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9화 큰일 났습니다!
"혹시 월령안이 그에게 무언가 말했나? 아니면 그가 뭘 알아낸 건가?"
향혈해는 불안한 얼굴로 말하자마자 또 바로 부인했다.
"그럴리 없어. 내 신분을 폭로해 봤자 월령안에게도 좋을 게 없으니. 육장봉이 조사하려고 해도 월령안이 막아서 날 알아내지 못하게 할 거야. 내 신분을 알아낸 것이 아니라면 왜 주둔군을 움직이려는 거지? 혹시 정말 반역하려는 건가?"
향혈해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그는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바로 이때, 그의 수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두목, 두목…… 큰일 났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육장봉이 뭘 하려는 것인지 짐작되지 않아 불안하던 향혈해는 안색이 확 창백해졌다.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목…… 우리 섬의 형제들이 전부, 전부 죽었습니다!"
향혈해의 수하는 소리 높여 울부짖으며 아버지가 죽은 듯이 비통한 모습을 했다.
"이백 명이 모두 죽었어요…… 시체는 바다에 던져져 물고기 밥이 되어서 무덤조차 세울 수 없습니다. 그들은 너무 불쌍하게 죽었어요! 두목, 우리 형제들을 위해 복수하셔야 해요!"
"다 죽었어? 다 죽었다는 말이냐?"
향혈해는 오히려 매우 침착했다. 심지어 앉을 때, 팔걸이를 잡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두 죽었어요. 섬이 텅 비었어요. 모두 없어졌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수하는 벌게진 눈으로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향혈해는 침착하게 반문했다.
"누가 손을 쓴 것이냐? 종씨, 흉터 그들이냐?"
"아니요…… 조, 조정 사람들입니다."
수하는 주먹을 꽉 쥔 채, 울분에 차서 말했다.
"조정의 그 개자식들입니다. 우리들에게서 이득을 받아 챙기고도 우리 사람들을 죽이러 왔습니다! 두목, 우리는 절대 이 일을 그냥 넘기면 안 됩니다. 그 개 같은 수군 녀석들이 우리 청어도(青魚島)의 사람을 만만히 여기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조정의 사람이라고?"
향혈해는 수하의 수다를 들어 줄 마음이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이 자기도 모르게 휘둥그레졌다.
"육장봉이냐?"
수하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강남 수군입니다! 강남 수군이 바다에서 길을 잃어서 남해로 가지 않고 무심결에……."
"육장봉이다!"
향혈해는 난폭하게 수하의 말을 잘랐다.
"그가 맞아!"
그 말고는 이걸 해낼 사람이 없었다.
"그가 오늘 언덕으로 데려간 사람들이 바로 수군이다! 그런데…… 절대 강남 수군은 아니야. 강남 수군은 얼간이들이야. 그들은 언덕의 관병들을 제압할 능력이 없다고."
향혈해는 팔걸이를 탁,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머리는 혼란스러워졌다.
"월령안과 육장봉이 손을 잡은 거야! 그녀가 날 배신한 거야!"
"두, 두, 두목……."
수하는 향혈해가 이토록 화가 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지라 놀라서 벌벌 떨었다.
"괜찮다! 이 일은 내가 해결할 것이다!"
향혈해는 자기가 추태를 부린 것을 알아채고 억지로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대충 둘러댔다.
"섬에서 피해 입은 형제들의 명단을 정리하고 될수록 빨리 보상을 그들의 가족에게 나누어 주거라. 배로 주는 것을 잊지 말거라!"
'월령안 그 나쁜 년, 날 배신하다니. 죽여 버리겠어!'
"제가 죽은 형제들을 대신해 두목께 감사드립니다."
수하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다급히 떠나갔다.
그가 떠나자 향혈해는 진씨 저택 본채로 성큼성큼 걸어가 진부의 가주를 찾았다.
