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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63)화 (863/1,004)

863화 늦게 온 건 아니겠지?

"사흘 치 음식, 열흘 치 물을 충분히 챙겨라."

바다에서 능력만 있으면 먹을거리는 충분했다. 하지만 담수는 얻기 어려웠다.

"그리고 사람마다 하루치 개인 물을 더 챙긴다."

"알겠습니다. 큰아가씨."

흉터가 대답하고서 다른 아홉 명에게 손짓했다.

"가서 일하자."

월령안은 뒤돌아 선실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무명으로 만든 긴 겉옷과 바지를 바꿔 입고 머리도 두건으로 감싸고 다시 나왔다. 옷깃 쪽이 불룩해서 뭔가 조금 달라 보였다. 하지만 딱히 꼬집어 말할 수도 없었다.

얼마 안 되어 흉터 등 몇 사람도 나왔다. 그들은 간편한 옷을 입고 밖에 드러난 팔과 다리를 어피(魚皮 - 물고기 가죽)로 감싸고 있었다. 어피는 마치 그들의 두 번째 피부인 것처럼 빈틈없이 그들의 몸을 꼭꼭 감싸고 있었다.

그들은 목에도 어피를 여러 겹으로 두르고 있었다.

그제야 육일을 비롯한 친위대는 드디어 월령안의 어디가 다른지를 알게 되었다.

그녀도 틀림없이 어피 옷을 입었을 것이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전보다 더 뻣뻣해졌다. 그리고 웃옷의 옷깃이 매우 높고 목 부분은 굵고 짧아 보였다.

육일 등 몇 사람은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한쪽에 물러서서 월령안 그들이 배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해전에서는 월령안과 흉터 그들이야말로 전문가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들은 이 어피복을 입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육일 등의 배웅을 받으며 월령안 일행은 중형 배 한 척에 올랐다.

배에 오르자마자 흉터 등 열 명은 바로 바쁘게 움직였다. 열 명은 각기 자기의 직무를 이행하면서 바쁘게 협력했다.

누구나 다 자기 일이 있고 한가한 사람은 없었다.

육일은 드디어 알게 되었다. 월령안이 '당신들이 배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요?'라고 말한 것은 그들을 비아냥거린 게 아니라 적절한 평가였다.

그들은 배를 운전할 수도 없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그들은 베 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곧 중형 배는 흉터 등 몇 사람의 조종 하에 큰 배와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 * *

큰 배의 속도가 빠른 것인지, 아니면 중형 배의 속도가 빠른 것인지 얼마 안 되어 중형 배는 작고 검은 점으로만 남더니 곧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육일을 비롯한 육가군 형제들은 묵묵히 기도하고 나서 주 선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먼저 종씨를 찾아가 바다에서의 박투 기술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었다.

종씨는 듣자마자 즐거워했다.

"고생을 찾아서 하는 사람도 있군. 배우고 싶다고 했지? 자, 이리 와. 사람을 시켜 가르치라고 할게."

종씨는 한쪽 눈밖에 없는 장정을 불러들이더니 육일 등을 맡겼다.

"마음 놓고 훈련시켜. 우리 부군 나리가 신선 같은 인물인데 겁쟁이 수하들을 두어서는 안 되지."

육일과 형제들은 왠지 불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애꾸눈 사내는 그들을 선미로 데리고 가서는 허리춤에 밧줄을 걸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하나하나 발로 차 바다에 떨어뜨렸다.

"해상 격투에는 아무런 기술이 없어. 그냥 살아남으면 돼."

애꾸눈은 말을 마치자,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뒤돌아 가 버렸다.

"아이 퉤……."

육일 등은 아무 경계심도 없는 상태에서 차이는 바람에 곧바로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바다에 빠진 적이 없는 사람은 바닷물에 잠기는 순간이 얼마나 끔찍한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바닷물에 머리끝까지 잠기는 순간, 육일 등은 죽는 줄로만 알고 지어 발버둥질하는 것도 포기했다.

다행히 배가 움직여 허리춤의 굵은 밧줄을 당기면서 그들을 바다에서 끌어냈다.

"저는…… 꼬르륵 꼬르륵…… 저들을 죽여 버릴 거야!"

