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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67)화 (867/1,004)

867화 훔쳐볼 필요가 있소?

"좋아요."

월령안도 어피복이 몸에 착 감쳐 있어 불편했다. 그녀는 옷을 들고 동굴로 들어갔다.

그리고 돌아서서 육장봉도 덩달아 동굴 쪽을 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얼굴이 발그스름해지며 살구 모양의 눈을 살짝 부릅떴다.

"무얼 보려고요. 등 좀 돌리세요."

"오……."

육장봉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협조적으로 뒤돌아섰다.

그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지 습관적으로 월령안의 뒷모습을 눈으로 뒤쫓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월령안이 믿을까. 아마 믿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 자신조차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금방 무의식적으로 월령안을 따라 덩달아 돌아섰다.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필경 그 역시 정상적이고 정력이 왕성한 남자였다.

그를 포함해서, 남자들은 어떤 면에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육장봉……!"

월령안이 동굴 안에서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육장봉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서 동굴로 뛰어갔다.

그는 단정한 매무새의 월령안을 보자 마음속으로 한순간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엉뚱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히 얼굴빛을 거두며 친절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오?"

"이것 보세요……."

월령안은 손에 든 목패(木牌)를 육장봉에게 건넸다.

목패에는 조각달이 새겨져 있고, 조각달 위에는 금원보(金元寶) 세 개가 겹쳐 있으며 주위에는 만개한 모란꽃이 조각되어 있었다.

자그마한 나무토막은 돈의 향기가 다분한 부귀한 기운이 배었고, 다소 수수한 귀여움이 엿보였다.

"월씨 가문과 연관되었소?"

육장봉은 목패를 보자마자 바로 알아차렸다.

그는 일찍 변경 길거리에서 파는 재신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재신은 토실토실한 몸집에 손에 금원보 세 개를 받쳐 들고 있었다.

목패에 조각한 그림을 보면, 월씨 가문이 재신임을 암시한 흔적이 분명했다.

"월씨 가문의 가장 이른 가문 휘장이에요. 아주, 아주 먼 옛날이에요……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요. 적어도 저는 사용한 적이 없어요."

월령안은 멈칫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주나라가 개국한 이후로 월씨 가문에는 가문 휘장이 없었어요. 이 가문 휘장을 아는 사람은 월씨 가문의 옛 세대밖에 없어요."

주나라가 나라를 건립한 뒤로, 월씨 가문은 더는 가문이 아니라, 외로운 한 개인이었다. 따라서 가족 휘장을 가질 자격도, 체면도 없었다.

"이 동굴은 월씨 가문과 연관된 동굴이오. 하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오. 맞소?"

육장봉은 목패를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이 목패는 반지르르하고 위에 조각 흔적도 많이 옅어져 있었다.

목패 주인이 항상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음."

월령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육장봉은 목패를 쓰다듬으며 대담하게 짐작했다.

"월령안, 혹시…… 황실에서 월씨 가문 사람들을 외딴섬에 가두어 놓은 건 아닐까?"

만약 사실이라면 그는 월씨 가문이 바다의 제왕으로서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잠깐 생각에 빠져들었다.

"육장봉, 폐하께서는 사월 조직에 대해 아시나요?"

"내가 말해 주었소."

북요의 소식에 대해서는, 그가 말하지 않더라도 그의 어머니 현음 공주가 황제에게 보고할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영원히 조씨 가문의 공주이고, 영원히 조씨 황족의 이익을 우선시했다.

"폐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시던가요? 월씨 가문 사람을 떠올리던가요?"

월령안이 또 물었다.

육장봉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서는 깜짝 놀라셨지만, 월씨 가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소. 내가 사월 조직이 혹시 감금된 월씨 가문 사람들과 관련된 것은 아닌가고 넌지시 물었소. 폐하께서는 절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하셨소."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월씨 가문의 사람들이 외딴섬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육장봉, 사월의 사는 사(四)가 아니라, 아버지를 시해한다 말할 때의 그 시(弑) 자예요. 방계 월씨가 직계 월씨를 죽인다는 뜻이에요."

월령안은 엄숙한 표정으로 육장봉의 말을 바로잡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말이 맞아요. 황실은 정말로 월씨 가문 사람들을 사면이 모두 바다에 둘러싸이고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외딴섬에 가두었을 거예요. 그래야만이 황실에서는 감금된 월씨 가문 사람들이 도주할 수 없다고 생각할 거예요. 감금된 곳에서 도망쳐도 죽는 길밖에 없으니까요."

"시월? 월씨 가문 사람을 죽인다고?"

육장봉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그들이 천신만고 끝에 도망쳐 나간 것이, 겨우 월씨 가문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란 말이오?"

'이건 또 무슨 반응인가?'

복수하려면 황실에 복수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면 영왕 후대들에게 복수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기 가문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르다니. 이건 또 무슨 이치인가.

"물론 월씨 가문 사람을 죽여야죠."

월령안은 쓰다 달다 말이 없이 차갑게 웃었다.

"월씨 가문 사람들은 집안싸움에 가장 능하죠. 그들은 가주 쟁탈전에서 실패하고 감금된 거잖아요. 그들에게 있어서…… 황실이 얄미운 것은 사실이지만 승자의 후예들도 억울한 것만은 아니죠. 그리고 있잖아요. 당연히 만만한 상대를 골라서 복수하기 마련이에요. 황권은 튼튼하고 황실의 권세는 막강하잖아요. 황실에 복수하는 것보다는 월씨 가문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이 훨씬 더 쉽죠."

