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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53)화 (853/1,004)

853화 음모

"이 일에 대해서는 짐과 염 황숙만 알고 월령안은 몰라. 월령안에게 마음이 있었으면 진작 짐에게 보고했어야 한다."

황제는 마음이 좀은 편해졌지만, 말은 여전히 도도하게 했다.

"염 황숙께서 말씀하셨잖습니까. 령안은 분부에 따른 것뿐이라고요. 염 황숙께서 말하지 못하게 했으니 폐하께서 무슨 불만이 있으시면 염 황숙을 찾아가십시오."

육장봉은 조금도 사정없이, 모든 일을 염 황숙에게 떠넘겼다.

어차피 염 황숙이 안다고 해도 화내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모든 책임을 떠안을 것이었다.

황제는 말문이 막혔다.

'짐의 황숙이 어떻게 너희들 대신 덤터기를 쓰는 사람이 되었지?'

황제는 속이 답답했지만 말로는 육장봉을 이길 수가 없어 볼멘소리로 말했다.

"됐다. 됐어. 말로는 너를 이길 수가 없어. 그럼 강남 얘기를 계속하자……."

"신이 폐하를 위해 강남에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강남에 간다면 모든 것을 샅샅이 조사할 것입니다."

육장봉은 매우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나섰다. 이를 위해 그는 황제 앞에 무릎을 꿇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그의 태도가 진지함을 알 수 있었다.

"허……!"

이번에는 입장이 바뀌어 황제가 득의양양해졌다.

"꿈이나 꾸시지. 생각하지도 마. 불가능해. 짐은 절대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

"폐하……!"

육장봉이 더 쟁취하려고 하자 황제가 말을 끊어 버렸다.

"공적으로 너는 추밀원사라 짐이 너를 흠차 대신으로 임명할 수 없다. 사적으로는…… 네가 강남에 가서 월령안을 만나게 짐이 보내 줄 것 같으냐?"

황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흥분해서 어쩔 줄 몰랐다.

"됐습니다. 폐하의 결정에 따라야죠."

육장봉은 무릎을 꿇어도 소용이 없는 것을 보고 과감하게 일어섰다.

"짐이 일어나라고 했느냐?"

황제는 언짢아하며 툴툴거렸다.

육장봉이 그에게 무릎을 꿇고 비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잠시나마 더 즐기고 싶었다.

"폐하께서는 신에게 무릎을 꿇으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육장봉은 무릎을 다시 꿇을 수가 없어 건성으로 예를 올렸다.

"다른 일이 없으면 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육장봉은 돌아서서 한 걸음 내디디다가 멈추더니 다시 뒤돌아서 황제에게 읍했다.

"폐하, 신이 한마디 말씀드리겠습니다. 흠차 대신을 선택하실 때, 폐하께서는 꼭 공평, 공정하고 영명한 태도를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은 상주서를 올려 폐하를 탄핵할 것입니다."

육장봉은 말끝마다 '폐하'를 붙이며 공경하는 태도였지만 내뱉는 말은 위협으로 가득 찼다.

황제가 노하여 말했다.

"지금 짐을 위협하는 것이냐?"

"허! 허!"

육장봉은 뜻 모를 웃음을 흘리고는 뒤돌아 가 버렸다.

황제는 노하여 소리 질렀다.

"너…… 짐에게……."

황제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금군이 성큼성큼 다가와 말했다.

"폐하, 강남에서 온 급보입니다."

황제는 낯빛이 금세 변했다.

"가져오라."

황제는 편지를 열어 재빨리 훑어보더니 얼굴이 시커멓게 되었다.

육장봉이 옆에 서 있는 것을 보고, 황제는 화낼 겨를이 없어 손에 들고 있던 편지를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장봉, 보거라……."

