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858)화 (858/1,004)

858화 바다에서는 늘 이럽니다

월령안이 웃었다.

"무지해서 귀엽죠. 맞는 말씀이에요."

월령안은 육장봉을 난처하게 하지 않고 그의 품 안에 웅크린 채 말을 이어 갔다.

"그때 저는 운이 나빴어요. 그날 밤에 폭풍우를 만났죠. 당시 배는 지금처럼 크지도 않고 이렇게 견고하지도 않았어요. 배는 바다에서 폭풍을 타고 이리저리 떠다니는 부평초 같았고 언제든 뒤집힐 수 있었어요.

저는 너무 두려웠지만 감히 말할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 두려운 마음을 드러내지도 못했어요.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싱글벙글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늘 겪는 상황인 듯싶었어요. 그들에게 겁먹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저는 줄곧 선실에 숨어서 나가지 않았어요.

그다음, 저는 한 소년을 보았어요. 저보다 더 어린 소년이었어요. 그는 제가 낮에 서 있던 위치에 서 있었어요. 이때 폭풍이 덮치더니 그 소년은…… 사라졌어요."

월령안은 손을 내밀어 허공에서 손짓해 보였다. 작은 동작이지만 그때 당시 그녀가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저는 깜짝 놀랐어요. 저는 나가서 그를 찾고, 구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일어서자마자 영감님이 저를 꼭 붙잡았어요. 그는 바다에서 사람 목숨은 개미 목숨과 같다고 했어요. 사람이 개미 목숨에 신경 쓰냐고 물었어요."

월령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러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저는 그때 멍해졌어요. 잠깐 생각하고 도로 앉았어요. 다음 날 아침 선실에서 나와 보니 배에 있던 사람들이 어젯밤 사라진 소년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희희낙락거리며 그 소년이 어떤 물고기에게 먹혔을지 내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웃으면서 오늘 잡은 물고기가 마침 그 소년을 먹은 물고기가 아닐지 의논했어요……. 전 그때 저의 반응을 기억하고 있어요.

저는 그곳에 꼼짝하지 않고 서서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바로 그 순간, 저는 영감님께서 바다에서 사람 목숨은 개미 목숨과 같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어요."

월령안의 목소리는 쓸쓸했다. 슬픔이나 그리움 같은 것은 없이 마치도 방관자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육장봉은 그녀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다 지나갔소."

"저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요."

월령안은 눈을 감았다.

"그런 일은 바다에서 흔한 일이에요. 바다 환경이 열악해 바다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고도의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수시로 바다의 악천후와 싸울 준비를 해야 해요. 생사는 찰나의 일이에요."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 일부러 느긋하게 농을 건넸다.

"어때요? 무섭지 않아요?"

그녀는 육장봉이 대답하기도 전에 또 말했다.

"사실 바다에서 가장 무서운 건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아니에요.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사람이에요. 그것도 적이 아닌, 자기편이에요."

월령안의 목소리가 점차 차가워졌다.

"바다에서 당신은 영원히 뜻밖의 이변과 내일 중 어느 것이 먼저 닥칠지 몰라요. 그래서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중심적이에요. 그들은 기쁨은 기쁨이고 혐오는 혐오예요…… 그들은 자신의 천성을 억누르지 않기에 선과 악이 무한히 확대되죠. 바다에서는 군주도, 조정도 없어요. 해적으로 전락한 사람 대부분은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들은 글을 모르고, 예의와 염치를 모르기에 율법과 도덕은 그들을 단속할 수 없어요. 그들은 뼛속부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을 숭배하죠.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그들은 절대 이치를 말하지 않아요.

당신이 저에게 말했었죠. 호랑이를 키워 우환거리를 만들지 말라고. 제가 향혈해를 해결한다 해도, 두 번째, 세 번째 향혈해가 나올 거라고요…… 사실상 향혈해는 첫 번째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거예요."

월령안은 여기까지 말하고 자조적으로 피식 웃었다.

"인간은 타고나기를 선한 것인지 저는 잘 몰라요. 하지만 인간 마음속에 있는 악의와 탐욕, 권세에 대한 갈망은 일단 고삐가 풀리면 더는 억제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해 향혈해를 지지해 윗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전임 해적 수장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는 제가 나이가 어려 월씨 가문을 장악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월씨 가문에서 벗어나려고 했어요. 심지어 역으로 월씨 가문을 삼키고 대체해서 바다의 새로운 패자가 되려고 했죠.

그래서 저는 향혈해를 지지해 해적들의 두목을 바꿨어요. 지금은 향혈해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졌어요. 저는 전임 수장을 처리했던 것처럼 향혈해를 제거하고 새로운 사람을 올려놓아야 해요.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팽창과 통제 불능이 될 때까지를 기다리죠. 그러면 저는 또 한 번 그자를 처리하고 새로운 사람을 올려놓아야 해요……. 육장봉, 이건 혹시 저주가 아닐까요? 윤회를 돌며 되풀이되는 영겁의 저주처럼 끝이 없는 게 아닌가요."

월령안은 육장봉과 이런 말을 할 때. 줄곧 말투가 경쾌하고 가끔 웃기도 했다. 그러나 육장봉은 그녀의 웃음소리에서 애달픔을 느꼈다.

바다에서 하나하나의 향혈해는 어느 정도에서 또 다른 월씨 가문의 축소판이었다.

그러나 육장봉이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전에 선원이 퉁퉁 달려오더니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큰아가씨, 하늘을 보니 비가 올 것 같아요. 아가씨와 사위는 먼저 선실로 돌아가 휴식하는 건 어떠세요?"

