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8화 뭘 하려는 거지?
"대장군,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육일은 사람을 내리누르면서 손을 놓지 않았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는 비록 이 사람이 적국의 첩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가 두려운 것이었다.
중년 남자는 무릎을 꿇자마자 공소장을 받쳐 들고 대성통곡했다.
"대인, 소인은 고발, 고발합니다…… 강남 총독 여서는 윗사람을 기만하고 아랫사람을 속이며, 횡령하고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모함했으며, 사람 목숨을 초개같이 여겼습니다."
"오!"
육장봉은 한마디 대답하고서 고개를 돌려 여서를 바라보았다.
"여 총독,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소인은 강남 총독으로서 강남의 사무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일 처리에서 줄곧 공정하게 하다 보니 일부 사람들의 이익에 방해가 되었을 수도 있어요. 이런 일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소인은 감히 자신이 얼마나 일을 잘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절대로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없으며 조정이나 백성들에게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자의 말은 모두 허튼소리입니다."
여 총독은 얼굴이 새파랗고 질려 옷소매를 젖혔다. 크나큰 수모를 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중년 남자는 놀란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닙니다…… 소인의 말은 모두가 사실이며 전혀 허튼소리가 아닙니다. 소인의 외사촌 누이는 여 총독의 첩실입니다. 여 총독은 제 누이동생이 소인과 간통했다고 모함해 누이동생을 살해하고는 성안에서 소인을 수배했습니다. 대인, 소인은 절대 허튼소리 하는 게 아닙니다. 소인은 증거가 있습니다……."
"증거가 있으면 꺼내라."
육장봉은 목소리가 평온하고 기복 하나 없어, 기쁨과 분노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소인에게는……."
중년 남자는 공소장을 내려놓고 허둥지둥 호주머니를 뒤졌다.
여 총독은 그런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직접 명령을 내렸다.
"여봐라, 이자를 끌어내라."
관병은 잠시 멈칫하더니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몰래 육장봉의 눈치를 훔쳐보았다.
여 총독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서 또 한 번 재촉했다.
관병은 육장봉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울며 겨자 먹기로 앞으로 나가려 했다.
이때 육일이 막아 나섰다.
쌍방은 대치하며 서로 양보하지 않았다.
육장봉이 옆에 서 있는 바람에, 관병들은 감히 육일에게 손쓰지 못하고 여 총독을 바라보며 도움을 청했다.
"저, 대인……."
"멍하니 무엇을 하는 것이냐. 끌고 가거라."
여 총독은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서 강경하게 명령을 내렸다.
육장봉이 냉소를 지었다.
"정말 대단한 권위군!"
"강남의 모든 사무는 소인의 관할입니다. 대장군께서 이해해 주시고 지방 사무에 개입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 총독은 한 치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둘 모두 천자의 심복이었다. 누가 누구를 무서워할 것 있는가.
기껏해야 황제한테 한바탕 욕을 먹고, 한동안 냉대받으면 되었다. 그렇다고 황제가 증거도 없는 사건 때문에 그의 죄를 다스리겠는가.
증거가 없으면 황제가 그의 죄를 다스리려 해도 조정의 문무백관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미 서로 낯을 붉힌 마당에, 여 총독은 더는 사정을 보지 않고 변경 쪽으로 공수 예를 올리고는 강경하게 말했다.
"대장군께서 공사가 다망하실 텐데, 강남의 사무로 대장군께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이 일은 소인이 스스로 폐하께 해명할 것입니다. 대장군께서는 어서 총독부로 가십시다. 소인이 대장군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했습니다."
"만약…… 내가 싫다고 하면?"
강남의 관리들은 역시 담대했다.
최일이 강남에 온 지 몇 개월이 되어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여 총독은 거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장군, 여기는 강남입니다."
육장봉이 정세에 따르면 융숭히 접대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으면 무례하다고 탓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강남이면 또 어떤가? 내가 꼭 이 일을 관여하겠다면 당신은 또 어찌할 건가?"
육장봉은 음침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여서를 바라보았다.
여 총독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냉랭한 얼굴로 그와 맞섰다.
"여봐라! 대장군을 총독부에 모셔라."
이 '모시라'는 말은 물론 글자 그대로의, 예의 바르게 요청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말이었다.
육장봉은 항상 말이 안 통하면 사람을 팼었다. 누군가 그보다 먼저 손을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강남의 관리는 역시 아주 재미있었다!
"여 총독께서 절 어떻게 모실 겁니까?"
육장봉은 싸늘한 미소를 흘렸다. 그러나 이 미소는 그의 딱딱한 오관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날카롭게 만들어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커다란 부두가 순간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여 총독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고래 싸움에 그들 같은 새우가 피하는 것 말고 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피하려고 해도 여 총독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여 총독은 큰소리로 호통쳤다.
"뭐 하는 것이냐? 어서 대장군을 모시지 않고!"
"대인……."
관졸은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이 사람은 무려 천하 병사를 장악하고 있는 대장군이었다. 전쟁터에서 북요인들이 나동그라지도록 호되게 패고 북요인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게 하는 전신 육장봉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이 사람을 '모셔' 갈 수 있다는 말인가?
여 총독은 그들을 너무 높이 보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책임진다!"
여 총독은 또 한 번 재촉하고 포악한 시선으로 관병을 쏘아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말을 안 들으면 나중에 혼낼 것이다.'라고 써 놓은 듯했다.