월령안은 그 사람들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다.

마치 월 삼낭이 왜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과 손잡으려 하지 않고 한사코 그녀를 죽이려 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월씨 가문의 모든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만을 남겨야 한다는 관념이 주입되었다.

그들은 반드시 경쟁 상대를 모두 짓밟아야만 내일이 있었다.

형제 사이 싸움은 월씨 가문에서 근 백 년 동안 줄곧 되풀이되던 일이었다.

육장봉은 월씨 가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평가하지 않고 묻기만 했다.

"그들을 찾아가 볼 것이오?"

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거절했다.

"해역이 이렇게 큰데 어떻게 찾아요? 찾고 싶어도 지금은 아니에요."

그녀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탄식했다.

"지금 찾는다 해도 제가 어찌 할 수 있나요?"

그녀는 그들을 월씨 가문에 데려갈 수도 없고, 그들이 정정당당하게 살아가게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감금된 월씨 가문 사람을 동족(同族)으로 간주하고, 동족을 구출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찾아간다고 하자.

감금된 월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를 동족으로 간주할지, 그녀의 구출을 원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그 사람들이 북요로 도망친 월씨 가문 사람들처럼 승리자의 후예인 그녀를 미워하고, 그녀가 그들의 기회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세상에서 선을 베풀었다 해서, 반드시 선으로 보답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괜히 무작정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죽어서 묻힐 곳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또…… 월령안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당신은 제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동족에 대해 얼마나 깊은 감정이 있을 거 같아요?"

그녀가 월씨 가문 가주의 책임을 떠맡은 것은 도망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월씨 가문을 황실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을 회복하게 하려는 것은, 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후손들을 위해서였다.

월씨 가문 사람들을 구출하는 것은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을 위해 목숨을 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육장봉, 저를 너무 고상하게 보지 마세요. 저 역시 월씨예요. 뼛속에는 이익을 제일로 생각하는 월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요."

월령안은 애써 웃고 있으나, 눈 속의 슬픔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기적인 자신이 싫었다. 그녀는 천하를 마음에 품고 있는 육장봉이 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육장봉이 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만 월령안일 뿐이었다.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에 밝으며 영원히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월령안이었다.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오."

육장봉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을 가볍게 품에 끌어안았다.

"당신은 아주 훌륭하오! 모든 게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오."

월령안은 여전히 몸매를 완벽하게 드러내는 어피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육장봉은 그녀를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마음의 파문이 일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월령안이 가슴 아플 뿐이었다.

월령안은 결코 이기적이지 않았다.

진정으로 이기적인 사람은 결코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너무 명석하게 살 뿐이었다. 바로 그 명석함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숙여 육장봉의 어깨에 이마를 고이고 조용히 속삭였다.

"저도 때때로 대의를 위해, 동족을 위해 희생하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런데 제 이성이 그들은 그럴 가치가 없다고 말해 주네요. 물론 저도 그렇게 할 수가 없고요."

"당신은 남을 위해 자신을 힘들게 할 필요가 없소. 그들은 확실히 그럴 만한 가치가 없소."

육장봉은 우렁차게 말했다.

"당신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목숨으로 당신의 행복을 지키려 했소.

당신이 남을 위해 자신을 힘들게 하면, 당신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희생에 미안한 게 아니오?"

그에게 있어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꼬마 아가씨이다. 무슨 이유로 남을 위해 자신을 힘들게 하고, 남을 위해 희생해야 한단 말인가.

월령안은 순간 멍해 있다가 곧이어 웃었다.

"육 대장군, 당신 말이 맞네요. 제 아버지와 오라버니께서는 저의 자유로운 생활을 위해 목숨을 바쳤어요. 제가 만약 남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을 힘들게 한다면 정말로 그분들의 희생에 미안한 일이죠."

"나한테도 미안하지."

육장봉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기 마음을 드러냈다.

"내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바로 내가 보호하려는 꼬마 아가씨가 행복하게 생활하고 어떤 사람도, 어떤 일로도 힘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당신이 보호하는 꼬마 아가씨는 셀 수도 없이 많잖아요. 그게 저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육장봉이 한바탕 위로해 주자, 그녀 마음속의 자그마한 자기혐오도 곧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완벽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다만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면 그만이었다.

육장봉은 그녀를 달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지금 그녀는 그가 달래 준 덕분에 즐겁기만 했다.

"내가 보호하고 싶은 꼬마 아가씨는 당신뿐이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덤이오.'

육장봉은 영리하게 뒷말은 입 밖으로 뱉지 않았다.

월령안은 기분이 좋아져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는 육장봉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살짝 밀쳤다.

"좋아요. 육 대장군, 당신이 보호해 주고 싶은 꼬마 아가씨는 이제 옷을 갈아입어야 해요. 번거로우시겠지만 동굴 밖에 가서 그녀를 보호해 주세요. 기억하세요. 돌아서지 말고, 훔쳐보지 마세요."

"내가 언제 훔쳐보았다고 그러오?"

육장봉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제가 콕 집어 말해야 하나요?"

'육장봉은 이렇게 잠깐 사이에 내가 기억상실이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건 내가 광명정대하게 본 것이오."

육장봉은 조금도 꿀리지 않고 특별히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내 부인을 보는데, 훔쳐볼 필요가 있소?"

월령안은 말문이 막혔다.

정말 이치에 맞는 말이라 딱히 뭐라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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