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1화 너무해! 정말 너무해!
그는 편지에 뭘 썼는지 알지 못했다.
"너무해! 너무해! 정말 너무해!"
월령안은 암위가 대답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홀로 화를 삭이려다 울분이 터져 참지 못하고 욕을 뱉은 것이었다.
육장봉이 사람을 빌려 간다면 거의 돌려줄 가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또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앞길을 막을 수 없지 않은가?
사람이라면 해상에서의 생활이 고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를 따른다면 비록 부귀를 누릴 수는 있으나 세상 사람들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는 것이다. 돈이 생긴다면 출세도 하고 싶어 했다.
그녀는 그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줄 수는 있지만 출세를 시켜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종씨가 그녀 앞에 서서 불안한 모습으로 그와 몇몇 형제들은 더 이상 해적 일을 하지 않고 뭍으로 올라와 후손을 위해 좋은 길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거절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가 종씨 그들을 출세시켜 줄 수 없는데 어떻게 그들이 출셋길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답답해 미칠 것 같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조금이라도 불만을 드러낼 수 없었다. 종씨 몇몇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 좋은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육장봉 이 나쁜 녀석은 사람을 빼 가는 것에 재미를 느꼈는지 또 한 번 시도하는 것이었다.
'내가 사람을 키워내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나? 육장봉은 내 사람을 모조리 빼 가야 직성이 풀리지?'
월령안은 화가 나 탁자를 두드렸다. 암위는 묵묵히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월 낭자가 이렇게 화가 났는데 내가 옆에 머무를 수 있을까? 대장군께 회답 편지를 써 달라고 귀띔을 해 줘야 하나? 내가 복명하기 편하게?'
"멍하니 뭐 하고 있어요?"
기분이 언짢은 월령안은 뭘 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편지를 손에 넣고 구겨서 암위에게 던졌다.
"육장봉더러 정신 차리라고 하세요. 헛된 꿈 꾸지 마시고요! 사람이든, 배든 다 안 빌려줄 거예요."
"네, 큰아가씨!"
암위는 한마디도 더 하지 못하고 종이 뭉치를 집어 들고 묵묵히 물러났다.
육삼의 교훈이 바로 전에 있었다. 대장군에게 미움받는다면 기껏해야 벌을 받는 정도지만 월 낭자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무조건 월 낭자의 편이 되겠어. 월 낭자가 나더러 뭘 하라고 하면 뭘 할 것이야. 대장군이 가져오라던 회답 편지에 대해서는? 그게 뭐지? 난 몰라.'
암위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떠나려고 했다. 문턱을 나서려는 순간, 월령안이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만요!"
"네, 큰아가씨."
암위는 다급히 멈춰 선 뒤, 돌아섰다.
월령안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의 울화를 억누르고 이를 악문 채, 말했다.
"당신네 대장군께 알리세요. 사흘 뒤, 그가 원하던 사람과 배는 모두 도착할 거라고요! 향혈해의 행적도 사람을 시켜서 감시할 테니 그더러…… 안심하라고 하세요!"
육장봉은 편지에서 이번 작전에 참여한 해적들을 위해 공을 청해서 그들에게 신분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녀가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녀가 다른 사람의 앞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녀의 수하들이 그녀가 자기들의 출셋길을 끊어 버렸다는 것을 안다면 은혜가 원수로 바뀔 수 있었다.
앞으로 새 피를 수혈받기 위해 그녀는 꾹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암위를 보낸 뒤, 또 순순히 바다에 있는 흉터 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들더러 바다의 동향을 주목하고 향혈해의 행동을 추적하는 한편, 조정을 위해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라고 했다.
월령안도 그들에게 숨기지 않고 직접 편지에 흉터 그들에게 알렸다. 이번 전쟁은 육장봉이 해적들에게 신분을 따낼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육장봉은 그들이 공으로 죄를 씻을 수 있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그들이 전에 저질렀던 잘못을 모두 지우고 그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종씨 그들처럼 정상적인 신분을 가지고 관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불행하게 전쟁에서 사망한다면 조정에서는 그 후손들에게도 은혜를 베풀 것이라고 했다.
물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전제였다.
오, 그리고 하나 더 있었다. 홀로 군마와 양식을 준비해야 했다. 조정에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돈과 힘도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육장봉에게 이혼당하고 더 이상 장군 부인이 아니게 된 다음부터 월령안은 이렇게 손해 보는 장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번에 손해를 크게 본 탓에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월령안은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일 처리를 마친 뒤, 기분전환 겸 나가서 산책하려고 했다. 그러지 않고 계속 생각한다면 그녀는 억울해 죽을 것만 같았다.
육삼은 강남의 사람이 월령안을 죽일까 걱정되어 월령안의 곁을 조금도 떠나지 않았다.
마당을 두 바퀴 돈 뒤, 월령안의 기분은 차츰 가라앉았다. 그녀는 곁에 서 있는 육삼을 힐끗 바라보았다. 육삼이 추수를 위해 출셋길도 마다하고 그녀 곁에 지키고 있는 것을 보자 월령안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육삼, 사람은 모두 이런 건가요? 끊임없이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좇으면서 자기가 가진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이에요."
"그건……."
육삼은 아무런 준비 없이 질문을 받자 당황해졌다.
"월 낭자, 소인도 잘 모릅니다."
월령안이 또 물었다.
"그럼 제가 만약 세 배, 다섯 배의 녹봉을 내놓는다면 군에서 몇 사람이나 빼 올 수 있을까요?"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육장봉에게서 사람을 빼 올 것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육장봉 옆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같이 출셋길이 훤했다. 이런 사람은 그녀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빼 올 수 없었다.
세상에서 돈은 권력보다 못했다. 손에 움켜쥔 권리야말로 가장 대단한 것이었다.
