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2화 너는 계속 총애해 주거라
황제가 처음 양측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얼굴색이 비교적 평온한 편이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병부의 사람이 여 총독을 고발하고, 갈수록 여 총독을 변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황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병부가 목적 없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남은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여 총독은 정말로 나를 속이는 것인가? 그리고, 여 총독을 위해 말하는 이 사람들은…….'
양쪽의 싸움이 점점 더 심해져 싸울 기미를 보이자, 황제는 속의 울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이 일은 훗날 다시 의논하게. 물러들 가게."
황제는 말을 마치고 소매를 젖히더니 대전을 가득 메운 대신을 내버려 두고 홀연히 떠나갔다.
"폐하, 이……."
가장 심하게 떠들던 관리 몇 명은 저도 몰래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서로서로 마주 보다가 하나둘씩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지금 황제의 불만을 야기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잖는가.
이는 정상적인 논쟁이었다.
조회 때마다 매번 있던 일이었다.
앞장선 몇몇 원로대신들은 매우 침착했다.
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여유롭게 뒤돌아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오직 이부상서만이 몇 걸음 만에 최 승상을 따라잡고 괴상야릇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
"최 대인, 솜씨가 좋으십니다."
최 승상은 눈꺼풀을 치켜들고 이부상서를 흘겨보며 피식 웃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실패자가 마지막으로 몇 번 더 짖는 것을 허락할 수 있었다. 아무튼 전혀 그를 다치게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공부는 최근 전함 문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보내고 있어 조정의 일을 주목할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여 총독의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터진 것이라 그가 앞당겨 이해할 기회가 없었다.
공부상서는 최 승상과 이부상서의 사이가 안 좋은 것을 보자 저도 몰래 불안했다. 그는 친한 친구 예부상서를 한쪽으로 끌고 가 가만히 물었다.
"어찌 된 일인가? 그냥 여 총독이 군공을 보고한 거잖아.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 어찌 되어…… 고래 싸움으로 변한 건가?"
그의 기억이 맞다면 이부상서는 황제의 사람이었다. 당연히 이부에서 내세운 여 총독도 황제의 심복일 것이다.
이부에서 황제의 사람을 받드는 것은 황제의 뜻에 따른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병부 쪽은 최 승상의 뜻을 따른 것인가.
지금 최 승상은…… 황제와 한판 겨루기를 한다는 말인가.
"아무것도 참견하지 말고, 알아보려고도 하지 말게."
예부상서는 비록 내막을 모르지만 중요치 않은 부서의 상서로서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부상서와 여 총독 모두 황제의 사람이 확실했다.
하지만 그가 만약 잘못 보지 않았다면, 이번에 나서서 여 총독을 두둔해 말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장 부승상의 사람이었다. 장 부승상은 이미 물러났으니 장노(張老)라고 불러야 했다.
무엇이라 부르든지 간에 아무튼 이번 일은 좀 수상쩍은 데가 있었다.
그는 이번에 이부상서가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 * *
몇몇 원로대신들의 인솔하에 기타 관리들은 안절부절못하든, 의기충천하든 모두 감히 대전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일행이 대전에서 얼마 나가지 못했는데, 황제 옆에 있는 이반반이 급히 육장봉 앞으로 걸어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대장군, 폐하께서 청하십니다."
오늘 육장봉은 기분이 좋았다. 어렵사리 이반반에게도 화기애애한 낯빛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와 함께 난각으로 갔다.
멀리서 품급이 낮은 몇몇 관리들이 이 장면을 보고 시샘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대장군이야말로 폐하의 마음에 쏙 들었다니깐. 젊은 나이에 폐하의 신임을 두텁게 받는단 말일세. 설령 생모가 누군지 모르고 출신이 바르지 않아도, 폐하께서는 여전히 총애하고 한시도 대장군을 떠날 수가 없구먼. 진짜…… 부러울 뿐이네!"
"자네도 대장군처럼 북요를 고개도 들지 못하게 쳐부수면 폐하의 마음에 쏙 들 수 있을 거네."
