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6화 약을 한 첩 지어 오너라
"이번 일은 우리 월씨 상사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결과가 어떻게 되든 화물선의 돈은 월씨 상사에서 그대로 지불할 거예요. 천궁각의 사람도 우리가 최선을 다해 구할 거예요."
공숙소화는 이 일로 비록 그녀를 질책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공숙소화의 불만을 읽어낼 수 있었다.
월령안은 지금 그녀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공숙소화도 그녀를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공숙 가문과 월씨 가문의 교분이 아닌 그녀와 공숙소화의 친분만으로도, 월씨 상사가 앞으로 천궁각과 협력할 일이 많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녀는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없었다.
세상에는 멍청한 사람이 없었다. 모두의 마음속에 저울이 있었다. 이득을 본다고 해도 잠시뿐이지 평생 이득을 볼 수 없었다.
"배는 우리 손에서 잃어버린 거야. 돌려받는다면 네 능력이지 우리는 너한테서 돈을 받을 이유가 없어."
공숙소화는 월령안에게 화가 난 것이 사실이었으나 월령안이 이렇게 말하자 공숙소화는 갑자기 자기가 소인배가 된 기분이 들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젓고 일어났다.
"됐어요, 지금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에요. 사람과 물건이 모두 강남에 있으니 먼저 좀 쉬세요. 내일…… 오늘 오후, 우리는 강남으로 떠날 거예요. 전 또 볼 일이 남아서 먼저 실례할게요."
말을 마친 월령안은 손님 공숙소화를 홀로 화청에 내버려 둔 채, 성큼성큼 뒷마당으로 걸어갔다.
공숙소화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월령안은 대문을 나선 뒤, 둘러보았지만 육삼을 보지 못하자 아무 천목신교의 교민을 가리키며 말했다.
"육삼한테 뛰지 말고 얼른 그들 대장군에게 몰래 고자질하라고 이르세요. 제 주변에 생긴 일을 잘 보고하고 떠날 채비를 하라고 해 주세요. 오후에 저랑 같이 강남으로 갈 거니까요."
"어……."
금방 옷을 갈아입고 산을 돌아서 뛰려고 했던 육삼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왠지 상처받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됐어,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가서 고자질해야겠다!'
* * *
귀시의 마무리 작업은 최일이 지켜보고 있어서 월령안은 전혀 무슨 사고가 일어날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무림맹 측에도 그녀가 최근까지 정리한 덕에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운행되었다.
그러나 무림 집시가 정상적으로 운행되는 것을 보장하려고 월령안은 월씨 상사에서 경험이 많은 가게 주인과 관리인을 불러왔다.
이것 말고도 월령안은 무당과 소림더러 각각 관리할 수 있는 장로 두 명을 무림 집시에 입주하게 하여 무림 집시의 운행을 감시하게 했다.
권리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감시를 받지 않는 권리를 움켜쥔 사람은 들뜨기 마련이고 나쁜 길로 갈 수도 있었다.
그녀는 사람 마음을 시험해 보고 싶지 않았고 인성을 믿지 않았다. 추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사람 마음을 믿느니 처음부터 완벽한 감시 체제를 만드는 것이 더 나았다.
모든 규칙을 정해서 모든 사람이 그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게 하면 권력과 책임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공과 과오가 불분명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무림 집시가 가져오는 것은 금전의 이익뿐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림의 각 대문파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조심해도 과하지 않았다.
귀시와 무림맹은 모두 월령안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월령안이 유일하게 걱정되는 것은 소년 장평이었다.
전에 월령안과 사의는 의논하여 소년을 서남으로 보내 요양시키려고 했다. 다만 소년의 몸이 허약하여 휴식이 필요한데다 월령안이 조카를 찾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바로 보내기 아쉬워하여 한동안 남겨 둔 것이었다.
지금, 월령안은 남고 싶어도 남을 수 없었다.
월령안은 생각을 거듭해 본 뒤, 추수를 보내기로 했다.
"추수, 반드시 도련님을 안전하게 서남으로 모시거라. 무슨 일이 생기든 반드시 도련님의 안전이 우선이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그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추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미안하지만 추수와 육삼이 당분간 떨어져 있게 할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절대 도련님께서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게 할 거예요."
