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841)화 (841/1,004)

841화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월령안은 화가 나 실소를 하였다.

"제가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녀는 감히 향혈해와 왕래할 수 있었던 건 조정이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왕의 후손이든 아니든 그녀에게 향혈해는 이용하기 좋은 해적 우두머리일 뿐이었다. 또 향혈해의 '신분'이라는 약점이 그녀의 손에 있는 이상, 그는 함부로 월령안과 척을 지지 못할 것이다.

만약 언젠가 향혈해가 말을 듣지 않거나 그녀에게 골칫거리를 가져온다면 그를 죽여서 바다에 버리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그를 위해 복수할 사람도 없으니 매우 안심될 것이다.

육삼은 연신 손을 내저었다.

"아뇨, 아뇨, 아뇨, 제가 어찌 감히."

"제가 보기에는 당신은 아주 감히 할 것 같은데요! 제 앞에서 육장봉에게 고자질을 하는데 못할 것이 뭐가 있겠어요?"

'육삼은 정말 자기가 몰래 육장봉에게 소식을 전한 일을 내가 전혀 따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육삼은 '털썩'하고 무릎을 꿇고서는 다급히 변명했다.

"낭자, 용서해 주세요. 소인은 다른 뜻이 없었어요. 다만 영왕 후손의 일이 크기에 잘 처리하지 못하면 혼란을 불러일으킬까 두려운 것뿐입니다. 낭자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 주나라는 외환이 끊이지 않아 내란이 일어나면 안 됩니다."

이 일은 월령안의 개인적인 일이 아니었다. 이 일은 종묘사직의 안정과 연관된 일이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육삼은 진심으로 거듭 충고하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는 나라와 백성을 걱정한 모습을 보였으나 전혀 월령안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일개 해적 우두머리일 뿐이에요. 그한테 그렇게 큰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이미 백 년이 지나간 일이었다. 지금의 주나라는 조씨 황족의 주나라였다. 영왕 후손의 신분이 향혈해에게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살기뿐이었다.

그녀가 보기에는 향혈해는 절대 진짜 영왕 후손이 아니었다. 만약 그가 정말로 영왕 후손이라면 빨리 죽기 싫은 한, 절대 이토록 떠들썩하게 자기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월 낭자, 낭자께서는 조정의 핵심적인 일을 접촉하신 적이 없으셔서 모르실 것입니다……. 일개 해적 우두머리는 경계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하나 그때 영왕을 지지했던 세가들이 아직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영왕의 후손이 권력을 장악해서 자기들도 가문의 영광을 다시 떨칠 수 있기를 바라죠. 만약 향혈해의 신분이 입증되고 몰래 그 사람들과 연락한다면 손쉽게 추종자를 잔뜩 얻을 수 있어요. 그 추종자들은 모두 돈과 세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육삼이 걱정하는 일이었다.

향혈해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장군이 있는 한, 향혈해는 하늘을 뒤엎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영왕의 후손이라는 신분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 죄를 저지르고 조정에 지명 수배된 해적을 추종한다고요? 세가 사람들을 멍청이로 아시나요? 또 향혈해가 없다고 그 세가 사람들이 조용히 지낼 것 같아요? 참 순진하시네요."

조정의 일에 대해 그녀가 아는 것은 육삼보다 적지 않았다.

'육삼은 순진하게 영왕의 후손이 없다면 황실과 세가가 평화롭게 지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꿈 깨라고 해!'

황실은 집권하기를 원했고 홀로 독대하기를 원했다. 세가는 발언권을 원했고 자신의 이득을 도모하려고 했으며 황실이 그들의 뜻대로 일을 하기 바랐다.

황실과 세가가 존재하는 이상,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육삼은 의아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낭자……."

"됐어요."

월령안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육삼의 말을 잘랐다.

"고자질하러 가고 절 그만 귀찮게 하세요. 전 아주 바빠요!"

육삼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는 제대로 해명을 할 수가 없었다.

* * *

월령안은 육삼을 보낸 뒤, 강남의 토박이에게 배첩을 보냈다. 월씨 상사 가주의 명의로 설(薛) 대인을 만나 뵙고 싶다고 했다.

설씨 가문은 그때 하마터면 장 승상 가족에게 당할 뻔한 사돈집이었다.

설씨 가문은 장 승상 일가와 사돈 관계일 뿐만 아니라 최일이 있는 최씨 가문과도 사돈이었다.

설씨 가문은 강남에서 염광과 철광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정도와 사도를 모두 움켜쥐었다. 독자가 횡사하여 세력이 예전보다 못해도 강남 지대에서는 설씨 가문의 말이 아주 잘 먹혔다.

월령안은 향혈해의 손을 빌려 강남 해역을 휘저어 강남 총독을 귀찮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천궁각의 사람과 배 세 척을 지키려면 설씨 가문의 힘이 필요했다.

심지어 강남 총독을 자리에서 끌어내려고 해도 설씨 가문의 손이 필요했다.

하는 수 없었다. 육장봉이 비록 추밀사고 초품 대장군이지만 강남 총독은 그의 관할이 아니었다. 그가 월권(越權)하여 개입한다면 비록 질책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가 이번에 강남의 일에 개입한다면 나중에 육부도 추밀원의 일을 개입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아무리 높은 관리라도 실제 담당자보다는 실권이 없었다. 육장봉이 변경에 있는데 그가 강남 총독의 일을 적발한다고 해서 어떻게 강남의 설씨 가문이 손을 쓰는 것보다 믿음직스럽겠는가?