그의 옆에 있던 사람이 냉랭하게 한마디 비웃고는 훌쩍 가 버렸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을 잰걸음으로 빙 둘러 멀리 가 버렸다.
시샘을 내도 감히 대장군을 시샘 내다니. 게다가 이상야릇한 말투에, 말속에 뼈까지 있었다. 이리 생각이 없는 사람이 어찌하여 조정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 사람의 친구는 가기 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네는 참……."
"내가 왜? 뭐가 어때서? 그냥 진실을 말한 거잖아."
그 사람은 사실 말을 내뱉고 바로 후회했었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라 도로 담을 수도 없었다. 그저 목을 꼿꼿이 세우고 끝까지 버틸 뿐이었다.
가까운 데 있던 금군 몇 명은 냉소를 지으며 꼼짝하지 않았다.
'이 자식, 기억해 두었어!'
* * *
난각.
육장봉은 들어서자마자 난각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안색이 어두운 황제를 바라보고는 침착하게 예를 올렸다.
"폐하!"
"강남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병부가 여 총독을 탄핵한 것은 도대체 누구의 뜻이냐?"
황제는 울화가 치밀어 화내며 물었다.
"신……."
"모른다고 하지 마라! 너는 추밀원사다. 여 총독의 군공은 추밀원에서 사실을 확인해야만 보고할 수 있어. 네가 모른다면 왜 줄곧 여 총독의 군공을 인정하지 않고 눌러두어 이부가 대전에서 말하게 했느냐."
황제는 화가 난 나머지 육장봉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어 버렸다.
"폐하, 신이 여 총독의 군공을 눌러둔 것은 사적인 원한 때문입니다."
육장봉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황제가 자신의 사심을 아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너……."
황제는 문득 여 총독의 아들이 저지른 일을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기가 다소 꺾였다.
"이게 무슨 무모한 짓이냐. 조정의 일에 어찌 사적인 감정을 곁들일 수가 있단 말이냐. 만약 사람마다 너처럼 사적인 마음을 가지고 처사한다면, 조정이 혼란에 빠질 게 아니냐."
"폐하, 신은 사람입니다. 사람이면 사심이 있기 마련이고, 싫어하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신은 여 총독을 싫어해서 그의 공적을 엄하게 심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육장봉은 말투가 차분하고, 목소리가 냉담했다.
그는 황제한테서 배운 대로 했을 뿐이었다.
황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월령안이 싫어서 그녀가 한 일에 대해서 늘 반복적으로 거듭 확인해야만 믿어 주었다.
육장봉이 이렇게 하는 것도 큰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됐다. 짐은 말로 너를 이길 수가 없다. 병부에서 여 총독을 탄핵한 것은 또 어찌 된 일이냐? 짐의 기억으로 설정산은 최 승상과 인척 관계가 있던 것 같은데?"
최 승상이 강한 기세를 내세워 황제를 핍박하려는 것인가.
황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눈에 위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육장봉은 황제의 얼굴빛을 보고, 그가 또 생각이 많아져 음모론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는 황제에게 사실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알려 줄 수도 없었다.
사실인즉 여 총독이 아들의 죽음 때문에 월령안에게 원한을 품어 기회를 엿보아 그녀를 죽이려 했다.
그러자 그녀는 역으로 크게 한 방을 먹여 여 총독, 이 봉강 대리를 제거해 버리려고 했다.
최 승상은 그냥 월령안을 도와 강남의 관료 사회를 척결하면서 그쪽에 자신의 사람을 꽂으려 했을 뿐이었다.
이는 일석이조의 계략으로 최 승상은 당연히 힘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것들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다만 한마디만 했다.
"폐하, 설정산은 장 부승상의 처남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설정산은 최 승상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씨 가문을 도와주기 위해서 움직인 것일 수도 있었다.
사실 이 말을 꺼낸 그 자신도 그렇게 믿지 않지만 말이다.
"장씨, 설씨 두 가문은 진작 등진 지 오래다. 짐이 모르는 줄 아느냐. 어물쩍 넘기려 하지 말고 어서 말하거라. 수군 군영이 불에 탄 것은 진짜냐 거짓이냐?"
