 쳐들어왔다. 집사를 따라온 것이 분명했다.
우두머리는 두말하지 않고 손을 휘둘러 명령을 내렸다.
"월 가주를 잡아들여라. 막는 자는……."
그 사람은 육삼을 힐끗 보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죽인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궁수들은 창문을 깨뜨리고 들어왔다. 그들은 쇠뇌를 고정하고 화살촉으로 월령안을 조준했다.
순간, 서재 전체에서 살기가 드리웠다. 심지어 육삼도 저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월령안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편한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깨진 창문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쉽네요. 제가 천궁각을 찾아 만든 창문이었는데."
그러나 그녀는 말로만 아쉽다고 했을 뿐, 얼굴에는 전혀 아쉬운 티가 나지 않았다.
"월 가주, 가시지요!"
관졸이 앞으로 다가오며 거칠고 난폭하게 월령안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월령안의 옷자락도 잡기 전에 번뜩이는 섬광과 함께, 손이 잘렸다.
섬광이 번뜩이더니 비명 소리가 울렸다. 잘린 손이 사람들 앞에서 날아가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서재의 앞쪽에 떨어졌다.
동시에 월령안의 앞까지 쳐들어온 관졸도 월령안 뒤에 있던 사람의 발에 차여 책상을 날아서 우두머리 관졸의 앞에 나동그라졌다. 그걸 본 사람들은 놀라서 연신 뒷걸음질 쳤다.
"으악…… 으악…… 내 손, 내 손!"
손바닥이 잘린 관졸은 끊어진 손바닥을 안고 바닥에서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우두머리 관졸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여봐라, 활을……."
"똑바로 보거라!"
월령안의 뒤에서 뛰어나온 흑의인은 손에 영패를 들고 우두머리 관졸 앞에 나섰다.
"황성사가 일을 하는데 누가 감히 제멋대로 구는 것이냐!"
"황…… 황…… 황성사?"
우두머리 관졸은 눈을 크게 뜨고 앞의 영패를 바라보며 두 다리를 덜덜 떨었다.
황성사는 악명이 자자한 특무사(特務司)였다.
손에 영패를 든 흑의 사위는 영패를 거두고 우쭐거리며 말했다.
"월령안은 우리 황성사의 중요 증인이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우두머리 관졸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는 상전이 내린 불호령이 떠올랐다. 그는 모든 대가를 치러서라도 월령안을 데려가야만 했다. 그래서 억지로 입을 열었다.
"대, 대……."
"꺼져!"
흑의 사위는 차가운 시선으로 훑으며 손에 든 칼을 우두머리 관졸의 목에 겨누었다.
"아니면 죽든가!"
"꺼지겠습니다! 꺼지지요, 꺼질게요…… 소인이 지금 바로 꺼지겠습니다!"
우두머리 관졸은 놀라서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그는 기다시피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를 본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하고 꼬리 빳빳이 도망쳤다. 심지어 손이 잘린 관졸도 비명을 지르지 않고 자기의 잘린 손을 주워 누구보다 빨리 도망쳤다.
일행은 갑작스럽게 왔지만 더욱 갑작스럽게 떠나갔다. 심지어 육삼은 정신도 차리지 못했다. 별원의 집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멍하니 월령안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우리 큰아가씨가 언제부터 황성사의 사람들과 왕래를 했지?
눈도 깜짝이지 않고 사람도 뼈까지 씹어 삼키는 황성사란 말이야!
우리 큰아가씨가 이미 발을 들였는데 온전하게 물러날 수 있을까?
이 일을 어떡하지…….'
집사는 절망적인 얼굴, 멍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는 조금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월령안은 가볍고 웃고 낮은 소리로 위로했다.
"내려가서 안신탕(安神湯)을 마시고 푹 쉬거라. 걱정하지 말거라. 강남의 바람은 나한테 일지 못하니."
황성사의 사람들이 강남 관가에서 위엄을 세우려는데 어찌 여 총독 같은 사람들이 막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호 흠차를 끌어들인들 무엇하리?