아무리 높은 관리라도 실제 담당자보다는 실권이 없는 법. 관병들은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다가갔다.
"대장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육장봉이 비웃으며 말했다.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것이냐? 여 총독이 너희를 모시겠다고 하는 것을 못 들었느냐? 얼른 나오지 않고!"
"네, 대장군!"
명령하면 즉시 시행하는 법!
육장봉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실에서 강남 수군 관복을 입은 장사가 사오십 명 걸어 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흉악하고 행동이 거칠고 난폭한 것이 비적의 기운을 물씬 풍겼다. 전혀 관가의 사람 같지 않았다.
우두머리인 듯한 몇 사람들의 동작은 더욱 민첩하고 행동은 신속했다. 그들은 눈 깜짝할 새에 언덕으로 훌쩍 올라간 뒤, 두 줄로 나뉘어 육장봉의 앞에 섰다. 칼을 든 채, 앞으로 걸어가던 관병들은 전부 밀려났다.
여 총독의 안색이 변했다. 육이와 육사가 어느새 그의 좌우 양쪽에 서 있었다. 육사는 눈썹을 치켜뜨며 음산하게 말했다.
"여 총독, 가시지요……."
육사 얼굴의 상처는 아직 채 낫지 않았고 흉터도 몇 개 있었다. 그가 입을 열자 얼굴의 흉터가 한데 일그러져서 무척 무섭고 흉악해 보였다.
여 총독은 안색을 살짝 흐렸다.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도처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가 데려온 관졸들이 전부 금방 언덕에 오른 사람들에게 때려눕혀져 있었다.
그 사람들은 관졸들을 때려눕힌 뒤, 육이와 육사처럼 다른 관리의 양쪽에 서서 흉악한 미소를 드러내며 그들을 총독부로 '모시'고 있었다.
이것은 여 총독이 '모시'려고 계획한 모습과 똑같았다. 다만 그들이 총독부로 '모셔' 가기로 계획했던 사람이 육장봉이 아닌 자신이 되었을 뿐이었다.
"대장……"
여 총독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자마자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육장봉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내 앞에서 큰소리치는가 했네."
육장봉은 옷소매의 먼지를 털고 나서 우아하고 오만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가지, 총독부로."
"사람을 너무 괴롭히는군!"
여 총독은 이를 악물었다. 육장봉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독기가 어린 것이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았다.
'육장봉이 이렇게 내 체면을 깎아내리는데 나더러 앞으로 어떻게 강남 관리들 앞에서 위엄을 세우라는 말인가?
이후로 나한테 위엄이라는 게 남아 있기는 할까?'
그러나 육장봉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람을 거느린 채, 그의 옆을 지나갔다.
너무하다!
여 총독은 화가 난 나머지 관가에서의 자신의 체면도 신경 쓰지 않고 욕을 퍼부었다.
"육씨, 뭘 할 생각인 거야? 반역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네가 데려온 사람들은 다 뭐야? 모두 얼굴이 낯선 것이 절대 강남 수군이 아니야!"
육이와 육사는 안색을 흐리더니 거칠게 그를 밀쳤다.
"여 총독, 협조해 주십시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퉷퉷, 아니지, 우리 대장군께서는 반역을 생각하신 적이 없으시지.'
여 총독은 비틀거리다가 하마터면 땅에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육이가 반응이 빨라서 여 총독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그리하여 여 총독은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았다.
"너, 너…… 너희들……."
여 총독은 육이와 육사를 가리키며 손가락을 덜덜 떨었다.
육이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조용히 하세요. 우리 대장군께서는 당신을 상대할 여유가 없으십니다."
여 총독은 멍해졌다.
'이게 무슨 뜻이지? 대장군은 날 노리고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날 노리고 온 것이 아니면 누구 때문에 온 거란 말이지?'
여 총독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육이의 말이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거듭 생각하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얼이 빠진 채, 사람들과 함께 가마에 올랐다.
심지어 그들이 떠난 뒤, 금방 언덕에 다다랐던 전선(戰船)이 몰래 빠져나간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총독부에 도착해서야 여 총독은 문득 육이에게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총독부에 도착한 뒤, 육장봉이 총독부 전체를 통제하고 그와 강남 현지의 관리를 각각 다른 마당으로 보내어 서로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학대하거나 심문하려는 생각도 없어 보였다.
"대장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여 총독은 어리둥절해져서 일순간 어찌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여 총독도 육장봉의 생각을 읽을 수 없는데 다른 관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각각 분리되어 있어 소식을 전하려고 해도 안 되니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육 대장군이 사람들 앞에서 강남의 관리들을 전부 데려갔다. 이 소식은 숨길 수 없었다. 귀가 달리고 눈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능력 있는 사람들은 육 대장군이 여 총독 등 사람들을 분리하여 '구금'했다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다.
* * *
강남 호족 진씨 저택에 묵고 있던 향혈해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육장봉이 언덕에 오른 뒤의 모든 일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육장봉이 강남 일대 관리들을 모조리 가둔 것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모르는 소식도 하나 알고 있었다!
육장봉 옆의 호위병이 그의 영패를 가지고 강남 주둔군 영지로 가서 주둔군 수령과 단독으로 얘기를 나누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향혈해가 주둔군에 꽂은 정탐꾼은 알아내지 못했다.
"육장봉이 주둔군을 움직여 뭘 하려는 거지? 겨우 강남의 총독을 잡아들이려고 군대를 움직일 필요가 있나?"
향혈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전혀 육장봉이 뭘 하려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