육장봉은 한번 훑어보고 얼굴빛이 변하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는 나라의 근본과 관련된 일입니다. 폐하, 신이 사적으로 강남에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

양식은 국가 대사로서 군비와 깊은 관계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강남의 관리들이 사적으로 비축 양식을 암거래해 양식 창고 열 가운데서 하나만 남는 치명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만약 지금 전쟁이 벌어지면, 주나라는 군비가 모자라게 될 것이다. 전선의 병사들이 배부르게 먹지도 못하는데 무엇으로 남들과 싸우겠는가.

이것만으로도 강남의 관리들은 죽어 마땅했다.

황제는 육장봉을 강남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모두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북요, 쉽게 이득을 취하려 기다리는 금나라, 그리고 여전히 도둑놈 심보를 접지 않은 청주를 떠올렸다.

그는 주나라의 내우외환에, 아무리 원하지 않더라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마침 관성 태수가 상주서를 보내왔다. 관성 무역지역이 건설되었으니 사람을 파견해 검수하라고 하였다. 관성 무역지역을 순시하러 간다는 이유로 변경을 떠나거라."

"네, 폐하."

육장봉은 강남의 일이 잘 풀리면 월령안더러 관성에 같이 가자고 하면 되겠다고 속으로 은근히 궁리했다.

'이건 잘됐군.'

"신,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육장봉은 목적을 달성하자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뒤돌아서 나가 버렸다.

황제가 뒤에서 '짐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쳐도, 육장봉은 못 들은 척하고 시원하고 과단성 있게 가 버렸다. 무정한 모습이었다.

황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찌 할 수 있는가?'

황제로서 그도 체면을 잃었다고 생각되었다.

이반반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시치미를 뗐다.

황제의 승낙을 받은 육장봉은 궁에서 나가자마자 육일에게서 월령안이 비둘기로 보낸 대나무 통을 되돌려 받고 그에게 오후에 출성할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예, 대장군."

육일은 육장봉이 자신이 대나무 통을 몰래 열어 본 것을 눈치챌까 두렵고 제 발이 저려 줄곧 고개를 숙이고 감히 사람을 바라보지 못했다.

뜻밖에 육장봉은 모든 생각이 강남에 가 있어 대나무 통이 한 번 열렸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육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오후, 육장봉 일행은 행차를 간소하게 하고 떠났다.

송취 골목을 지날 때, 육장봉의 말이 잠깐 멈춰 섰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골목을 바라보았다.

몽롱한 가운데 마치 아름다운 소녀가 골목에 서서 몰래 그를 훔쳐보는 것만 같았다.

그는 그 상상 속에서, 소녀의 얼굴을 똑똑히 보지는 못했지만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는 볼 수 있었다. 그 눈동자에는 온통 그뿐이었다.

더 이상 볼 필요 없이, 그는 소녀가 틀림없이 월령안이라는 것을 알았다.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입가를 끌어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바로 그때, 송취 골목에서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와 함께 관졸의 욕설이 들려왔다.

"빨리 안 가!"

"자기 자신도 깨끗하지 못하면서 감히 대장군을 모욕해. 정말 죽고 싶은 게로구나."

아름다운 환상이 깨지자, 육장봉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입꼬리가 아래로 축 처져 다소 엄숙해 보였다.

육일이 말을 몰아 앞으로 가더니 곧바로 돌아왔다.

"대장군, 문하성(門下省)의 기거랑(起居郞)이 죄를 범해서 금군이 사람을 잡아들이는 것입니다."

"길을 비켜 주거라."

금군의 출행에 편리하게, 육장봉이 먼저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금군이 사람을 압송해서 나오고 있었다. 수장 두위가 육장봉을 만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 인사했다.

"대장군!"

"음."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냉담하고 소원했다.

두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물러섰다.

금방 한 걸음 내디뎠는데 압송돼 나오던 기거랑이 갑자기 버둥거리며 고함을 질렀다.

"대장군……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소인은 더 이상 대장군의 출신과, 생모에 대한 험담을 하지 않겠습니다. 대장군께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금군은 정신을 차리고 재빠르게 기거랑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늦어 버렸다. 기거랑이 해야 할 말을 다 쏟아낸 다음이었다.