조정에서 파견한 흠차 대신은 보여 주는 것일 뿐이었다. 진정으로 조사를 할 사람은 조계안이 이끄는 황성사였다.
육삼은 입을 달싹이며 뭐라고 묻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네"라고 대답만 했다. 그리고 넋이 나가서 궁금증만 가득한 집사를 부축해 물러갔다.
* * *
월령안을 잡으러 왔던 관졸은 의기양양하게 왔다가 주눅이 들어서 떠나갔다. 일을 완성하지 못한 그들은 상전의 질책을 피하려고 월령안 탓을 하였다.
우두머리 관졸은 상전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눈물, 콧물 짜면서 통곡했다.
"대인, 대인, 큰일 났습니다…… 월령안의 배후에는 육 대장군뿐만 아니라 황성사의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오늘 그녀를 잡아들이러 갔는데 황성사의 사위가 두말하지 않고 우리 사람의 팔을 잘랐어요. 상대는 황성사의 사위인지라 소인은 대인께 폐를 끼칠까 두려워 그들에게 손을 쓰지 못하고 먼저 돌아왔습니다. 대인…… 우리 지금 계속해서 잡으러 갈까요?"
"황성사? 어떻게 황성사와 엮인 거지?"
월령안을 잡아들이라고 한 사람은 강남의 순무(巡撫) 임정(林政)이었다. 그는 관졸이 다친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황급히 다그쳤다.
"황성사의 사람이 강남에 왔다는 말이냐?"
우두머리 관졸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인이 직접 황성사의 영패를 보았습니다. 틀림없이 진짜였습니다. 황성사의 사위가 말하기를 월령안은 그들 황성사의 중요한 증인이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황성사의 사람이 어떻게 강남에 나타났지? 그들은…… 뭘 하려는 것이지?"
임 순무는 별안간 안색이 창백해졌다. 팔걸이에 올려놓은 손도 끊임없이 떨렸다.
사람이면 황성사가 황제의 눈이자 황제 수중의 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정 관리를 벨 수 있는 칼이었다.
연초에, 황제는 황성사를 개시하기 시작하면서 전체 조정 대신들의 반대를 받았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 나선 적이 없던 염 황숙이 갑자기 나타나 황성사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황성사를 다시 움직였다.
황제의 태도가 강경한데다 염 황숙의 지지까지 있으니 조정 대신들은 하는 수 없이 황성사가 다시 쓰이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황성사가 다시 가동한 뒤, 황제는 그것으로 백관들을 감찰하지 않고 황성사로 청주의 일을 주목했다. 이 점은 조정 대신들이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만들었다.
반년 남짓 지나도록 황성사는 줄곧 아주 조용했다. 관리를 조사한 적도, 그 어떤 정무에 개입한 적도 없었다. 마치 다시 가동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점차 경계심을 풀었다.
적어도 강남의 관리들은 황성사가 다시 황제에게 쓰인다는 일을 곧 잊었다. 지금, 황성사가 강남에 나타났다는 말을 들은 임 순무는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황성사는 조정 대신들에게 재난이었다. 황성사의 사위가 도착하는 곳에는 절대 좋은 일이 없었다.
임 순무는 한시도 기다리지 못하고 즉석에서 여 총독을 찾아갔다.
"대인, 대인, 큰일났습니다. 황성사…… 황성사의 사위가 왔습니다!"
"황성사의 사위가? 어떻게 그들과 엮은 거지?"
여 총독은 다시 자유를 얻은바, 지금도 여전히 강남에서 발만 굴러도 강남 전체가 벌벌 떠는 강남 총독이었다.
"우리가 오늘 월령안을 잡아들이러 가는데 황성사의 사위가 갑자기 나타나 월령안이 그들의 중요한 증인이라고 하면서 관졸을 내쫓았습니다."
임 순무는 한 글자도 숨기지 못하고 사실대로 보고했다.
