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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82)화 (882/1,004)

882화 독 안에 든 쥐

월령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육삼에게 눈치를 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세요."

"네."

육삼은 무거운 얼굴로 뛰어나갔다.

월령안은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가 다시 물러섰다. 그리고 돌의자를 찾아 앉았다. 그녀는 한 손은 배 위에 가로놓고 다른 한 손으로 돌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차분하게 소식을 기다렸다.

일각 후, 육삼이 빠른 걸음으로 돌아왔다.

"낭자, 대장군께서 강남 주둔군을 징용하시고 성을 봉쇄하셨습니다."

"성을 봉쇄했다고요?"

월령안은 잠깐 멍해졌다. 곧이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우아하게 일어나 생글거리며 옷자락을 털었다.

"보아하니, 강남의 하늘이 뒤바뀌겠네요."

성을 봉쇄하다!

독 안에 든 쥐를 잡는 것이었다!

육장봉은 역시 육장봉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아주 멋지게 내디뎠다.

먼저 일부러 소식이 새어나가게 하여 향혈해한테 그가 주둔군을 움직였다는 것을 알렸다. 이렇게 하니 향혈해도 놀라게 하고 여서도 현혹시켰다.

지금, 또 주둔군을 움직여 성을 봉해 여서 등 사람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여서에게 손을 쓸 틈을 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멀리 바다에 있는 향혈해까지도 의심하게 만들었다. 자기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는지, 육장봉의 목표는 그가 아니었는데 그가 깊이 생각한 게 아닌지.

물론, 향혈해가 의심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진씨, 온씨, 이씨 세 가문의 사람들은 반드시 더 깊이 생각하게 되어 있었다.

그들 세 가문은 모든 강남의 재벌이었고 강남 절반 토황제쯤 되었다. 그러나 향혈해 혼자만의 추측으로 아무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억지로 재산과 사업을 내버려 두고 향혈해와 바다를 떠돌고 있었다.

지금, 육장봉이 성을 봉쇄하여 여서 등 사람들을 잡아들였다는 말을 들은 그들은 향혈해가 의도적으로 그들을 속여 바다에서 떠돌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의심할 것이다. 향혈해가 그들을 배에 꽁꽁 묶어 두어 되돌릴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의심의 씨앗은 일단 뿌려지기만 하면 없애 버리기 아주 힘들었다.

더구나 바다 위에서의 고생까지 더해지니 시간이 지나면 향혈해의 동맹 친구들은 그들이 손을 쓰지 않아도 스스로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육장봉의 연이은 수를 보자, 향혈해와 여서의 원수인 월령안은 한마디밖에 하고 싶지 않았다.

'잘했어!'

육삼은 월령안의 기분이 매우 좋은 것을 보고 어수룩하게 웃었다. 그리고 두 가지 뜻으로 말했다.

"날씨가 점차 추워지니 낭자께서는 옷을 두텁게 입으시는 것을 잊지 마세요. 낭자께서 감기 드시면 대장군은 물론, 추수도 절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기분이 아주 좋아 농담을 건넸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네 대장군이 있는 한, 전 정말 감기에 걸리지 않을 거니까요. 옷을 챙겨 줄 필요는 없으나 재산을 늘릴 수는 있죠……. 제가 방금 전에 크게 손해를 보자마자 당신네 대장군이 저한테 보충해 줬는걸요."

육삼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분명 많은 사업체들이 발매할 거예요. 월 낭자, 걱정하지 마세요. 대장군께서 분명 낭자께 남겨 드릴 거예요."

"남겨 줄 필요 없어요. 저 스스로도 살 수 있으니까."

월령안은 도도하게 코웃음을 치고 돌아서서 서재로 걸어갔다.

"강남 상사에 제가 움직일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계산해 봐야겠어요. 전 범씨 가문 그 개떡 같은 강호 마을 주변의 모든 부동산을 전부 사서 범씨 가문이 절 위해 돈을 벌게 만들겠어요!"

'범씨 가문은 나한테서 사업을 빼앗기를 좋아하잖아. 난 오늘 범씨 가문더러 다른 사람 좋은 노릇을 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게 해 줄 거야.'

* * *

주둔군이 출동하자 움직임이 아주 컸다. 총독부에 갇혀 있는 몇몇 관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약삭빠른 사람은 한눈에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짐을 챙겨 고향으로 가서 화를 면하려고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마치 전에 강남에 흑사병이 터졌다는 의심이 돌 때, 관가에서 성을 봉쇄하여 백성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했을 때처럼 이번에는 주둔군이 출동하여 가장 먼저 성문을 봉쇄해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게 했다.

성을 봉쇄한 뒤, 조정의 흠차 대신이 도착했다!

흠차 대신은 성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백성들을 진정시키고 사람들 앞에서 황제의 성지를 읊었다. 그는 강남 백성들에게 누군가 변경에 들어가 황제에게 고발했다고 말했다.

고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강남 총독 여서 등 관리들이 백성들을 괴롭히고 마을 사람들을 마구 짓밟았으며 백성들의 안위를 무시하고 흑사병이 터졌다는 의심이 돌 때, 직권을 남용하여 성을 봉쇄하고 사람을 죽였다고 했다.

황제는 강남 백성들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이 사실을 밝히라고 그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일단 사실이라면 백성을 억압하는 그 어떤 관리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성지를 다 읽은 그는 자신이 온 의도와 성을 봉쇄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또 한 번 성문 입구를 비집고 있는 백성들에게 해명했다.

