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8화 귀중한 선물
작은 섬에는 비록 물자가 많지 않지만 자연이 풍부했다. 그들이 반년 남짓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육장봉도, 월령안도 마음 놓고 섬에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반년은 말할 것도 없고, 반달 동안이라도 실종된다면 밖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만약 그들이 반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으면, 밖에서는 그들이 죽은 줄로 여기고 그들 수중의 세력을 나누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방법을 강구해 하루속히 섬을 떠나야 했다.
섬에서 사흘간 쉬고 원기를 회복한 두 사람은 곧 그곳을 떠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바퀴 훑어보아도 아무 결과가 없었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섬에는 거의 모든 게 구비되어 있었다. 비 바람을 피하는 동굴까지도 있지만 유독 출행할 수 있는 도구가 없었다.
"당신, 배 만들 줄 아나요?"
월령안은 네댓 명이 껴안아야 겨우 안을 수 있는 큰 나무를 한 바퀴 돌면서 물었다.
그녀는 적지 않은 해역을 다녀보았다. 적지 않은 섬들에도 가 보았지만 이 섬처럼 물자가 풍족한 곳은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큰 나무는 섬은 물론이고, 밀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육장봉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월령안, 나는 무과 출신이오."
나무 빗이나 나무 그릇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은 배를 만드는 것과 전혀 달랐다.
월령안은 그를 크게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요. 모르신다 이거죠?"
월령안이 농조로 말했다.
"난이도가 좀 높소."
육장봉은 자신이 알고 있는 큰 배의 구조를 곰곰이 되새겨 보고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쪽배는 한 번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소."
그들이 이 섬을 떠나려면 반드시 출행 도구가 있어야 했다. 그러니 안 되도 되게 만들어야 했다.
월령안은 박수를 치며 한숨을 쉬었다.
"쪽배라도 해 봐요 우리. 비록 모험적일지 모르지만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어쨌든 이곳을 떠나야 해요."
월령안은 결정을 내리고 육장봉과 함께 작은 배를 만들 나무를 골랐다.
여러 사람이 껴안아야 하는 그 나무는 틀림없이 안 될 것이다. 나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좋아서였다.
그들 두 사람이 베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베어도 쉽게 쪼갤 수가 없었다.
"햇볕이 좋을 때, 나무를 벤 다음 쪼개서 섬 밖의 공터로 가져가서 말리세요. 전에 오동나무 열매가 열린 것을 봤어요. 좀 있다 제가 주워서 오동유를 짤 수 있는지 한번 시도해 봐야겠어요. 물론 가능성은 낮지만 한번 도전해 봐야죠."
배를 만들기로 결정하자, 월령안은 해야 할 일을 일일이 분부했다.
"나무를 베는 건 당신을 돕지 못하겠네요. 저는 가서 등나무 줄기를 베어서 삼밧줄을 꼬아 볼게요. 우리가 출행할 때 필요한 먹을 것과 물도 준비할게요."
"좋소. 조심하시오. 나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마오. 섬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모르잖소."
육장봉은 돌도끼를 들고 적당한 나무를 찾으며 월령안에게 진지하게 당부했다.
"네."
월령안이 대답하고서 한마디 귀띔했다.
"나무를 베어서 직접 섬 옆으로 끌고 가세요. 나뭇잎은 젖은 대로 태워서 신호로 사용할 수 있잖아요. 다른 배가 반드시 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으나, 시도는 해봐야 하죠."
몸을 추스르는 사흘간에도 두 사람은 쉬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매일 초저녁이 되면 섬 주변에서 젖은 나무를 태우며 해상 구조 신호와 같은, 짙은 연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연거푸 사흘 동안 아무것도 불러오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들이 연기에 취할 정도였다.
그러나 월령안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았다.
