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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45)화 (845/1,004)

845화 탈옥

곁에 있던 고문이 제때 부축하지 않았다면 아마 땅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대인! 쓰러지면 안 됩니다. 대인께서는 강남의 정세를 책임져야 하십니다."

고문은 여 총독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급히 설득했다.

"괜찮다."

여 총독은 고문을 밀어내며 억지로 몸을 가누었다.

수로의 제방이 붕괴되고, 흑사병 유행이 의심되며, 수군 군영이 습격을 당했다. 이 세 가지 일중 하나만 발생해도 강남 총독 제일인자로서는 골머리를 앓을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세 가지가 동시에 터졌다.

월령안을 죽여 아들을 위해 복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관직이 더 중요했다.

여 총독은 월령안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급히 한마디 분부했다.

"고문, 이 일을 자네한테 맡기겠네. 월령안을 체포해 일단 감옥에 가두게. 내가 돌아와서 다시 신문할 걸세. 내 뜻을 알겠는가?"

여 총독은 마지막 한마디를 특별히 강조해서 말했다. 무언가를 따로 암시하는 것이었다. 고문은 잠깐 멍해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네가 있으니 더는 걱정하지 않겠네."

여 총독은 고문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월령안을 한번 쳐다볼 겨를도 없이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월령안은 여 총독이 급급히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설씨 저택에서 미리 정보를 누설해 그녀의 계획이 틀어졌지만, 사태는 악화되지 않고 여전히 그녀의 통제 범위 내에 있었다.

여 총독이 떠나가자, 설씨 저택의 일촉즉발의 분위기도 완화되었다.

남아서 전반적인 국면을 주관하는 고문은 여 총독이 아니었다. 그는 월령안과 생사에 관련된 큰 원한이 없었다. 그는 여 총독의 뜻에 따라 월령안을 데려가면 되었다. 어떻게 데려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더는 사람들에게 손쓰라고 명하지 않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월 낭자, 대인의 명령을 들었죠. 월 낭자께서는 저희 같은 사람을 난감하게 하지 말고 좀만 협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좋아요."

월령안은 아주 협조적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말이 어찌나 잘 통하는지 마치 방금 전에 여 총독과 날카롭게 맞서던 사람이 그녀가 아닌 것 같았다.

고문은 그녀가 이렇게 쉽게 나올 줄을 몰랐기에 잠깐 멍해 있다가 말했다.

"월 낭자,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잘 협조하면 우리도 당신을 난처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

난처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월령안이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진 다음, 어떻게 처리할지는 그들이 결정하기 나름이었다.

"마님……."

육삼은 눈썹을 찌푸리고, 동의하지 않는 듯한 목소리로 불렀다.

"괜찮아요."

월령안이 그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당신은 설씨 가문의 일을 제대로 확실하게 처리하세요."

고문의 재촉이 없이도 월령안은 자발적으로 관졸에게 걸어갔다. 그녀는 육삼 곁을 지나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반나절밖에 시간이 없어요."

육삼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월령안은 그의 곁을 지나갔다.

"관리 나리, 가도 됩니까?"

월령안이 먼저 물었다. 고문은 한순간 두 사람의 역할이 바뀐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마치 그가 범인이고 월령안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관졸인 듯했다.

"가도 됩니다."

고문은 왠지 갑갑함을 느꼈다.

"고문, 족쇄를 채워야 합니까?"

고문 옆의 병사가 살갑게 다가서며 물었다.

고문은 매섭게 그를 노려보았다.

"채우기는 뭘 채워…… 눈치라고는 없는 놈!"

고문은 고개를 돌리더니 또 월령안에게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월 낭자, 걱정하지 마십시오. 난감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가는 동안만큼은 난감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 총독이 아니었다. 그는 월령안을 보기만 해도 살인 충동을 느낄 정도가 아니었으므로 충분히 인내할 수 있었다.

월령안은 여 총독의 고문을 흘겨보며 피식 웃고는 먼저 밖으로 나갔다.

"멍하니 서서 뭘 해. 어서 따르지 못할까."

고문은 월령안이 자발적으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자 병사를 발로 걷어차더니 바삐 뒤쫓아 갔다.

이에 기타 관졸들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칼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땅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동료를 들어 올리거나 또는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해 월령안을 뒤따라 밖으로 나갔다.

관졸들은 모두 적든 많든 몸에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들은 부상을 입은 동료들을 데리고 가다 보니 전혀 속도를 낼 수 없었다.

혹간 발 빠른 자가 월령안을 따라잡았다 해도 감히 압송하지 못하고 다만 에워싸고 도망치지 못하게 할 뿐이었다.

이렇게 되자 관졸들은 범인을 잡는 게 아니라 월령안을 보호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웬 귀인이 출타하는 줄로 여길 판이었다.

거리의 백성들은 월령안을 둘러싸고 있는 관졸들을 보고 귀인과 부딪칠까 두려워 일찍부터 양쪽으로 물러서서 길을 내주었다.

"혼자 힘으로 전체 강남을 뒤흔들고도 감히 관졸을 따라가다니. 참 재간이 뛰어나 대담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날뛴다고 해야 하나?"

금방 해적 떼를 거느리고 강남 수군을 습격한 향혈해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다루의 별실에 앉아 있었다.

그는 용모가 뛰어나고 기질이 고결하며 우아한 용모를 가졌기 때문에 마치 명문가에서 정성스럽게 키워 낸 귀공자 같았다. 누가 보더라도 그를 해적과 연관 지을 수가 없었다.

