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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50)화 (850/1,004)

850화 하늘에 구멍 내는 일

월령안은 미리 준비해 둔 상태라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오 년 전, 저는 바다에서 향혈해를 만났어요. 당시 그는 해적 소굴의 똘마니로 처지가 무척이나 좋지 않았어요. 그는 저를 찾아와 먼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며 저의 도움을 받기를 원했어요. 저는 거절하고 이 일을 염 황숙에게 알렸어요. 그분께 향혈해의 신분을 폭로해야 할지 물었어요.

염 황숙은 제 말을 듣고서 향혈해를 도와 신분을 속이고 전력으로 지원하라고 했어요. 그때 당시 저는 염 황숙께서 어찌 그리하시는지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분이 저를 해하지 않을 줄 알기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분의 말에 따랐어요."

당시 상황은 확실히 그러했다. 다만 그때 당시 그녀는 향혈해를 거절하지도, 승낙하지도 않은 채,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 뒤에, 그녀는 노인과 의논했다. 따져 본 결과 두 사람은 모두 향혈해와의 협력이 그들에게 유리하다는 쪽으로 판단했다.

어쨌든 해적들을 장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를 지지해 올려놓든 나중에는 결국 배신당할 가능성이 컸다.

향혈해는 먼저 약점인 신분을 그들에게 보여 준 것을 보아 분명 영리한 사람이었다.

영리한 사람과 협력하는 것은 위험이 컸지만 당시의 그녀는 우둔한 사람을 지지할 능력이 없었다.

향혈해는 그때 당시 그녀의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조계안에게 들려줄 필요는 없었다.

월령안의 설명이 끝난 뒤에도, 조계안은 여전히 일언반구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계안이 여전히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 뒤의 일은 전하께서 모두 아실 겁니다…… 당시 향혈해를 도와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병기와 사람을 주었을 뿐, 향후에 그가 바다에서 자리잡고 강남 각 대호족들과 동맹을 맺은 것은 모두 그 자신의 수단과 재간에 힘입은 것입니다. 저는 참여하지 않았고 모르는 일입니다."

월령안은 떳떳한 표정으로 향혈해의 일에서 깔끔하게 몸을 빼려 했다.

"저와 향혈해는 협력관계일 뿐입니다. 그의 일에 대해 아는 게 별반 없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강남에 석 달만 있었습니다. 강남을 떠난 뒤로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강남 총독이 갑자기 저에게 손쓰려 하지 않았다면, 향혈해를 찾아 인정 빚을 갚으라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강남 총독의 잘못이란 말이냐."

조계안은 이상야릇한 말투로 한마디 비꼬았다.

월령안이 사전에 염 황숙과 연계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았다면, 조계안은 그녀가 사전에 염 황숙과 말을 맞추었을 것이라고 의심할 것이다.

두 사람의 대답은, 개별적인 단어를 제외하고, 거의 전부 같았다.

월령안은 향혈해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 않아 말머리를 돌렸다.

"전하, 제 손에 강남 총독이 뇌물을 받은 장부가 있습니다."

"강남 총독 자리에 있으면서 어지간히 받는 것은 크게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조계안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강남 총독을 조사하는 것은 흠차 대신의 일이야. 나는 너를 조사하러 온 것이다."

"만약…… 강남에 비축해 둔 양곡이 거짓인 것과 관련된다면요?"

월령안이 다시 물었다.

"무슨 뜻이냐?"

조계안은 눈꺼풀을 들고 차갑게 말했다.

"제대로 말해 보거라."

"강남의 양식 창고 삼백여 채 중에서 절반 이상이 텅텅 비어 있습니다."

월령안은 한 글자, 한 글자씩 천천히 차분하게 말했다.

조계안은 천둥소리에 놀란 듯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탁상을 손으로 짚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월령안을 노려보았다.

"강남의 양식 창고가? 지금 비어 있다고 했어?"

"네. 강남에는 비축해 둔 양식이 없습니다."

