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5화 아직 살아 있는 건가?
고래상어의 시체는 해수면에 떠 있었다. 마치 작은 산같이 바다를 떠다녔다.
그놈 머리 위에 누워 있는 육장봉은 마치 산 위에 볼록 솟아 있는 돌처럼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감은 확실했다.
월령안 일행은 배를 운전해 접근했다. 배가 채 멈춰 서기도 전에 월령안은 한발 먼저 뛰어 넘어갔다.
물고기 등은 미끄러워 사람이 전혀 설 수가 없었다.
그녀는 뛰어 넘어가자마자 아래로 미끄러졌다. 허둥지둥 무진 애를 썼지만 여전히 몸을 가누지 못해 아주 볼품없었다.
"큰아가씨!"
흉터 등 몇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월령안이 이리 물불을 안 가리고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뛰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를 구하려는 순간, '슈욱' 소리가 들려왔다.
결정적인 순간에 월령안은 손목에 감긴 암기를 쏘아 고래상어 머리 위에 고정시키고 몸을 가누었다.
흉터 등 몇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웃으면서 농을 던졌다.
"큰아가씨께서는 정말 마음이 급하신 모양입니다. 한시도 기다리지 못하군요."
"응. 기다리지 못하겠어."
월령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범하게 인정했다.
그녀는 마음이 급했다. 무릇 조금이라도 침착했으면 아무 준비도 없이 물고기 등에 무작정 뛰어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후회하지도 않고, 창피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육장봉을 위해서라면 그녀는 무슨 일이든 달갑게 여겼다.
월령안은 몸을 가눈 다음, 발목에 감추어 둔 비수를 꺼내 물고기 몸을 찍으며 그 힘을 빌려 기어 올라갔다. 얼마 안 되어 대어의 머리 위에 이르렀다.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그녀는 육장봉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몸 대부분이 고래상어 머리 위에 뚤린 구멍 속에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 구멍 속에 있었기에 그는 대어 두 마리의 육박전에서 뿌려 나가지 않고, 파도에 휩쓸려 고기밥이 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육장봉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그가 입고 있던 옷은 대어 두 마리가 만들어 낸 파도와 폭풍으로 갈가리 찢겼다.
밖에 드러난 살갗에는 온통 갈래갈래 피가 밴 상처뿐이었다. 그 상처들은 바닷물과 핏물에 잠겨 하얗게 되어 있었다.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육장봉, 어찌 된 거예요. 이게 무슨 꼴이에요."
월령안은 떨리는 손으로 육장봉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 눈물이 곧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의 얼굴에 난 상처는 더욱 심각했다. 역시 바닷물에 오랫동안 잠겨 있어 하얀 것이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너무 비참하잖아!'
하루 밤낮 동안 육장봉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홀로 사나운 대어 두 마리와 바다 폭풍을 대적하면서, 얼마나 무기력하고 또 얼마나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먼저 그를 버리고 그의 생사를 돌보지 않았다.
월령안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떨리는 손을 진정시켜 그의 목에 있는 맥박을 짚어 보았다. 그녀는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는 맥박을 감지하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육장봉, 깜짝 놀랐잖아요."
그녀는 이리 처참한 육장봉의 모습에 정말 죽은 줄로 알았다.
"큰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아주 대단한 분이에요. 나가떨어지지 않은 걸 보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흉터 등 몇 명은 우선 배를 안전하게 세웠다.
그리고 선실에 숨긴 밧줄을 끌어내 화살을 묶고 대어의 머리 위로 쏘았다. 그다음 밧줄을 타고 물고기 머리 위로 올라갔다.
물고기 머리 위에 올라갔을 때, 월령안이 마침 비수를 꺼내 대어 머리 위에 있는 그 피 구멍을 가르고 있었다.
월령안의 실력이 너무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운이 너무 나쁜 것인지, 그녀는 마침 혈관을 잘랐다.
