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0화 육장봉이 또 뭘 하겠대요?
"궁금하지 않군!"
육장봉은 매우 쌀쌀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너 같은 사람은 친구가 없을 거야."
'봐봐, 나처럼 성격이 좋은 사람도 육장봉의 오만한 모습을 견디기 힘든데 누가 견딜 수 있겠어?'
"미안하지만 고수는 원래 홀로 살아가는 거라네. 친구가 필요 없어."
다른 사람이 어떤지는 몰라도 적어도 육장봉은 필요하지 않았다.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단어를 내가 너한테 설명해 줘야 하나?"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육장봉, 넌 염치가 없는 거야? 무슨 염치로 자기를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하는 거야? 나 조계안은 당당한 조왕이자 제왕의 친동생이야. 네가 왜 오르지 못할 나무고 난 왜 네 친구가 될 자격이 없다는 거야?"
조계안은 힘껏 탁자를 두드리며 눈이 커다래졌다.
화가 난다!
그는 이 나이까지 자라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이렇게 하찮게 여겨지고 있었다.
'세상에 나 조계안이 오르지 못할 나무가 있다고? 육장봉은 무슨 제 좋은 생각을 하는 거야!'
육장봉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그가 창문을 뛰어넘어 들어온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또 정문을 가리켰다.
"창문은 저기 있고, 문은 저기 있어. 네가 스스로 선택해. 기어서 꺼질 것인지 그냥 꺼질 것인지 마음대로 해."
"마음대로 하기는 개뿔!"
조계안은 화가 나 안색도 변했다. 얼굴이 심하게 구겨져 하마터면 가면도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넌 정말 내가 무슨 소식을 가져왔는지 궁금하지 않다는 거야? 나쁜 소식이면 어쩌려고!"
'가려고 해도 지금 갈 수는 없지. 난 아직 육장봉의 우스운 꼴을 보지 못했다고.'
"오, 나쁜 소식이라고?"
육장봉은 싸늘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윽……."
'갑자기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드는 건 뭐지? 나쁜 소식을 가져온 사람은 환영받을 자격이 없다는 건가? 육장봉이 하는 짓은 차별이야!'
"계속 말할 건가?"
육장봉은 싸늘하게 물었다.
"말할 거야. 왜 말 안 하겠어!"
'내가 아주 바삐 보내면서도 짬을 내 육장봉을 찾아온 것은 육장봉을 놀리려는 것인데 왜 말 안 하겠어? 당연히 말해야지!'
"말해."
육장봉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말하고 얼른 꺼지라는 듯한 귀찮은 말투였다.
조계안은 그의 도발에 쉽게 발끈해서 바로 이런 수가 잘 먹히는 사람이었다.
육장봉이 더 묻기도 전에 조계안 고소해하며 말했다.
"향혈해가 진씨 가문, 유씨 가문과 온씨 가문 세 가문을 데리고 도망쳤어."
"오"
육장봉은 알겠다는 듯이 응답했다. 그의 말투는 이 소식을 듣지 못한 것처럼 평온했다.
조계안은 화가 나 이를 악물고 또 덧붙였다.
"향혈해가 도망갔다니까?"
'내가 설마 육장봉의 우스운 꼴을 정말 보지 못하겠어?'
"알았다고, 용건이 또 있어?"
육장봉은 옆에 있는 장부를 들고 '할 말 있으면 빨리하고 없으면 꺼져.'라고 말하는 듯한 도도한 모습을 했다.
일순간, 조계안도 육장봉이 진정으로 신경 쓰지 않는 건지 아니면 그러는 척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는 떠보듯 물어보았다.
"향혈해가 도망쳐서 너의 계획이 무너졌는데 사람을 파견해서 찾지 않아?"
"넌 내 암묵적 허락이 없이 그가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육장봉이 비꼬는 말투로 반문했다.
조계안은 멍해졌다가 정신을 차렸다.
"네가 일부러 풀어 준 거라는 말이야?"
"도둑을 잡으려면 죄명이 있어야지. 조정이 일을 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야."
향혈해가 도망치지 않는다면 그는 무슨 죄명으로 그를 잡을 수 있겠는가?
마치 월령안이 말한 것처럼 그들과 같은 신분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법을 어기고 더러운 일이라면 모두 수하들에게 시키고 절대 아무 약점도 남기지 않는다.