"군에서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육삼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월 낭자도 아시다시피 군에서의 생활은 아주 힘듭니다. 우리 대장군께서는 아랫사람들에게 몹시 엄하십니다. 대장군 수하의 병사는 그나마 괜찮아요. 양식과 급여가 모두 충분하고 층층이 착취하거나 떼어먹히는 일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렇다고 해도 군의 급여로는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을 정도예요. 돈을 모으려면 전쟁에서 공을 세워야 해요.
대장군 수하의 병사도 이런 상황이니 다른 병사는 더 어려울 겁니다. 강남처럼 이렇게 상업이 발달한 곳은 그나마 괜찮아요. 현지 부유한 상인들은 화물이 길에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현지 주둔군들에게 돈을 찔러 주니까요. 하지만 어려운 곳에서는 다들 힘들게 사니 군인들은 더 힘들어요."
여기까지 말한 육삼은 자조적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군영에서는 이런 말이 있어요. 좋은 쇠로는 못을 만들지 않고 좋은 사내는 병사가 되지 않는다. 이 말만 들어도 사람들이 얼마나 병사가 되기 싫어하는지 아시겠죠? 부득이한 경우여서 다른 살길이 없다면 누가 군인이 되고 싶겠어요? 조정에서는 해마다 징병하는데 강제적으로 해야만 충분한 병사를 모집할 수 있어요. 아니면 턱없이 부족해요."
월령안은 한탄했다.
"하지만 당신들에게는 한없이 고된 병사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평생 원해도 할 수 없는 일이죠."
마치 종씨 그들처럼 육장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향혈해 이 큰 비적을 토벌하는 데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평생 정정당당하게 군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월 낭자, 종씨 그들이 조정으로 가는 것이 불쾌하신 건가요?"
'아닌데, 월 낭자는 돌아온 뒤, 항상 종씨 등 몇 사람들의 일로 기뻐했잖아? 또 아주 즐겁게 책자를 가져오라고 하인을 시키기도 했지. 종씨 그들에게 안정적인 사업을 몇 개 준비해 주겠다면서.'
"불쾌한 것이 아니에요. 단지 갑자기…… 방향을 잃은 것뿐이에요."
월령안은 고개를 젓고 목표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종씨 이 사람들은…… 월씨 가문에서 키웠고 그들도 월씨 가문을 위해 많은 공을 쌓았죠. 이렇게 오랫동안 그들은 바다에서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이번에 육장봉이 그들을 부르지 않았어도 저는 그들이 뭍에 올라와 노후를 보내게 했을 거예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월령안은 손이 가는 대로 꽃을 꺾어 매만졌다.
"월씨 가문에서 많은 품과 돈을 들여 그들을 배양하고 그들의 온 가족을 부양했어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제서야 월씨 가문을 위해 힘을 쏟기 시작했어요. 월씨 가문을 위해 공을 쌓기는커녕 그들에게 쓴 돈마저도 돌려주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육장봉이 그들을 쓰려고 한다면 이변이 없는 한, 그 사람들은 이 기회를 반드시 잡을 것이다.
월령안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들이 해적에서 병사가 되어 정당한 신분이 생기는 것이니 전 당연히 기쁘죠. 그러나 월씨 가문 가주로서 전 좀 실망스러운 기분도 들더라고요. 대량의 인력과 자금력으로 그들을 배양한 것이 가치 없는 일로 느껴지고요. 심지어 이런 일이 또 일어날까 싶어서 사람을 배양하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어요."
월령안은 기분이 많이 가라앉았다. 육삼은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입만 벙긋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월령안이 걱정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 이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규율이었다. 그들의 대장군이 빼 가고 싶은 이상, 월 낭자는 사람을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심지어 그녀가 말한 것처럼 원수가 될까 봐 붙잡지도 못했다.
다행히, 육삼이 위로할 필요가 없이 월령안은 스스로 깨우쳤다.
그녀는 손에 든 꽃을 대충 머리에 꽂고 활짝 웃었다.
"물론, 저도 그저 말해 보는 것뿐이에요. 육장봉이 끊임없이 저한테서 사람을 빼 간다고 해도 전 새로운 피를 수혈받을 거예요. 그리고 육장봉이 사람을 빼 간다고 해도 꼭 잘 쓸 것도 아니잖아요. 귤이 회남에서 크면 귤이 되고 회북에서 크면 탱자가 된다고 그 사람들이 뭍에 오른 뒤, 여전히 전처럼 싸움에 능하고 강한지는 장담할 수 없죠."
그녀는 진작에 육장봉에게 말해 주었다. 그녀의 사람을 강남 수군으로 발탁하기만 한다면 강남 수군이 갑자기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반대로 강남 수군이 그녀의 사람을 동화시킬 수 있었다. 종씨 그들이 강남 수군처럼 무능해질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결국 뼛속부터 편안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역경에서, 밑바닥에서 목숨을 걸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생활이 편해지고 안정되었는데도 목숨을 걸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제치고 싸울 용기가 있지만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손과 발이 묶여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을 빼 가기만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조정의 병사 제도를 고치지 않은 한, 아무리 많은 사람을 빼 가도 무능해질 뿐이었다.
그녀는 육장봉이 골탕을 먹기를 기다렸다!
월령안은 탁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기분이 확 좋아졌다. 그녀는 전의를 불태우며 말했다.
"범씨 가문이 무림대회에서 제 체면을 깎았어요. 제가 강남에 이렇게 오래 있었지만 아직 범씨 가문의 강호 마을을 보지 못했어요. 준비했다가 나중에 범씨 가문의 강호 마을 보러 가요!"
다그닥다그닥…….
바로 이때, 마당 밖에서 갑자기 떠들썩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대군이 출동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