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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75)화 (875/1,004)

875화 심판할 수 없는 죄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종씨, 알고 있지……? 그 자리에 앉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알고 있습니다."

종씨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그는 이미 월령안을 도와 두목 두 사람을 보냈다.

지금 세 번째로 추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가 어찌 그 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종씨는 확신에 차 말했다.

"큰아가씨, 저의 안목을 한번 믿어 주십시오. 흉터는 다를 겁니다."

월령안은 종씨를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다가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흉터로 하도록 해. 향혈해를 처리하면 섬에 가서 선포할 거야."

종씨가 이다지 추천하는 것을 보면 흉터도 그 자리를 욕심내는 모양이었다. 자리에 욕심도 내고 또 능력도 있다면 흉터로 해서 나쁠 것 없다.

아무튼 그녀는 냉정한 인간이기에 또다시 한 사람을 죽이는 게 두렵지 않았다.

"큰아가씨,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방의 일은 제가 지켜볼 겁니다. 마음을 푹 놓고 다른 일을 보십시오."

종씨는 월령안이 동의하자 입을 벌리고 크게 웃었다. 그러고는 가슴을 두드리며 약속했다.

월령안도 덩달아 웃었다.

"종씨가 지켜봐 주면 저도 마음이 놓여요."

만약 이 바다에서 그녀가 누군가를 믿는다면 그건 종씨밖에 없었다.

종씨는 노인조차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었다.

노인의 안목은 더할 나위 없이 대단했다.

그때 당시, 그는 향혈해가 대성할 사람으로, 십 년이 안 되어 꼭 한 지방의 제왕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인은 그녀를 일깨워 주었다. 반드시 오 년 안에 향혈해를 해결해야 하며 그가 성장할 기회를 주지 말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짧디짧은 오 년 사이에 향혈해는 전임 두목들이 미치지 못한 높이에 도달했다.

만약 이번에 강남 총독이 갑자기 그녀를 공격해, 그녀가 합리적인 이유로 해상의 세력들을 동원할 수 없었다면, 그녀가 바다에 들어서는 순간, 향혈해가 선수를 쳐 그녀를 제거했을 것이다.

특히 그 두 대어는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만약 육장봉이 없었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바다에 수장되었을 것이다.

***

이번에 육장봉이 병사를 거느리고 공격한 청어도는 향혈해의 소굴이었다. 죽은 것도 대부분 향혈해의 심복이었다.

이들 심복 외에도 해적 떼 중에는 향혈해를 지지하거나 그쪽에 넘어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 사람들도 하나하나 모두 척결해야 했다.

권력 교체는 항상 선혈을 동반하게 된다.

월령안은 마음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매번 유혈 사건을 겪을 때마다 그녀는 여전히 피로감과 압박감을 느꼈다.

그녀는 종씨에게 차후의 일을 분부하고 나서 선실에서 나왔다. 갑판에 나가 바람을 좀 쐬려는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불그스름한 태양이 바다 지평선에서 서서히 솟아올랐다.

첫 번째 햇살이 해수면을 내리쬐며 뱃머리에서 밤을 지새운 육장봉의 몸에 내려앉았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은 육장봉 온몸의 도도함과 냉랭함을 몰아냈다.

수면에 거꾸로 비친 그림자는 출렁이는 파도에 숨었다 나타났다 하면서 신비로움을 더해 주었다.

월령안은 육장봉 주변 백여 장 이내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육장봉을 피해 다녔다. 부득이하게 가까이하더라도 그들은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었다.

그녀는 이 광경을 보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육장봉의 옆으로 천천히 걸어가 그와 나란히 서서 바다의 해돋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육장봉의 손등에 서린 서리를 보고 틀림없이 꼬박 밤을 샜을 거라는 걸 눈치채고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무슨 걱정을 하나요?"

육장봉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해수면을 바라보았다.

"청어도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금은보화가 있소."

"그건 당연한 거예요. 해적들은 금은보화를 숨기는 걸 좋아해요. 바다에서는 금은보화가 더 잘 돌아다니죠."

월령안은 뜻밖으로 여기지 않았다.

월씨 가문이 차지한 섬에는 금은보화가 청어도보다 훨씬 많았다.

