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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48)화 (848/1,004)

848화 흑사병

육삼은 드디어 걱정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래, 맞네요. 염 황숙께서 계시는군요. 그럼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내가 왜 이렇게 중요한 일을 잊었지.'

염 황숙이 있는 한, 월령안이 아무리 도를 넘은 일을 해도 염 황숙이 그녀를 도와 뒷감당해 줄 것이다.

정 안 되면 육 대장군도 있지 않는가.

월령안은 육삼이 이해한 것을 보고 더 길게 말하지 않았다. 다시 설씨 가문의 일에 대해 물었다.

"설씨 저택에서 장 부승상과 여 총독의 사람만 발견했나요? 다른 사람은 없었나요?"

"암부(暗部)의 사람이 있었지만 폭로하지 않았습니다."

육삼이 엄숙하게 대답했다.

"조금 늦게 향혈해와 왕래가 있는 호족 명단을 가져올 거예요. 잊지 말고 암부의 정탐꾼에게 한 부 주고, 다시 한 부를 베껴서 당신네 대장군에게 보내세요. 그리고 대장군께 강남에서 큰 공로를 건질 수 있으니 심복을 보내라고 일깨워 주세요. 아, 참. 병부시랑 장기(莊琪)은 제 사람이에요. 당신네 대장군한테 소식을 전할 때 잊지 말고 한마디 해 주세요."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 일어나서 가 버렸다.

강남의 물꼬를 튼 사람으로서, 그녀는 강남의 성과를 나눌 자격이 충분했다.

* * *

수군 군영의 큰불은 하루 밤낮 지속되었다.

불길이 하늘로 솟구치면서 전체 해역을 시뻘겋게 비추었다. 부근에 사는 백성들은 큰불이 그들에게까지 번질까 두려워 놀라 뿔뿔이 도망쳤다.

여 총독은 깨어난 뒤, 군영의 불을 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과단성 있게 포기하고 부하를 데리고 성으로 돌아갔다.

성안에 돌아오자 여 총독은 도주범을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성을 봉쇄하고 백성들의 출입을 엄금했다.

그 뒤에 그는 직접 호족들에게 찾아가 배를 빌리고, 수군에 바다로 나가 해적을 잡으라고 명령했다.

여 총독은 첫 집으로 진씨 호족을 찾아갔다.

진씨 가문은 대대손손 해운 장사를 했다. 비록 규모가 청주 범씨 가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강남에서는 역시 손꼽히는 대해상(大海商)으로 수중에는 크고 작은 배 백여 척이 있었다.

여 총독이 직접 나서서 빌리자 진씨 가문은 당연히 그의 체면을 봐주어 즉석에서 배 열 척을 빌려 주었다. 그중에는 낡은 것과 새것이 섞여 있지만 모두 무기를 구비하고 있었다.

여 총독은 매우 만족해하면서 또 다음 집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해적 우두머리 향혈해가 바로 병풍 뒤에서 그의 말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여 총독이 나서자 그날로 여러 대호족들로부터 근 오십 척의 배를 빌릴 수 있었다. 그는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수군에 즉각 출정하라고 명령했다. 수군에 중점적으로 월령안이 도망친 몇 개 방향을 수색하라고 명했다.

"생사를 막론하고, 월령안을 반드시 잡아들여라."

여 총독은 체면 같은 건 던져 버리고 직접 수군에 명령했다.

만약 여 총독이 전에 월령안을 죽이려 한 것은, 죽은 아들을 위해 복수하려던 것이었다면 지금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서였다.

월령안이 죽지 않으면 그가 죽어야 했다.

수군은 소리 높이 대답하고 배를 타고 출정했다.

그들이 움직이자마자 진씨 저택에 머물던 향혈해는 사람을 시켜 수군이 해적을 포위 토벌한다는 소식을 전하게 했다.

바다에서 항해하던 해적들은 소식을 듣고 즉각 섬으로 숨어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바다는 더없이 넓고 은폐된 땅이 부지기수라, 그들이 섬에 숨어들면 수군은 안내하는 사람이 없는 한, 거의 찾아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에 대해 강남 수군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갑판에 서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여 총독은 수군이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두침침하던 얼굴이 조금이나마 맑아졌다.