육사는 더구나 비참했다. 그는 아직도 몸에 상처가 있었다.

바다에 몸을 담그는 순간, 그는 아픔을 참지 못해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진정하고 따라와. 우리 몸에 있는 밧줄은 보통 굵은 밧줄이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끊어질 거다."

육일은 가장 먼저 냉정해졌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대책을 궁리했다.

"저…… 저는 안 될 거 같아요."

육오는 바다에 가장 오래 잠겨 있었다.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었을 때는, 손발에 힘이 없고 얼굴도 창백해진 상태였다.

"대장군께서는 맨손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배 두 척을 해치웠어. 바다에서 모두가 두려워하는 고래상어도 제압하셨잖아. 대장군의 친위대로서 그분의 체면을 깎으면 안 되지. 그분이 우리를 보호하게 해서도 안 되고 말이다."

사실 육일도 별반 나은 게 없었다.

그러나 지금 육장봉의 생사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친위대인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육일은 이 생각만 하면 의지력이 생겼다.

그는 반드시 바다의 풍랑에 적응할 것이다. 그러면 다음번 위험이 닥쳤을 때, 그들은 후방에 숨어서 대장군의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출전해 싸울 것이다.

육일의 말은 육이, 육사, 육오를 자극했다. 셋은 금세 이를 악물고 말했다.

"맞아. 대장군을 망신시킬 수는 없지. 다음번에는 우리 스스로 대장군을 찾으러 가야 해."

일순간 육일 등 몇은 흥분되어 투지를 불태웠다.

애꾸눈은 작은 배를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네 사람이 밧줄에 매달려 가는 것이 아니라 힘을 다해 헤엄치는 것을 보고 웃음을 흘렸다.

"물에 빠진 생쥐 네 마리를 볼 줄 알았는데…… 나름 패기가 있군."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패기가 있고 필사적으로 싸우려 하는 사람은 누구든 높이 사기 마련이다.

애꾸눈은 입을 열어 육일 몇몇을 일깨워 주지 않았다. 다만 작은 배를 타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을 뒤따랐다.

* * *

육일 등 몇 사람이 목숨을 걸고 훈련할 즈음, 월령안 일행도 가장 빠른 속도로 암초 더미 쪽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암초 더미 쪽에 가까워질수록 날씨가 더욱 우중충한 것이 곧 비바람이 불어닥칠 기미였다.

그러나 그들이 금방 지나온 해역은 여전히 하늘이 푸르고 바람이 잔잔했다.

"여기는 너무 이상합니다."

흉터 등은 암초 더미에 가까워지자 얼굴빛이 변했다.

암초 더미가 있는 일대의 해역은 구름층이 매우 낮게 뜨고 주변의 기운도 따뜻하고 무거워 갑갑함을 느끼게 했다.

행운이라면 이때는 비가 그치고 바람도, 파도도 잠잠해져 사람을 찾기가 쉬웠다.

이 해역은 크지 않았다. 흉터 등 몇 사람은 재빨리 해면에서 한 바퀴 훑었지만 아무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순간, 해수면은 텅 비어 있었다. 멀리 바라보아도 그들이 탄 작은 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월령안은 어두운 눈빛으로 해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심장이 마치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에 꽉 잡힌 듯이 가슴이 옥죄였다.

'늦게 온 건 아니겠지?'

암초 더미 해역은 크지 않았다.

흉터 등은 배를 운전해 암초 더미 쪽에서 두어 바퀴 돌면서 훑어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핏물조차도 없었다.

전체 해역은 깨끗하고 평온했다. 마치 좀 전의 혼전이 없었던 듯했다. 대어의 피가 해역을 붉게 물들였던 것은 환각인 것만 같았다.

흉터는 또 다섯에게 바다에 들어가 찾아보라고 했다. 다섯 사람은 바다에서 한참 동안 헤맸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큰아가씨, 바다는 아주 깨끗합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작은 나뭇조각도 못 보았습니다."

싸움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당연히 시체와 나뭇조각들이 떠다녀야 했다.

