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885)화 (885/1,004)

885화 꿀꺽하려는 거야?

그러나 그에게는 기회가 없었다!

그가 어떻게 말하든지 별원의 하인들은 모두 그를 상대하지 않았고 그를 도와 말을 전하지도 않았다.

'우리 대장군은 바쁜데 어디 한낱 흠차를 상대할 여유가 있겠어?

사람을 파견하여 흠차 대신을 강남까지 보호하게 한 것은 그를 이용해 여 총독 등 사람들의 주의력을 돌리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호씨는 설마 우리 대장군이 사람을 보내 그를 보호했다고 그들 중서 육부를 두려워하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좋아, 좋아, 좋아! 좋은 추밀원사였어. 내가 기억했어!"

무장들 앞에서 줄곧 도도하게 그들을 내려보던 호 흠차는 자세를 굽혀 먼저 찾아오기까지 했는데 육장봉이 그를 만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육장봉 옆의 무부(武夫)들까지 그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수모를 당했다고 생각한 호 흠차는 굳은 얼굴로 옷소매를 떨치며 떠나갔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되지. 너희들이 없어도 나 호씨는 똑같이 강남 관가의 일을 잘 조사해낼 거야. 기다려……."

조계안이 담을 넘고 들어오다가 마침 이 말을 들었다. 그는 하마터면 벽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황형이 보내온 흠차 대신이 이렇게나 기세가 센가? 나도 강남에서 감히 이렇게 육장봉과 말하지 못하는데 이 호씨는 무슨 용기로 이러는 것이지? 황형이 준 용기인가?'

"조왕 전하, 별원에 문이 있습니다."

육삼이 묵묵히 어두운 곳에서 걸어 나왔다.

강남은 혼란스럽기에 호위인 그들은 이미 매우 힘들었다.

툭하면 담을 넘고, 창문을 넘는 조왕의 행위가 호위인 그들에게 작업량을 얼마나 추가시키는지 아는 걸까?

"됐어, 여기가 너희 대장군부도 아니고."

조계안은 육삼을 흘겨보았다.

"내가 원하는 사람은? 살아 있느냐?"

조계안이 원하는 사람은 바로 그날 부두에서 여 총독을 고발한 중년 남자였다. 호 흠차가 중독으로 죽은 줄로 알고 있는 그 남자였다.

그 사람은 중요한 증인이었다. 육장봉은 강남 관리들이 얼마나 미치광이인지 잘 알고 있어 진작에 그 사람을 비밀리에 월령안이 강남에서 묵고 있는 별원으로 옮겨왔다.

총독부 서원에 안치된 사람은 그들에게 매수된 사형수일 뿐이었다.

역시, 그 사형수는 총독부에서 죽었다.

"전하, 걱정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밀실에 잘 있습니다."

육삼은 옆으로 한걸음 물러서며 조계안에게 길을 안내했다.

"전하, 이리로 가시지요."

"급하긴? 내가 왔는데 어찌 주인과 인사를 나누지 않을 수 있겠느냐?"

조계안을 발걸음을 옮겨 안뜰로 걸어갔다.

"월령안은? 그녀는 어디에 있느냐?"

육삼이 연신 앞으로 다가와 조계안을 막으려고 했다.

"전하, 우리 마님께서는……."

"됐어. 내 앞에서 티 좀 그만 내거라. 무슨 마님이기는…… 넌 내가 눈이 안 달린 줄 아는 것이냐? 너희 대장군이 정정당당하게 명분을 가지려면 아직 멀었어."

조계안은 육삼을 확 밀쳐냈다.

"향혈해의 일은 너희 추밀원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황성사도 지켜보고 있다고."

조계안은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가 바로 육삼을 떨어뜨렸다. 육삼은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다.

"전하, 우리 마님께서는 정말 그럴 시간이……."

조계안은 듣지도 않았다. 육삼이 소리칠수록 그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두어 걸음 만에 조계안은 뒤뜰에 들어섰다. 그러자 눈에 들어온 것은…….

육장봉이 작은 의자에 앉아 목제 의자를 갈고 있었다. 함께 있는 월령안이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으나 손수건을 들고 그의 땀을 닦아 주고 있었다. 머리를 맞댄 두 사람 사이에서 말할 수 없는 달콤함이 묻어났다.