그는 창문 곁에 앉아 관졸에게 끌려가는 월령안을 보면서 입가에 웃음기를 띄웠다.

그는 줄곧 월씨 가문이 바다에 심어 둔 꼭두각시로만 남기가 달갑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월령안에게 줄곧 지배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 월령안에게 일이 생겼다. 이는 곧 그에게 기회가 왔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항혈해는 웃음을 머금고 잔의 물을 다 마시고는 탁, 소리가 나게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해적 두목이라는 자각이 없이 대범하게 다루에서 나와 화려한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강남의 호족(豪族) 진(陳)씨 저택 밖에서 멈춰 섰다. 향혈해는 마차에서 내려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 * *

향혈해가 진씨 저택에 들어서는 순간, 월령안도 감옥에 갇혔다.

여 총독은 월령안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 총독의 고문은 물론 그와 태도가 일치해야 했다. 고문은 오는 길에는 방법이 없었으나 감옥에 도착하자마자 태도를 확 바꾸었다. 직접 사람을 시켜 월령안을 고문실로 데려가게 했다.

"듣건대 월 낭자께서는 변경에서 황성사에도 다녀온 적 있다고 하더군요. 아마 감옥의 절차 같은 건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마침 오늘, 월 낭자께서는 우리 강남 옥졸의 수단을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강남 옥졸들은 월 낭자같이 예쁜 미인을 가장 좋아하죠. 뭐 괴롭히는 데 또 다른 재미가 있다던가."

고문은 걸음을 옮기며 음침하고 차갑게 월령안을 겁주었다.

고문실에서는 짙은 피비린내가 확 풍겼다.

형틀에는 한 여인이 고개를 푹 떨어뜨린 채 묶여 있었다. 전혀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여인은 온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손목과 발목의 피부는 밧줄에 졸려 검게 죽어 있었다. 하체는 맞아서 피범벅이 된 채 계속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월령안은 불편함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돌려 고문을 바라보았다.

"내게 형을 들이대려고요? 이건 당신네 대인의 뜻인가요?"

"누구의 뜻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월 낭자께서는 다만 조금 뒤면 아주 고생할 거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고문은 놀란 듯한 월령안을 보자 형틀에 묶인 여인을 가리키며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이 여자는 우리 대인의 애첩입니다. 그런데 대인 몰래 바람을 피웠지요. 대인께서는 저 여인이 마흔아홉 날 동안 고통을 맛보게 하다가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그분의 수하로서 저 여인이 마흔아홉 날 전에 숨이 끊기는 일이 없도록 할 뿐만 아니라 한시도 편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한테 맞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거든요. 보아하니 앞당겨 손써야 할 것 같군요."

월령안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더니 일부러 낙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문은 파안대소하더니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요? 탈옥이라도 하시려고요?"

"왜 탈옥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시죠? 저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저 월령안은…… 여태껏 양민인 적이 없었거든요."

월령안은 말하면서 수전(袖箭)을 들어 고문을 겨누었다.

'슈욱', 하고, 수전이 날아가더니 고문의 심장에 파고들었다.

"너……"

고문은 가슴을 부여잡고 멍하니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움직여!"

월령안은 손목에 찼던 은구슬을 끌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은구슬이 터지면서 연기가 자옥해졌다. 월령안은 짙은 연기 속에 가려졌다.

같은 시각, 고문실 밖에서는 칼을 뽑는 소리, 사람 배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무슨 일……."

슈욱……!

고문실의 관졸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짙은 연기 속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화살마다 모두 그들의 요해처를 찔렀다.

몇몇 관졸은 비명을 지르며 쿵, 하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반응이 빠른 관졸이 뒤돌아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겁에 질려 냅다 소리 질렀다.

"탈옥이다! 누군가 탈옥한다!"

그들이 고문실에서 두어 걸음도 못 갔는데, '포졸' 복장을 한 장정 여러 명이 칼을 들고 고문실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관졸들은 마주 오는 사람들을 보자 마치 제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하나같이 긴장을 풀고는 기뻐서 소리쳤다.

"자네들 마침 잘 왔군. 월……."

쓱싹!

그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포졸'들은 그들에게 정면으로 칼을 휘둘렀다. 시원하고 깔끔한 것이 마치 야채를 베는 것 같았다.

"자네들……."

관졸들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죽을 때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포졸'들은 그들이 쓰러지는 것이 너무 늦어, 아예 달려들어 발로 차 넘어뜨리고는 그들의 시체를 밟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때, 월령안이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왔다.

청색 옷을 입은 그녀는 눈매가 차갑고, 가슴과 옷자락에는 모두 피 얼룩이 져 있었다. 짙은 연기 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마치 나락에서 기어 나온 악마처럼 섬뜩했다.

"큰아가씨, 다치셨나요?"

'포졸' 복장을 한 장정이 월령안에게서 세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멈추더니 친절하게 물었다.

월령안의 얼굴은 서리가 내린 것처럼 차가웠다.

"괜찮다! 어서 사람을 찾아!"

월령안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갔다. '포졸'들은 양옆으로 물러서서 그녀가 지나간 뒤에야 그녀의 뒤를 바싹 따라갔다.

월령안이 점차 멀어지자 고문실 안의 짙은 연기도 점차 사라졌다.

모퉁이에 이르러 그녀는 뒤돌아보았다.

형틀에 묶인 여인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생기를 잃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는 정말로 생기가 없었다.

월령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여자의 부탁에 따라 그녀가 직접 손을 써 깔끔하게 저세상으로 보내 주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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