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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74)화 (874/1,004)

874화 형제들, 우리를 따르라!

육일 몇 사람이 배에 오르자, 육장봉은 그들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드디어 자질구레한 일에서 몸을 뺄 수가 있었다.

그는 자리를 지키며 지휘하고 전체 국면을 장악해 명령을 내렸다. 육일 등의 협력하에 그가 내린 명령은 모두 최대한 빠르게 엄격한 요구에 따라 집행되었다.

수군들은 명령에 따라 팽이처럼 바쁘게 오다녔지만 일사불란했고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렇게 빠르게 몰아치니, 배의 분위기가 일변해 곧 닥쳐올 일전의 기운이 은은하게 엿보였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오?"

육장봉은 방금 작전 계획을 육일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보니 월령안은 구석에서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보다가 그가 온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어 물어보았다.

"저들의 변화를 보고 있어요."

월령안은 육일 등 몇 사람의 인솔하에 기동력이 크게 제고된 수군을 가리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육일 그들은 정말 능력이 대단하네요. 수군이 전보다 훨씬 강해졌어요."

지금 월령안은 그가 좀 전에 사람을 잘 훈련시키지 못했다고 나무라는 것 같았다.

"흠흠……!"

육장봉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담담하고 진중한 태도로 말했다.

"통솔자는 일을 다스리고, 아래 장군은 사람을 다스리오."

통솔자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은 지휘하는 것이지, 명령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변명하는 건가요?"

월령안이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육장봉은 잠자코 있었다.

'알면서 굳이 말하는 건 왜지? 나도 체면이라는 게 있는데.'

병사를 거느리는 면에서 육일보다 못하다고 나무라고서는 자기변명도 못 하게 한단 말인가.

육장봉은 억울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같은 통솔자로서 서로 교류하는 차원이오."

그는 잠깐 생각을 거쳐 한마디 덧붙였다.

"생각해 보면, 령안 당신도 장사에서도 구체적인 일은 당신이 추수나 상천보다 못할 수도 있잖소."

"꼭 서로 상처를 줘야 하나요?"

월령안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저는 당신이라고 콕 찍어 말하지 않았어요."

육장봉은 말문이 막혔다.

그가 잘못한 것은 맞았다. 그는 월령안의 이름을 직접 말했던 것이다.

뚜뚜뚜……!

바로 그때, 전함이 갑자기 뚜뚜, 하고 기다란 뱃고동 소리를 울렸다. 전방을 주시하던 수군이 높이 외쳤다.

"적의 습격이다! 적의 습격!"

슈욱……! 슈욱……!

수군의 고함 소리와 함께, 기다란 창들이 높은 곳에서 날아왔다.

"툭!" 소리와 함께 기다란 창이 갑판에 깊숙이 꽂혔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렇게 밀집되지는 않았지만, 살상력은 대단했다.

이번 공격은 곧바로 끝났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공격이 끝나자마자 앞쪽 선원들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자식들, 감히 이 어르신의 세력 범위에 기어들어 와 까불다니. 당장 배를 멈추고 투항해라. 그렇지 않으면 이 어르신이 당장 내려가서 꼭꼭 다져서 물고기 밥을 만들어 버릴 거야!"

물론 상대방은 먼저 무력을 선보이고 다시 예를 행하는 것으로 첫맛에 본때를 보여 주고 조건을 내세우려는 것이었다.

육일 등이 배를 몰고 오자, 강남 수군이 소리만 지르고 손쓰려 하지 않던 작태와 비교하면 이 해적 떼는 주먹이 센 놈이 두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위풍에 육장봉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육장봉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옷소매를 떨치고는 한 손을 뒷짐 지고 냉혹하게 명령을 내렸다.

"원래 계획대로, 공격!"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육장봉은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바닷바람에 끊임없이 흩날리는 그의 옷자락은 마치 끊임없이 덮쳐드는 파도와 같이 세차고 서슬이 퍼렜다.

"예, 대장군."

육일이 높은 목소리로 명을 받잡고 고개를 돌려 분부했다.

"육삼, 육사. 작은 배를 타고 양쪽에서 측면 공격한다. 육오. 뒤를 지켜라! 다른 사람은 나를 따르라!"

