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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55)화 (855/1,004)

855화 혼군 월령안

"음, 많이 아프오."

육장봉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약을 발라 드릴까요?"

월령안은 말을 하면서 육장봉을 놓아 주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손을 뒤로 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

"필요 없소. 입맞춤을 해 주면 안 아플 것 같소."

"입맞춤이 통증도 없애 주나요? 어느 신의께서 그리 말씀하시던가요?"

월령안의 웃음소리는 마치 은방울을 굴리는 것 같았다. 맑고도 깨끗해 사람을 들뜨게 하지만 정작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침으로 통증을 멎게 할 수 있다고 하오. 다만 입맞춤을 몇 번은 해야 한다고 하네. 육 신의가 말한 것이오."

육장봉은 고개를 숙이고 먼저 월령안의 미간에 입맞춤을 했다.

"아프오?"

"아프지 않아요."

그녀의 얼굴에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플 수가 없었다.

육장봉은 엄숙하게 말했다.

"보시오. 진통에 효과가 있잖소."

월령안은 다시 실소를 터뜨렸다.

"이렇게 해도 되나요?"

"아프오……."

육장봉은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섞여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바라보며 통증을 멎게 해 달라고 말없이 재촉했다.

월령안은 육장봉이 정색하고 바라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곧바로 타협하고 발돋움해 그의 입가에 입맞춤을 했다.

"좋아요. 좋아요. 입맞춤해 드릴게요. 그러면 아프지 않을 거예요."

"아직도 조금 아프오. 한 번 더"

육장봉은 참지 못하고 계속 요구했다.

월령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좋아요. 그럼 한 번만 더.'

"사실, 아직도 살짝살짝 아프오."

육장봉은 월령안의 '정말 어쩔 수 없군요' 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놀렸다.

"육장봉……."

"아프오."

"세 살 어린애인가요?"

"……."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그렇게 장난을 쳤다.

결국 월령안이 육장봉의 입맞춤에 그만 온몸의 힘이 빠져 그의 몸에 쓰러지고 나서야, 육장봉이 그녀를 품에 껴안고 의자에 앉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당신은 참…… 오자마자 저를 못살게 굴잖아요."

육장봉이 그녀의 의자를 차지하는 바람에, 그녀는 그의 품에 앉았다.

"우리 언제…… 결혼 가능할까?"

육장봉은 월령안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었다. 그는 월령안을 안고서 숨을 제대로 고르지 못하면서 목소리는 더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육장봉의 신체 변화를 감지한 월령안은 잠시 굳어졌다가 넌지시 물었다.

"이제 저를 풀어 줄래요?"

"안 되오."

육장봉은 그녀를 풀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욱 꽉 껴안았다.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니, 합방할 수도 없고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입맞춤과 포옹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왜 놓아주겠는가.

"이는 마치 독주로 갈증을 해소하는 것과 같아요."

월령안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녀는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곳에 앉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좀……. 움직이지 마시오!"

육장봉은 더욱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양손으로 월령안의 허리를 꽉 잡은 채 이를 갈며 말했다.

"내 자제력에 도전하지 마시오. 당신한테 내 자제력은 무용지물이라는 말이오."

"당신도 아시잖아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그녀는 단지 육장봉에게서 좀 떨어졌으면 싶었다. 그런데 괜히 그를 더욱 흥분시킬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남녀 간의 일에 대해 조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책으로 배운 것이라 실제 경험이 없는 그녀로서 결정적인 순간에 오로지 본능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음, 당신은 일부러 그런 거요."

일부러 그가 추태를 보이게 하는 것만 같았다.

"좋아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세요."

똑똑하게 변명할 수도 없었다.

월령안은 몸을 나른하게 한 뒤,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육장봉을 연탑으로 생각하고 반쯤 누웠다. 기분이 좋은 모습이었다.

어차피 결혼식을 올리지 않으면 육장봉은 그녀를 어떻게 할 리가 없었다.

육장봉은 속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는 서둘러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고생길이 훤히 열릴 것만 같았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안고서 한참을 숨을 고르고서야 타오르는 열기를 차츰 삭힐 수 있었다.

육장봉은 주의력을 딴 곳으로 옮기기 위해 먼저 공적인 사무를 말했다.

"여서가…… 반격했소."

"저도 연락을 받았어요. 그자가 남도의 가(柯) 두목과 협의를 맺었다고 하네요. 오, 당신은 아직 모를 거예요. 가 두목은 범씨 가문의 사람이고, 남도는 범씨 가문의 세력에 속해요. 여 총독은 지금 범씨 가문과 동맹을 맺은 거예요."

월령안은 육장봉의 품속에 눌러앉아 그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간도, 쓸개도 없는 혼군처럼 바른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육장봉은 왠지 모르게 기뻤다.

'이거 월령안이 해야 할 일을 내버려 둔 채, 눈에 나밖에 없게 하는 재간이 생긴 건가?'

"흠흠……!"

육장봉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서 멀리 날아갔던 생각을 잡아 두었다.

"대책이 있는 게 아니오?"

월령안이 어떤 성격인지 육장봉은 잘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군왕은 조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같은 일이 월령안에게서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책임감이 있었다. 만약 그녀에게 대책이 없으면 이렇게 느긋하게 있지 않을 것이다.

"원래는 없었어요. 하지만 강남 양식 창고의 비밀을 발견하자 생겼어요."

월령안은 다리를 흔들며 육장봉의 손을 잡고서 이리저리 맞춰 보지 않으면, 손바닥을 마주하거나 손깍지를 하면서 열심히 장난했다. 그녀는 여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육장봉은 얼굴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예리하게 물었다.

"그자들이 강남의 양식을 누구에게 팔았소?"

"알아맞혀 보세요."