비릿하고 악취가 풍기는 피가 '쏵' 하고 솟구쳐 나오면서 월령안과 육장봉의 얼굴을 흠뻑 적셨다.
흉터는 올라오자마자, 바로 그 장면을 보게 되었고 하마터면 웃음보를 터뜨릴 뻔했다.
"웃겨?"
월령안은 흉터를 노려보았다.
"어서 와서 도와줘."
"네, 네, 큰아가씨."
흉터는 웃음을 참으며, 월령안이 물고기 머리 위에 오르며 찌른 칼자국을 따라 손발을 함께 움직여 기어 오더니 살갑게 물었다.
"큰아가씨, 부군 나리는 괜찮은가요?"
흉터도 육장봉의 비참한 몰골에 깜짝 놀랐다.
'이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육장봉의 지금 모습은 마치 갈래갈래 칼집을 낸 뒤, 소금까지 발라 말리려는 생선 같아 보였다.
"살아 있다."
월령안은 다시 여러 번 그어 마침내 육장봉을 '숨겨둔' 피 구멍을 넓게 만들었다. 그녀는 살짝 숨을 고르며 말했다.
"자, 너희 부군 나리를 좀 꺼내 줘."
흉터는 힘이 셌다. 그는 육장봉을 구멍에서 안전하게 뽑아냈다.
육장봉의 두 다리는 고래상어의 가시에 긁혀 허벅지가 피범벅이 돼 있었다.
상처는 뼈까지 보일 정도로 패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대어가 삼켜서 두어 번 씹다가 싫어서 다시 뱉어낸, 죽은 물고기 같았다.
흉터는 바다에서 몇 년 동안 있으면서 이처럼 심하게 다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이거 참……."
월령안이 매섭게 눈총을 쏘자 흉터는 깜짝 놀라 '비참'이라는 말을 삼키고서 환심을 사려는 듯이 말했다.
"어…… 그게, 부군 나리가 참 대단하시군요!"
"등에 업고 돌아가자."
월령안은 조심스럽게 육장봉을 일으켜 세우고, 화살에 묶은 밧줄을 풀어 그의 허리에 묶었다.
철퍼덕!
그때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죽어 있던 백상아리가 꼬리를 홱 저었다.
해수면에는 집채 같은 파도가 일었고 그 파도가 밀려오는 바람에 작은 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바다에 떨어졌다.
고래상어가 파도에 흔들리자 월령안 등 세 사람도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육장봉!"
월령안은 얼굴빛이 하얗게 바래면서 급급히 육장봉을 붙잡았다.
"큰아가씨."
흉터도 깜짝 놀랐다. 그는 손을 내밀어 무엇이든 잡으려고 했으나 파도에 그대로 쓸려가고 말았다.
"흉터……!"
월령안은 밧줄을 잡아당겨 흉터를 구하려 했다.
바로 그때, 파도에 밀려 두 대어의 시체가 부딪치고 말았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마치 산사태,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잔잔하던 해수면이 순식간에 갈라졌다.
바닷물이 급격하게 불어나며 해수면이 일렁이더니 주변의 모든 것이 바다에 말려 들어갔다. 누구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은 동시에 큰 파도에 실려 바닷물에 빠졌다.
그들은 발버둥 쳐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파도에 밀려 바다에 빠져 들어갔다.
다른 아홉 명도 마찬가지였다. 금방 수면 위로 솟아오르면 곧장 파도에 부딪혀 물속에 파묻혔다.
"큰아가씨……!"
누군가 육장봉과 함께 있는 월령안을 보고 헤엄쳐 오려 했다. 하지만 파도 앞에서 사람의 힘은 보잘것없었다.
그들은 육장봉과 월령안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도리어 파도에 밀려 점점 더 멀어졌다.
"어서…… 헤엄쳐……. 날…… 상관하지 마."
월령안은 겉옷을 벗어 버리고 그 속에 입은 어피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는 혼미 상태에 빠진 육장봉을 자기 몸에 묶었다.