이런 것들에 대해 노인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일찍 노인에게 황제에게 금은보화를 좀 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었다. 노인은 거절했다.

금은보화 같은 것은 아무도 많아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한 번 가져다주면 황제는 그다음에 또 가져오기를 바랄 것이다.

만약 그녀가 내놓지 못하면 황제는 그녀에게 금은보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숨겨 두고 진상하기 싫어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황제가 의심하게 하느니, 차라리 사단을 일으키지 않게 처음부터 주지 않는 것이 나았다.

"섬에는 금은보화뿐만 아니라 많은 군용품이 있었소."

육장봉은 고개를 돌려 월령안을 지켜보았다. 깊은 심연처럼 그윽하고 조용한 눈빛에는 가슴을 떨리게 하는 어두운 빛이 서려 있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육장봉의 눈길에 빨려드는 순간, 월령안은 맹호의 표적이 된 듯한 착각이 들어 당황하고 불안했다.

그녀는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고 나서야 가까스로 냉정해질 수 있었다.

"겁내지 마시오.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소."

육장봉은 입가를 끌어당기며 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알고 싶소. 당신이 그때 당시, 전선으로 보낸 병기가 정말 모두 금나라에서 사 온 것이 맞는지."

육장봉은 바다에 너무 오래 서 있었다. 찬바람에 얼굴이 굳어진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웃을 수가 없어서인지 그의 웃음은 안 웃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월령안은 순간 육장봉이 처음으로 월씨 저택에 찾아와서 그녀에게 철광석 소식을 캐물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의 육장봉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냉정하고 강대하고 공격적이었다.

그녀는 반드시 정신을 바싹 차려야만 가까스로 상대할 수 있었다.

"당신 이제 와서 결판을 내시려는 건가요?"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부주의한 탓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남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렇게 큰 허점을 드러나 육장봉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그래서 그 무기, 심지어 군량과 마초마저 모두 군부에서 몰래 판 것이오?"

그는 지난밤에 줄곧 월령안이 전선에 보낸 몇 번의 병기를 되새기고 있었다.

그 몇 번의 병기는 고의로 금나라의 기법으로 만든 것이었다.

심지어 월령안은 월씨 가문에서 사적으로 철광산을 발견한 일까지 드러냈다.

황제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전선으로 보낸 병기는 그녀가 금나라로부터 산 것이 아니면, 사사로이 철광산을 캐다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하여 모든 사람들은 월령안이 금나라 군부에서 '퇴출'시킨 낡은 병기를 사들일 수 있는 만큼, 주나라에서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주나라야말로 월령안의 주 전쟁터였다. 월령안은 금나라에 간 적이 없었는데도 그쪽 관리들의 수중에서 무기들을 여러 번 사들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주나라에서는 더욱 편리하지 않겠는가.

주나라의 관리들이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강남의 관료 사회를 보고서 육장봉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지난밤에 지난 삼 년간 조정의 각 지방 주둔군에 대한 지출을 자세히 돌이켜 보았다. 그중 연해 일대가 가장 많았다.

연해 일대 주둔군의 소모가 해마다 가장 높아진 데에는 병기의 소모뿐만 아니라 병사의 소모도 있었다.

연해 일대는 해마다 조정에 크고 작은 토비 숙청 싸움에 대해 보고했다. 그다음 다시 대량의 병사와 무기들이 손실되었다.

연해 일대에는 하천이 많아 토비 숙청은 해전이 아니면 수전이었다. 병기가 바다나 강에 떨어지면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흔적도 없었다. 손실이 얼마 되는지는 오직 현지 관리의 입에 달려 있었다.

월령안의 입을 통해, 그리고 어젯밤에 일어났던 싸움에서의 강남 수군의 작태를 통해 육장봉은 강남 수군이 해전 경험이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연해 일대의 지방 관리들이 보고한 전역은 십중팔구 모두 가짜였다.

전에 그는 강남의 관리들이 강남 총독처럼 군공만 거짓으로 보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강남 수군이 청어도에서 하나하나 실어 내는 군수 물품들을 보고 알게 되었다.

강남, 다시 말해 연해 일대의 관리들이 저지른 죄는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엄중하고 더 가증스러웠다.

