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7화 폐하께서 강남을 척결해야 해요
"월령안!"
여 총독은 절대 끌 수 없는 큰불을 보고, 화가 정수리까지 치밀어 올라 울부짖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능지처참하고 말 테다."
바로 그때, 관아의 관졸이 달려왔다.
"대인……. 기방(旗幇) 해적들이 분장하고 감옥을 급습해 월령안과 그 동료들을 모두 구해 갔습니다."
"뭐라고? 월령안이 구출됐다고?"
여 총독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눈알이 당장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예, 대인. 그 일행은 배를 타고 달아났습니다. 여 대인께서 병사들을 거느리고 뒤를 쫓고 있습니다……."
"풉……"
관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 총독은 피를 토하더니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쓰러졌다.
"대인, 대인……."
관졸은 급히 여 총독을 부축했다.
"대인, 괜찮으세요?"
"쫓아! 전력으로…… 월령안을 잡아! 죽여라. 사살해도 무방하다."
여 총독은 가까스로 말을 끝내고는 혼절해 버렸다.
* * *
설씨 저택.
육삼은 적잖은 힘을 들여서야 끝내 여 총독과 장씨 가문이 설씨 저택에 심어 둔 정탐꾼을 찾아냈다.
도합 세 명으로 두 명은 설 대인 곁에 있는 사람이고, 한 명은 설 부인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
육삼이 사람을 찾아내자마자 월씨 가문 상사의 사람이 월령안의 명령을 전했다.
"육삼 장군, 설씨 저택의 일은 저희에게 맡기면 됩니다.
아가씨께서 성밖 저택에서 장군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월씨 가문 상사의 사람은 월령안의 명령뿐만 아니라 그녀가 육삼에게 보낸 비밀편지도 가지고 왔다.
육삼은 마음속으로 의문투성이였다. 하지만 비밀편지를 보고서는 의심하지 않고 즉시 말을 타고 성 밖 그들이 전에 거주하던 저택으로 달려갔다.
육삼은 서둘러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여유롭게 차를 끓이고 있는 월령안을 보고 불쑥 물었다.
"월 낭자, 지금…… 탈옥한 건가요?"
"네."
월령안은 가볍게 대답하고서 육삼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설씨 가문 이야기를 좀 해 주세요."
하지만 육삼은 전혀 앉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급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월 낭자…… 여 총독이 낭자를 나포한 죄명이 성립되든지 안 되든지, 낭자가 탈옥한 것은 큰 죄입니다. 여 총독은 반드시 낭자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 총독은 저를 건드릴 상황이 못될 거예요."
월령안은 주전자를 들어서 차 두 잔을 따라 그중 하나를 육삼에게 건넸다.
"제가 두려워하지 않는데, 무엇을 두려워하세요?"
육삼을 이를 악물며 자리에 앉았다.
"아가씨, 여 총독은 폐하의 사람입니다. 폐하는 왕당파에게 늘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애당초 대장군께서는 여 총독을 끌어내리려 했으나, 폐하께서는 여 총독의 봉록을 삭감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로부터 폐하 마음속에서 여 총독의 지위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월령안이 여 총독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으면 그나마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탈옥이라는 명백한 약점을 여 총독에게 가져다 바쳤으니 그자는 틀림없이 월령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은 찻잔을 들어 살짝 한 모금 마셨다.
"그때와 지금은 달라요. 그때 폐하께서는 안정된 강남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지금, 폐하께서는…… 강남을 척결해야 하거든요."
"무슨 뜻이세요?"
육삼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그는 자신과 월령안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되었다.
'폐하께서 강남을 척결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지? 왜 난 아무것도 모르지?'
'왜, 지금 폐하께서 강남을 척결해야 하지?'
육삼은 이해가 되지 않아 직접 물었다.
육삼이 물어보자 월령안은 그를 쳐다보더니 몹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모르고 있나요?"
육삼은 얼떨떨하기만 했다.
'내가 뭘 알아야 하는 거지?'
"저는 조정의 핵심적인 일은 접촉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당신도 접촉할 수 없나요?"
월령안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면서 되물었다.
그 표정은 더없이 과장되었고 가짜라는 것이 너무나 훤히 보였다.
육삼은 월령안이 그에게 복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 그는 그냥 '월 낭자, 당신은 조정의 핵심적인 일은 접촉할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만 했었다.
그 한마디를 이리 오래 기억해 두다니. 그때 그 자리에서 복수한 것도 모자라 지금도 한방 먹이려고 했다.
'월 낭자는 도량이…… 참 넓군. 쯧!'
육삼은 비록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상상할 수가 있었다. 애당초 육장봉이 월령안의 마음을 되돌리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겠는지 가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육삼은 자리에 얼마 앉지도 못하고 즉각 일어서서 정중하게 사과했다.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월 낭자께서 소인을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한 번만 용서해 주시고 소인을 좀 일깨워 주십시오."
그는 정말로 황제가 왜 지금 강남을 척결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척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척결'해야 한다'는 말이 그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심성의껏 질문한 만큼, 제가 조정의 핵심이 아닌 일을 말씀드릴게요."
월령안은 손짓하여 육삼을 앉으라 하고 말했다.
"이제 곧 싸우게 돼요. 이건 알고 있죠?"
"알고 있습니다."
육삼은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의자 한쪽에 걸치고 앉았다.
그는 수시로 일어나 월령안에게 다시 사죄할 준비를 했다.
"그것을 알고 있다면서 아직도 이해가 안 가나요?"
월령안은 자신이 말을 이 정도까지 해 주었는데도 육삼이 여전히 원인을 모를 줄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육장봉이 평소에 어떻게 친위를 양성했기에 그들이 큰일에 대해 이처럼 민감하지 못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육삼은 눈썹을 찌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싸우는 것과 폐하께서 강남을 척결하는 것이 필연적인 관계가 있나요?"