그들은 쪽배를 만들어 바다로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선 쪽배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두 사람의 얼치기 재간으로 만들어 낸 쪽배가 바다에서 얼마 동안 뜰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만약 도중에 쪽배가 파도에 부딪쳐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월령안은 그들이 다시 한번 다른 섬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설령 섬까지 떠내려간다고 해도, 운수 좋게 또 물자가 풍족한 섬을 만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지나가는 배에 구조 신호를 보내거나, 큰 배를 섬까지 불러오는 것이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좌우지간 두 사람 모두 스스로를 지킬 재간이 있었다. 상선을 만나면 가장 좋은 것이고, 해적선을 만나더라도 육장봉이 있으므로 월령안은 두렵지 않았다.
해상에서 살길을 찾는 기법으로 말하면 물론 월령안이 더욱 많이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두 가지 준비를 했기에, 그들에게는 유익할 뿐 해가 없었다.
육장봉은 물론 의견이 없었다.
육장봉은 사흘간 연일 나무를 베고, 쪼개고, 말렸다.
매일 오후, 바닷바람이 가장 셀 때가 되면, 두 사람은 섬 주변에서 젖은 나무를 태워 짙은 연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배들이 그들을 발견하기를 기대했다.
안타깝게도 전후하여 연속 엿새 동안, 매일 짙은 연기를 만들었지만 단 한 척의 배도 불러오지 못했다.
두 사람은 섬 기슭에 서서 짙은 연기가 뭉게뭉게 솟아오르고, 해면이 평온하고 파도가 잔잔한 것을 보면서 그래도 실망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웃고는 조용히 동굴로 되돌아갔다.
두 사람은 동굴로 돌아가 간단한 식사를 하고서 앞으로 할 일을 의논했다.
"쪽배를 만들 목재를 다 준비했소. 첫날에 말린 목재는 그나마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소. 내일부터 쪽배를 만듭시다."
원래 나무를 온전히 말리려면 일 년 반 동안은 걸려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상선이나 전함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자그마한 쪽배를 만들 뿐이었다. 그냥 쓸 수 있으면 되었다.
월령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등나무 줄기도 이미 담가 놓아서 오늘 밤에는 삼밧줄을 꼴 수 있어요. 다만 오동나무 열매들로 어떻게 기름을 짜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사흘간 월령안은 나갈 때마다 등나무 광주리에 오동나무 열매를 한가득 주워 오군 했다.
짧은 사흘 동안, 오동나무 열매는 겹겹이 쌓였다.
하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시도해 보았지만, 지금 있는 간단한 도구로는 오동유를 짤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배를 만드는 것이 육장봉에게 어려운 일이듯, 기름을 짜는 것이 그녀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괜찮소. 오동유가 없으면 그저 나무가 빨리 썩을 뿐이오. 우리가 그 쪽배를 오랫동안 쓸 거도 아니잖소."
쪽배는 그들이 다음 목표 지점을 찾을 때까지 견뎌 주기만 하면 되었다.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겠네요. 제가 밖의 등나무 줄기를 쪼개 물에 더 담글게요."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서서 밖의 등나무 줄기를 정리하려 했다. 이때 육장봉이 그녀를 잡았다.
"그만 쉬오. 그동안 편히 쉬지 못했잖소."
섬에는 약이 없어 육장봉의 상처는 줄곧 낫지 않았다.
이 며칠 동안 나무를 베는 것 외에, 모든 잡일은 월령안이 도맡아 했다. 일들이 자질구레하면서도 사람을 피곤하게 했다.
대엿새 동안, 그녀는 줄곧 바쁘게 보내다 보니 손발에 온통 물집뿐이었다.
그녀는 그를 피해 몰래 물집을 터뜨리면 그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월령안이 그를 아끼는 것처럼 그도 항상 그녀를 관심하고 있었다.
월령안의 손발에 물집이 생긴 것뿐만 아니라, 그녀의 손등에 상처 하나가 늘어도 그는 알 수가 있었다.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하면 월령안이 더욱 심하게 숨기고, 더 심하게 피할까 두려워서였다.
현재 이 섬은 아무 일이 없이 평온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섬 전체를 다 돌지 못했다. 이 섬에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월령안이 그에게 숨기고 피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보지 못하는 곳이라도 가서 위험을 당한다면, 그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좋아요."
