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4화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감히!”
육삼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려고 하는데 월령안이 그를 꽉 붙잡았다.
“움직이지 마세요!”
“마님!”
육삼은 월령안을 다치게 할까 두려워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울화를 억누르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 ‘마님’ 소리는 월령안에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여 총독에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 총독은 차갑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가 육장봉을 두려워했더라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월령안은 힘을 줘 육삼의 어깨를 눌렀다.
“제가 저자들과 함께 갈 테니 당신은 설부를 지키세요. 간첩을 찾아내세요!”
‘간첩’ 두 글자를 말할 때 월령안은 유난히 강조했다. 말하면서 그녀는 특별히 여 총독을 힐끗 쳐다보았다.
여 총독은 눈도 한 번 들지 않은 채 위압적인 눈빛으로 정의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월령안은 이를 보고 비웃었다.
그녀는 이 사람이 웃지 못할 때를 기다릴 것이다.
여 총독은 눈빛을 흐리더니 엄하게 명령을 내렸다.
“이년에게 족쇄를 채우거라!”
그러나 월령안은 타협하지 않았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위협했다.
“정말 제가…… 당신과 감히 대적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하…….”
여 총독은 냉소를 지었다. 그러자 월령안이 말했다.
“강의 제방이 무너지고 수재가 일어나는 것, 아니면 역병이 전 성에 퍼지는 것. 여 총독, 둘 중 하나를 고르시죠.”
“방자하다!”
여 총독은 월령안의 말을 중히 여기지 않으며 비꼬았다.
“월령안, 큰소리치지 말고 고분고분하게 있거라. 여기는 강남이다. 주나라의 강남. 네가 마음껏 활개를 치던 서역이 아니란 말이다. 강남에서는 월령안 네가 하늘의 봉황이라고 해도 내 앞에서는 기어야 해!”
“그럼 어디 한번……”
월령안은 앞으로 다가와 두 손을 내밀었다.
“채워 보세요.”
“당장…….”
“대인, 큰일 났어요…… 큰일 났어요…….”
바로 이때, 관졸 하나가 비틀거리며 뛰어왔다.
“강의 제방이 무너졌습니다. 잠겼어요…… 봉황산(鳳凰山) 일대의 좋은 밭들이 전부 물에 잠겼어요. 금방 수확한 곡식들도 전부 물에 쓸려갔어요.”
봉황산 아래에는 천 뙈기에 달하는 기름진 밭이 있었다. 이 밭들은 각각 다른 사람들의 명의 하에 있었으나 주인은 오직 한 사람이었다.
바로 강남 총독 여서(余瑞)였다!
“네가 한 짓이냐?”
강의 제방이 무너진 것이 마침 봉황산 아래 지역이었고 여씨 가문의 밭들만 잠겼다. 여 총독은 생각하지 않아도 이것이 바로 월령안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남의 밭 천 무의 일 년 수확량은 적어도 수십만 냥에 달했다. 그것이 이렇게 망가지다니. 여서 총독은 월령안을 집어삼키고 싶었다.
돈의 손해는 그나마 작은 일이었다. 강의 제방이 무너졌다면 조정에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는 강남 총독이라도 연루될 것이 뻔했다.
그는 이 원수를 반드시 기억해 둘 것이다!
“대인께서는 저한테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하려 해도 이렇게 억지를 부릴 수는 없잖아요?”
월령안은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강의 제방이 무너진 것은 자연재해예요, 대인!”
‘내가 한 짓인들 어떡하리? 내가 왜 인정하겠어?’
“좋게 말해서 듣지 않으니 내가 매정하다고 탓하지 말거라!”
여 총독은 육삼을 훑어보더니 손을 들어 명령을 내렸다.
“범인 월령안이 체포를 거부하여 격살한다!”
여 총독이 손을 들자 그가 데려온 관졸이 칼을 들어 월령안에게 휘둘렀다.
