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7화 꼭 제대로 조사하세요!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는 눈을 감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나를 설득했소. 그 삼 년간의 일에 대해 나는 이제 더는 추궁하지 않을 거요."
"감사……."
"너무 일찍 감사하지 마시오."
육장봉은 갑자기 눈을 떴다. 눈에는 차가운 기운이 흘렀다.
"나는 단지 그 삼 년간의 일을 추궁하지 않는다고 했을 뿐이오. 그 후의 일에 대해서도 추궁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오. 감히 병기를 매매하다니. 사는 게 싫은 모양이군.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지 않으면 이 육장봉의 칼이 무뎌서 사람 목을 치지 못하는 줄 알 것이오. 이 추밀원사가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허수아비로 보이는 모양이야."
그 삼 년 동안 연루된 사람과 일은 너무 복잡해서, 그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이후는?
감히 그의 눈앞에서 병기를 암거래하다니.
그들은 정말로 육장봉이 무식쟁이인 줄 안단 말인가.
싸울 줄만 알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몰라 얼렁뚱땅 속여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맞는 말이에요. 감히 병기를 암거래하다니. 그들은 정말 살기가 싫은가 봐요! 조사하세요! 당신을 지지해요. 꼭 확실히 조사하세요. 제대로 조사하세요!"
육장봉이 그 삼 년간의 일에 대해서는 더는 따지지 않겠다고 말하자, 월령안은 온몸의 긴장을 풀었다. 굳어졌던 얼굴도 밝은 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주먹을 휘두르며 육장봉의 편에 설 것임을 다짐했다.
육장봉은 화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말했다.
"당신도 참…… 모두 법을 알면서도 법을 어기고, 직무에 태만한 거잖소. 똑같은 일도 차별 대우를 하다니."
"어쩔 수가 없어요. 제 최대 장점이 자기 사람을 감싸 주는 거예요. 남이 저를 잘 대해 준 것을 저는 모두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 삼 년 동안, 비밀리에 그녀를 지원하고 그녀에게 편의를 제공한 관리들은 적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에게 일이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청렴결백하고 절대로 사심 때문에 법을 어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그녀를 위해 편의를 도모해 준 것도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방법대로 전선에 있는 육장봉을 도와주려는 것이었다.
그 삼 년 동안, 몰래 육장봉을 지지한 사람은 적지 않았다. 단지 모두가 졌을 때의 책임이 너무 비참해 아무도 감히 나서서 못했을 뿐이었다.
"남들이 당신한테 잘못한 것은?"
육장봉은 그 삼 년간 병기 매매의 내막을 확실하게 알아내자 미간의 무거운 기운도 많이 옅어졌다.
이제는 한가한 심정으로 그녀와 담소를 나누었다.
비록 일은 여전히 그 일이지만, 그래도 조정 관리들이 그를 크게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
월령안은 그가 이 문제를 끝까지 추궁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그녀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기껏해야, 나중에 그가 좀 더 주의를 돌리면 되었다. 만약 그들이 다시 똑같은 잘못을 범하면 그때 가서는 절대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저한테 잘못한 것은 되도록 기억하지 않아요. 만약 제가 기억한다면……."
월령안은 고개를 들어 육장봉에게 차갑고 살기를 띤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드시 백 배, 천 배로 되갚아 줄 거예요."
육장봉은 흠칫 떨었다.
'이거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은 건가?'
그도 한때 월령안에게 아주 못되게 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남이 아니에요."
육장봉이 묻기도 전에 월령안은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의 웃음을 건넸다.
육장봉은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뺨에 붙은 잔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그윽하고 깊은 눈동자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음. 나는 남이 아니지."
월령안도 남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 새겨둔 사람이었다.
* * *
월령안의 말 때문에 육장봉은 그 삼 년간 병부에서 병기를 매매한 사실을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 뒤의 일에 대해서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병부에서 월령안이 병기와 군량, 마초가 필요할 때, 숙련되게 조작해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그것들을 연해 일대에 보내 주었다. 이로 보아 그전에도 이런 일이 병부에서 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나라와 북요 사이에 곧 다시 일전이 있을 것이다. 그는 그 삼 년간의 일이 또다시 발생해 황제가 또다시 그를 팔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추밀원사로서 천하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군대 내 문제를 척결하고 풍기를 바로잡는 것은 그의 직책이었다.
그는 추밀원사로 반년 넘게 있으면서 아직 아무 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이 기회를 빌려 위엄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조정의 관리들이 괜히 육장봉이 성격 좋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게 말이다.
육장봉은 기분이 불쾌한 탓에 몸에 살기를 띠고 있었다.
배 위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메추리처럼 움츠러들어서는 육장봉을 화나게 할까 두려워했다.
육장봉이 재촉할 필요도 없이 수군들은 전력을 다해 강남으로 돌아갔다.
일찍 죽든 늦게 죽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비록 일찍 죽고 싶지 않았지만, 격노한 육장봉 옆에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그들은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강남으로 돌아가서 처벌받으리라 생각했다.
* * *
이틀 뒤, 강남 수군은 강녕부 부두에 도착했다. 미리 소식을 받은 강남 총독과 강남의 모든 관리들은 차림새를 단정히 하고 부두에서 육장봉이 상륙하기를 기다렸다.
일행은 수군의 전함이 다가오자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강남 총독에게서 무엇이라도 좀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강남 총독의 먹구름이 드리운 얼굴을 보자 누구도 감히 앞서서 말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서로 상대방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미루다가 전함이 뭍에 닿았을 때까지 아무 소식도 알아내지 못했다.