"모든 사람에게 알리세요. 아무것도 챙기지 말고 바로 떠납니다! 수로로…… 갑니다."
"일이 생겼나요?"
진씨 가문의 가주는 이미 환갑이 넘었으나 얼굴에 홍조가 도는 것이 매우 기운 넘쳐 보였다.
"육장봉이 사람을 데리고 청어도를 토벌했어요.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향혈해는 문을 등져서 빛을 막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더더욱 어두워 보였다.
"대장군이…… 우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건가요?"
진부의 가주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장군이 오늘 부두에서 여 총독에게 손을 쓴 것은 연기라는 말인가요? 정말 여 총독에게 손을 쓴 것이 아니라?"
"그는 추밀원사니 천하 군사를 다스리고 군부를 관리하지요. 강남 총독을 통제할 수는 없다는 말이죠. 그가 여서한테 손을 써 뭘 할 수 있겠어요? 여서를 단죄할 수 있겠어요? 아니면 여서를 파직할 수 있겠어요? 그한테 여서가 죄를 범한 증거가 있다면 바로 황제에게 넘기면 되지, 강남까지 와서 모험할 필요가 있겠어요? 부두의 일은 육장봉과 여서가 짜고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 한 일이에요."
전에 그는 월령안이 그의 신분을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지금 월령안이 그를 죽이려고 마음먹은 것도 부족해 육장봉과 손을 잡은 것을 알게 되자 그는 이해 안 될 것이 없었다.
'육장봉은 나를 겨냥해 온 것이고 강남 총독 여서는 그와 한패다!'
"북요 야만인들을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이니 역시 남다르군요. 이번 판은 짜고 치는 거였네요. 하마터면 저도 속아 넘어갈 뻔했어요."
진 가주는 숨을 들이쉬었다. 곧게 폈던 허리는 저도 모르게 굽어졌다. 그는 내키지 않는 어조로 물었다.
"철수한다고요? 아직 아무것도 못 했는데 이렇게 꼬리를 말고 도망친다고요?"
향혈해는 생각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떠납니다! 지금 바로 떠납니다! 몇몇 가문과 함께 떠납니다! 나 향혈해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죽지 않는 한, 나를 따르는 사람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진 가주의 눈시울이 빨개지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소주……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람을 잘못 따르지 않았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당분간만 떠나 있는 겁니다.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향혈해는 고개를 돌려 총독부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온통 감출 수 없는 분노와 울화뿐이었다.
"날 배신한 사람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 감히 육장봉과 손을 잡아? 그렇다면 내가 모질다고 탓하지 말거라! 난 오 년 동안 바다에서 허투루 보낸 것이 아니다!'
* * *
육장봉은 매우 신속하게 움직였다. 폭력적으로 여 총독을 제압한 뒤, 육일더러 그의 영패를 가지고 주둔군 영지로 가서 주둔군을 움직이라고 했다.
강남 현지의 주둔군은 당연히 육일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육일의 손에는 성지가 있었다.
성지에서는 육장봉이 강남에서 마음껏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허락한다고 했다. 필요할 때는 주둔군의 군사를 움직일 수 있고 주둔군 수령더러 육장봉의 안배에 따르라고 했다.
성지가 그렇게 말하자 주둔군 수령은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암암리에 강남 총독에게 편지를 보냈다.
육일이 발견하고 암위에게 따라가라고 했다.
"만약 여 총독에게만 보내는 편지라면 내버려 두거라."
'그게 아니면 죽여!'
암위는 명령을 받고 조용히 편지를 전하는 사람을 따라갔다. 상대가 총독부의 사람과 연락하는 것을 보고 묵묵히 구석으로 숨었다.
여 총독은 육장봉이 성지를 가지고 강남 주둔군을 움직였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육장봉은 큰일을 하러 강남으로 온 것이었군."
그는 자기의 분수를 알고 있었다.
그는 주둔군을 움직일 만큼 대단하지 않았다.