육일이 '나를 따르라'는 말은 말뿐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솔선수범하여 앞장서서 쳐들어갔다.

"돌격!"

그의 인솔하에 강남 수군은 어리벙벙한 상태로 큰 칼을 들고 돌격했다. 심지어 자기가 왜 돌격하는지도 몰랐다.

"나를 따르라. 죽여라!"

육일이 앞장서서 칼을 들고 내리쳤다.

"해적을 죽이고 큰 공을 세우자!"

어떤 화려한 품새도, 기술도 없었다. 단지 가장 간단하게 칼로 찔러 죽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육일은 번마다 칼에 피를 묻혔고, 번마다 칼이 해적의 몸에 떨어졌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피를 끓게 했고, 영문도 없이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충동을 느끼게 했다.

"죽이자!"

강남 수군은 순간 끓어오르는 열기에 머리가 뜨거워진 상태였다.

평소에 자신이 얼마나 해이한지, 심지어 그전에 해적과 직접 싸운 적이 없다는 것마저 잊고 모두 뜨거운 피가 솟구치고 살기등등했다.

"조정의 병마다! 어서…… 어서 큰 두목에게 보고해라. 조정의 병마가 왔다."

청어도의 해적들은 처음에 종씨 그들이 다시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일 그들이 가까이 접근해 오자 그런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비적들은 태생적으로 관병을 두려워했다. 해적도 마찬가지였다. 담이 작은 자는 심지어 이렇게 소리 질렀다.

"관병이다…… 관병이 왔다. 어서 도망치자."

탈주병은 어디에서나 멸시당했다.

청어도 해적은 무서워서 도망치는 겁쟁이 똘마니를 단칼에 베며 일갈했다.

"당황하긴 뭘 당황해! 저자들을 막아라. 관병은 전혀 무서울 것 없다! 여긴 바다다. 모조리 죽여 버려라. 누구도 우리가 한 짓인지 모를 것이다."

"형제들, 우리를 따르라!"

해적들은 처음에 잠깐 당황하다가, 재빨리 조직을 이루며 반격했다.

육일이 거느리는 선봉대가 막히자 앞장섰던 배도 부득불 멈추고 말았다.

육일을 따라 돌격하던 강남 수군은 해적들이 갑자기 냉정해지자 저도 모르게 겁이 났다.

그러나 그들이 뒤로 물러나고 싶어도, 뒤에 배들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육이와 육사가 사람을 거느리고 양쪽 측면에서 포위 공격하고, 육오는 사람을 거느리고 뒤를 지키고서 퇴각하는 길을 모두 막아 버렸다.

이 순간, 퇴각은 있을 수가 없고 마냥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자발적으로 앞으로 나가는가, 아니면 뒷사람에게 밀려서 앞으로 나가는가 하는 문제였다.

육일은 강남 수군의 사기가 떨어진 것을 보자 다시 한번 외쳤다.

"육가군은 백전백승의 군대로 전쟁터의 불패 신화다. 대장군께서 배 위에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 뭘 두려워하느냐. 나를 따라 돌격!"

육일은 단연코 용맹한 장수였다. 해적이 전력을 다해 막아도 그는 기어코 피의 길을 뚫어내었다.

그를 뒤따르던 강남 수군은 자극을 받아 신심이 생겼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죽이자!"

그들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돌격!"

물러설 곳이 없으니 더 물러설 필요가 없었다.

육일의 말은 그들을 일깨워 주었다.

대장군이 배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반드시 이 싸움에서 승리해 대장군에게 강남 수군의 용맹함을 보여 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전에 그들이 보여 준 행동으로 모두들 크게 혼날 게 분명했다.

강남 수군은 순식간에 사기가 충만해졌다.

육일, 육이, 육사의 인솔하에 세 방향에서 포위 공격하며 청어도로 직진했다.

쌍방은 정면 접전을 벌였다. 피바람이 이는 가운데 살기가 진동했다.

그 순간, 석양이 핏빛처럼 빛나고 해풍이 울부짖으며 몰아쳤고 파도가 끊임없이 넘실거렸다.

해수면이 붉은색을 띠는 것이 저녁노을이 비친 것인지, 아니면 피로 물든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육장봉은 뱃머리에 서서 빛을 등지고 있었다.