그가 걸어가자 두 사람은 힐끔 보고 여전히 하던 일을 계속했다. 아예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이게 바로 네가 말한 시간이 없다는 것이냐?"

조계안은 이가 근질거렸다.

그는 비록 월령안과 육장봉이 사랑을 나누는 것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을 못 본 척, 친밀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자 그래도 마음이 갑갑해졌다!

기분이 나빠졌다!

궁으로 돌아가 황형을 한바탕 때리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육삼은 안색을 바꾸지 않고 말했다.

"네, 우리 장군과 마님께서는 아주 바쁘셔서 시간이 없습니다."

그들 대장군이 바로 출정하려고 했다. 월 낭자는 시간이 없어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두 사람이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서 감정을 키우는데 무슨 여유로 중요하지 않은 조왕을 상대하겠는가.

"넌 참 훌륭하구나."

조계안은 퉁명스럽게 코웃음을 쳤다.

"전하, 별말씀을요."

육삼은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조계안은 이가 더 근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난 널 칭찬한 것이 아니다."

'육장봉의 사람은 도대체 자기 주제를 모르는 건가?'

조계안은 육삼에게 눈을 희번덕거리고는 전혀 자신을 외부인으로 여기지 않은 채, 두 사람 앞으로 걸어가 웅크리고 앉았다. 그리고 월령안을 흘깃 바라보며 괴상야릇한 말투로 물었다.

"너희 둘, 언제까지 바쁠 셈이야?"

"당신이 전하와 얘기를 나누세요. 나머지는 나중에 다시 하죠."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땀을 닦을 수건을 건네주고 조계안에게 양해를 구한 뒤, 떠나갔다.

떠나갔다…….

조계안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월령안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내가 그렇게 무서워? 내가 오자마자 떠나다니. 도대체 무슨 뜻이래?"

'월령안은 이제 나한테 예조차 올리지 않는 거야? 분명 예전에는 날 만날 때마다 예를 올렸는데? 내가 오늘 들어온 방식이 잘못된 건가?'

"너의 그 귀신 가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스스로 모르는 거야?"

육장봉은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 싫은 내색을 하며 말했다.

"말해, 날 무슨 일로 찾아왔어?"

"일이 없으면 찾아올 수 없는 거야?"

조계안은 얄밉게 육장봉이 표면을 갈았던 의자를 집어 들었다. 의자라고는 하지만 다리가 없어 의자가 아닌, 의자 같은 물건을 보고 그는 의아하게 물었다.

"넌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왜 이렇게 이상하게 생겼지?"

"건드리지 마라!"

육장봉은 조계안의 손을 찰싹, 치고 일어나 옆의 돌의자로 걸어갔다.

조계안이 따라가서 따져 물었다.

"너희들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저건 의자야? 왜 다리가 없어?"

육장봉은 대답하지 않게 곧게 앉아 물을 따랐다.

조계안은 앉은 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물었다.

"넌 아직 나한테 너희들이 뭘 하고 있었는지 말해 주지 않았잖아?"

"그네 의자."

귀찮아진 육장봉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조계안이 물었다.

"그네 의자? 월령안에게 만들어 주려는 거야?"

"응."

조계안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화를 냈다.

"강남이 이토록 어지러워졌는데 지금 그네 의자를 만들 여유가 있어? 육장봉, 너는 혼……."

"혼 뭐?"

육장봉이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혼…… 혼신."

조계안은 급한 와중에 재치 있게 단어를 만들어냈다.

육장봉도 그와 따지기 귀찮아 본론으로 들어갔다.

"말해, 무슨 일이야?"

조계안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는 매우 화가 났지만 또 왜 화가 났는지 말할 수 없었다.

조계안은 굴욕적으로 입을 열었다.

"향혈해와 강남의 팔아 버린 양식들을 찾아올 수 있어?"

안 된다고 하면 그는 반드시 바로 황형에게 보고해 기회를 봐서 북요에 선의를 베풀라고 해야 했다. 북요를 안정시켜 절대 이 시기에 전쟁을 치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향혈해는 잡아 올 수 있어. 그 양식은 생각하지 마."

육장봉은 덤덤하게 말했다.

"무슨 뜻이야? 네가 꿀꺽하려는 거야?"

