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9화 여기는 저의 전쟁터예요
그날 저녁, 성문 입구는 마차, 소달구지, 수레, 그리고 짐을 짊어진 사람들로 붐볐다.
이들은 성문 앞에 모여 아우성을 쳤다.
"출성하게 해 주십시오. 저희들을 성안에 가두고 죽기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성문을 여십시오. 성문을 여십시오! 저희는 출성하렵니다."
"성문을 여시오. 저희는 도주범이 아닙니다. 저희를 좀 내보내 주십시오."
사람들은 배짱이 두둑해 성문 입구에서 밀치고 닥치고 했다. 일부 담이 큰 자들은 관졸들을 밀치기까지 했다.
평소 같으면 백성들은 관졸들과 감히 충돌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흑사병은 꼭뒤에 드리운 검과 같았다. 성안에 묶여 흑사병으로 죽을 바에는 오히려 죽기 살기로 한번 뚫어보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람이 많았다. 관아는 한 가지 일에 잘못을 범한 사람이 많으면 모두 책벌하지 않았다. 그러니 더욱 무서울 게 없었다.
관졸은 평소에도 으스대던 터라 백성들이 밀치자 성깔이 센 자는 손찌검을 했다. 손찌검이 있게 되자 곧 유혈 사건이 생기게 되었다.
"사람을 죽였어. 관졸이 사람을 때려 죽였다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 외침은 출성하려던 백성들을 겁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더욱 흥분하게 했다.
"출성할 거야! 출성해야 해. 우리는 이곳을 나갈 거다. 성안에서 죽기를 기다릴 수 없어."
성문 입구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백성들이 폭력적으로 달려들자 관졸들은 곧 막아내지 못했다.
성문 입구에서 붐비던 백성들은 기뻐서 소리쳤다.
"어서, 빨리, 성문을 열어라. 우리 가자……."
그러나 바로 이때, 총독부의 사람들이 관병을 이끌고 달려왔다.
관병들은 저마다 긴 창을 들고 갑옷을 입고 있었다. 일반 백성들이 전신 무장을 한 관병을 이길 수는 없었다.
"움직이지 마! 모두…… 머리를 싸쥐고 쪼그리고 앉아. 명령을 어기면 죽인다."
선봉장은 전쟁터에 나갔던 사람으로 온몸에 살기를 띠고서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을 풍겼다.
기다란 고함 소리는 기운이 넘치는 것이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살기를 띠었다.
성문을 들이밀면 백성들은 본래 일시적인 기운에 돌진했었다.
선봉장이 고함을 지르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놀라 간담이 서늘해졌다.
누군가 선두를 떼자, 나머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덩달아 머리를 싸쥐고 쭈그리고 앉았다.
성문 입구의 소란은 곧 진정되었다.
선봉장은 가장 심하게 소란을 일으킨 몇 사람을 체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성문 입구에서 밀치지 말고 흩어지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가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인, 저희는 언제 출성할 수 있습니까?"
"대인, 흑사병을 다스리신 것입니까?"
"대인…… 왜서 출성하지 못하게 합니까. 저희는 도주범이 아닙니다. 저희는 대대손손 성밖 송자촌(松子村)에 살고 있습니다. 어찌 집조차 돌아갈 수 없습니까?"
"대인, 저희는 성안에 집도 없고 먹을 것, 마실 것도 없으며 잠시 묵을 데도 없습니다.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출성하려는 사람들은 흑사병이 두려워 잠깐 시골에 내려가 피하려는 성안 백성 외에, 대부분은 인근 마을의 촌민들이었다.
강남성은 부유해, 인근 많은 마을의 백성들이 낮에는 성안에서 날품팔이를 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갔다.
여 총독이 성을 봉쇄하라고 명령하자 일을 하러 왔던 촌민들은 모두 성안에 갇히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성안에 살 곳이 없고 수중에 돈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더하여 흑사병 때문에 일자리도 찾지 못하게 되면 생존조차 어려웠다.
그들은 말하면서 무릎을 꿇고 선봉장에게 은혜를 베풀어 살길을 열어 주고 출성하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모두들 칠 척 되는 장정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치 무기력한 어린아이처럼 눈물만 흘렸다.