여 총독은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너희들더러 월령안을 잡아들이라고 한 것이냐? 내가 그녀를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대인, 하지만 그 월씨가 말로 해서는 순순히 굴지 않으니 그녀에게 교훈을 안겨 주고 싶었습니다."
임 순무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여 총독은 화가 나 눈이 벌게졌다. 그는 임 순무를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너희들은 바보가 아니냐! 그녀가 육장봉의 여인이라는 것을 잊은 것이냐! 육장봉의 여인을 감히 건드리다니. 한 번 더 갇히고 싶은 것이냐? 한 번 더 갇힌다면 넌 우리가 무사히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하느냐?"
관가에서 증거를 없애는 일은 쉬웠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머리채를 잡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조차도 버거운데 이 멍청이들은 월령안을 건드리기까지 했다. 정말 명을 재촉하는 짓이었다.
임 순무는 낮은 목소리로 변명했다.
"저희도 월령안을 죽이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녀가 고생 좀 하고 교훈 좀 받기를 바랐죠."
월령안이 불 난틈을 타 도둑질한 것이었다. 헐값에 그들의 사업체를 사들이고 죽어도 토해내지 않으려고 했다. 여 총독이 이 화를 참을 수 있어도 그들은 참을 수 없었다.
그들도 월령안에게 육장봉이라는 뒷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월령안을 잡아들여서 어쩌려는 생각이 없었다. 그는 단지 아랫사람들이 월령안을 좀 혼내 주기를 바랐다.
만약 그때 육장봉이 돌아와도 그들은 두렵지 않았다.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밀고 아랫사람들이 뭘 몰라서 홀로 저지른 일이라고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월령안이 혼 좀 나고 서러움 좀 겪게 하려고 했다고? 일이 생기면 아랫사람에게 떠밀려고 했다고? 하, 거참 정말 영리하구나! 뿌듯해하기는? 난 널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넌 자기가 누구인 줄 아느냐? 넌 또 육장봉이 누구인 줄 아느냐? 넌 육장봉이 너처럼 멍청한 줄 아느냐! 넌 육장봉이 뇌가 없어서 네가 마음대로 속여도 될 거라고 생각했느냐! 육장봉이 너의 이 얄팍한 수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넌 강남이 덜 혼란스럽다고 생각하는 거지? 우리가 무사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감히 육장봉을 건드려!
넌 뭘 하고 싶은 거야? 죽고 싶은 거야? 너 죽고 싶다면 홀로 죽어. 우리를 함께 끌어들이지 말고! 명을 재촉하려면 내가 너한테 밧줄을 줄 테니 그냥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다음에 또 이런다면 네가 스스로 죽을 필요 없이 내가 직접 손을 써서 염라대왕을 만나게 해 주마!"
여 총독은 임 순무 이 멍청이 때문에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임 순무를 손가락질하며 호되게 꾸짖었다.
그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 사람을 임씨가 무슨 용기로 월령안에게 손을 쓴다는 말인가?
"네, 네…… 네…… 대인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다음은 없어요!"
임 순무는 욕을 먹어 고개조차 쳐들지 못했다. 여 총독이 욕을 다 한 뒤에야 주눅 든 채 물었다.
"대인, 지금 우리 어떡하죠? 황성사의 사위가 강남까지 왔는데 그들이…… 우리를 조사하러 온 것은 아니겠죠?"
황성사의 사위는 호 흠차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사위는 마치 하이에나처럼 어두운 곳에 숨어 있었다. 누구도 그들이 언제 튀어나와 사람을 물지 몰랐다. 정말 경계를 할 수조차 없었다.
"우리를 겨냥해 온 것이 아니면 황성사가 왜 왔겠느냐? 월령안을 보호하러?"
여 총독은 굳은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전에 육장봉에게 농락당한 전례가 있으니 여 총독은 황성사가 그저 강남을 지나가는 길이었다고 순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 그들이 월령안을 보호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라고는 더욱 생각하지 않았다.
월령안을 보호하는 것은 단지 겸사겸사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