물론, 육장봉이 소용없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조정에 사람이 있다면 일을 처리하기 쉬웠다.

설씨 가문에서 상주서를 올렸는데 조정에서 응대하는 사람이 없고 설씨 가문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강남이 아무리 혼란스러워져도 황제는 모를 수 있었다.

안다고 해도 장씨 가문이 강남 총독을 보호하고 싶다면 큰일은 작게, 작은 일은 없게 만들 수도 있었다.

정 안 되면 죄를 뒤집어씌울 사람을 찾을 것이다.

그녀가 변경에 십 년 동안 있으면서 조정의 일에 대해 무장인 육삼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었다.

설씨 가문이 애초에 큰 화를 입고 하마터면 멸문될 뻔할 때, 장씨 가문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거절당했다. 나중에 최일을 통해 월령안에게 도움을 청했고 월령안의 도움을 받아 멸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 *

월령안이 보내온 배첩을 받은 설씨 가문의 가주 설정산(薛定山)은 조금도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즉석에서 말했다.

"어찌 월 낭자더러 날 만나러 오게 할 수 있겠나? 월 낭자가 언제 시간이 되시는가? 내가 안사람을 데리고 찾아뵙지."

설정산은 조정의 사품 명관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월씨 상사의 사람 앞에서 전혀 관리로서의 위엄을 떨지 않고 자세를 몹시 낮추었다. 큰 장면을 많이 봐 온 상사의 관리인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다행히 관리인은 마음을 다잡고 겁먹은 티를 내지 않았다. 물론, 그도 감히 방자한 자세를 취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공손하게 말했다.

"소인은 단지 명을 받아 움직일 뿐이지 감히 큰아가씨를 대신해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설 대인의 말씀을 소인이 큰아가씨께 알리겠습니다."

"물론이지……. 월 낭자의 소식을 기다리겠네."

설정산은 상사의 사람을 보낸 뒤, 돌아서서 저택의 사람들더러 최근 강남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라고 분부했다.

월령안 같은 대상인은 절대 무모하게 강남으로 오지 않을 것이고 아무 일 없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이 강남으로 와서 그를 찾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정을 베풀려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 설정산은 월령안에게 몹시 감사해하고 있었다. 그는 미리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아 월령안이 입을 여는 수고를 덜어 주려고 했다.

설씨 가문은 강남 지역의 토박이였다. 그들은 곧 강남에서 최근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알아냈다.

설정산은 선별을 거친 뒤, 월령안이 아주 큰 확률로 범씨 가문의 강남 마을 일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남 총독이 해적을 잡은 일에 대해서 설정산은 알고 있었지만 그쪽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강남 총독이 선량한 백성을 해적으로 잡아들이고 백성의 개인 재산을 해적의 장물로 취급하는 것은 떳떳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일은 소수의 심복만 알 뿐, 다른 외부인들은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있었다. 강남에서의 설정산의 세력이 크더라도 단기간 내에 그 내막을 알아내지 못했다.

준비를 마친 설정산은 월령안과 만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월령안도 바로 회답을 보내왔다. 설정산이 괜찮다면 다음날 진시(辰时 - 오전 일곱 시에서 아홉 시)에 찾아오겠다는 것이었다.

설정산이 응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하인들더러 마당을 깨끗이 청소하라고 했다. 그리고 진시 일각 전에 설부(薛府)의 대문을 활짝 열고 설정산은 직접 입구에 가서 월령안을 기다렸다.

설정산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고 월씨 가문의 마차가 설씨 저택의 입구에 나타났다.

"월 낭자!"

마차가 멈추자마자 설정산은 앞으로 다가와 맞이했다.

"소인은 낭자의 훌륭한 이름을 익히 들어 왔습니다. 오늘 드디어 뵈니 월 낭자께서는 역시 소문대로 기질이 비범하십니다."

"설 대인 별말씀을요."

월령안은 직접 맞이하는 설정산을 바라보며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상대방에게 공수하며 늘 있는 일인 것처럼 대했다.

설정산도 월령안의 자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월령안을 방 안으로 안내했다.

월령안과 함께 온 공숙소화는 제자리에 굳어진 채, 놀라서 반응하는 것도 잊고 말았다.

'월령안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조정 사품 명관이 대문에서 그녀를 기다리지? 육 대장군이 온다 해도 그저 이 정도 대우겠지?'

"소각주, 들어가실 때가 되셨습니다."

육삼은 공숙소화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한 마디 일깨워 주었다.

공숙소화는 정신을 차리고 육삼을 따라 설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몰래 육삼에게 물었다.

"이 설 대인이 이토록 령안을 예우하는데 혹시 육 대장군의 체면을 봐서 그러는 건가요?"

육삼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공숙소화는 월 낭자의 능력에 대해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 대장군은 이렇게 대단하지 않다고.’

* * *

"에취……."

난각에서 황제와 마주하고 있던 육장봉이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황제가 관심을 두며 물었다.

"감기 든 것이 아니냐? 짐이 태의를 불러 살펴보게 할까?"

육장봉은 도도하면서도 거리를 두는 듯한 시선으로 황제를 힐끗 쳐다보았다.

"신은 아주 건강합니다."

황제가 말했다.

"방금 재채기를 했잖느냐."

육장봉은 은근하면서도 콕 찍어 자랑했다.

"그건 령안이가 제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는 누군가의 그리움을 받아 보신 적이 없으셔서 모르십니다."

황제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