두 사람은 파도에 실려 거듭 물에 떠올랐다 잠겼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바닷물을 여러 번 삼키면서 볼품없고 무기력해져 파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육장봉을 이끌고 갖은 기술을 모두 동원해 파도와 싸우면서 물밑에 가라앉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파도가 점차 약해졌다. 월령안은 가까스로 해수면 위로 뜰 수 있었다.
그러나 부딪쳤다가 떨어졌던 두 대어의 시체가 파도에 밀려, 다시금 부딪쳤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이번에는 일으킨 파도가 전보다 훨씬 약해졌다.
하지만 오랫동안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던 월령안은 이미 남은 힘이 없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그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는 죽고 싶지 않았다. 실낱같은 기회라도 그녀는 모두 쟁취하려 했다.
그러나 이제 곧 닥쳐올 거대한 파도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연재해 앞에서 아무리 애를 쓰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닥쳐오는 자연재해에 저항할 능력이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한순간 그녀는 홀가분해졌다.
그녀는 몸부림도, 저항도 포기한 채, 육장봉을 꼭 껴안고서 그의 입술에 입맞춤했다.
그녀는 죽음이 두려웠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더 잘 살고 싶었다.
그러나 육장봉과 함께라면, 죽음도 그리 두렵지 않은 듯싶었다.
작은 산만 한 두 대어가 충돌해 가져온 파괴력은 치명적이었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는 막아 낼 수가 없었다.
두 대어가 두 번째로 충돌할 때, 월령안은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녀는 몸부림을 포기하고 파도에 몸을 실었다. 파도가 그녀를 이름 모를 먼 곳으로 데려가, 운명처럼 육장봉과 함께 누구도 모르게 영원히 깊은 바닷속에 매장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는 구조될 거라는 희망을 품지 않았다.
그때 당시, 흉터 등 몇 사람은 자기 앞가림도 못했다. 육장봉은 정신을 잃어 그녀보다 못한 상태였다. 어느 하나 그녀보다 나은 사람이 없었기에, 그들을 구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눈을 뜨고 햇볕의 열기와 비릿한 바닷바람 냄새를 느끼는 순간,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안 죽었나? 그럼 육장봉은? 아직 살아 있는 건가?'
월령안은 허약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화닥닥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온몸에 너덜너덜한 옷을 걸친 육장봉이 빛을 등진 채, 등나무 바구니를 들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햇볕이 그를 감싸는 바람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월령안은 멍하게 있다가 불분명한 말투로 한마디 물었다.
"육장봉? 괜찮은가요?"
그녀는 물고기 시체에서 육장봉을 꺼낼 때, 그가 혼절한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걸을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지금 보는 이는 육장봉인가, 아니면 귀신인가.
"당신 그건 무슨 표정이오? 귀신을 본 것이오?"
육장봉은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멍한 모습을 보고는 이마를 한 번 탁 튕겼다.
"정신 차리시오."
"아프다고요."
월령안은 '아이고' 하며 머리를 감싸더니 뾰로통해서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아프기도 하고, 육장봉도 따뜻했다. 그러니 그녀도 죽지 않고 육장봉도 죽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살아 있었다.
'정말 좋구나! 모두 살아 있다니.'
"정말 아프오? 어디 좀 봅시다……."
육장봉은 긴장된 표정으로 등나무 바구니를 내려놓고는 월령안의 저지에도 강제로 이마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빨간 흔적조차 없는 말끔한 이마였다.
육장봉은 성이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 그녀의 미간을 가볍게 콕 찍었다.
"당신도 참……."
그는 자신이 힘 조절을 제대로 못 해 그녀를 상하게 한 줄 알았다.
"제가 얼마나 연약한데요."
다시 살아난 월령안은 기분이 날 것만 같아 무엇을 보아도 즐겁기만 했다.
그러나 육장봉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그녀는 웃음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