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9화 당신, 허리 힘이 참 좋네요
그녀는 한 입 베어 먹은 과일을 육장봉의 입가에 가져갔다.
"당신도 드세요."
육장봉은 그녀가 베어 먹은 자리에 또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는 무표정하게 두어 번 씹더니 삼켜 버렸다. 그 모습은 독약을 먹는 것보다 나을 게 없어 보였다.
"한 입 더 드실래요?"
월령안은 한 입 더 먹고, 골리는 마음으로 또다시 육장봉에게 건넸다.
그녀는 육장봉이 싫어하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나 재미있었다.
육장봉은 잠깐 멈칫하다가 눈을 딱 감고 한 입을 베어 물더니 훌떡 삼켜 버렸다.
어찌나 빠른지 월령안은 그가 씹지 않고 그냥 삼킨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이거 뭐, 독약을 먹는 거도 아니잖아?'
월령안은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왜 그러세요? 맛이 없어요?"
"시큼하오."
육장봉은 싫어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달기만 한데."
월령안은 한 입 베어 물고 일부러 느릿느릿 먹었다.
확실히 신맛이 나기는 했다. 하지만 별로 뚜렷하지 않아 오히려 과일에 맛을 더해 더욱 감칠맛이 났다.
"그럼 내가…… 한 번만 더 먹어 보지."
오물오물 과일을 먹고 있는 월령안의 빨간 입술을 보고, 육장봉은 갑자기 갈증을 느끼면서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역시 아침에는 여러모로 쉽게 배고팠다.
"드릴게요……."
"이렇게 맛보면 되오."
육장봉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월령안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월령안은 그를 너무도 몰랐다. 그가 원하는 맛있는 것은 결코 그 시큼한 과일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월령안뿐이었다.
원하던 '단맛'을 맛본 육장봉은 마음속의 꿈틀거리는 열기를 곧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는 인내심 있게 월령안의 입술을 열고서 가볍게 그녀의 혀를 물었다. 그리고 섬세하게 음미하면서 맛보았다.
그가 원하던 달콤한 맛이었다.
역시 그가 예상한 것보다 더 달았다.
육장봉은 인내심도, 인내력도 있고 심지어 기술까지 갈수록 좋아졌다. 입맞춤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월령안이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녀가 뺨이 붉게 달아오르고 숨이 가쁘게 차오르고 나서야 육장봉은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여운이 남은 채로 말했다.
"역시 달군."
"입 다무세요. 허튼소리 하지 말고요."
월령안은 전혀 위압감이 없는 눈초리로 육장봉을 쏘아보더니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다리가 나른하고 허리가 아팠다. 온몸이 나른해 전혀 힘이라고는 없었다.
다시 육장봉을 살펴보니, 그는 얼굴빛도, 호흡도 그대로였다. 똑같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게다가 육장봉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서 그녀의 무게를 지탱해 주었는데도, 다리에 힘이 풀리거나 휘청거리지도 않고 끄떡없었다.
월령안은 자신의 시큰거리는 허리를 가볍게 문질렀다. 그러고는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로 육장봉의 가늘지만 힘 있는 허리를 흘끔 바라보며 부러운 말투로 말했다.
"당신, 허리 힘이 참 좋네요."
분명 줄곧 육장봉이 힘을 썼다. 또한 그가 허리 힘으로 그녀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왜 육장봉은 허리가 아프지 않은데 그녀는 허리가 시큼한 것일까.
육장봉은 은근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월령안은 자신이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건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 지금 대놓고 말하는 것이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데 어떻게 암시일 수 있겠는가.
"대놓고 무엇을 말했는데요?"
월령안은 지금 숨이 모자라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경황이 없고 멍해서 육장봉의 은근한 암시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육장봉은 낮게 웃음을 흘리며 월령안이 힘겹게 허리를 힘겹게 문지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살며시 그녀를 품에 감싸 안고 큰 손을 그녀의 허리에 갖다 대었다. 그러고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물론, 당신이 내 허리 힘을 직접 알아보고 싶어 한다고."
월령안은 멍해졌다.
다음 순간,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확 달아올랐다. 그녀가 육장봉을 두어 마디 핀잔하려고 하는데, 육장봉이 그녀의 허리에 대고 있던 큰 손을 움직였다.
그녀는 시원한 나머지 칭얼거렸다.
"음…… 맞아요. 바로 거기예요. 시큰거려 죽겠어요. 좀만 더 힘주세요……."
"여기 맞소? 심하게…… 시큰거리오?"
육장봉은 여전히 월령안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아 은근한 욕정을 담고 있었다. 듣는 이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은근히 기대를 갖게 했다.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을 알아차린 월령안은 제 발이 저리면서 긴장하기도 했다. 그녀는 육장봉이 눈치챌까 몹시 두려웠다.
선수를 치기 위해, 그녀는 일부러 화난 척하며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
'뻔뻔하군요!'
하지만 뒷말을 채 하기도 전에, 육장봉이 끊어 버렸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그는 또 더 힘을 주어 그녀의 허리를 주물렀다. 또한 그녀의 귀 끝을 가볍게 깨물며 쉰 목소리로 애매모호하게, 가볍게 말했다.
"잘 들리지 않소."
"저는……."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나지막하게 신음 소리를 내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머릿속은 백지장이 되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감각이 육장봉에게 지배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육장봉에게 멈춰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은 입가에서 맴돌 뿐, 곧이어 억제할 수 없는 신음 소리로 대체되었다.
그녀는 미칠 것만 같았다.
육장봉에게 시달려 미칠 것만 같았다.
월령안은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육장봉의 동작이 조금 느려진 틈을 타서 그녀는 살짝 혀끝을 깨물어 정신을 차렸다. 호흡이 살짝 가빴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 그만 멈추세요!"