선봉장은 길게 한숨만 내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 총독의 명령은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여기 오기 전에, 그는 이미 일개 월령안을 잡으려고 전체 성안 백성들을 불안에 빠뜨리면 안 된다고 여 총독을 설득했었다. 하지만 여 총독은 요지부동이었다.
여 총독에게 있어서, 그의 관리로서의 위엄을 지키는 것이 백성의 불안감을 안정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그가 성을 봉쇄하라는 명령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만약 백성 몇 명이 위협했다 해서 곧장 명령을 철회하고 그들을 성 밖으로 내보낸다면, 그의 명령은 무엇이 되고, 관아의 위엄과 신망은 어찌 되겠는가.
여 총독의 말에 그의 치하 모든 관리들이 맞장구를 쳤다. 모두 거듭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관아의 위엄과 신망은 도발할 수 없습니다. 성문은 절대 열어서는 안 됩니다."
선봉장은 명을 받고 왔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성문을 지키고 무력으로 폭동을 진압해 더는 유형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백성들이 소동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곧 날이 어두워졌다. 무릎을 꿇고 애원하던 장정들도 목이 다 쉬도록 관아의 사람들이 전혀 동요하지 않는 것을 보자 점차 버티지 못하고 일어나서 묵묵히 되돌아갔다.
누군가 움직이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성안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의 모습은 쓸쓸하고, 뒷모습에는 절망이 엿보였다.
선봉장은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는 눈앞의 동란이 평정되었지만 성안의 혼란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여 총독이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강남성에서는 대동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 *
성 밖, 월씨 가문 별장.
육삼은 성안에 소식을 전하면서 성문 입구의 동란과 성안 백성들의 무기력함, 불안함을 직접 목격했다.
별장으로 돌아간 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서재로 걸어갔다.
기다란 복도는 온통 캄캄하기만 했다. 육삼의 손에 든 등롱이 유일한 빛이었다.
육삼은 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월령안을 보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궁리했다.
하지만 그는 서재에 들어서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차분한 월령안의 모습을 보자, 준비했던 말은 하나도 소용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월 낭자, 성안의 소란은 낭자와 관련이 있나요? 흑사병이 발병한 것도 낭자가 계획한 건가요?"
"맞아요."
월령안은 강남 가게의 장부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녀는 육삼의 말을 듣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
"왜요?"
육삼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그는 마음속에 불만과 분노가 있었지만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
월령안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뭐가 왜인가요?"
"왜 그렇게 해야 했습니까?"
육삼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월 낭자, 성안 백성들은 무고합니다."
"물론 맞아요. 제가 몰인정해서 그래요."
월령안은 장부책을 내려놓고 비웃는 말투로 말했다.
"육삼, 모든 개변은 피를 흘리기 마련이에요. 다른 사람의 피가 아니면 자신의 피를 흘려야 하죠. 지금 육삼의 안정은 성내 소란으로 바꿔 온 것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전쟁터에서 상대 병사에게 무고한가 묻나요? 그들이 강요에 의해 전쟁터에 나오고, 그들이 무고하며, 그들에게 부모, 처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가만두겠어요?"
육삼은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육삼, 여기는 저의 전쟁터예요."
그녀의 대립각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은 모두 그녀의 적이었다. 그녀는 상대방이 무고한지 상관할 여유가 없었다.
월령안은 육삼의 망연자실한 모습에 더는 말하지 않았다.
상업계는 전쟁터와 같다. 상업계에서 피도 보이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일은 허다했다.
그녀의 두 손도 피로 물들었다. 그중에 무고한 사람의 피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는 그녀도 몰랐다.
육삼이 적응하면 좋지만 만약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녀는 육장봉에게 사람을 바꿔 달라고 할 것이다.
월령안은 비록 며칠 동안 외출하지 않았지만 쉴 틈이 없었다. 아직도 봐야 할 장부책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녀는 육삼에게 오가면서 수고했으니 일찍 휴식하라고 말했다.
