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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86)화 (886/1,004)

886화 언제든지 가라앉을 배

그녀는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 하나같이 젊고 낯선 얼굴을 바라보며 대범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바로 너희들의 주인인 월씨 가문 가주 월령안이다! 난 너희들 중 많은 사람들이 날 처음 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너희들을 처음 보는 것이다. 우리 서로 익숙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괜찮다. 너희들이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게 되면 우리는 익숙해질 것이다."

아래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또 어떤 사람은 불신의 시선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병사를 거느리고 전쟁을 하는 장병이 아니다. 사기를 북돋는 말을 내가 한다면 열기가 느껴지지 않을 테니 난 오늘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

월령안은 잠깐 멈췄다가 또 말했다.

"월씨 가문의 규칙대로면 아랫사람이 처음 가주를 알현했을 때, 가주는 모두 상을 내린다. 여기는 비록 월씨 저택은 아니지만 가문의 규칙을 깨뜨릴 수야 없지. 오늘 난 강남 수군의 지역을 빌려 너희들의 알현을 받겠다."

"상이라고? 흉터 형 그들이 떠들던 가주의 만남 선물?"

아랫사람들은 월령안의 말을 듣자 하나같이 눈을 반짝거렸다.

그들은 월씨 가문의 예전 규칙대로라면 정식으로 가주를 알현하지 않았다면 월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며, 임무에 파견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특별했다. 월씨 가문의 가주는 청주에 있지 않고 그들도 변경으로 가서 아가씨를 알현할 수 없어 가주를 알현하는 일은 잠시 보류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흉터를 비롯한 옛사람이 말한 가주의 상을 받을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강남에 도착하자 뜻밖에도 기회가 생겼다.

해적들은 하나같이 눈을 반짝거리며 흥분했다.

월령안은 입꼬리를 올리고 가볍게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가볍게 박수를 쳤다.

"여봐라! 물건을 가져오거라!"

쿵쿵쿵…….

육삼이 사람들을 데리고 의자 하나와 큰 상자 두 개를 들고 올라왔다.

육사, 육오는 육삼에게 눈썹을 찡그려 보였으나 육삼은 전혀 미동도 없었다.

육삼은 의자를 월령안 뒤에 가져간 뒤, 월령안이 앉기를 기다렸다가 규칙대로 월령안의 뒤에 가서 곧게 앞만 바라보았다. 심지어 육장봉 등 사람들도 보지 않는 모습이 꼭 월령안의 하인 같았다.

육사와 육오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연인만 챙기고 친구는 뒷전인 자식.'

두 사람은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 때문에, 또 육장봉이 있기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열거라!"

월령안은 자리에 앉아 위엄 넘치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주목되었다. 육장봉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대충 월령안이 뭘 할 것인지 짐작이 갔다.

그는 이 사람들에게 신분을 바꿔 줄 수 있지만 월령안은 그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이득을 주었다.

상자를 든 장사가 앞으로 와 가장 앞에 놓인 나무 상자를 열었다.

순간, 눈부신 은빛이 가득 비치자 누군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은이다! 완전한 은! 한 상자 가득해!"

"또 열거라!"

월령안은 이 가득 담긴 은이 가져온 효과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녀 얼굴의 웃음기도 한결 짙어졌다.

장사는 한걸음 물러서서 두 번째 상자를 열었다.

두 번째 상자가 열리자 금색 빛이 반짝거리며 만방에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가까운 사람들은 금빛에 눈이 부셔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금이다! 세상에! 모두 금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하나같이 눈을 반짝거렸다. 망부석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 멈춰서 금화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월령안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위엄을 내뿜었다.

"이 두 상자는 모두 너희들 것이다. 은은 오늘 너희들에게 주는 나의 만남 선물이다. 이 금화는 내가 너희들을 위해 준비한 승리 선물이다. 너희들이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면 이 금화가 바로 너희들의 상이다."

해적들이 아직 금, 은의 빛에 눈이 멀어 있을 때, 흉터는 영리하게 꿇어앉아 월령안에게 충성을 표했다.

"소인 흉터, 큰아가씨를 뵙습니다. 죽음으로 큰아가씨께 충성할 것을 맹세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하나씩 꿇어앉아 소리높이 외쳤다.