그가 월령안을 죽이고, 해적의 소굴을 토벌하기만 하면, 공로로 죄를 메울 수 있을 것이다. 수군 군영이 불에 탄 일 때문에 관직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여 총독의 고문은 그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 시간을 따져 보면 우리가 공적을 보고한 상주서가 이미 내각에 보내졌을 것입니다. 빨라 모레 아침 조회에서 이야기가 나올 텐데, 지금이라도 되찾아올까요?"

"내각은 최씨의 권력 범위야. 늦었어."

이 역시 여 총독이 월령안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원인 중의 하나였다.

그가 금방 공적을 보고하자마자 월령안이 강남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황제가 이 일을 안다면 그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황제는 그가 허위로 날조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가 날조한 것은 맞지만, 이 일에 대해 그의 심복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설정산을 찾으라고 보낸 데서는 소식이 왔느냐? 상경하는 길에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다더냐?"

이미 보고된 상주서를 되찾아오기보다는 방법을 강구해 설정산이 쓴 탄핵 상주서를 가로채는 것이 더 나았다.

"설정산 부부는 마차에 오른 뒤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저희 사람들이 그 마차를 찾았을 때는 마차 안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고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쓸모없는 자식!"

여 총독은 욕설을 한마디 날렸다.

"설씨 가문에 심어 둔 정탐꾼은? 무슨 소식을 전해 온 게 없느냐?"

"대인께 말씀드립니다. 정탐꾼은 한 시진 전에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육삼이 월령안의 부름을 받고 갔는데 구체적으로 어디 갔는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설정산의 대인을 탄핵하는 상주서는 월령안의 수중에 있고, 보냈는지, 안 보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고문은 받은 소식을 그대로 보고했다. 하지만 그는 설씨 가문에 심어 둔 정탐꾼은 이미 육삼에게 발견되었고, 그가 받은 소식은 모두 월령안이 일부러 흘린 소식임을 모르고 있었다.

"그 상주서를 꼭 가로채야 한다."

그 상주서가 변경에 도착하지만 않는다면, 모든 것은 아직 기회가 있었다.

여 총독은 금세 활력으로 넘쳤다.

"찾아내! 월령안을 찾아내란 말이다.

월령안이 상주서를 변경에 보내려면 반드시 상륙해야 할 것이다.

사람을 보내 바다의 모든 배와 상륙하는 모든 사람들을 지켜보도록 해라!

샅샅이 뒤져서라도 월령안을 찾아내야 한단 말이다. 알겠느냐?"

고문은 명령을 받고 즉시 총독부의 병마를 파견했다. 그러나 월령안을 미처 찾지도 못했는데 성안에서는 흑사병이 돌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 * *

일순간 성안은 대혼란에 빠졌고 백성들은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이 유언비어는 다른 곳이 아닌, 총독부에서 새어 나온 것이었다.

총독부의 하인이 여 총독 부인의 명령을 받고 부두로 가서 부인의 조카를 구하려다 부두 인부들과 무력 충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여 부인의 조카도 수상 운수업을 경영하며 수하에 대량의 인부를 두고 있었다.

그가 평소에 인부들을 착취하고 때리며 욕하는 것은 예삿일로 인부들은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다.

이번에 인부들이 여 부인의 조카를 납치한 것은 그가 줄곧 돼지고기 대신 쥐 고기를 그들에게 먹여 흑사병에 감염되었기 때문이었다.

반 달 전, 인부 몇 명이 죽은 쥐 고기를 먹고 며칠 안 되어서 발병했다.

의원에게 보인 결과 흑사병에 걸렸다고 했다.

백성들은 역병이라면 무서워 벌벌 떨 정도로 흑사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몇몇 인부들은 감히 숨기지 못하고, 곧 윗선에 보고했다. 하지만 여 부인의 조카는 일을 숨기고, 발병한 인부들을 바위에 묶어 바다에 던지고는 실족사했다고 말했다.