월령안은 며칠 바삐 보냈다. 또한 모두 육체노동이었다. 이는 그녀에게 있어서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육장봉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그의 품 속에서 편한 자리를 찾아 잠들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월령안이 깨어났을 때 육장봉은 이미 동굴에 없었다.
그녀는 동굴에서 나와, 쪼개어 물속에 담근 등나무 줄기와 이미 다 꼬아 놓은 두 묶음의 삼밧줄을 보았다.
그녀는 삼밧줄 두 묶음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 위의 핏자국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이보다 더 귀중한 선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월령안이 육장봉의 피가 묻은 삼밧줄이 그녀가 받은 가장 귀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육장봉이 바구니에 붉은색 과일을 가득 담아 그녀 앞에 가져다주었다.
"전에 당신이 좋아하던 거로 기억하고 있소."
육장봉은 월령안 앞에 쭈그리고 앉아, 가장 크고, 빨간 과일 하나를 골라 그녀에게 주면서 삼밧줄 두 묶음을 슬쩍 옆으로 옮겼다.
그는 분명히 잘 건사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것일까.
그는 이런 수공 일을 잘하지 못했다. 삼밧줄은 어수선하고 그다지 예쁘지 않았다.
그는 적어도 월령안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음. 제 마음에는 꼭 들어요."
월령안은 육장봉이 삼밧줄을 몰래 옮겨 놓는 것을 보고, 긴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가까스로 눈 속의 웃음기를 감출 수가 있었다.
그녀의 대장군은 차분할 때 천하제일로 차분했다.
동시에 귀여울 때도 천하제일로 귀여웠다. 따라올 자가 없었다.
물론 듬직한 대장군이나 사랑스러운 대장군이나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육장봉이 정말 좋았다. 지금은 전보다 더 좋아했다. 그때 당시, 기대에 부풀어 육장봉과 결혼할 때보다 더 좋아했다.
그때 당시 육장봉은 그녀가 꿈꾸던 대영웅이었다. 너무 멀어서 닿을 수도 없고, 감히 바라보지도 못하며, 모독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존재였다.
지금의 육장봉은 그녀 한 사람의 대영웅이었다. 그녀가 마음대로 입맞춤하고, 안고 싶으면 안고, 마음대로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녀는 정말로 둘이서 그냥 이대로 이 작은 섬에 눌러앉아 평생을 보내기를 바랐다.
오직 그들 두 사람뿐이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으며 서로가 있기만 하면 충분한 생활을 갈망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밖에는 아직 많은 사람과 일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제멋대로 피할 자격이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상실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육장봉이 미처 눈치채기도 전에 그러한 감정을 거두어들였다.
두 사람은 평생 작은 섬에서 둘만의 세상을 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혼란스러운 바깥세상을 잠시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두 사람이 같이하는 순간순간을 소중히 아낄 수 있었다.
월령안은 기쁜 마음으로 육장봉이 건네는 붉은 과일을 받아 가볍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달군요."
섬에 온 첫날에 육장봉이 붉은 과일을 따서 그녀에게 주었다. 과일은 맛이 새콤달콤하고 은은한 복숭아 맛이 향긋하게 나는 것이 그녀가 이 섬에서 맛본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이 붉은 과일은 이 섬의 특산이었다. 과일 나무는 곧고 높게 자라 그녀는 딸 수가 없었다.
바닷새가 날아 올라가 과일을 쪼아 먹는 것이 자주 보였고 가끔 몇 개씩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바닷새가 쪼았던 것으로 떨어지면 대부분 썩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육장봉은 줄곧 바빠 세 끼를 모두 그녀가 준비했다. 당연히 그녀가 먹고 싶은 과일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 섬을 떠나면 이렇게 맛있는 과일을 더는 먹지 못할 것이라 아쉬워한 적이 있었다.
뜻밖에도 육장봉은 이른 아침부터 그녀에게 과일을 따다 주었다.
바구니를 가득 채운 붉은 과일은 모두 물방울이 그대로 맺혀 있어 하나하나가 너무나 예뻤다. 벌레 먹은 것도 없고 바닷새가 쫀 흔적도 없었다.
육장봉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월령안은 마음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