육삼이 칼을 들어 막고서 관졸을 물리쳤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노호했다.
“여 총관, 어찌 감히?”
당당한 봉강 대리가 어찌 법규를 어기고 사적인 복수를 위해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게 무슨 얼어 죽을 관리라는 말인가?
이런 관리가 어떻게 백성을 위해 힘이 되어 주고 백성들의 이익을 도모하겠는가?
월령안은 안전지대로 물러선 뒤, 손에 든 수전(袖箭)으로 여 총독을 겨냥했다.
“못할 것이 뭐가 있겠어요? 강남에서는 저자가 바로 황제인데. 이곳에서 여 총독의 말은 성지보다도 중하다고요.”
“같이 죽여!”
강남 총독이 손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상 사람을 살려 둘 리 없었다.
월령안과 육삼뿐만이 아니라 설씨 가문도 모두 죽어야 할 것이다.
“여 총독, 오늘 일은 제가 한 글자도 빠짐없이 대장군께 보고드릴 것입니다! 그때도 총독께서 지금처럼 용기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육삼은 전쟁터에서 단련된 장수였다. 육장봉이 그를 월령안 옆에 붙여 둔 것은 그가 영리하고 영활할 뿐만 아니라 그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었다.
여 총독이 데려온 관졸은 족히 백 명은 되었다. 그러나 육삼은 혼자 힘으로 그들을 막아내고 월령안에 접근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월령안과 육삼이 우세를 차지한 것 같으나 월령안과 여 총독 모두 이 상황은 잠시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육삼이 아무리 용맹해도 혼자였다. 여 총독이 데려온 관졸들은 육삼을 이길 수 없더라도 지치게 만들 수는 있었다. 게다가 여기는 강남이었다. 여 총독에게는 수많은 필살기가 있었고 손만 휘둘러도 그들을 죽일 수 있었다.
그래서 여 총독은 조금도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직접 월령안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면 그는 직접 나설 필요도 없었다. 대충 심복을 파견하면 될 일이었다.
반면 월령안과 육삼은 급할 수밖에 없었다.
육삼은 자기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그는 관졸 백 명을 막아낼 수 있으나 이백, 삼백 명을 막아낼 능력은 없었다. 그는 전력을 다해 공격하여 앞에 선 관졸들이 조금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월령안에게 말했다.
“마님, 먼저 가세요!”
“괜찮아요, 우리 모두 괜찮을 거예요.”
월령안은 안색이 살짝 굳어진 채, 수시로 대문 밖을 바라보았다.
여 총독이 너무 빨리 왔다. 그녀가 시간을 끌려고 했던 계획이 모두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만큼 빨리 왔다.
지금 그녀는 수하들이 빨리 움직여 그녀의 요구대로 엄격히 일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렇게 된다면 여 총독의 시간을 끌지 못하더라도 분신술을 써서 그녀를 감시할 틈이 없게 만들 수 있었다.
푸슉!
육삼이 방심한 틈에 그의 팔에 상처가 생겼다. 새빨간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관졸은 이 상황을 보고 눈에 불을 켠 채, 일제히 육삼을 덮쳤다.
그러나 피를 본 육삼은 겁을 먹지 않았다. 그는 싸울수록 점점 더 용맹해졌고 수단이 점점 더 모질어졌다.
첫 번째 관졸이 그의 칼 밑에 쓰러져 그의 칼의 망령으로 되자 육삼의 눈이 붉어졌다.
“난 내 칼이 우리 주나라 사람에게 휘둘러질 줄 몰랐다! 내가 주나라 병사의 목숨을 취하게 될 줄 몰랐다!”
자기 사람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은 힘든 결정이었지만 육삼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에게까지 양보할 정도로 착하지 않았다!
육삼이 활개 치며 마음껏 죽이자 앞에 있던 관졸들은 하나씩 쓰러졌다.
여 총독은 자신이 데려온 사람들이 상대가 못 되는 것을 보자 생각도 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가서 궁수를 불러오거라!”