"소인, 큰아가씨를 뵙습니다. 저희들은 죽음으로 큰아가씨께 충성하기를 맹세합니다!"

삼백 명의 장수가 함께 외치자 그 소리는 하늘을 찔렀다.

강남 수군의 군영이라서 외딴데다가 또 큰불이 일어 반경 백 리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소리에 새들이 겁을 먹고 날아가고 백성들이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오늘의 말은 나 월령안, 기억해 두었다! 너희들은 걱정하지 말거라! 우리 월씨 가문은 절대 충성하는 사람들을 홀대하지 않는다!"

월령안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그녀는 세상에 돈의 유혹을 거절할 사람이 없을 줄 알고 있었다!

"모두 일어나 앞으로 와서 상을 받아라!"

월령안은 이익으로 유혹하는 이 수가 초보적으로 효과를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어서 육장봉이 무슨 수를 쓰는지 봐야 했다.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육장봉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는 도발이 담겨 있었다.

육장봉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월령안의 도전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표했다.

월씨 가문의 이 수군은 그가 반드시 가질 것이다!

* * *

육장봉이 준 명부는 아주 쓸모 있었다. 그 명부에는 강남에서 죄를 범한 관리들의 재산 사업이 적혀 있었다. 성을 봉쇄한 사흘 동안, 월령안은 강남 인심이 흉흉한 틈을 타 몰래 많은 사업체를 매입했다.

육장봉이 가자 월령안은 더욱 좋은 밭과 좋은 점포를 사들이는 데 열중했다. 가격이 높더라도 그녀는 매입했다.

월령안이 돈을 쓸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월령안은 호 흠차를 좋게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강남의 정세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을 한다.

육장봉이 '수군'을 거느리고 바다로 나간 소식은 비밀이 아니었다. 여 총독 등 사람들은 자기들이 강남에 심어 둔 눈과 귀를 통해 곧 육장봉이 강남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육장봉이 떠나자 강남의 관리들은 누가 '호랑이'인 척하는 '토끼'를 안중에 두겠는가?

역시, 이틀 뒤, 강남의 봉쇄가 풀어졌다.

월령안의 수하도 소식을 가져왔다. 호 대인이 강남의 관리와 단짝처럼 사이가 좋다는 소식이었다.

강남 상인들의 수단을 잘 알고 있는 월령안은 전혀 놀라워하지 않고 하인에게 분부했다.

"가서 호 흠차가 무슨 약점을 그들에게 잡혔는지 알아보거라."

그러나 월령안의 사람이 소식을 알아내기도 전에 강남에서의 월씨 가문의 사업이 연이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월령안은 강남이 성을 봉쇄한 상황인데다 또 육장봉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으니 헐값에 강남의 많은 사업체들을 매입했다. 이 사업체들은 여 총독 등 사람들의 사업체가 아니면 그들 졸개들의 사업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오직 그들만이 불안해서 미친 듯이 밖으로 재산을 처분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여 총독 등 사람들이 무사히 풀려나자 이 사람들은 간이 커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월령안 이 '불 난 틈에 도둑질하는' 나쁜 사람의 트집을 잡았다.

'우리들의 재산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좋아! 월씨 가문은 앞으로 강남에서 장사할 생각도 하지 마.'

오전에는 길거리 건달들이 소란을 피웠고 오후에는 관부에서 상사의 사람을 잡아가 문책했다.

밭들은 말에게 짓밟혔고 창고와 집도 갑자기 불탔다. 농장은 갑자기 물에 잠겼다.

아무튼 월씨 가문의 재산이라면 이상하고 운이 나쁜 일이 다 생겼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강남성에 있는 월씨 가문의 상사 열세 곳이 모두 박살 났다.

한 곳은 골동품 장사를 하는 곳이었다. 비록 점포 밖에 내놓은 것들은 모두 비싸고 귀한 물건이 아니라 하더라도 망가지니 역시 매우 안타까웠다.

상점의 관리인들은 도저히 버틸 수 없어 분분히 월령안을 찾아와 어찌할 것인지 물었다.

월령안은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고 관리인들에게 이렇게만 말했다.

"집에서 이틀 정도 쉬고 이틀 뒤에 다시 개업합니다."