육삼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월 낭자는 항상 듣기 좋게 말하네. 분명히 나하고 말하는 게 귀찮으면서도 나를 배려하는 식으로 얘기하잖아.'
비록 속사정을 알고 있지만 월령안의 관심 어린 말에 육삼은 그래도 마음이 따뜻했다.
그는 추수가 왜 월령안을 일편단심으로 따르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월령안이 과격하게 일을 처리하든 안 하든 간에, 그녀가 좋은 상전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잘 대해 주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육삼은 한숨과 함께 마음 한쪽 구석의 자그마한 응어리마저 토해냈다.
그가 너무 표면에 집착한 것이었다.
강남에서 아직 흑사병이 일어나지 않았거니와, 설령 흑사병이 일어났다고 해도 월령안과는 연관이 없었다.
그녀는 기껏해야…… 수수방관하고, 붙는 불에 부채질하며, 기회를 빌려 자기 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조정 관리도 아니고, 의원도 아니기에 흑사병에 일어났다 해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월령안이 앞당겨 흑사병 사실을 알렸기에, 일을 악화시키지 않은 것만으로 이미 의를 지킨 것이었다.
육삼은 재빨리 스스로를 설득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재에서 나갔다.
월령안은 괜히 의심스러웠다. 그녀는 육삼이 이상한 일들을 생각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그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육삼이 스스로 생각을 넓게 가지기로 했다면 가장 좋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와 추수 사이는 그렇게 순조롭지 못할 것이다.
추수는 그녀의 수족과 같은 인물로서, 상업계에서 그녀가 결정권자이면 추수는 집행자였다.
만약 그녀의 두 손이 피로 물들었다면, 그녀를 위해 일한 추수의 두 손도 그녀의 손에 못지않았다.
육삼이 그녀의 일 처리 방식이 눈에 거슬린다면, 그녀를 위해 일하는 추수 역시 좋게 보일 수가 없었다.
관점이 일치하지 않은 두 사람은 사랑으로 결합한다 해도 혼인이 오래갈 수 없다.
'너무 멀리까지 생각했군.'
월령안은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장부를 계속 뒤적였다. 움직이자마자 창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월령안은 탁, 장부를 내려놓고 수중의 암기로 창문을 겨냥했다.
"누구냐?"
"너를 대신해 전쟁터에 나설 사람이다."
갑자기 창문이 열리며 검은 그림자가 뛰어 올라왔다.
가장 먼저 월령안의 눈에 띈 것은 조계안의 분신과도 같은 귀신 가면이었다.
월령안은 암기를 거두고 일어서서 예를 올렸다.
"조왕 전하를 뵙습니다."
조계안은 여전히 심드렁한 모습이었다. 그는 월령안의 맞은편에 앉아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앉아라."
월령안이 앉자마자 조계안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향혈해는 어찌 된 일이냐?"
"전하께서 보신 그대로입니다."
월령안은 한동안 조계안을 보지 못했던 터라 저도 모르게 온몸을 긴장하며 정신을 바싹 가다듬고 상대했다.
"향혈해는 자칭 영왕의 후대라는 자입니다. 바다에서 큰 세력을 가지고 있으며 강남 호족들과도 왕래합니다."
그러나 조계안은 이 대답에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금세 안색을 바꾸었다.
"월령안, 내 인내심은 한계가 있다."
"조왕 전하께서는 무엇을 알고 싶나요?"
조계안은 갑자기 날카롭고 살기등등해졌다. 반면 월령안은 오히려 살짝 긴장감을 늦출 수가 있었다.
'그래 이거야. 심문하려면, 사람을 심문하는 자세를 보여야지.'
"너와 향혈해의…… 모든 왕래를 한 글자도 빠뜨리지 말고 사실대로 보고해. 어물쩍 넘기려 하지 말고. 내 수단을 잘 알고 있잖아."
향혈해의 일에 대해 염 황숙은 한발 앞서 황제에게 알렸다. 하지만 황제는 월령안도, 그녀를 편드는 염 황숙도 믿지 않았다.
조계안은 황제의 뜻으로 온 것이었다. 향혈해의 일을 잘 처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월령안과 향혈해 사이의 왕래도 조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