월령안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조계안의 예의 주시하는 눈빛을 마주했다.

그녀는 차분한 말투, 확고한 목소리로 소리 없이 조계안에게 자신이 한 말에 책임질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강남의 양식 창고가 비어 있다는 사실은 월령안이 스스로 조사해 낸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은밀한 일은 외부인이 조사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월령안이 알 수 있었던 까닭은 고문실에 있던 여자 때문이었다. 여 총독의 고문이 말한 총독 대인의 첩실이 직접 그녀에게 알려 준 것이었다.

고문은 첩실이 다른 사람과 간통하다가 여 총독에게 발각됐다고 했다. 여 총독은 여인을 고문실에 던져 넣고 사십구 일 동안 시달림을 받은 다음 죽게 할 거라고 했다.

그녀는 그때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쨌든 그녀 역시 한 가문의 가주 부인이었던 사람이었다. 첩이 간통한 것과 같은 창피한 일은 덮어 감추기도 바쁜데 어찌 경망스럽게 남에게 말할 수 있는가. 여 총독이고, 여 총독 부인이고 모두 체면을 중히 여기지 않는단 말인가.

그래서 그녀는 속마음을 따로 하고, 탈옥할 때 그 여자에게 약을 한 알 먹여 정신을 차리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짐작대로, 그 여자는 간통죄로 구금된 것이 아니었다.

그 여인은 선비 가문 출신으로 미모 때문에 여 총독의 눈에 들게 되었다. 여 총독은 그녀를 첩으로 삼으려 했으나 거절당한 뒤, 그녀의 집과 가족을 망하게 했다.

여인은 복수하기 위해 여 총독의 첩실이 되었다. 그리고 이 년 동안 고분고분한 척하다가 드디어 기회를 찾게 되었다.

그녀는 여 총독과 강남의 관리들이 암암리에 양식을 훔쳐 팔아먹은 장부를 훔치게 되었고 그 장부를 사촌 오라버니에게 넘겨주었다.

여 총독이 그녀를 고문실에 감금하고 매일 형벌을 들이대면서 대외적으로 간통한 첩을 처리한다고 소문내는 것은 그녀의 사촌 오라버니를 유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여 총독이 월령안과 대적하게 되었고, 그녀가 한발 앞서 여 총독의 계획을 파탄시켰다.

아마 여 총독은 그녀가 탈옥하면서 이렇게 중요한 일을 발견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조계안을 속일 필요가 없기에 월령안은 사건의 경과를 숨김없이 상세하게 보고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조계안은 한마디만 물었다.

"너 탈옥에, 감옥까지 급습해? 그게 불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월령안 잠자코 있었다.

'그게 중점이 아니잖아?'

지금 중요한 것은 강남의 비축 양식이 아닌가.

월령안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전하, 제가 장부를 찾지는 못했지만 강남 양식 창고 삼백여 채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백팔십 채가 텅텅 비었고, 나머지에도 양식의 반 이상이 모래흙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지금 강남의 비축 양식에 대해 조사하지 않고, 저와 탈옥 문제에 대해 따지시려는 게 확실합니까?"

월령안은 조계안이 자신과 실랑이질하지 않고 어서 빨리 여 총독을 조사하게 하려고 친절하게 일깨워 주었다.

"전하,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그 여인은 이미 죽었습니다. 이제 여 총독이 정신을 차리고 장부를 찾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 창고들을 불살라 버릴 것입니다. 그런 다음 자연재해를 입었다고 보고하면, 그때 가서 장부를 찾았다 해도 그들을 어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닙니까?"

조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월령안이 그가 자신에게 설득된 줄로 여길 때, 조계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네가 말하니 생각나는구나. 네가 말하지 않으면 내가 깜빡 잊을 뻔했어. 네가 수군 군영에 불을 질렀잖아."

"전하, 그건 향혈해가 한 짓입니다."

그녀에게 이런 덤터기를 씌우면 안 되었다. 그녀는 떳떳하고 깨끗하므로 그런 일에 관여될 수가 없었다.