조정에서는 그들이 죄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증거가 없으니 심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난 네가 왜 갑자기 떠들썩하게 육일더러 주둔군을 움직이게 하나 싶었지. 넌 일부러 상대방에게 겁을 준 것이구나."
꼿꼿했던 조계안의 등허리가 축 처지며 또다시 의자에 늘어졌다. 그는 가기 싫다는 듯이 억지를 부렸다.
"하지 않으면 잘못이 없고 많이 할수록 잘못도 많이 저지른다. 너 이 방법은 역시 교묘했어."
풀을 쳐서 향혈해라는 독사를 놀라게 한 것과 동시에 여서를 안심시켰다. 만약 그의 추측이 맞다면 여서는 육장봉의 목표가 향혈해인 줄 알고 경계를 늦출 것이다.
"알았으면 얼른 가서 여서의 일을 조사하지 않고 뭐해!"
육장봉은 싫은 내색을 하며 쫓아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계안은 뻔뻔스러운 사람인지라 육장봉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게을러빠진 모습으로 의자에 축 늘어져 있는데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 여서의 일은 내가 거의 알아봤으니까. 월령안이 가져온 증거는 틀리지 않았어. 강남 양식 창고의 육 할은 비어 있어."
여서가 잘못 추측한 것이 아니었다. 육장봉의 목표는 여서가 아니었다. 진정 여서를 조사하는 사람은 조계안이었다.
"강남의 관리들은 참 대단해."
육 할의 양식 창고가 비면 전쟁이라도 나게 될 때 전선의 병사들은 뭘 먹는다는 말인가?
강남의 관리들은 죽어 마땅했다!
육장봉은 눈을 내리깔고 시선에 드리운 울분을 감추려고 했다.
"그 곡식들의 행방은? 찾았나?"
"성안에는 없어. 내 사람이 아직 쫓고 있기는 한데……."
했다면 증거를 남기기 마련이다. 조계안은 찾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육장봉은 굳은 얼굴로 손에 든 장부를 조계안에게 넘겨주었다.
"더 이상 쫓을 필요 없어. 증거가 명확하니 흠차 대신더러 당장 잡아들이라고 하면 돼."
그가 손에 든 장부는 바로 낮에 그 지저분한 중년 남자가 감춘 강남 관리들이 군량을 사고판 것과 관련이 있는 장부였다.
이 장부와 빈 양식 창고, 거기다가 되찾지 못하는 양식까지 더한다면 이 일에 참여한 모든 관리들을 단죄할 수 있었다.
"쫓지 않는다면…… 호랑이를 산에 풀어 둔다고?"
조계안은 안색이 굳어지더니 말했다.
"너무 위험한 것 아니야? 바다는 이렇게 크고 우리도 잘 알지 못하는데 그가 도망치면 어떡하려고?"
"도망 못 친다!"
육장봉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차가운 얼굴에 감출 수 없는 우쭐거림이 드러났다.
"난 너와 달라. 난 월령안이 있잖아!"
월씨 가문은 바다 위의 패자(霸主)였다.
향혈해는 기껏해야 오 년 동안 큰 작은 새우일 뿐이었다. 한낱 새우인 그가 아무리 크다 한들 어찌 바다의 패자와 왕위를 다투겠는가?
조계안은 답답한 마음을 안고 무기력한 채로 떠나갔다!
창문을 뛰어넘어 떠나갔다.
안 가면 어찌하겠는가?
육장봉 이 인간은 정말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가지 않고 남아서 월령안이 자기에게 얼마나 잘해 주는지 자랑하는 육장봉의 말을 듣겠는가?
그는 원래 육장봉의 우스운 꼴을 보려고 온 것이지 육장봉이 자랑하는 것을 보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육장봉에게 뽐낼 기회를 주지 않아 육장봉이 답답해 죽게 만들고 싶었다.
"여봐라!"
조계안이 떠나자 육장봉은 시위를 불러와 조계안이 넘어온 창문을 가리켰다.
"봉해라!"
"네, 대장군!"
시위는 무표정한 얼굴로 명령을 받고 돌아서서 도구를 찾아 쿵쾅거리며 창문을 봉했다.
창문을 봉한 뒤, 육장봉은 또 암위를 불러와 전에 써 두었던 편지를 월령안에게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반드시 월령안의 회답 편지를 받은 뒤에야 돌아올 수 있다고 당부했다.
"네, 대장군."
