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1화 우리가 필요 없을 거 같은데
바다에 뛰어드는 순간, 육장봉은 종씨의 팔을 잡아채 그를 배 밑에서 끌어냈다.
그들 뒤에서 함께 선두에 섰던 작은 배가 바싹 뒤따라와 높이 외쳤다.
"종씨, 부군 나리, 괜찮은가?"
곧 종씨와 육장봉이 수면 위로 솟구쳤다.
"걱정하지 말게! 내가 죽을 리가 없지."
육장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종씨를 끌고 부목이 있는 쪽으로 헤엄쳐 갔다. 곧 두 사람은 부목에 엎드려 호흡을 가다듬었다.
"부군 나리, 진짜 대단하네!"
종씨는 목판 위에 엎드려 숨을 헐떡거렸다. 하지만 눈에서는 두려움을 찾아볼 수가 없고 오직 흥분만 있었다.
"음."
육장봉은 옷이 바닷물에 휩쓸려 붕 떠 있고, 쪽을 졌던 머리도 풀려 무척이나 낭패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파도에 맞아 하마터면 바다에 묻힐 뻔한 사람이 그가 아닌 듯했다.
이 침착한 기운에 종씨는 왠지 모를 압박감을 느꼈다.
"노친네가 참 목숨이 질기군."
그들을 구출하러 온 작은 배는 두 사람이 무사한 것을 보고 길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배에 있던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밧줄을 던져 주었다.
종씨가 그 밧줄을 받으려 하는 순간, 상대방의 배에서 또다시 화살 비가 쏟아져 내렸다. 게다가 표적은 종씨가 틀림없었다.
탁! 탁!
기다란 화살이 끊임없이 물속으로 쏟아졌다. 일부 화살이 종씨의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종씨는 이리저리 피하면서 감히 멈추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배에 오를 수도 없었다.
"부군 나리, 자네가 먼저 올라가게. 내가 뒤를 봐줄게."
종씨는 상대가 자기를 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배를 수리하는 사람들은 상관도 하지 않았다.
오직 그만 겨냥하는 것을 보니 상대가 얼마나 그를 신경 쓰는지 알 수 있었다.
"필요 없네!"
육장봉은 종씨를 와락 밀어내었다. 별로 힘도 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나 종씨는 힘없이 앞으로 몇 자나 미끄러져 나갔다.
종씨는 저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는 반대 방향으로 날아왔다.
'부군 나리는 이게 무슨 괴력인가?'
종씨는 뒤돌아보았다.
육장봉은 파도의 충격을 완전히 무시한 채, 인어처럼 불쑥 바다 위로 솟구쳐 나왔다. 그는 풍랑뿐만 아니라 물에 젖어 무거운 의복의 영향도 전혀 받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군."
종씨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육장봉은 허공에서 휙 돌며 몸에 물방울들을 후두두둑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날아오는 기다란 화살을 밟고 그 힘을 빌려, 화살 비를 무시한 채 바람을 거슬러 상대의 배를 향해 날아갔다.
"이거……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거야?"
종씨는 놀라서 눈망울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는 얼이 나가 밧줄이 눈앞에 왔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멍하니 뭐 하고 있어. 어서 올라오라고."
종씨를 구조하러 온 사람들은 종씨가 바닷물에 떠서 움직이지 않자 밧줄을 회수해서 또 한 번 던졌다.
종씨가 계속 얼이 나간 채로 있을까 두려워, 구조하는 사람은 이번에 종씨의 어깨에 밧줄을 던졌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밧줄은 종씨의 왼쪽 어깨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어깨가 벌겋게 부어올랐다.
"쓰읍!"
종씨는 아파서 소리를 내며 본능적으로 밧줄을 잡은 뒤 고개를 돌려 욕했다.
"이건 재물을 탐내 사람을 죽이려는 거야!"
"어서!"
종씨를 잡아당기는 사람은 그가 원망해도 관계치 않았다. 종씨가 밧줄을 잡자마자 온힘을 다해 작은 배 쪽으로 잡아당겼다.