배 위의 인부들은 실망했다. 하지만 일단 흑사병에 감염된 사람들을 처리했으니 어쨌든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하자 한편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잇달아 병에 감염된 사람이 생겼다.

비록 모두 제때 처리했지만 인부들은 하나같이 다음번에는 자신의 차례가 될까 당황하고 혼란스러웠다.

흑사병 같은 것은 한 명이 한 무리에게 전염시키므로 언제 감염될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흑사병에 걸리면 그 조카의 작태로 보아서 그들은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다.

이때에도 인부들은 그 조카를 납치해 그에게 보복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자신들이 재수가 없어 흑사병에 감염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한 영리한 인부가 그들 배의 사람들이 흑사병에 걸린 까닭은 모두 그 조카가 돈을 절약하기 위해 죽은 쥐 고기를 그들에게 먹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두의 인부들은 막일을 하므로 때리고 욕해도 괜찮지만 반드시 충분하게 기운이 나는 음식으로 배불리 먹여야만 힘내서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여 부인의 조카는 비록 깍쟁이지만 인부들을 일을 시키려면 반드시 배가 부르게 먹여야 하고 고기가 끊겨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 양, 돼지 고기는 너무 비쌌다.

이 조카는 부도덕한 인간이라, 수하의 쥐 고기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밭에 가서 쥐를 잡게 했다. 게다가 쥐는 무엇이든 다 먹기에 키워도 수지가 맞았다.

어차피 요리를 해 놓으면 고기는 다 맛이 똑같아서 인부들은 알아챌 수가 없었다.

한동안 먹여 보고 별 탈이 없자 그 조카는 이게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먹어도 사람이 죽지 않으니, 앞으로는 전부 죽은 쥐 고기로 돼지고기를 대체해 인부들에게 먹이라고 분부했다.

주인이 이렇게 분부하자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더욱 거리낌이 없었다. 죽은 쥐, 썩은 쥐 고기도 마찬가지로 삶아 인부들에게 먹였다.

이렇게 먹이다가 결국 일이 터졌던 것이다.

인부중 하나가 흑사병에 감염되었고 게다가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이 조카는 줄곧 숨기면서 보고하지 않고 일을 꽁꽁 숨겼다.

그러나 이런 일은 조만간에 반드시 폭발하는 것이었다.

월령안이 추진함에 따라, 여 총독이 정신이 없고 강남이 어수선한 가운데, 여 부인의 조카가 죽은 쥐 고기를 사람에게 먹였다가 인부들이 흑사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문이 퍼지자 성안의 백성들도 혼란에 빠졌다.

강남 백성들은 역병이라면 벌벌 떨었다.

흑사병 소식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성안 백성들은 아무것도 관계치 않고 그냥 짐을 싸 가지고 농촌에 가서 전염병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강남성은 봉쇄되었다.

성문을 닫아걸고 누구도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성문을 봉쇄하자, 원래 회의적이던 사람들마저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흑사병은 분명 진짜야. 그렇지 않으면 관아에서 왜 성을 봉쇄하겠어?"

"단지 도주범을 잡기 위해서라면 성을 봉쇄할 필요가 어디 있겠어."

일부 부자들은 가업도 돌보지 않고 결단을 내렸다.

"출성한다. 되는 대로 준비해서 시골 고택에 가야 해. 성안에 남아 있으면 흑사병에 감염되지 않아도 그냥 굶어 죽을 거다."

일반 백성들과 작은 부자들은 집에 식량이 넉넉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집 문을 닫아걸고 외부인과 왕래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들은 흑사병 소식을 듣자 잠시도 성안에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진씨 가문과 같은 호족들은 가옥이 요새와 같고 식량이 넉넉해 몇십 년은 먹을 수 있었다.

그들은 흑사병 소식을 들은 뒤 급급히 출성하지 않았다. 단지 집 문을 닫아걸고, 가지고 있는 양곡 가게 문을 모두 닫고 더는 대외적으로 양곡을 팔지 않았다.

많은 백성들은 자기 판단력이 없이 호족들의 행동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더는 성안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원래 주저하던 사람들도 더는 망설이지 않고 짐을 메고 성문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가지 않고 성안에 남아 있으면 죽는 길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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