월령안은 육장봉이 이렇게 빨리 반응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대번에 정곡을 찌르자 기분이 더욱 좋았다.

역시 월령안이 반할 만한 남자였다. 오자마자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다.

조계안 그 바보는 지금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 어리석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보고 그녀가 일부러 자신을 떠본다는 것을 알고 잠깐 생각하고 말했다.

"구매자는 강남 지방 호족들이오. 맞소?"

월령안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짐작했어요?"

구매자의 신분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정도는 월령안도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육장봉이 단번에 구매자의 신분을 알아맞히는 것은 너무나 예리한 추리였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놀람이 가득한 얼굴과 광채를 띤 두 눈, 그리고 눈 속에 오직 자신 하나만을 담은 모습에 허영심이 크게 만족하였다.

월령안이 이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그는 승리하고 조정으로 돌아오던 날, 백관의 영접을 받고 백성들의 환호를 받았을 때보다 더 큰 만족감을 느꼈다.

사내대장부의 허영심이 한껏 만족된 육장봉은 곧 표현 욕심마저 생겨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간단하잖소. 여서는 사심과 야심이 크지만 나라를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오. 게다가 스스로 나름 괜찮다고 여기는 잔머리가 있지.

그가 강남 관리들이 양식을 파는 것을 묵인했다면 구매자는 틀림없이 안전할 것이오. 심지어 양식이 줄곧 강남에 있을 가능성도 크오. 여서는 자기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언제든 식량을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이처럼 믿을 데가 있으니 강남의 관리들이 양식을 다 팔게 내버려 둔 것이 아니겠소."

당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주변의 측근이 아니라, 도리어 당신의 적일 수도 있다.

육장봉은 어쨌든 여서를 견제했던 사람으로서 여 총독에 대해 다소 알고 있었다. 게다가 월령안이 여서의 일련의 반격을 알고서도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는 짐작할 수 있었다.

여서는 틀림없이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고 그것을 월령안에게 약점으로 잡힌 것이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해요!"

월령안은 반짝반짝 별빛같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육장봉의 냉정함과 예리함에 탄복했다.

그녀가 예상할 수 있고 심지어 조계안이 추측할 수 있다고 해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필경 그녀와 조계안은 강남의 일에 대해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알아야 할 만큼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아니었다.

육장봉의 세력은 국경 지대에 있어 강남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알려 준 몇 안 되는 단서로 육장봉은 강남의 상황을 엇비슷하게 알아맞혔다. 이 머리와 안목에 대해 남들은 탄복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그녀는 탄복했다.

육장봉의 이 통찰력으로, 전쟁터에 가면 정확한 예측을 내릴 수 있고, 상업계에 가면 거침없이 잘 풀릴 터였다.

역시 육장봉과 같은 사람은 어느 업종에서든, 무슨 일을 하든 모두 큰일을 해낼 수가 있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칭찬을 받고 살짝 민망했다.

'그리 대단한 편은 아니잖는가? 이건 기본적인 판단이 아닌가?'

하지만 월령안의 칭찬은 그를 기쁘게 했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칭찬을 계속 받으려고 마음속의 일렁이는 파문을 가라앉히고 계속해 강남의 정세에 대해 말했다.

"양식을 산 강남 호족들은 모두 향혈해와 가깝게 왕래하는 게 아니오?"

월령안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강남 진씨 가문, 온(溫)씨 가문, 노(盧)씨 가문. 이 세 가문이 향혈해와의 왕래가 가장 밀접해요. 향혈해는 진씨 가문에 데릴사위가 된 셈이에요. 아직 대외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진씨 가문 내에서는 다 알고 있어요. 때문에 진씨 가문이 향혈해를 가장 많이 지원하죠."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양측의 동맹은 혼약으로 구현되었다.

인척 관계가 되면 속으로는 어떠하든지 간에 남의 눈에는 한 가족과 같았다. 자산을 몰수당하고 멸족을 당하는 것과 다 함께였다.

"그래서 조계안더러 강남의 양식 창고를 조사하라고 한 거였구먼. 여서가 발견하기 전에 먼저 강남 관리들이 양식을 팔았다는 증거만 찾아내면 그가 아무리 수단이 있어도 관리 감독을 잘못했다는 죄명을 벗기 어렵지."

만약 다른 일에서 관리 감독을 잘못했다면 황제는 참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식에 한해서는, 나라의 근본에 관련되는 일이기에 황제의 성격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조계안이 여 총독의 결점을 잡기가 그리 쉽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구경거리를 보려는 마음을 전혀 숨기지 않았고, 얼굴에는 고소해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여 총독은 음험하고 의심이 많으며 강남에 대해서도 충분하게 장악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는 지금 여러 일들에 발목을 잡히고 번거로움이 쌓여서, 양식 창고 일을 처리할 틈이 없는 거예요.

이제 수군 군영이 불타고, 성안에서 흑사병이 도는 일을 해결하고 나서 정신을 차리면 그는 곧 조계안의 움직임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기다려 보세요. 조계안은 여 총독에게서 큰 손해를 볼 거예요."

그녀는 조계안이 언짢으면 자신이 통쾌하다는 것을 대범하게 인정했다.

육장봉은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월령안은 그에게 조계안을 돕지 말라고 암시하는 것인가?

아니 이것은 암시가 아니라 대놓고 말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식량의 소재를 찾는 것이 조계안이 손해를 보는가, 안 보는가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반면 조계안이 여서의 손에 크게 당할수록 여서의 처지는 더욱 비참해질 것이다.

황제는 남동생 바보로서 조계안에게 골탕을 먹인 사람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설령 여서가 아무리 중용을 받아도 소용없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황제가 여서를 호되게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가 조계안을 도우면 안 되었다.

조계안은 스스로 살길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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