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2화 고래상어를 탄 남자
그녀는 육장봉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또 멈춰서도 안 되었다.
뚜뚜뚜…….
배에서는 또다시 길고 짧으며 낮은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낮은 뱃고동 소리와 함께 큰 배는 거센 풍랑과 암초를 뚫고 앞으로 내달렸다.
탁……!
고래상어는 수면 위로 솟구쳤다가 또다시 바다로 떨어졌다.
놈이 해수면에 떨어지는 순간, 마치 오목하게 꺼져 들어가는 것처럼 주변의 모든 것이 바닷물에 빨려 들어갔다.
월령안을 비롯한 사람들이 탄 큰 배는 빨리 도망친 바람에 겨우 피할 수 있었다.
"큰아가씨, 이제 안전합니다!"
주 선실 내, 뭇사람들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직 월령안만이 어두운 얼굴빛으로 아무 감정도 없이 말했다.
"계속해서 전속으로 앞으로 달린다. 이 해역을 빠져나가기 전까지 속도를 줄여서는 안 된다."
월령안은 무표정하게 명령을 내렸다. 두 눈도 빛을 잃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바로 그때, 종씨가 주 선실로 들이닥쳤다.
"큰아가씨, 부군 나리가……."
"앞으로!"
월령안은 눈알이 붉다 못해 피가 떨어질 것만 같았고, 목은 무서울 정도로 쉬어 있었다.
그녀는 종씨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안 된다는 것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이 배는 고래상어의 일격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배의 사람들을 매장시킬 수 없었다.
"네!"
배 위의 사람들은 모두 멈추지 않았다.
큰 배는 암초에 부딪히면서 한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 앞으로 달리면서 고래상어와 육장봉에게서 빠르게 멀어져 갔다.
* * *
큰 배 뒤에서, 육장봉은 또 한 번 고래상어에 이끌려 바다로 들어갔다.
사람과 바닷물고기가 바다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고래상어는 육장봉을 뿌리치려고 끊임없이 머리와 꼬리를 흔들었다. 대어를 중심으로 사방 백 해리는 모두 거대한 소용돌이였다.
바다 위의 모든 것들이 소용돌이에 의해 심해에 휘말려 들어갔다.
대어의 동작은 더욱 심해졌고 육장봉은 대어의 머리 위에 붙어 있기 위해 거의 젖 먹던 힘까지 다 쓴 상태였다.
그는 두 손으로 대어의 상처를 꽉 움켜잡고 나서야 뿌려 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대어가 미친 듯이 요동침에 따라, 놈의 머리 위 상처는 점점 커지고 피도 그치지 않고 흘러내렸다.
전체 해역은 온통 눈이 시릴 정도의 핏빛이었다.
대어는 머리 위 상처의 통증이 심해졌다. 놈은 본능적으로 더욱더 세게 요동쳤고 그에 따라 상처가 점점 더 심해졌다. 이 일이 반복되자 이 해역은 이미 대어가 날뛰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대어가 끊임없이 앞으로 솟구쳐 나아가면서 앞쪽의 암초도 부서졌다.
만약 월령안이 최대한 빠르게 떠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배는 아마도 대어에 짓이겨져 산산조각이 될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대어는 육장봉을 끌고 수중에서 이리저리 날뛰었다.
육장봉은 그 때문에 너무나 힘이 들었다. 몇 번이고 수압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고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나마 체력이 뛰어났기에 나가떨어지지는 않았다.
다행히 대어도 체력이 제한되어 있었다.
한바탕 날뛰고 나서 점점 더 많은 피를 흘리면서, 놈은 점점 체력이 떨어져 속도든, 요동치는 폭이든 모두 눈에 띄게 약해졌다.
육장봉은 드디어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는 대어의 등에 엎드려 잠깐 쉬었다.
사람과 바닷물고기가 바다에서 때때로 한 번씩 요동쳤다.