전함이 뭍에 닿자 강남 총독은 의관을 단정히 하고 엄숙한 얼굴로 강남의 관리들을 거느리고 앞으로 나아가 육장봉을 맞이했다.
배가 멎자 육일 등 몇 사람이 먼저 걸어 나와 각기 두 열로 나뉘어 섰다.
그다음에야 검은 옷에 은색 허리띠를 두른 육장봉이 전함에서 걸어 나왔다.
육장봉은 무표정하고 기세가 넘쳤다. 그는 걸어 나오자마자 날카로운 기세와 재주를 그대로 드러내며 눈부시게 빛을 발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빛을 잃고 배경으로 밀려나게 했다.
강남의 관리들은 모두 그 모습에 멍해 있었다. 그들은 괜히 용안을 보면서 감히 마주 볼 수 없는 듯한 황공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강남 총독이 높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소인 대장군을 뵙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 해도 그들은 감히 육장봉을 쳐다보지 못하고,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나아가 육장봉을 알현했다.
"예를……."
육장봉은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드는 척했다.
"대장군…… 대장군…… 억울합니다…… 진짜 억울합니다."
바로 그때, 거리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처량하고 날카로운 비명 소리는 육장봉과 강남 관리들이 사이좋게 인사를 나누는 분위기를 깨뜨렸다.
한 초라한 중년 남자가 겹겹이 싸인 관병의 방어를 뚫고, 기어이 고위 관리들이 모여 있는 부두에 달려들었다.
남자는 수염이 더부룩하고 뺨이 훅 꺼져 들어갔으며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그는 수중의 붉은 공소장을 높이 쳐들고 미친 듯한 모습으로 가슴이 찢어지게 울부짖었다.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요!"
"저자를 막아라."
"저자가 귀인에게 덤비지 못하게 해라."
방어하고 있던 관병들은 초반의 놀라움 뒤에, 곧 정신을 차렸다. 그들을 칼을 빼 들고 중년 남자를 죽이려고 했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육장봉은 육일을 힐끗 쳐다보았다.
"사람을 데려오라."
뭍에 오르자마자 이렇게 좋은 연극이 있다니. 설마 월령안이 그를 위해 일부러 준비해 놓은 것일까.
"대장군께 폐를 끼친 것은 소인들의 잘못입니다. 대장군께서는 소인이 현지 사무를 처리할 수 있게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강인 총독 여서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 가운데 특별히 '현지' 두 글자를 강조했다.
조정에는 조정만의 체계가 있었다. 육장봉이 관직이 아무리 높고 권력이 아무리 크다 해도 지방의 사무를 직접 관리할 수는 없었다.
"나도 그 정도의 시간적 여유는 있다."
육장봉은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육일을 불러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직접 이 일에 개입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었다.
"대장군, 이는 강남의 정무입니다."
'당신네 추밀원의 군사 사무가 아니라고요.'
"그래서?"
육장봉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여 총독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 가운데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있단 말인가?"
"물론 없습니다."
여 총독은 식은땀을 흥건히 흘리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얼굴은 험상궂으면서도 일그러져 있었다.
"그럼, 조용히 하시오!"
육장봉은 여 총독의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일갈했다. 그러고는 소란이 생긴 쪽을 바라보며 여 총독을 외면했다.
앞쪽, 이번에 안전을 책임진 무장은 육일이 그쪽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자, 급한 김에 체면 불고하고 수하의 칼을 뽑아 중년 남자에게 휘둘렀다.
'댕강' 소리와 함께 육일이 훌쩍 날아오르더니 상대방의 칼을 받아 들었다.
"우리 대장군이 원하는 사람인데도 감히 죽이려는 것이냐?"
"대인, 이자는 신분이 불분명하니 아마 적국의 첩자일 것입니다. 대인께서는 소인이 이자의 신분을 확인하게 해 주십시오."
무장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어서 중년 남자를 해치우라고 눈짓했다.
사람이 죽고 나면, 어떻게 말할지는 그들의 결정에 달린 것이었다.
"허튼소리가 참 많구나."
악랄하고 말수가 적은 육일은 손을 슬쩍 들어 보기에만 다부진, 속 빈 강정 같은 무장을 밀어내고, 뒤돌아서 중년 남자를 움켜잡았다.
"억울함을 풀려면 나를 따르라!"
"따라가겠습니다. 따라갈게요……."
중년 남자는 울 듯 말 듯 한 모습으로 허둥지둥 기어 일어나 휘청거리며 육일을 따라갔다.
"이건……."
관병들은 모두 칼을 뽑아 들고 하나같이 주저하며 막아야 할지, 막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흥!"
육일은 한번 힐끗 둘러보고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양측의 관병들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이처럼 하나같이 하체가 부실하고 다리에 힘이 없어 서 있어도 휘청거리는 병사들은 지금보다 배가 있게 되어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육일은 중년 남자를 잡아끌고 앞으로 걸어갔다.
육장봉 앞에 서 있던 관리들은 거듭 망설이다가, 육일이 다가서기 전에 길을 내주었다.
육장봉의 곁에 서 있던 여 총독은 육일이 사람을 끌고 오자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지며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쓸모없는 것들!'
육장봉은 이 말을 듣고 여서를 흘겨보았다. 눈동자에는 순간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역시 여 총독을 겨냥한 것이었다.
정말 괜찮은 착안점이었다. 그는 월령안이 보낸 이 큰 선물을 받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