종씨는 욕만 할 뿐,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상대가 줄을 잡아당기자 그도 필사적으로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종씨는 곧 두 번째 배에 뛰어올랐다.
배에 오르자마자 종씨가 큰 소리로 재촉했다.
"어서. 우리 가서 부군 나리를 돕자고."
"부군 나리에게는 우리가 필요 없을 거 같은데."
종씨를 당기던 사람이 옆 방향을 가리켰다. 종씨는 그 손짓에 따라 바라보았다. 육장봉이 은색 옷을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긴 화살을 들고 방자하게 상대방의 배에 올라타는 것이 보였다.
푸욱!
배 위의 사람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육장봉은 손에 들고 있던 화살을 던졌다. 화살이 흩어져서 날아가더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확하게 꽂히며 한 무리를 쓰러트렸다. 너무나 흉악하고 잔인했다.
"어서, 막아라…… 아니. 당장 죽여라!"
배 위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칼을 들고서 육장봉에게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 선체가 갑자기 요동쳤다. 육장봉이든, 배 위의 사람들이든 모두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니 싸움은커녕 몸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탕…….
육장봉은 뱃머리에 서 있었다. 선체가 세차게 흔들리자 그는 휘청하고 돛대 쪽으로 튕겨 갔다.
그는 돛대를 잡고서 몸을 가누었다. 그리고 곁눈질로 배 밑에 드러난 하얀색을 보았다.
순간 그는 눈앞이 번쩍 뜨였다.
육장봉은 아무 망설임도 없이 발로 차서 단번에 돛대를 부러뜨렸다.
'쫙' 하는 소리와 함께, 육장봉은 돛대의 한쪽 끝을 모퉁이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는 돛대의 힘을 빌려 선미 쪽으로 날아갔다.
"어서……저자를 잡아라!"
배 위의 사람들은 육장봉이 선미 쪽으로 날아가자 자기들의 배를 침몰시키려는 줄 알고 하나같이 경계 태세를 취하고 칼을 든 채 달려들려고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분명 파도가 몰아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배는 갑자기 앞뒤로 휘청거렸다. 마치 널뛰기를 하듯이 끊임없이 요동쳤다.
와르르……. 우르르…….
그들이 칼을 들고 앞으로 돌진하려는 순간, 선체가 갑자기 뒤로 기울어졌다. 그들은 이에 따라 뒤로 넘어졌다.
지금 그들이 선미 쪽으로 달려가려고 하자 선체가 갑자기 앞으로 곤두박질쳤다. 모든 사람들은 주체하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졌다.
갑판이 막혀 있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아마도 진작 바다에 떨어졌을 것이다.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이 선체가 요동침에 따라 몸을 가누지 못하고 우수수 쓰러질 때, 육장봉은 돛대의 도움을 받아 선미 쪽에 뛰어내렸다.
선미에 도착하자, 육장봉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배 두 척 아래에는 커다란 바닷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그 순간, 바닷물은 먹물처럼 새카맸다.
육장봉은 이 바닷물고기의 크기가 얼마만큼 되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다만 거대한 물고기 머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바로 지금이다!'
육장봉은 돛대를 손에 쥐고 대어(大魚)의 머리 위에 뛰어내렸다.
푸욱!
육장봉은 대어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순간, 손에 쥔 돛대를 깊숙이 박아 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재차 힘을 주어 돛대를 더 깊이 박았다.
우푸푸……!
대어는 아픔을 느끼고,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우우우……!
거대한 바닷물고기 몸통이 미친 듯이 요동침에 따라 해면에는 갑자기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마침 소용돌이 중심에 있던, 매복하고 있던 작은 배 두 척은 순간 홀딱 뒤집혔다.
"아아악……!"
배 위 사람들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바다에 끌려 들어가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어이쿠!"
멀지 않은 곳에서 종씨 등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 하마터면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부군 나리야! 우리네 부군 나리라는 말이지?"
"멍하니 그러고 있으면 어째…… 어서 튀어!"