그때 해는 여전히 하늘 높이 걸려 있고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둥둥 떠 있었다. 날씨가 변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요. 지금 돌아갈게요."

월령안은 한 손으로 갑판을 짚고 일어섰다. 그녀는 일어서서 잊지 않고 손을 내밀어 육장봉을 끌어당겼다.

"가요. 배에서 우리는 저들의 말을 들어야 해요."

육장봉은 월령안의 손을 잡았지만 그녀가 힘을 쓰지 못하게 했다. 월령안처럼 한 손으로 갑판을 짚고 힘을 빌려 일어섰다. 그러고는 손을 뒤로 하여 월령안의 손을 잡았다.

"오 년 전에는 염 황숙께서 당신과 함께 와서 정리하고, 오 년이 지난 오늘에는 내가 당신과 함께 있지 않소. 그러니까 이것은 윤회도, 저주도 아니오."

월령안은 잠깐 멍하게 있다가 그제야 육장봉이 자신의 마음을 풀어 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당신 말이 맞아요."

월령안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환한 모습이 어두운 기운은 전혀 없었다.

"오 년 전과 오 년 뒤는 다르죠."

오 년 전에 그녀는 당황하며 갈팡질팡했다. 마치 파도에 몸을 맡긴 배처럼 언제 뒤집힐지 몰랐다. 그러나 오 년이 지난 오늘,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필승의 결의를 다지며 왔다.

비록 그녀는 아직 윤회의 저주를 타파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난번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매번 발전하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바다의 날씨는 급변했다. 월령안과 육장봉이 선실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해가 구름 속으로 숨어 버렸고 해면은 온통 검은색을 띠었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려는 듯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얼마 안 되어 폭우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육일 등은 처음으로 바다에 나왔기에 이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에도 날씨가 화창했는데, 비가 온다고?"

게다가 빗줄기가 이렇게 크다니.

"바다에서는 늘 이럽니다. 몇 번 더 보면 익숙해질 겁니다."

선원이 지나가는 말투로 한마디 당부했다.

"날씨를 보니 바람이 불 겁니다. 당신들은 선실에 숨어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바다에 떨어지면 아무도 구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선원은 말을 마치자 급히 선실로 뛰어갔다. 육일 그들이 들었는지 말았는지 전혀 개의치 않는 게 분명했다.

"비는 세게 오지만, 설마 사람이 바다에 떨어질 정도는 아니겠지?"

아무 경험이 없는 육이, 육사 등은 뱃사람들이 급급히 선실로 들어가는 데도 조급해하지 않고 여전히 원래의 속도를 유지했다. 그들은 걸음을 서두르는 다른 사람들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우리……."

육일이 육이와 육사 등에게 선실로 빨리 들어가라고 재촉하려는 순간,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덮쳤다. 바닷물은 마치 먹물처럼 갑판에 덮쳐들었다. 배는 제멋대로 기울어지면서 흔들렸다.

육일 등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바닷물에 흠뻑 젖었다. 그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육사가 파도에 휩쓸려 갔다.

"살려…… 주세요……!"

육사는 본능적으로 외치면서 헛손질했다. 그는 무엇이라도 움켜쥐고 몸을 가누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파도에 실려 날아갔다.

"육사……!"

육일은 크게 소리치며 손을 뻗어 사람을 끌어당기려 했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살려, 살려 주세요!"

파도에 휩쓸려 바다로 떨어지려는 찰나, 육사는 다행히도 배 언저리를 잡고 배에 매달려 바다에 떨어지지 않았다.

"어서, 사람을 구하자."

육일은 달려가서 사람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한 걸음을 내디디자마자 그만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큰형님, 조심하세요."

육이는 한 손으로는 난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육일을 잡았다.

육일은 금방 진정되자 다급하게 말했다.

"어서 가서 육사를 구해야 해."

우르릉…….

소리와 함께 또 한 차례 파도가 덮쳤다. 배는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바닷물이 위로부터 쏟아져 내리면서 시선을 흐렸다.

"아이 퉤……!"

육이는 비릿하고 짭짤한 바닷물을 토해내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안 돼요. 우린 건너갈 수가 없어요."

"뭐라고?"

바다에서는 비바람이 거세고 파도 소리가 요란했다. 팔 하나를 사이 두고도 육일은 육이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육이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외쳤지만 여전히 허사였다. 육일은 들을 수가 없었다.

파도가 조금 잦아들자 육일은 육이의 손을 뿌리치고 가서 육사를 끌어당기려 했다.

"큰형님…… 건너가지 못한다고요."

육오와 육륙이 육일의 동작을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들 모두 시도해 보았지만 배가 심하게 흔들려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지금 가서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요……!"

파도에 실려 나가 배에 매달려 있는 육사는 마치 바람 앞의 등불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그의 구조 요청 소리는 모두 파도에 묻히고 말았다.

"그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해!"

육일은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리 해도 방법이 없었다. 그제야 그는 뱃사람들에게 구원을 청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육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놓고 비틀거리며 선실로 달려갔다.

"사람을 구해 주세요! 우리 사람이 파도에 휩쓸려 가 배에 매달려 있어요. 도움이 필요해요."

"당신들은 왜 아직 밖에 있어요?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나요?"

뱃사람들은 육오의 말을 듣고는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이, 도리어 매섭게 한마디 질책했다. 방금 전의 열정과 우애는 사라지고 없었다.

"저희의 발걸음이 늦었습니다. 좀 방법을 대서 빨리 사람을 구해 주십시오! 그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요."

육오도 조급했던 터라 그들이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자 말투가 거칠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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