육장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일이 언짢아하며 물었다.

"어찌 된 일이냐?"

"대장군, 용서해 주십시오!"

두위는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이 기거랑은 황궁에서 대장군에 대해 몇 마디 좋지 않은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이자를 잡아들이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황성사가 조사한 결과, 이 기거랑이 받은 뇌물은 무려 만 냥에 달합니다. 소인은 규칙에 따라 사람을 잡아들이는 것입니다."

물론 황성사에서 하찮은 기거랑을 조사한 것은 그가 말한 그 몇 마디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황성사에서는 이런 보잘것없는 인물을 주목하지 않을 것이었다.

"왜 너희들이 사람을 잡아들이는 것이냐?"

육일이 또 물었다.

"소인은 사람을 데리고 순시하다가, 지나가는 길에 황성사를 돕는 것입니다."

두위는 이미 구실을 생각해 놓았다.

그는 이자가 대장군을 헐뜯는 것을 듣고 못마땅해서 줄곧 송취 골목 밖에서 기다리다가, 황성사에서 증거를 찾아내자마자 수하들을 거느리고 사람을 잡아들였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육일은 잠자코 있었다.

확실한 것은 사적인 원한을 공적으로 갚은 것이나, 절차가 규칙에 부합하여 꼬투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잘했다."

어쨌든 두위도 육장봉을 위한 마음이 있는 것이었다. 육일은 먼저 한마디 칭찬했다.

"헤헤……."

두위는 입을 벙긋거리며 바보처럼 웃었다.

"소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장군의 칭찬은 과분합니다."

육일은 두위가 말은 자신과 하지만 두 눈은 수시로 육장봉을 곁눈질하는 것을 보아냈다. 그의 눈에는 온통 육장봉의 칭찬을 받고 싶은 애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육일은 저도 모르게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 그냥 두위를 쫓아 버렸다.

"됐네. 어서 가 보게."

육장봉의 환심을 사기는 쉽지 않았다. 두위가 육장봉에게 칭찬을 들으려면 아마 다음 생에나 가능할지도 몰랐다.

두위는 실망을 한가득 안고 한 걸음에 세 번씩 뒤돌아보며 떠났다.

육일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것 참, 연기까지 하다니.'

"대장군, 현음 장공주 마마께서 곧 돌아오십니다. 갑자기 누군가 장군의 출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조사해 볼까요?"

육일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두위는 오직 그 기거랑이 육장봉을 헐뜯는 것을 보았지만, 육일은 무슨 일이 곧 터질 것 같은 냄새를 맡았다.

누군가 현음 장공주가 영광스럽게 돌아오는 것이 싫어 한발 앞서 그녀의 명성을 망치려는 것이었다.

현음 장공주가 북요에 화친으로 간 지 이십여 년이 되었다.

그녀는 양국 평화를 위해 커다란 희생을 했다. 그녀는 북요에서 사대부들이 부끄럽게 여기는 일들을 적지 않게 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리 한 것은 모두 주나라를 위해서였다. 아무도 그녀를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현음 장공주가 공격받을 수 있는 유일한 오점은 그녀가 바로 육장봉의 생모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화친으로 가기 전에 남과 눈이 맞아 결혼 전에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육장봉에게 생모를 모른다는 악명을 짊어지게 했다.

현음 장공주가 돌아오기 전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녀의 명성은 크게 타격을 입을 것이었다. 심지어 다른 마음을 품은 자의 유인 하에 백성들은 현음 장공주가 돌아오는 것에 대해 반발할 수도 있었다.

돌아온다 해도 현음 장공주는 집에만 있는, 존재감 없는 대장공주 노릇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음모였다. 현음 장공주를 겨냥한 음모였다.

"폐하께 맡겨라."

육장봉은 얼굴빛이 분명하지 않아 기뻐하는지, 분노하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육일은 한마디 대답하고서 묵묵히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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