이번에 성을 봉쇄하는 것은 흑사병을 예방하기 위해서이고 일단 흑사병이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거나 잠잠해진다면 바로 봉쇄를 풀겠다고 했다.

흠차 대신은 사람들에게 만약 흑사병이 진짜라면 어찌하리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 대충 한 마디로 넘어갔다.

성안의 백성들이 더 깊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흠차 대신은 또 백성들에게 읍하며 장담했다. 성을 봉쇄하는 기간에 주둔군은 절대 백성들의 생활을 간섭하지 않을 것이고 그도 백성들의 생활에 지장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강남의 백성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성을 봉쇄하는 기간에 강남의 백성들은 그 어떤 억울한 일이 있어도 관아에 가서 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매일 한 시진 동안 시간을 내서 성안의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겠다고 했다.

"성문 입구에 군사들이 드나드니 무고한 사람들이 다칠까 걱정됩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집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성을 봉쇄하는 기간에는 될수록 적게 외출하시고 안전을 확신한 뒤에야 외출하시기 바랍니다."

흠차 대신은 말을 마친 뒤, 사람들을 쫓기 시작했다.

자고로 대부분 사람들이 적은 사람들의 말을 듣게 하기 위해 사용한 수법은 모두 채찍과 당근이었다. 주둔군의 호된 채찍과 흠차 대신의 당근 앞에서 성안의 백성들은 더 이상 불만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스스로 떠나갔다.

곧, 성문 입구에는 주둔군밖에 남지 않았다.

"역시 공부한 사람들은 말을 잘하네. 죽은 것도 산 것처럼 말을 한다니까. 무슨 강남 백성들과 함께하기는.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가 백성들을 크게 생각하는 줄 알겠다니까."

육육과 육칠은 오는 길 내내 조정에서 파견한 이 흠차 대신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따랐다.

육육은 말 두어 마디로 백성들의 분노를 잠재우고 백성들의 감격을 불러일으켜 청천(青天)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흠차 대신을 보면서 부러워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고 돌아왔어도 백성들이 이토록 그들에게 감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육육은 자기네들이 말할 줄 몰라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허튼 생각 그만하고 얼른 따라가세요. 우리는 입성해야 한다고요."

육칠은 육육을 밀치며 그들더러 정신을 차리라고 했다.

그들은 무장이니 문관들과 달랐다.

무장들의 공로를 결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전쟁터의 승부밖에 없었다. 입으로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그들의 상황은 보통 장령들과 달랐다.

그들의 대장군은 전쟁에서 이긴 뒤, 이름을 크게 날린 것은 물론이고 실권까지 손에 쥐고 있었다. 만약 거기다가 이 문관들처럼 민심을 얻으려고 한다면 황제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황제가 가만두더라도 조그마한 일에도 호들갑을 떨며 욕을 하는 조정의 관리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 대장군에게 근거 없는 죄명을 잔뜩 뒤집어씌울 것이다.

대장군의 죄를 묻지 않더라도 대장군이 더 이상 전쟁터에 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공로를 세워 신분이 변하고 정변을 일으키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있으니 조정 대신들과 황제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흠차 대신은 입성하자마자 끊임없이 채찍질하여 대장군을 만나러 총독부로 곧게 향했다.

그러나 육장봉은 그를 만나지 않고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하게 했다. 그들 추밀원은 군무만 보지 육부 관리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흠차 대신은 안심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육장봉이 강남 관가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강남의 상황은 너무나 복잡했다. 만약 육장봉의 도움이 없다면 자기가 살아서 강남을 떠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서 만약 육장봉이 파견한 친위대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그는 열 번도 더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육장봉이 말을 이렇게 하자 흠차 대신도 육장봉더러 자기를 도와달라고 입을 떼기 힘들었다.

흠차 대신은 황제의 명령을 짊어진 사람인지라 직급이 높았다. 그러나 육장봉 앞에서 그는 감히 육장봉보다 급이 높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군. 육 대장군께서 강남 관가의 일을 관여치 않으시겠다는 것은 우리를 신임하고 계시다는 말이야. 우리 육부의 잘못으로 트집도 잡지 않으시고."

흠차 대신은 스스로 위로한 뒤, 적극적으로 강남의 관리들과 지혜를 겨루는 데 몰두했다.

육장봉의 암묵적인 허락을 받은 흠차 대신은 총독부의 대저택을 차지했다. 그리고 바로 총독부 대저택에서 여서 등 사람들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여 총독 등 사람들은 아직도 육장봉에게 협조해 향혈해를 잡아서 떡고물을 얻어먹을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공을 세워 황제에게서 상을 받는 것이 아닌 흠차 대신의 심문이었다.

흠차 대신을 본 순간, 여 총독은 자신이 육장봉에게 놀아났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그는 금방 침착해졌다.

강남의 흙탕물은 조정의 관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었다. 조정이 그의 잘못을 캐내어 율법으로 그를 심판하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육장봉은 줄곧 목표가 명확했다. 흠차 대신이 오자 그는 총독부의 통제권을 버려 버렸다. 심지어 흠차 대신과 만나지도 않은 채,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강남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조사하는 것은 육부의 일이었다. 강남의 관리를 어떻게 처결하는가는 황제의 일이었다. 그는 남의 일을 떠맡는 데 관심이 없었다.

물론, 흠차 대신이 조사한 결과나 황제의 처결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부담을 덜어 줄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모두 나중의 일이었다. 지금 그는 고생만 하고 이득은 없는 일을 찾아 할 여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지금 집중할 다른 일이 있었다.

강남의 관가가 청렴하지 않다는 것은 강남의 주둔군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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