전쟁을 치른다고 해도 그 불길이 남쪽까지는 미치지 않을 것이다.
남쪽은 줄곧 풍요로웠다. 지리적인 우세도 있지만, 누구와 싸우든 전쟁의 불길이 남쪽까지 미치는 때가 극히 드물었다.
남쪽은 상대적으로 안정되었기에 자연히 풍요로웠다.
"싸우려면 돈이 필요해요."
월령안이 냉혹하게 말했다.
"그런데 국고의 돈으로는…… 도저히 전쟁을 지탱할 수가 없어요."
육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 대장군께서는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월 낭자께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폐하께서는 아시나요?"
월령안이 되물었다.
육삼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가 또 물었다.
"당신네 대장군께서 폐하께 알려 줄 수 있나요?"
육삼이 입을 열어 막 대답하려는데, 그녀가 한마디 더 물었다.
"당신네 대장군께서 감히 폐하께 알릴 수 있나요?"
월령안은 연속 세 가지 질문을 던져 육삼이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 다음에야 말했다.
"당신네 대장군께서는 자신이 이미 준비해 두었다는 것을 폐하께 알릴 수도 없고, 감히 알리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알리지도 않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또 그에게 급료와 지급품을 마련해 줄 저도 없어요. 그럼 폐하께서는 어찌 할 거 같나요? 말해 보세요."
"그래서…… 강남을 척결해야 하나요?"
육삼은 긴가민가하며 대답했다.
육삼은 황제가 강남을 척결하는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황제는 성격이 좋고 신하들을 너그럽게 대해 이렇게 오랫동안 집정하면서도 대신의 재산을 몰수한 적이 없었다.
그는 황제가 강남에 칼을 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강남에는 호족이 즐비하고, 하나같이 대부자인 것은 물론이고, 조정의 통제에도 불복해요. 그들을 척결하지 않으면 누구를 척결하겠어요?"
월령안이 되물었다.
육삼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짓자 월령안은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 더 일깨워 주었다.
"잊지 마세요. 애당초 영왕(榮王)의 세력이 바로 강남 일대에 있었어요. 강남의 호족들은 그때 당시 적게든, 많게든 모두 영왕을 지지했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강남에서 문화를 숭상하는 풍조가 강한 데 비해 해마다 이방(二榜)에 들 수 있는 진사가 열 명에 불과하겠나요? 그리고 일갑(一甲)에 든 사람은 백 년 이래 한 손으로도 셀 수 있을 정도예요. 정말…… 강남의 문인들이 과거 시험에 능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결국은 정치 탄압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황실에서 일을 잘 처리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강남 호족들도 제 발이 저리고 이치를 따질 형편이 아니라 모두 불만이 있어도 감히 터뜨릴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원래 자기에게 속해야 할 이익이 끊임없이 착취당하자 마음속 미안함과 불안함은 불만으로 바뀌었다.
특히 남쪽의 세력이 조정에서 갈수록 발언권이 없어지자 강남 호족들은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 몇 년 사이 강남의 세금은 해마다 줄어들고 강남 각 지역은 이곳저곳에서 자연재해가 들었다.
강남 호족들의 불만이 역력하게 드러났는데도 황제는 그들을 위로해 줄 뜻이 전혀 없었다.
생각하건대, 황제도 그들을 살찌워서 척결하려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런 짐작은 육삼과 말할 필요가 없었다. 괜히 육삼이 마음속으로 그녀가 얼마나 부정적이면 사람과 일을 나쁘게만 생각한다고 여길 수도 있었다.
육삼은 자신과 월령안이 보는 조정의 분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조정에서 문관과 무장 간의 다툼만 보았다. 문관 중에서 남쪽과 북쪽 신하 사이에 이렇게 많은 일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육삼은 드디어 자신이 월령안에게 조정의 핵심적인 일에 접촉하지 못한다고 한 말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난감함을 무릅쓰고 가르침을 구했다.
"강남 호족들이…… 무엇을 한 게 없으면 폐하께서도 그들을 건드릴 이유가 없잖습니까?"
황제는 강도가 아니었다. 조정에서 일 처리를 함에 명분을 따졌다. 떳떳한 이유가 없는 한, 황제는 아무리 강남에 손을 대고 싶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때문에 황실도 지금까지 과거 시험에서만 강남 호족들을 탄압하면서 그런대로 용납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지금 폐하께 그 이유를 만들어 드렸잖아요?"
월령안이 비밀스럽게 웃었다.
육삼은 잠깐 멍해 있다가 언뜻 뇌리로 뭔가 스쳐 지났다.
"향혈해인가요?"
월령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육삼은 기뻐하더니 금세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향혈해의 일이 폭로되면 월 낭자께서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때가 되면 월 낭자께서는 어쩌시려고요?"
"당신이 생각하기에…… 제가 강남에서 한 일을 폐하께서 모르실 것 같나요? 향혈해의 일을 폐하께서 모르실까요? 잊은 건 아니겠죠. 그 몇 년 동안 제 곁에 있어 준 분은 염 황숙이었어요. 염 황숙께서는 다른 일은 폐하께 보고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분이 바보같이 영왕 후대에 관한 일을 숨길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때 당시는 말하지 않았다 해도, 황궁에 돌아간 뒤, 염 황숙은 먼저 그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애당초 향혈해라는 이 바둑돌은 바로 노인이 제안한 것이었다.
향혈해를 키우고 이용해, 조정이 필요할 때 강남의 성과를 거두어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그녀가 강남에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노인의 영리함으로 분명 그녀가 무엇을 할지를 알 것이다. 사전에 의논할 필요가 없이, 그녀는 노인이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 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인이 있는 한,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뒷근심을 할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