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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56)화 (856/1,004)

856화 먼저 손을 쓰는 자가 유리한 법

육장봉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조계안이 처할 곤경을 무시했다. 그리고 말머리를 돌려 자신의 관심사를 물었다.

"그들이 산 식량은 아직 강남성 안에 계속 있는 것이오?"

"어떻게 아직 강남성에 있을 수 있나요."

월령안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남에서 백 년 동안 발붙이면서 쓰러지지 않았어요. 그런 호족들이 바보인 줄 아세요? 여 총독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일을 그들이 생각하지 못할 거 같나요? 그 사람들은 이미 퇴로를 생각해 놓고 있어요. 설령 향혈해가 실패해도 그들은 아무 손해도 보지 않고 온전하게 몸을 뺄 수가 있어요."

"그 식량들이…… 바다에 있소?"

육장봉은 다시 한번 문제의 핵심을 예리하게 찔렀다.

"네. 은밀한 작은 섬에 있어요. 그 섬은…… 향혈해와 강남 호족들의 다년간 경영을 거쳐 강녕부 못지 않아요. 만약 향혈해가 패한다면 진씨, 온씨, 노씨 세 가문은 당장 섬으로 물러갈 수도 있어요. 심지어 여 총독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 세 가문 중 젊은 자제의 태반을 미리 섬에 보내 숨겨 놓기도 했어요."

월령안은 육장봉의 몸에서 내려 뒤쪽에 있는 암격(暗格)에 가더니 지도 한 장을 꺼내어 육장봉 앞에 놓았다.

그녀는 희고 매끈한 손으로 가볍게 붉은색으로 표시한 지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이 해역에 있어요. 강남에서 멀지 않아요. 남해(南海)로 가기도 편리하고요. 향혈해가 만약 주나라를 성공적으로 갈라놓으면 주나라와 강을 사이 두고 다스릴 수 있으니 자연히 모든 것이 잘될 것이에요.

만약 성사하지 못하면, 이 세 가문의 후대들은 범씨 가문의 통로를 빌려 남해에서 상륙해 성을 바꾸고 영남(嶺南)으로 들어갈 것이에요. 영남은 원래 유배지다 보니 그곳에는 사람들이 복잡할 테니까요. 이 세 가족의 후대들은 돈이 있고 양식이 있으니 영남에서 십 년 내지 이십 년을 칩거하다가, 조정에서 이 일을 다 잊게 될 때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테죠."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 비꼬았다.

"이 세 가문도 어쩌면 저희 월씨 가문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일찌감치 퇴로를 마련해 둔 것일 거예요."

육장봉은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소리 없이 위로했다. 그러고는 붉은색으로 표시한 해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해역은…… 바다에서 유명한 풍도해(酆都海)가 아니오?"

"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수군의 배가 들어갈 수 없잖소."

육장봉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월령안을 바라보더니 다시 긴장을 풀었다.

"당신들은 이 해역에 출입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오?"

"있어요."

월령안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능글능글 웃었다.

"하지만 제가 왜…… 이유 없이 그걸 조정에 알리겠어요?"

육장봉은 그녀가 상인이라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

"이유 없이 조정에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나한테는 그냥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거요?"

육장봉은 월령안이 사용한 단어의 뜻을 예리하게 알아챘다. 그는 두 손을 탁상 위에 얹고 월령안에게 몸을 가까이하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당신, 지금 미인계를 쓰고 있나요?"

월령안은 일부러 놀란 척하며 몇 걸음씩이나 뒤로 물러서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폐하를 위해 이렇게 큰 희생을 하다니요? 이러시면 폐하에 대한 당신의 감정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만!"

월령안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육장봉 스스로가 먼저 버티지 못했다.

"당신, 지금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요?"

"사실이 아닌가요?"

월령안은 눈을 깜빡이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폐하를 위해 저에게서 정보를 알아내려는 게 아닌가요? 화본(话本 - 옛날의 생활상이나 역사적인 설화를 엮은 이야기책)에서는 다 그러더라고요.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상업계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자신을 희생하고 미인계로 유용한 정보를 알아낸 다음, 도망치는 거예요. 그래야 가짜 희생이 진짜 희생이 되지 않죠."