황제는 다른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절대 넘어갈 수가 없었다.
황제는 옥좌에 앉아, 병부에서 여 총독이 군공과 전리품을 거짓으로 보고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해적과 손잡고 수군 군영을 불살랐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만약 정말 사실이라면 그는 반드시 강남의 관료 사회를 피로 척결할 것이다.
"폐하, 신은 폐하와 마찬가지로 변경에 있었습니다."
황제가 모르는 일을, 대장군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월령안이 강남에 있잖느냐. 너한테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거라."
그에 대해 황제는 믿지 않았다. 육장봉에 대한 월령안의 의지와 신임에 대해 황제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월령안에 대한 육장봉의 신임과 중시도 알고 있었다.
황제는 아직 부기가 가라앉지 않은 손바닥을 만지며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다.
그의 부어오른 손바닥이 바로 육장봉의 월령안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월령안을 위해 육장봉은 감히 황제마저 때렸다. 육장봉이 월령안을 위해 그 무엇을 못 하겠는가.
"폐하, 령안은 상인일 뿐입니다. 관료 사회의 일을 령안이 어찌 알 자격이 있겠습니까."
육장봉은 '자격'이라는 두 글자를 특별히 강조해서 말했다.
이는 황제가 월령안에 대해 말할 때 늘 사용했던 단어로, 옹졸한 육장봉은 줄곧 기억하고 있었다.
"향혈해의 일은 바로 월령안이 만들어 낸 거잖아. 따지고 보니…… 감히 향혈해를 지지했으니 해적과 필히 관계가 밀접할 것이다. 수군 군영을 불사른 게 월령안의 짓이 아니냐? 일부러 여 총독을 모함하려고?"
황제는 처음에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말할수록 월령안이 할 수 있는 일인 듯싶었다.
"폐하, 조정의 대사에 어찌 사적인 감정을 섞으십니까. 만약 사람마다 폐하처럼 사적인 마음을 품고 처사한다면, 조정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육장봉은 말투조차 바꾸지 않고 황제의 말을 고대로 돌려주었다.
'아, 거참 그냥.'
"짐은 사심을 섞은 게 아니다. 월령안이 향혈해와 왕래한 것은 사실이잖느냐. 하지만 여 총독은 향혈해와 왕래하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 여 총독과 향혈해가 왕래했다는 증거가 없어."
황제는 목소리를 무척이나 높였다. 마냥 '목소리가 큰 사람에게 도리가 있다'는 기세였다.
육장봉은 말투를 바꾸지 않고 담담하게 일깨워 주었다.
"폐하, 저의 령안은 염 황숙의 비밀 명령을 받고 향혈해에게 접근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시면 염 황숙을 찾아가시지요."
'염 황숙은 분명 월령안을 도와 뒷감당을 할 거다. 그녀를 도와 짐을 속일걸. 짐이 모를 줄 아느냐.'
황제는 화가 나서 콧방귀를 뀌더니 이상야릇한 말투로 말했다.
"너의 령안 같은 소리. 너와 염 황숙은 계속 총애해 주거라. 그러니 월령안이 담이 커져 제멋대로 행동하고, 감히 영왕 후대와 결탁하잖느냐."
"신이 폐하께 한마디 알려드리겠습니다. 애당초 월씨 가문의 왕비는 여자아이를 잉태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왕의 비도 그녀가 순조롭게 아이를 낳지 못하게 했을 겁니다. 무슨 영왕의 막내아들이고, 영왕의 막내아들의 후대고 뭐고 하는 것은 시종일관 우스갯소리에 불과합니다. 남들은 몰라도 폐하와 황숙께서 그것을 모르실 수 있습니까?"
이런 지나간 옛일들이 없었다면 염 황숙도 월령안이 향혈해와 왕래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는 남들이 영왕 후대와 왕래하는 것을 참을 수 있어도 월씨 가문이 왕래하는 것은 좀처럼 참지 못했을 것이다.
염 황숙이 월령안이 향혈해와 왕래하도록 내버려 둔 것은 향혈해가 영왕과는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저 가짜일 뿐, 무엇을 크게 이룰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