재주가 아무리 높아도 빗발치는 화살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 그는 반드시 이 두 사람이 죽는 것을 볼 것이다!
“염치없군! 너 같은 사람은…… 관리가 될 자격이 없다!”
육삼의 두 눈이 벌게졌다. 분노이자 무력감이었다.
그는 주나라에 여 총독 같은 관리가 얼마나 더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여 총독이 절대 특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여 총독은 개의치 않고 코웃음을 쳤다.
“꼬맹이!”
월령안은 아무런 기척이 없는 문밖을 바라보며 조급해졌으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여 총독, 제가 만약 당신이라면…….”
“대인, 대인…… 큰일 났어요! 여 부인의 조카에게 일이 생겼습니다!”
월령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씨 가문 집사가 헐레벌떡 뛰어와 울상으로 말했다.
“대인, 부두의 공인들이 소란을 피웁니다. 여 부인의 조카가 부두의 공인들에게 잡혀 배에 갇혔는데 그 배에는 전에 흑사병에 걸렸던 공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마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는 쓰러지실 뻔했습니다. 소인더러 대인께 알려 얼른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흑사병? 무슨 흑사병?”
여 총독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머릿속에는 저도 모르게 월령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의 제방이 무너지고 수재가 일어나느냐 아니면 역병이 전 성에 퍼질 것이냐. 여 총독, 하나 고르시죠!”
월령안은 큰소리를 친 것이 아니라 정말 저지른 것이었다!
“네가 어찌 감히?”
여 총독의 눈은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월령안, 어찌 감히? 넌 강남에 백성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느냐? 어떻게 감히 이런 짓을 벌이느냐?”
그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육삼을 공격하던 관졸들도 움직이지 못한 채, 하나같이 칼을 들고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우리 대인이…… 미쳤나?’
“대인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월령안은 여씨 가문 집사가 한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 총독이 ‘흑사병’ 세 글자를 말하는 것은 들었다.
월령안은 여태까지 지금처럼 ‘흑사병’ 세 글자가 듣기 좋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여 총독은 정색하며 가슴이 찢어지게 울부짖었다.
“월령안, 사적인 복수를 하고 싶다면 내가 언제든지 함께해 주지. 그러나 넌 절대, 절대로 전 성 백성들을 목숨으로 보복하면 안 되었어. 너 같은 사람은…… 만 번 죽어도 부족해!”
월령안은 화가 나 웃음이 나왔다.
여 총독이 무슨 염치로?
월령안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이 코웃음은 소리가 매우 컸다. 그녀는 실제 행동으로 여 총독을 하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여 총독은 화가 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가 강남 총독이 되고 난 뒤, 누구도 감히 그 앞에서 이런 얼굴을 보인 적이 없었다. 월령안이 처음이었다.
그는 반드시 월령안이 살아 있는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월령안, 강남의 백성을 위해 난 오늘 너와 월씨 상사의 사람을 놔줄 수 없다!”
여 총독은 옷소매를 떨치며 뒷짐을 진 채, 정의롭고 늠름하게 말했다.
“내 명령을 받아라. 바로 강남에 있는 모든 월씨 가문 상사를 조사하고 상사의 모든…….”
다그닥 다그닥…….
바로 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대인! 긴급 군사 상황입니다!"
기마복 차림의 통신병이 쿵쿵 하고 뛰어 들어와 여 총독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는 숨도 고르지 못하고 보고했다.
"대인, 수군 군영이 해적들에게 습격당했습니다. 조(曹) 장군, 엄(嚴) 부장(副將)은 전사하고 군영은 불타고 있습니다. 또 수십 척의 상선이 약탈당해 그 피해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여 총독은 안색이 바뀌더니 휘청하며 한발 물러섰다.
"뭐라 했느냐?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대인, 수군……."
통신병은 똑같은 말투로 다시 한번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여 총독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