더 이상 계속되면, 그녀는 미쳐 버릴 것이다.
"뭐라고 했소?"
육장봉이 잠깐 멈추었다. 월령안은 숨을 토해내며 드디어 살아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육장봉의 손은 허리 뒤쪽에서 앞쪽으로 넘어왔다. 손가락이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살갗을 스치며 미끄러졌다.
"목소리가 너무 낮아 안 들리오."
"음……."
월령안은 억제하지 못하고 또다시 가볍게 신음을 흘렸다. 육장봉을 저지하려 했지만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싶지도 않았다.
육장봉의 손은 마치 마력이 있는 듯했다. 그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순간 그녀는 향락에 젖은 것이 분명했다.
육장봉은 그녀를 향락에 젖게 했다. 그녀는 여태껏 맛보지 못했던 쾌락까지 맛보게 되었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월령안은 한순간 육장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육장봉은 정말 밉살스러웠다. 지금의 그녀는 그녀 같지가 않았다.
그녀는 분명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월령안은 그만 눈을 감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했다.
하지만 육장봉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다시 그녀의 귀 끝을 가볍게 깨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역시 나는 당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솔직하게 쾌락의 신음만 흘리는 게 좋소."
육장봉의 입술은 그 자신처럼 격렬하고 강압적이었다. 그는 월령안의 귀 끝, 입가를 어느 한 곳도 빠뜨리지 않고 샅샅이 가볍게 입맞춤했다.
그의 손도 강압적이었다. 그의 큰 손은 월령안의 아랫배를 덮고 있었는데, 손끝은 고의인 듯 아닌 듯이 그녀의 예민한 곳을 스쳤다.
며칠 동안 육장봉은 매일 나무를 베거나 쪼개었다. 손바닥과 손가락의 굳은살도 전보다 더 두꺼워졌다. 육장봉의 거친 손가락이 스칠 때마다 그녀의 몸은 주체할 수 없이 전율을 느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직여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그러나 육장봉은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녀가 더 많은 것을 갈구하고 있을 때, 육장봉은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고 진지하게 아랫배를 주물러 주었다.
"음음……."
월령안은 억울한 마음밖에 없었다. 저도 모르게 가벼운 신음 소리를 내었다.
육장봉이 웃으며 말했다.
"월령안, 당신은 자신이 지금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를 거요. 목소리 또한 얼마나 감미로운지 모를 거요. 물론 이런 것들은 중요한 게 아니오.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나만이 당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당신의 아름답고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오."
"흥……."
월령안은 화가 나서 두어 번 칭얼거렸다.
육장봉이 더는 움직이지 않는 것을 알아채고 그녀는 불편하게 몸을 배배 꼬며 그에게 밀착하려 했다.
"당신……."
'도대체 계속할 거예요, 말 거예요?'
그녀는 괴로워서 육장봉에게 밀착하며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더욱 많이는 만족을 얻지 못한 분노였다.
'나 지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월령안은 괴로워서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반면 육장봉은 기분이 좋았다. 그는 그녀의 뒤통수에 입을 맞추고는 작은 목소리로 약속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영원히 당신을 다치게 하지 않을 거요."
월령안이 부끄러워 자신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것을 보고, 육장봉은 자비를 베풀어 그녀에게 알려 주지 않기로 했다.
사실 그가 가장 기쁜 것은, 이 순간 그녀를 아름답게 활짝 피게 한 사람도, 그녀가 아름답고 감미로운 신음 소리를 내게 한 사람도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만의 월령안, 오로지 그 혼자만이 가질 수 있는 월령안이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는 작은 섬에서 월령안과 결혼하고 싶었다. 첫날밤도 여기서 바로 치르고 싶었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이곳은 너무나 누추했다. 그는 절대로 월령안을 섭섭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몰래 탄식했다.
육장봉은 모든 것을 거두고, 그녀를 위해 착실하게 아랫배를 주물러 주었다. 입술도 더는 도처에 불을 지르지 않았다. 그는 몰래 호흡을 가다듬어 화끈 달아오른, 하마터면 제어하지 못할 뻔한 욕망을 가라앉혔다.
월령안은 괜히 짜증이 났다.
'열 받네!'
그녀는 이미 일이 갈 데까지 가게 내버려 두려고 마음먹었다. 저지하지도, 거절하지도 않고, 협력하지도 않기로 했다.
그런데 육장봉이 갑자기 멈추었다.
세상에 어찌 육장봉처럼 이렇게 얄미운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반쯤 불을 지피고는 갑자기 멈추고 나 몰라라 하다니.
'아니 육장봉은 계속하면 어디 덧나나? 처음부터 아예 건드리지를 말든가?'
그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멀쩡하게 과일을 계속 먹고 있었을 것이다.
육장봉은 그녀를 유혹하고서 끝까지 책임지지도 않았다. 세상에 어떻게 이리 나쁜 남자가 있을까.
월령안은 화가 나서 울고 싶었다.
육장봉의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나쁜 남자의 행동에 화가 났다.
또한 억제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남색 앞에서 덧없이 무너져 내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일이 해결된 다음에 결혼하자고 이미 약속했었잖는가.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육장봉이 끝까지 가려 했다면 그녀는 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역시 달라졌다.
월령안은 두 눈을 더욱 꼭 감았다.
그녀는 육장봉도, 자기 자신도 보고 싶지 않았다.
정말 부끄러웠다.
바로 이때, 그녀의 아랫배에 얹어 두었던 육장봉의 손이 갑자기 움직였다.
"아니 아직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있다니. 보아하니…… 내가 좀 더 노력해야겠군."
"저는…… 음……!"
월령안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방금 전에 사라졌던 전율이 또다시 온몸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