시체는 전부 가라앉았거나 대어에게 먹혔다 하더라도, 나뭇조각들은 해면에 떠다녀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해면에는 아무 부유물도 없었다. 물속도 마찬가지로 깨끗했다. 마치 무슨 대형 생물이 깨끗하게 청소한 것만 같았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흉터는 이를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큰아가씨, 우리 계속 찾아볼까요?"

"계속 찾아라."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시체도 찾지 못했다.

물론 바다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체도 못 찾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하지만 시체를 보지 못하면 아직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음을 말해 주었다.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으로 찾을까요?"

해면은 더없이 넓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배 한 척에, 사람 열한 명밖에 없었다. 찾는다면 오직 한 방향으로만 찾아야 했다.

바다가 넓은 것만큼 일단 방향을 결정하면 다시 돌이킬 수 없었다.

결정이 잘못되면, 사람이 살아 있어도 최적의 구조 시간을 놓쳐 죽을 수도 있었다.

이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반드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오직 그녀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너희 열 명이 모두 바다에 내려가 한 바퀴 둘러봐라. 어느 쪽이 가장 깨끗한지 보거라. 우리는 그쪽으로 향해야 한다."

월령안은 두 손을 겹치고 오른손 엄지로 왼손 손바닥을 꼭 눌렀다.

그녀는 망설이지도, 방황하지도 않았다. 눈빛이 단호하고 말소리도 우렁찼다.

그들의 주인으로서 그녀는 반드시 목표가 확실하고 신념이 확고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 그녀조차도 자신을 믿지 못하면 수하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녀를 믿을 수 있겠는가.

이곳은 바다라는 것을 유념해야 했다.

질서와 율법도, 도덕적 속박도 없이 수시로 배신과 살인이 난무하는 바다였다.

이 배에서 누구든 어떤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

그녀가 연약한 여자로서 이 해적들을 통솔하려면 반드시 강한 신념과 확고한 의지를 보여 주어야 했다. 그리고 또 누구보다도 올바른 단호함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녀는 반드시 영원히 틀림없어야 하고 한 치의 실수도 없어야 했다.

좀 전에 육장봉이 해상에서 고래상어와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처럼 말이다.

그녀는 아무리 육장봉을 걱정하고, 아무리 그가 배에 오르기를 기다려 함께 떠나고 싶어도 반드시 '올바른' 선택을 해야만 했다.

모든 이를 위해 육장봉을 버려야만 했다.

마치 지금 그녀가 직접 육장봉을 찾기로 한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육장봉을 찾는 임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불안했다.

그녀는 반드시 직접 와서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려야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흉터 그들은 아무 망설임도 없이 걸치고 있던 간소한 겉옷들을 벗어 던지고 목덜미에 쌓인 어피 안면 보호대를 쓰고 물속에 뛰어들었다.

열 사람은 물속에서 흩어져 바닷물고기처럼 헤엄쳤다. 그들은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한참 지나서야 수면 위로 올라와 호흡을 가다듬었다.

일각……. 이각…….

삼각이 지난 뒤 흉터 등이 연이어 돌아와 각자 본 상황을 하나하나 보고했다.

월령안은 열 사람의 정보를 취합해 당장에서 서남 해역으로 가서 사람을 찾기로 결정했다.

"큰아가씨, 자리를 잡으세요!"

흉터가 소리를 지르고는, 다른 아홉 명과 협력하여 배를 조종해 나는 듯이 서남 방향으로 달려갔다.

사람을 구하려면 일분일초가 소중했다. 한순간도 지체해서는 안 되었다.

흉터 등 몇 사람은 끊임없이 두 시진을 달렸다. 중도에서 먹고 마시는 것조차도 차례차례로 바꿔 가며 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에 곧 보답도 있었다.

암초 더미에서 백여 해리 떨어진 곳에서 그들은 피와 싸움의 흔적을 발견했다.

"큰아가씨, 보세요!"

흉터는 바다에서 은색의 비단 조각을 건져냈다.

그 조각은 한눈에 육장봉의 옷임을 알 수 있었다.

함께 바다로 나왔던 이들 중 육장봉만이 눈에 띄는 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특별히 이목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반짝였다.

"전속 전진! 빨리 사람을 찾아라."

월령안은 이 조각만으로도 온몸의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얼굴에도 조금이나마 웃음기를 띠었다.

그녀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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