"당신이 보는 화본들은 뭐 그리 형편없는 거요?"

육장봉은 머릿속이 온통 뒤엉켜서 계속 물을 수가 없었다.

더 물었다가는 황제를 위해 희생하다 못해 월령안에게 미인계를 쓴 사람이 될 판이었다.

그를 괴롭히려고 했던 월령안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월씨 가문 책 가게의 저자가 쓴 거예요. 요즘 저희는 천기각의 기서인과 협력하면서 화본의 유형도 다양해지고, 줄거리도 많이 굴곡지게 되었어요. 병사를 거느리고 전쟁하는 화본도 있거든요? 제가 몇 권 봤는데 괜찮았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한 것을 알 수 있어요. 당신을 무척 멋있게 썼더라고요. 볼래요?"

풍도 해역에 들어가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자 월령안은 다시금 대범하게 바뀌어 자신이 찾아낸 좋은 물건을 육장봉과 기쁘게 함께 나누려 했다.

육장봉이 대답했다.

"당신이 보기에 내가 화본을 좋아할 사람 같아 보이오?"

특히 화본의 주인공이 바로 그 자신인데 말이다.

월령안의 마음속에서 그가 그토록 자기애가 강하다는 말인가.

"당신의 이야기를 쓴 화본은 엄청 잘 팔려요. 규중처녀뿐만 아니라, 일부 선비들도 좋아해요. 그중 가장 잘 팔리는 건, 적국의 공주와 황후를 모두 맞아들이고 밤마다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거예요. 병사 한 명도 낭비하지 않고 적국을 굴복시키는 그 화본은요? 정말 보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웃으며 농을 했다.

"서적 사업 관리인이 하는 말에 따르면 이 화본은 워낙 인기가 있어 연극단에서 각색해 각지에서 공연할 거라고 했어요."

육장봉은 들으면 들을수록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인단 말이오…… 그런 물건들이 나타나게 해서는 안 되지. 그 관리인은 무엇을 하는 자요?"

육장봉은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났다. 특히 월령안에게 화가 났다.

"당신이 몰랐다면 모를까. 보고도 제지하지 않고 그런 화본을 발행까지 하는 것이오?"

병사를 거느리고 싸우는 사람이 어떻게 적국 공주, 황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게다가 밤마다 사치하고 음탕한 생활을 한다니. 싸움터에서 빨리 죽지 못해 안달이 난 것도 아니고.

선비들은 머릿속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사람들이 과거에 합격한다면 그야말로 백성을 해치는 일이 아닌가.

"화본일 뿐이에요. 보는 사람에게는 그냥 구경거리죠. 화본에서도 당신이라고 콕 집어 말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어렴풋이 당신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예요. 그리고 그 때문에 화본을 쓴 사람을 탓할 수는 없어요.

근 백 년 이래…… 우리 주나라에서 용감하고 싸움에 능하며 명성이 자자해 백성들이 익숙한 대장군은 당신 하나밖에 없잖아요. 그들이 화본을 쓸 때 당신의 모습을 원형으로 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에요."

월령안은 육장봉 앞에 다가가 웃으면서 가볍게 달랬다.

단지 화본일 뿐이었다. 그녀는 이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보다 더 과장된 화본도 본 적이 있었다. 다만 원형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육장봉의 얼굴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유언비어는 이렇게 시작되는 거요."

월령안은 깜짝 놀라며 웃음을 거두고 정색하며 말했다.

"당신, 화났어요?"

육장봉은 고개를 저었지만, 눈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월령안 그제야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연신 말했다.

"불쾌해하지 마세요. 제가 이미 판 화본을 다시 찾아오라고 할게요. 화본은 연극과 달라요. 화본은 글을 아는 사람만이 살 수 있어요. 팔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본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다시 서적 사업 관리인에게 더는 팔지 말라고 명령할게요. 당신을 바탕으로 쓴 화본은 아예 싹부터 없애라고 할게요."