"향혈해가 너에게 인정 빚을 진 대가로 네가 시킨 거잖아."

이 일을 황제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만약 황제가 이 일을 알게 된다면 월령안을 당장 변경으로 불러들일지도 몰랐다.

"전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

월령안은 웃음보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조계안과 황제는 역시 형제였다. 그들은 영원히 그녀의 잘못만 보고 그녀의 공로는 전혀 알아 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강남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위해 새로운 국면을 열었는데 일말의 공로도 없단 말인가.

"월령안, 너 담이 너무 크잖아. 언젠가 하늘을 구멍 내 도저히 버텨 낼 수가 없을까 두렵지도 않아?"

조계안은 강남에 도착해 월령안이 무엇을 했는가를 알게 되고 나서 정말이지 그녀를 흠씬 두들겨 주고 싶었다.

해적을 기르고, 영왕 후대와 왕래하며, 수군 군영을 불사르고, 탈옥까지……. 이 모든 게 하나하나가 죽을죄들이었다.

월령안은 어찌 이토록 담대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실수를 범하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제가 집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시면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을 것이며, 하늘에 구멍 내는 일은 더구나 없을 것입니다."

월령안은 무르지도, 강경하지도 않게 반격했다.

"그래도 할 말이 있는 것이냐."

조계안은 탁상을 탁, 치며 화를 냈다.

"황형이 너더러 해적을 키우라고 했어? 영왕 후대와 왕래하라고 했어? 아니면 수군 군영을 불태우라고 했어? 오 년 전에 너는 아직 월씨 가문을 물려받지도 않았잖아. 이런 일들은 모두 네가 오 년 전에 한 일이다. 나한테 네가 오 년 전에 오늘의 일을 예측했다는 말은 하지 마."

월령안은 말재간이 너무 대단했다. 그는 하마터면 그 말재간에 넘어가 정말로 그녀가 무고하다고 생각할 뻔했다.

"오 년 전에 확실히 오늘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저는 복수해야 했어요. 오 년 전, 여 총독은 봉강 대리로서 최전성기였고 폐하께서 알아 주는 권신이었어요. 그의 아들은 강남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정도로 누구도 그를 막을 수가 없었어요. 조왕 전하께서 말씀해 주세요. 그때 제가 복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북을 두드려 억울함을 호소할까요? 아니면 고소장을 쓸까요?"

월령안은 두 손을 탁상 위에 얹어두고 조소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오 년 뒤, 전하께서 직접 구리파 사건을 조사하셨잖아요. 하지만 결국에는요? 만약 육장봉이 손을 써서 그자들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말이에요. 전하께서는…… 사람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는 부잣집 도련님들이 무슨 대가를 치를 것 같으세요? 그들의 부모는 또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요? 수십 명의 목숨에, 여 총독이 치른 대가는 겨우 삼 년간 녹봉 뿐이에요."

월령안은 조계안을 가리키며 비웃었다.

"당신은 당당한 친왕(親王)이고 암제(暗帝)고요. 육장봉은 초품 대장군에 추밀원사예요. 당신 둘이 직접 손써도 여 총독은 삼 년의 녹봉이란 대가만 치렀어요. 만약 제가 그를 고소했다면, 여 총독은 무슨 대가를 치를까요?"

월령안은 여전히 자문자답했다.

"여 총독은 어떤 대가를 치르지도 않을 거예요. 오히려 제가 죽겠죠. 저는 아마 고문실에서 사십구 일간 괴로움을 당하다가 죽어 간 그 여자보다 더 비참해졌을 거예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활짝 웃었다.

"조왕 전하께서 틀린 말씀을 하신 건 아니에요. 저 확실히 담이 커요. 제가 일품 대신조차도 감히 보복하는데, 못할 것이 뭐가 있겠어요? 조왕 전하께서 저를 투옥시키려면 마음대로 하세요. 제가 언제든지 상대해 드리죠!"

월령안은 믿는 구석이 있어 두렵지 않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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