암위는 두 손으로 편지를 받쳐 들었다. 그는 손에 든 편지가 천 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월 낭자는 줄곧 우리 장군께 회답 편지를 보내는 것을 싫어했는데. 월 낭자가 회답 편지를 안 쓰려고 하면 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건가? 물론 만약 월 낭자가 날 받아 준다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해도 좋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암위는 갑자기 신심이 가득해져 기쁜 마음으로 걸어 나갔다. 발걸음에도 홀가분함과 즐거움이 넘쳤다.
육장봉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슬프고 기쁜 감정을 내보이다니. 내 암위는 어디 아픈 것이 아닌가? 육일더러 의원을 데려다 보라고 해야겠군.'
육장봉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계속해서 강남 지지(地誌 - 어떤 지역의 자연·사회·문화 등의 지리적 현상을 분류하고 연구하여 기록한 책)를 살펴보았다.
강남 지지에는 연해 일대의 해역 분포가 기재되어 있었고 또 현지에서 상대적으로 유명한 해전(海戰)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전에 해전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전에 강남 수군을 데리고 청어도의 해적을 소멸할 수 있었던 것도 월령안의 덕을 본 것이었다.
나중에는 그럴 수 없었다.
월령안이 사업을 크게 한다지만 그건 결국 월씨 가문의 것이지 조정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개인의 이익 때문에 공적인 이익에 손해를 주지 않는 만큼, 공적인 이익을 위해 사적인 이익에 손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공평하게 거래하는 것은 괜찮았다.
육장봉은 열심히 연해 지역의 지리적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월령안도 육장봉의 선동을 받고 강호에서 은퇴한 뒤, 조정에 보답하려는 종씨 등 몇몇 해적들에게 정착할 사업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 사업!
돈이라면 종씨 등 몇 명에게도 부족하지 않았다. 바다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있으면서 그들이 모은 금은보화만 해도 넘치게 많았다.
그러나 육지의 생활은 바다와는 달랐다. 바다에서는 돈만 있으면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지만 육지에서는 요령 없이 집과 가게를 사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예전의 주인으로서 그녀는 비록 자기의 사람이 남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달갑지 않았지만 준비해 줘야 할 것은 준비해 줘야 했다.
그녀도 이렇게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무슨 수가 있겠는가?
종씨 등 사람들은 그래도 월씨 가문에서 나간 사람들이었다. 만약 나중에 뇌물을 받은 것이 걸리기라도 한다면 그녀의 망신이 아니겠는가?
나중에 횡령과 수뢰의 길을 걷게 될 노총각 몇 명이 뒷걱정 없이 관가에서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미리 돈을 벌 수 있는 가게를 마련해 줄 수밖에 없다.
종씨 등 몇 사람들이 나중에 있던 돈을 다 까먹고 횡령하거나 뇌물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는 미리 그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가게를 준비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미래 걱정 없이 마음 편히 관가에서 앞날을 도모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월씨 가문의 가업이 큰데다 종씨 그 사람들은 월씨 가문을 오랫동안 따른 사람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월령안은 그들을 홀대하지 않을 것이다.
집, 가게 이런 것들은 물론, 심지어 월령안은 그들을 위해 장사를 할 경로, 일손까지도 찾아 주었다.
무슨 다른 수가 있겠는가?
그들 몇몇은 죽이고 때릴 줄밖에 몰랐다. 싸움을 하는 데는 능수였지만 장사를 한다고 하면 있는 것 다 말아먹을 사람들이었다.
월령안이 종씨 등 몇 사람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암위가 나타났다.
"큰아가씨!"
이 부름은 깔끔하고 아부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는 암위 마음속에 있는 월령안의 지위를 충분히 나타냈다.
그는 월령안을 말끝마다 '마님'이라고 아부를 떠는 상대가 아닌, 월씨 가문 큰아가씨로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월령안은 육장봉이 자기 사람을 빼앗아 간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그녀가 육장봉의 암위를 보았으니 당연히 말이 상냥하게 나갈 리 없었다.
암위는 다급히 손에 든 편지를 꺼내 월령안에게 바쳤다.
"큰아가씨, 장군께서 아가씨게 보내시는 편지입니다."
"육장봉이 또 뭘 하겠대요? 또 제 사람을……."
월령안은 불만을 다 토해내지도 않고 육장봉의 편지를 내팽개쳤다.
"당신네 장군은 정말 너무하지 않아요? 왜 또 저한테서 사람을 데려가려고 하세요? 사람도 모자라 배까지 빌려 가려고요? 아예 양식과 병기도 함께 빌리지 그래요?"
암위는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