"당신이 팔지 않으면 다른 책 가게는? 이런 물건은…… 금할 수가 없소. 누군가 돈을 내고 사려 하고 이익이 있다면 어느 상인이든 하려 할 거요."

육장봉은 월령안이 놀란 것을 보고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 내가 화난 건 화본 때문이 아니오. 다른 것을 떠올리고 기분이 나빴던 것이오."

"무슨 일이에요? 저와 이야기할 수 있나요?"

월령안은 육장봉이 평소대로 회복한 것을 보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그녀는 한동안 육장봉이 화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방금 전 어두운 표정의 육장봉은 너무나 무서워 정말로 놀랄 정도였다.

"내 어머니에 관한 것이오."

육장봉은 방금 월령안을 놀라게 한 것이 미안했다. 아무튼 말 못 할 일도 아니고, 그는 변경을 떠날 때, 송취 골목에서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누군가 현음 장공주의 명성을 더럽히려는 건가요? 그분이 주나라로 돌아와서 권력이 너무 세질까 두려워서요?"

육장봉이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월령안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알아챘다.

아니면 아무 일도 없는데 왜 관리가 갑자기 육장봉의 출신에 대해 떠들겠는가.

생각건대, 요즘에 관련 소문을 많이 듣다 보니 아마 질투 때문에 생각 없이 불쑥 내뱉었을 것이다.

"음."

어느샌가 월령안이 육장봉의 무릎 위에 다시 앉아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걱정스레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저었다.

"폐하더러 골치 머리를 앓으라고 하오. 황실 사람들의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지."

월령안은 의아해서 바라보았다.

'이분이 친아들이 맞나?'

"그분은 당신의 어머니시잖아요."

현음 장공주의 명성이 더러워지면 육장봉에게도 좋은 점이 없었다.

"그분은 주나라의 공주이시오."

월령안은 그의 어머니를 본 적이 없기에 그분의 됨됨이를 알 수 없었다.

현음 장공주의 마음속에서 주나라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녀는 주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그의 출생마저도 이용할 수 있었다.

"당신…… 정말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이런 일은 제가 손쉽게 해결할 수 있어요. 화본 작가를 시켜서 현음 장공주를 찬양하는 화본을 몇 개 쓰게 한 다음, 다시 연극으로 만들어 한발 앞서 백성들의 마음속에……."

"필요 없소."

육장봉은 월령안의 말을 끊어 버리고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혔다. 그의 얼굴 전체가 어둠 속에 묻혔다.

"우리는 누구도 그분이 돌아온 뒤에 평범하게 살아갈 거라고 장담할 수 없소. 집에만 있고 외출하지 않으며 보통 공주처럼 사는 것 말이오. 만에 하나……."

육장봉은 잠시 말을 멈춘 뒤 자조적으로 말했다.

"만에 하나, 그분이 정말 사대부들이 걱정하는 대로 주나라에 돌아와서도 배후에 물러서려 하지 않고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말이오.

우리가 그분을 위해 조성한 분위기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녀를 위해 세운 명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역으로 작용하면 우리가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하오."

만에 하나가 아니고, 그의 어머니는 절대로 배후에 물러나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조정 대신들의 권세가 너무 큰 대신, 황제가 연약하고 인자하며, 대외적으로 주나라는 아직 모든 나라를 정복하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가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가 있겠는가.

월령안은 잠시 할 말을 잃고 탄식하고 말았다.

"황실은 정말 무섭군요. 혈육의 정도 용납할 수 없다니."

"그래서 폐하의 정을 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대단한 거요."

육장봉은 월령안을 끌어안고 눈을 감아 모든 감정을 숨겼다.

황제는 정을 중히 여기고, 그의 어머니는 뛰어난 수단으로 돌아온 뒤에 신속하게 굴기해 조정의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때문에 그의 어머니에 관한 일은 황제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뜻대로 각자 알아서 지내고 서로 아무 상관없는 모자처럼 구는 것이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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