육장봉이 주둔군을 움직였다는 것은 분명 더욱 큰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는 눈속임일 가능성이 컸다.
이렇게 생각하니 여 총독은 순식간에 안심되었다. 눈에 드리웠던 우울감도 많이 사라졌다.
'그럼 그렇지. 흠차 대신이 있는데 육 대장군이 직접 나한테 손을 쓸 필요가 없지.'
암위는 여 총독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여 총독이 홀가분한 표정을 짓자 그는 몰래 떠나가 육장봉에게 이것을 보고했다.
"계속해서 지켜보거라. 조금이라도 다른 움직임이 보인다면 즉시 보고하거라."
육장봉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싸늘한 것이 전혀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았다.
암위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다른 분부가 없는 건가? 난 가야 하나? 아니면 계속해서 꿇고 있어야 하나?'
잠시 뒤, 육장봉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월령안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대장군께 아룁니다. 월…… 흠, 마님께서는 장부를 계산하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암위는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았던 터라 당황하여 하마터면 말이 꼬일 뻔했다.
"장부?"
육장봉은 손에 든 책자를 내려놓고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장부?"
"육삼 형의 말로는 아마도 종씨 그들의 생활비 같았습니다."
암위는 육삼에게서 월령안이 대장군의 부추김 때문에 착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해적들에게 주려는 생활비가 얼마인지를 듣고 그조차도 월령안을 따르고 싶어졌다.
'월 낭자는 정말…… 정말 너무 돈이 많아! 돈이 많을 뿐만 아니라 대범해! 우리 장군보다 훨씬 대범해!'
그는 종씨 그 몇 사람들이 어떻게 이토록 돈이 많고 대범한 주인을 포기하고 가난한 길을 택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라면 무조건 월 낭자와 함께 끝까지 갈 것이다.
암위는 샘이 나는 마음을 참고 대답하려고 했다. 바로 이때 문밖에서 작은 기척이 들렸다.
암위는 온몸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칼에 손을 올려놓고 칼을 뽑으려고 했다. 바로 이때, 검은 옷을 입고 은색 가면을 쓴 조계안이 멋진 몸놀림으로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미안, 문을 두드리는 것을 잊었네."
고도로 경계하고 있는 암위와 싸늘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는 육 대장군을 바라보며 조계안은 얄밉게 웃어 보인 뒤, 뒤로 물러서서 창문을 살짝 두드렸다.
암위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조왕 전하는 정말 얄미워!'
"물러가거라."
육장봉은 암위더러 물러나라고 하고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전혀 진지해 보이지 않는 조계안을 바라보며 싫은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넌 왜 왔어?"
"그렇게 화내지 마. 난 너한테 나쁜 소식을 전하러 온 거야."
조계안은 뼈가 없는 것처럼 흐물흐물 의자에 기대앉았다. 발을 책상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지저분한 신바닥이 수시로 두어 번씩 흔들렸다. 신발 끝의 털 장식은 꼿꼿이 쳐든 채로 흔들리는 것이 주인의 우쭐함과 위엄을 나타냈다.
육장봉은 힐끗 훑어보더니 더더욱 싫은 내색을 하며 말했다.
"똑바로 앉아. 내가 네 발을 잘라 버리게 하지 말고!"
"깍쟁이, 너희 집 탁자도 아닌데 좀 올려놓으면 어때."
조계안은 비록 말은 강하게 하면서도 고분고분하게 발을 내려놓았다.
"허."
육장봉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냉소를 지었다.
"넌 내가 전해 주려는 나쁜 소식이 궁금하지 않아?"
조계안은 책상에 엎드린 채,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는 얄미운 웃음을 흘리며 한참이나 기다렸지만 육장봉이 묻지 않자 먼저 입을 열었다.
간만에 육장봉을 놀릴 수 있게 되었으니 그는 당연히 잘, 분명히, 제대로 놀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