육장봉은 마치 대어의 머리 위에 들러붙은 것처럼 안정감 있게 앉아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어가 그의 탈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대어는 육장봉을 뿌리칠 방법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육장봉도 일시적으로 대어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사람과 바닷물고기는 이렇게 대치 상태에 있었다. 천천히…… 대어는 꿈틀거리지도 않고 바다에서 헤엄치면서 가끔 입을 벌려 먹이를 먹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이것이 결전을 앞둔 최후의 평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단 대어가 배부르게 먹고 체력이 회복되면, 그들의 싸움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힘이 다 빠진 그는 포식한 대어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었다.
그는 방법을 대어, 가능한 한 빨리 이 바닷물고기를 죽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틀림없이 그 자신이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위에는 알맞은 무기가 없었다. 체력만으로, 그는 절대 이 바닷물고기의 상대가 안 되었다.
육장봉은 거친 동시에, 자신보다 몇 배는 더 큰 대어를 보며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령안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군."
월령안은 꼭 보물고 같았다. 몸에는 늘 각양각색의 별난 암기가 수두룩했다. 비녀, 팔찌, 반지…… 심지어 허리띠에도 사람을 죽이는 병기가 숨겨져 있었다.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암기가 있을지 몰라도, 그녀가 숨길 수 없는 암기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육장봉은 다만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는 월령안이 아니라 온몸에 암기를 숨기는 습관이 없었다.
지금 그에게는 월령안이 그를 위해 지은 옷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 * *
같은 시각, 큰 배는 이미 그 해역에서 멀리 떠나 있었다.
그들은 육장봉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그 해역을 벗어나서 얼마 안 되어 하늘이 갰다.
눈부신 햇살이 바다를 비추고, 잔잔한 물결이 햇볕에 반짝이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야호……!"
배 안에서 내내 갑갑해 하던 선원들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갑판에서는 선원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식사 시간이오! 밥 먹을 시간이오!"
"싱싱한 바닷고기가 있소. 누가 먹겠소?"
"배에 먹을 게 많은데, 누가 생선을 먹겠소?"
뱃사람들은 이미 방금 전에 있었던 혈전은 모두 잊어버린 듯했다.
그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흥분해 먹을거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뱃사람들은 방금 전의 싸움을 마음에 두지 않고, 그들이 내쳐 버린 육장봉의 생사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육일을 비롯한 친위대는 그럴 수 없었다.
물론 월령안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때문에 배의 상황이 안정되자, 월령안은 바로 구레나룻 종씨와 육장봉을 구출하는 것에 대해 의논했다.
육일 등은 바로 그때 찾아왔다.
육일이 먼저 구조하러 갈 것을 자청했다.
"마님, 소인이 구조하러 가겠습니다."
월령안이 아직 말하기도 전에 종씨가 대놓고 거절했다.
"풋내기 애송이가 덤비기는 어디에 덤벼. 배를 운전할 줄 알아? 잠수를 할 수 있어? 가서 뭐 하려고? 고래상어에게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려고?"
종씨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뻔뻔스럽게 월령안에게 말했다.
"큰아가씨, 저를 보내 주십시오. 알고 있잖습니까. 저는 다른 것은 잘 못해도 해전만은 능합니다. 안 그러면, 그 개자식들이 그곳에 미리 숨어 저를 기다리지도 않고 저를 겨냥해 활을 쏘지도 않았을 겁니다."
"안 돼."
월령안이 거절했다.
"나는 해전에 능하지 못해. 앞으로 있을 향혈해 사람들과의 결전은 자네가 지휘해야 하네."
종씨는 계속해 기회를 쟁취하려 했다.
"큰아가씨, 향혈해 사람들은 바다에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감히 우리와 정면으로 싸울 엄두도 못 냅니다. 그들은 소식을 듣고 반드시 숨었을 겁니다. 이번에는 아마 싸우지 못할 겁니다."
해역이 무척이나 컸다. 그들이 숨으려고 작심한다면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향혈해가 암초 더미에 매복해 두었던 사람들은 우리를 기다리는 게 아니었어. 우리를 만난 건 예상 밖의 일이었어."
"예상 밖이라고요?"
종씨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기필코 의외의 일이었을 거야. 방금 전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네. 우리가 오늘 바다로 나온 것은 임시로 결정된 것이다. 미리 소문이 새어 나갈 수가 없어. 향혈해가 아무리 움직임이 빠르다고 하더라도, 사전에 매복할 수가 없잖아. 그리고……."