월령안이 이토록 침착하게 말하자 관리인들은 시름을 놓고 얼굴에도 다시 미소를 띠었다.

그들은 자기네의 큰아가씨에게 반드시 방법이 있을 줄 알고 있었다.

관리인이 떠나자마자 육삼이 찾아왔다.

"낭자, 호 흠차의 일을 알아냈습니다."

"말씀하세요."

월령안은 가볍게 탁자를 두드렸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무형의 위압감이 넘쳤다.

육삼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월 낭자와 우리 대장군은 정말 점점 닮아간다니까. 어떨 때 월 낭자를 마주하면 대장군을 마주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해. 물론, 단지 착각에 불과하지. 월 낭자는 우리 대장군보다 훨씬 아름다우시고 대범하신걸.

그날 저녁, 그 두 상자의 금은은 해적들의 눈을 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형제들의 눈도 멀게 했었지. 육일, 육이, 육사 그들은 지금 날 아주 부러워할걸. 전 재산을 꺼내서라도 나와 일을 바꾸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생각할 테지. 그런데 내가 설마 그렇게 멍청하겠어?'

"흠……."

'너무 멀리 갔군.'

육삼은 가볍게 기침하고 흩어졌던 정신을 가다듬은 뒤, 정색해서 말했다.

"낭자, 호 흠차의 동생이 보름 전에 수만 자산을 가진 여인을 첩으로 맞아들였습니다. 그 여인은 얼마 전까지 강남의 양(楊)씨 성을 가진 부유한 상인의 아내였습니다. 이혼한 뒤, 양씨 상인은 그녀에게 수많은 재산을 증여했습니다. 그녀가 호부(胡府)에 가져간 재산이 바로 양씨 상인이 준 돈이었습니다. 그녀를 맞아들인 뒤, 그 재산은 호 흠차 동생의 개인 재산이 되었습니다."

육삼은 이 소식을 알아내면서 저도 모르게 강남 상인들의 재주에 탄복했다.

이 사람들은 예전에 수양딸이거나 의붓딸을 관리의 뒤뜰에 보내 버렸다. 수양딸, 의붓딸에게 예물을 준다는 빌미로 관리들에게 뇌물을 먹였다. 지금 심지어 이혼한 아내까지 써먹다니. 정말 따지지 않았다!

물론, 더욱 은밀해졌고 뇌물을 받는 관리들이 더욱 쉽게 경계를 내려놓게 만들기도 했다. 이혼한 여인이 가져가는 재산은 결국 자기 자신의 예물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었기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호씨 가문의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육삼은 잠깐 멈췄다가 계속해서 보고했다.

"호 흠차의 아내가 닷새 전에 친정에서 보내온 과일을 한 광주리 받았어요. 그 과일은 전부 금과 옥으로 만들어졌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별것 없어도 은밀한 곳에 모두 표기가 되어 있었어요. 역시 강남의 상인이 선물한 거였어요. 그리고 호 흠차의 아들이 한 강남 여인에 빠졌는데 몰래 밖에서 사택을 준비했어요. 그 여인을 부양하기 위해 호 흠차의 아들은 호 흠차의 명의로 몇 개의 소송을 해결하고 많은 돈을 받았어요……."

보름 남짓한 시간이었다. 그 말은 조정에서 호 대인을 흠차 대신으로 정하자마자 강남의 상인들이 손을 쓰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호 흠차가 얼마나 강직하고 청렴하든지 다 소용없었다. 호 대인 일가는 받아야 할 것, 받지 말아야 할 것까지 모조리 받았다.

호 흠차가 순순히 말을 듣는다면 다 함께 기쁜 일이었다. 강남의 관리들은 자연스럽게 몇 사람을 잡아들여 호 흠차가 변경으로 돌아가 복명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만약 호 흠차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호 흠차가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먼저 일이 날 것이다.

"강남 상인들은 결국 그 몇 가지 수단밖에 없는데도 항상 속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그런 사람들을 뭐라고 하면 좋을지 참."

월령안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호 흠차 이 사람은 아쉽군."

호 흠차는 비록 고리타분하기는 했지만 정직한 점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가족들에게 발목이 잡혀 도적과 한 배에 오르게 되었다.

그것도 언제든지 가라앉을 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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