대어가 만들어 낸 소용돌이는 너무나 컸다. 설령 종씨 등이 탄 배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영향을 받아 선체가 미친 듯이 흔들려 언제든지 풍비박산될 위험이 있었다.
"부군 나리……!"
종씨는 이 순간 마땅히 큰 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육장봉이 그를 구하기 위해 저쪽 배에 뛰어오른 것을 떠올리자 망설이게 되었다.
"잘 보게. 저건 고래상어야!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씹어 먹힐 거야."
배 위 다른 사람들은 종씨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관계치 않고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 작은 배가 고래상어에 의해 뒤집히기 전에 큰 배에 오르려고 했다.
"안 돼, 나는 가서 부군 나리를 구할 거야."
종씨는 잠깐 망설이다가 바다에 뛰어들려고 몸을 일으켰다.
바로 이때, 고래상어가 갑자기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육장봉은 돛대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고래상어와 함께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부군 나리……!"
종씨가 크게 소리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눈을 뻔히 뜨고 육장봉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 * *
"윽……."
바다 속에 가라앉는 순간, 거대한 압력이 밀려왔다. 육장봉은 오장육부가 모두 눌린 것 같아 아프기만 했다.
대어가 끊임없이 아래로 가라앉자, 공기는 점점 희박해지고 압력은 점점 커졌다.
육장봉은 전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오관은 눌리어 고통스럽게 뒤틀렸다.
그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마치 정신을 놓은 듯이 돛대를 꼭 쥐고 있던 손도 저도 모르게 풀어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눈을 번쩍 뜨고는 다시 돛대를 꽉 움켜잡았다.
손을 놓으면 안 되었다.
그는 이 바닷물고기를 죽여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물고기가 부상을 입고 난폭해진 상태에서 반드시 그들의 배를 뒤엎을 것이고, 그러면 모든 사람이 죽을 것이다.
꼬르륵……. 꼬르륵…….
육장봉은 코를 꼭 잡고, 돛대를 움켜쥔 채 조금씩 위로 올라가다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나서야 멈췄다.
"휴우……."
해면 위로 솟아오르는 순간, 육장봉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제야 다시 살아난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고래상어에 끌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경험이 생겨 앞당겨 숨을 참음으로써 바닷물의 압박감을 최소화했다.
대어에 이끌려 육장봉은 점점 더 깊이 가라앉았다. 동시에 그의 수중의 돛대도 대어의 상처를 끊임없이 들쑤셨다.
대어는 아픈 나머지, 바다 밑에서 미친 듯이 꿈틀거리고 여기저기 부딪치며 육장봉을 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육장봉을 뿌리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돛대가 점점 더 깊이 파고들게 했다.
우우우……!
대어는 아픔을 참을 수가 없어 난폭하게 날뛰었다. 그놈은 꼬리를 흔들더니 갑자기 바다 위로 솟구쳐 올랐다.
대어는 아주 흉포했다. 놈이 솟구치는 순간,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집채만 한 파도가 하늘로 솟구쳤다.
대어가 해수면 위로 솟구치는 순간, 놈의 머리 위에는 육장봉이 서 있었다.
육장봉은 은빛 옷을 입고서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손에 돛대를 잡고서 대어의 머리 위에 서 있었다. 이는 마치 제왕이 강림하여 자신의 해역을 순시하는 것 같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보이는 것들일 뿐이었다.
사실 거대한 충격에 육장봉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았고, 바다 위로 솟구쳐 나오는 찰나, 피를 토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돛대를 잡고서 이 바닷물고기를 죽이지 못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을 태세였다.
"부군 나리다!"
그 순간, 종씨 등은 이미 큰 배에 올랐다. 그는 마침 주 선실로 가서 월령안에게 바깥 상황을 보고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이미 알고 있었다.
뒤쪽에 거대한 고래상어가 있고, 육장봉이 한창 고래상어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월령안은 눈을 감아 눈물을 감추며 냉혹하게 명령했다.
"키를 잡아라. 전력 가속! 앞쪽 암초를 격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