월령안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와 대적하기에는 암초 더미에 매복해 있던 사람들이 너무 적었다고 생각되지 않아? 실력도 좀 약하고 말이야. 악천후를 만나지 않았으면 그들은 우리 배 곁에 접근하지도 못했을 거야. 그 정도 전력으로 우리를 노리고 매복해서 무엇을 할 수 있어?"
그들이 운이 나빠 고래상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육장봉에게도 아무 일 없었을 것이다.
"큰아가씨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확실히……."
종씨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들이 매복해 있는 게 우리를 노린 게 아니면, 왜 암초 더미 뒤에 숨어 있었나요?"
"강남 수군이 오기를 기다린 거야."
월령안은 냉정하게 분석했다.
"배 다섯 척의 사람들로 우리를 매복하려면 한참 멀었지만, 강남 수군을 상대하기는 충분하지. 향혈해는 자신 없는 싸움은 하지 않아."
종씨는 두 눈을 빛내며 흥분해 말했다.
"그럼 우리의 행적이 노출되지 않았단 얘기죠. 향혈해는 아직 우리가 이 시간에 문전까지 찾아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단 말이죠?"
"음."
월령안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반드시 이 기회를 잘 포착해 향혈해의 사람들이 미처 손쓸 새 없이 해치워야 했다.
"큰아가씨, 알겠습니다!"
종씨는 가슴팍을 툭툭 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향혈해, 그 배신자의 소굴을 치는 일은 제게 맡기십시오. 제가 반드시 그들을 완전히 전멸시킬 것입니다."
"자네에게 맡기면 나도 마음이 놓이네."
종씨는 그녀 수하 중의 핵심 구성원이었다.
오 년 전, 그녀가 전임 해적 두목을 무너뜨리고 향혈해를 그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데에는 종씨가 큰 힘을 발휘했다.
다만 종씨는 싸움에만 능할 뿐, 속셈이고 수단이고 모든 면에서 부적합했다.
종씨는 천하를 쟁취할 수는 있지만, 두목 자리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는 그녀에게 더욱더 중용과 신임을 얻게 되었다.
종씨는 뼛속부터 호전적이라 싸운다는 소리를 듣자 금세 흥분했다. 하지만 그는 육장봉을 잊지 않았다. 종씨는 목숨을 빚지고 모른 척하는 것을 절대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종씨는 넌지시 한마디 물었다.
"그럼 부군 나리는?"
'큰아가씨는 부군 나리의 생사를 관계치 않으려는 건가?'
"내가 간다."
월령안의 단호한 말투는 절대 거절할 수 없는 강한 기세를 띠었다. 이미 결심을 굳힌 것이 분명했다.
"내가 사람을 데리고 구조하러 갈 것이다."
종씨는 월령안의 성격 그리고 능력을 알기에 더는 설득하지 않았다. 그저 일손을 충분하게 데려가라고 일깨워 주었다.
"큰아가씨, 사람들을 좀 많이 데리고 가세요. 아가씨께서는 제 재간을 알고 있을 겁니다. 향혈해 그놈 새끼를 십 년 더 기른다고 해도 저는 그 자식을 안중에 두지 않을 겁니다."
"마님, 저희도 가겠습니다."
육일 등은 다시 한번 자청했다.
하지만 이번에 월령안은 직접 거절했다.
"당신들이 배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월령안은 말을 끝내자, 육일 등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뒤돌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 사람씩 지명했다.
"흉터. 뇌자(賴子), 석주(石周)……."
월령안은 모두 열 명을 불렀다. 열 명 가운데 흉터가 우두머리였다.
"너희들 열 명, 나를 따라가자."
"좋습니다. 큰아가씨. 며칠 먹을 음식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흉터 등 몇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웃으면서 건들거리는 모습은 건달 기질이 다분해 보였다.
육일 등 몇은 뒤쫓아 나왔다. 그들은 흉터 일행 열 명의 흐트러진 모습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월령안의 말을 떠올리자, 육일 등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배 위에서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따라간다 해도…… 남들이 그들을 위해 노를 저어 주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