저녁노을은 온몸으로 풍기는 그의 냉혹함을 밀어내지 못하고 도리어 그의 평온함을 돋보이게 했다.

월령안은 그늘에 서서 앞쪽에서 청어도 해적들과 사투를 벌이는 강남 수군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육장봉에게로 옮겨졌고 눈빛은 감출 수 없는 탄복으로 넘쳤다.

그녀의 대장군은 절대 그녀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전투는 저녁 무렵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강남 수군이나, 향혈해의 사람이나 모두 녹초가 됐다.

싸움이 끝나자, 해수면 위는 떠다니는 시체와 나뭇조각들로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윙윙 휘몰아치는 바닷바람은 죽은 이의 달갑지 않은 울부짖음인 동시에 죽은 이들이 승리자들에게 보내는 갈채 같기도 했다.

이번 싸움은 결국 강남 수군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강남 수군도 피해가 막대했다.

별수 없었다. 강남 수군의 실력이 너무나 약했다.

설령 육일 등 몇 명이 제아무리 용맹해도, 강남 수군이 아무리 흥분하고 패기가 넘쳐도, 그들의 실력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흥분과 패기는 그들에게 싸울 용기를 주어 대담하게 칼을 들고 싸움에 뛰어들게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그들의 실력을 제고시킬 수는 없었다.

특히 전투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흥분과 패기는 점차 식어 갔고 남은 것은 무감각한 전투뿐이었다.

전투가 끝난 뒤 백여 명 수군 정예 병력은 사십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보조 작업을 하던 수군도 거의 절반이나 인명 피해를 입었다.

물론 손실이 큰 만큼 전투의 결과 역시 휘황찬란했다.

"대장군님께 알려드립니다. 강남 수군은 명을 받들어 청어도의 해적을 토벌했습니다. 그중 백십육 명의 목을 베었고, 백 명은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여인과 아이 열여덟 명을 구했습니다."

육일은 능력이 있는 만큼 일도 많이 해야 했다. 싸움을 다 마치고 조사를 끝낸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육장봉에게 보고했다.

섬의 해적들은 무고한 여인과 아동을 제외하고 모두 강남 수군의 칼에 죽었다.

도망친 백여 명은 육이와 육사가 일부러 풀어 준 배 두 척이었다.

별수 없었다. 그들을 풀어 주지 않으면, 그들을 살려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투항하지 못하게 할 수도 없잖는가.

어찌해도 그들은 조정의 병마였다. 만약 그 해적들이 투항한다면, 규정에 따라 죽이면 안 되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향혈해의 사람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척결하기를 바랐다.

어쩔 수 없어 그들은 사람을 풀어 주고 몰래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배 두 척의 사람들은 그들의 유도에 따라 종씨 그들이 있는 해역으로 도망쳤다. 이변이 없는 한, 이때쯤이면 이미 고기밥이 되었을 것이다.

"음."

육장봉은 대답했다.

"제자리에서 쉬고, 날이 밝으면 장물(贓物)을 점검해 귀성한다."

육장봉은 여전히 뱃머리에 바람을 거슬러 서 있었다.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겉보기에 고요하지만 실은 밑에서 거센 바람이 일고 있을 해수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낯선 사람은 가까이 하기 힘든 차가운 분위기였다.

그는 자정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죽 서 있었다.

그는 위용이 넘치고 기질이 비범해 뱃머리에 서 있어도 누구 감히 다가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를 귀찮게 하는 사람은 더욱 없었다.

월령안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귀찮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방금 향혈해의 옛 소굴을 피로 씻은 그녀는 한창 종씨 등 몇 사람과 함께 향혈해의 모든 세력들을 삼킬 데 관한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다른 한 사람을 지지해 향혈해를 대체하려 했다.

"큰아가씨, 흉터가 적합합니다. 수단, 야심, 능력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습니다. 이번에 저희와 함께 나와서 공로도 쌓은 셈이죠. 기방에서 지위도 있게 되었고, 일단 사람들에게 신망도 얻었습니다. 그보다 더 나은 적임자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종씨는 흉터를 적극 추천했다. 심지어 월령안이 회피하는 데도 다시 한번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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