조계안은 육장봉의 이 말을 찾아오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무슨 꿀꺽하기는……. 내가 이번에 사람을 데리고 향혈해를 잡아 오는데 조정에서 인원을 보탰어? 돈을 보탰어?"

'조계안은 무슨 제 좋은 생각을 하는 거야? 조계안은 내가 월령안에게 인정까지 빚지면서 조정 사람이 아닌 월령안의 사람을 쓰는 것이 그 양식들을 찾아와 조정에 넘기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나?

그 양식들은 문관들이 팔아 버린 것인데 조계안은 무슨 자신감으로 내가 그 좀벌레들을 처리한 뒤, 이 구멍까지 메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 * *

성을 봉쇄한 셋째 날 밤, 흉터는 사람을 데리고 강남 수군의 군영으로 왔다.

그들 일행은 모두 삼백 명이었는데 전부 월씨 가문의 정예병들이었다. 그들은 수군 영지로 오자마자 강남 수군의 관복으로 갈아입었다.

비록 그들은 관복을 입어도 관졸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멀리 서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정말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시진 뒤, 소식을 받은 육장봉과 월령안이 종씨, 육일 등 사람들을 데리고 수군 영지로 왔다.

"큰아가씨, 대장군."

육장봉 곁에서 한동안 머문 탓인지 아니면 흉터의 학습 능력이 강한 것인지 흉터가 예를 올리는 모습은 제법 그럴듯했다.

"좋군."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헤헤……. 제가 몰래 육일 형님에게서 배웠습니다."

흉터는 머리를 긁으며 수더분한 얼굴을 했다. 전에 배에서의 난폭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허……."

육사는 아직도 흉터를 미워하고 있었다. 배에서 그들을 얕잡아보다가 망신당한 일이 떠올라 몰래 흉터를 흘겨보았다.

흉터도 지려고 하지 않고 흉악하게 눈을 흘겼다. 육사가 또 반격하려고 할 때, 육일이 차가운 시선으로 저지시켰다.

육사는 바로 겁을 먹었다.

흉터도 더 이상 까불지 못했다.

월령안이 시선으로 그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사 다음으로 흉터도 고분고분해졌다. 그러나 흉터의 낯가죽은 육사보다 훨씬 두꺼웠다. 육사는 시선으로 경고를 받자 놀라서 꼼짝도 못 했지만 흉터는 뻔뻔스럽게 월령안에게 아부했다.

"큰아가씨, 형제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가씨를 뵙지 못했어요. 요 몇 년 동안 다들 큰아가씨를 뵐 수 있기를 기다렸어요. 큰아가씨, 가셔서 형제들을 좀 보실래요?"

월씨 가문에서 키운 해적들은 해적의 후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부모가 없는 고아였다.

월씨 가문에서 그들을 입양하고 그들은 커서 월씨 가문을 위해 힘을 써야 했다.

월령안이 말한 것처럼 이 사람들이 만약 전부 육장봉에게 불려가 안치된다면 월씨 가문에서 이 사람들에게 쓴 돈도 아직 거두어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래, 가서 보아야겠다."

월령안은 강남의 사업을 처리하기 위해 결국 육장봉과 함께 바다로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비록 아쉬웠으나 월령안도 다른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그녀는 어려서부터 월씨 가문에서 자란지라 이미 이별에 익숙해졌다.

그녀는 육장봉만 맴도는 여인이 될 수 없었다.

월령안이 육장봉과 함께 바다에 나갈 수 없으면서 이때 온 것은 육장봉을 배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마치 그녀가 말한 것처럼 그녀는 더 이상 육장봉이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육장봉의 뒷모습만 좇는 월령안이 되기 싫었다.

월령안이 지금 온 것은 인심을 매수하기 위해서였다.

육장봉의 매력은 그녀도 아는 바였다.

그녀 수하의 사람들은 마침 혈기 왕성하고 무력을 숭상하는 나이였다. 그런 그들이 육장봉 같은 강자를 보면 육장봉이 앞날을 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것도 주지 않더라도 육장봉의 실력을 본다면 미친 듯이 그를 숭배하며 머리를 조아릴 것이다.

연약한 여인인 그녀는 무력으로 인간 매력을 발산시켜 인심을 매수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돈을 쏟아붓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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