"대장군, 이런 건 간파해도 말하지 않아야 하는 거예요."

월령안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그대로 앉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런 일은 어떤 증거도 남지 않아요. 증거가 없으면 그들의 죄를 정할 방법이 없어요. 심판할 수 없는 죄가 어떻게 죄가 되겠어요?"

육장봉의 눈빛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녀는 그 눈빛에 가슴이 떨렸다. 이렇게 앉으니 그의 눈을 보지 않을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육장봉도 덩달아 앉았다. 그의 눈빛은 매서웠고 사람을 삼킬 듯한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

"당신은 아는 것이오, 모르는 것이오. 당시 삼십만 대군은 전선에서 군량도 마초도 없었고, 손에 든 칼들은 모두 날이 휘어서, 돌칼로 싸울 수밖에 없었소."

"알아요."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돈으로 병기와 군량, 마초를 사서 전선으로 보냈다.

그녀는 알고 있었기에 죽기 살기로 돈을 벌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돈이 모자란 적이 없었다. 한 번도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삼 년간, 그녀는 돈의 중요성을 잘 알게 되었다.

전쟁은 밑 빠진 독과 같았다. 돈을 아무리 집어넣어도 물보라조차 보이지 않았다.

삼십만 대군은 금을 삼키는 짐승처럼 하루 동안의 소모량이 천문학적이었다.

그 삼 년간 그녀는 온갖 심혈을 기울여서야 겨우 전선의 그 큰 구멍을 메울 수 있었다.

그녀가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말할 수 없었다.

"연해의 관리들이 그 삼 년 동안 다양한 이유로 병부에서 대량의 군량과 마초, 병기를 공급받았소. 또한 병부는 그들을 우선시했단 말이오."

육장봉은 말할 때 눈빛에는 오직 슬픔과 조소뿐이었다.

전쟁터에서 죽은 장병들을 대신해 애통해하고, 조정의 관행에 대해 조소했다.

월령안은 놀라울 정도로 냉정했다.

"그렇게 화낼 거 없어요.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당신 이전에, 주나라와 북요 간 전쟁에서 주나라는 항상 적게 이기고 크게 졌어요. 당시 고조 황제는 국가의 힘을 총동원해 전쟁했고, 그러다 보니 주나라의 국력은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갔어요. 국고는 지금까지도 빈 상태예요.

조정에서는 해마다 돈을 앞당겨 써야 했어요. 익년이나 익익년의 돈을 끌어다가 당년의 구멍들을 메워야 하고, 관리들의 봉록마저도 주지 못할 정도였죠. 백성들은 더 비참했죠. 자식을 팔고 땅을 팔아도 살아가기 어려웠어요.

수십 년이란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주나라는 겨우 숨통이 틔게 되었어요. 백성들도 기본 생활을 회복하게 되었고 국고도 수입과 지출의 평형을 맞출 수 있게 되었죠. 더 이상 관리들의 봉록을 빚지지 않아도 되었어요. 이런 시기에 주나라는 어떤 시련도 견디지 못했고, 누구도 감히 모험할 수가 없었어요. 모험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어요.

당신은 북요와의 전쟁에서 이겼어요. 이겼기에 이제 와서 그들을 뭐라 질책해도 잘못이 없어요. 하지만 사 년 전, 그들의 위치에서 누구도 당신을 좋게 보지 않았고, 당신이 그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게 아주 정상적인 게 아닌가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안 좋게 보는 전쟁을 치른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육장봉도 어렵고 전선의 장병들도 어렵고 그녀도 어렵지만 황제는 더욱 어려웠다.

황제는 커다란 압력을 받아 내야 했다.

그는 제왕의 도도함을 던지고 일개 여 상인을 이용한다고 문무백관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그는 이가 부러지도록 꾹 참고 나서야 육장봉이 전쟁을 마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육장봉과 북요의 전쟁에서 만약 육장봉이 지게 되면 황제도 끝장이었다.

바로 이런 원인 때문에 그녀는 비록 황제를 싫어하면서도 이 나라를 배신하고, 황제를 배신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황제는 혹여 좋은 주인은 아닐지라도, 좋은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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