추수도 월령안의 신임을 저버리지 않고 정중한 얼굴로 장담했다.
월령안은 일을 마친 뒤, 소년을 보러 갔다. 그리고 이 일을 소년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나 그 어떤 일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소년은 월령안이 간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월령안의 허리를 꽉 껴안고 놔주지 않으려고 했다. 월령안이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고 소년의 손가락을 풀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소년은 어디에서 난 것인지 모르는 기운으로 점점 더 꽉 끌어안았고 얼굴을 월령안의 품에 파묻은 채, 끊임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목구멍으로 나지막한 애원 소리를 내는 것이 마치 사람에게 버림받은 새끼 짐승 같았다.
월령안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손을 들어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는 온통 아쉬움뿐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 그녀는 결국 고개를 돌리고 꿋꿋하게 추수에게 분부했다.
"사의를 찾아서 약을 한 첩 지어 오너라."
추수는 잠시 멈칫하더니 대답했다.
"네, 아가씨."
월령안이 말한 약이 무엇인지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흐윽……."
소년은 여전히 월령안을 안고 있었다. 그의 애원하는 흐느낌은 더욱 처량해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했다.
추수는 두어 걸음 걷다가 멈춰서 월령안을 바라보며 그녀의 생각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월령안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졌어도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 얼른 가지 않고!"
"네, 아가씨."
추수는 더 이상 뜸을 들이지 않고 성큼성큼 떠나갔다.
월령안을 안고 있던 소년은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그는 월령안이 전혀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그의 예상과 달랐다.
월령안의 옆에는 고수가 많아 그가 월령안 옆에 바짝 붙어 있지 않은 이상, 월령안을 망가뜨릴 수 없었다.
소년은 화가 나 이를 꽉 악물었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고 계속해서 월령안을 안은 채, 상처받고 아쉬운 모습을 했다.
지금, 그는 희망을 사의 그 멍청한 의원에게 걸 수밖에 없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사의 문수가 월령안이 요구한 약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사의 문수는 월령안이 소년에게 이 약을 쓰는 것을 추천하지 않았다. 또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소년을 서남으로 보내는 것도 추천하지 않았다.
"만약 처음부터 가족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 몰라도 한동안 관심을 주다가 또 그를 버려두는 것은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지금 강제적으로 약을 먹여 보낸다면 깨어난 뒤, 더더욱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심지어 마님께서도 다가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에 했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갑니다."
"네, 알아요."
월령안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계획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뜻이 다분했다.
사의 문수는 조급해졌다.
"마님 말고 도련님은 그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합니다. 서남으로 보낸다면 우리는 어떻게 보살필 수 있겠습니까?"
"그는 귀시에서도 살아남았으니 서남에서도 살아남을 것입니다."
월령안은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시선에 담긴 우울함을 감추려고 눈을 내리깔았다.
"월씨 가문의 아이는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요."
"그 말은……."
사의 문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그것은 아니겠지?'
월령안을 안은 소년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월령안이 뭔가를 의심하는 건가?'
그는 스스로 아무런 허점도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연관된 모든 사람을 죽였으니 월령안이 뭔가를 알아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젓고 사의 문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약을 주세요."
그녀는 아무것도 의심하고 싶지 않았고 유일한 가족에게 의심을 품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유일한 가족을 잘 보호하여 그가 무사히 살아 있기만을 바랐다.
다른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사의 문수는 월령안을 힐끔 보고 또 월령안을 안은 채, 낮은 목소리로 울부짖는 소년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약을 월령안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나이가 많아 눈썰미가 좋지 못했다. 그래서 눈앞의 사람이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가주인 사람이 소년을 보내기로 결정했으니 의원인 그는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장평이 착하지, 약을 먹어야지."
월령안은 약사발을 들고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소녀는 당연히 약을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월령안도 아주 인내심이 있게 약을 든 채로 달랬다.
사의 문수는 옆에 서서 어리둥절해졌다.
'이 소년이 이상하다고 의심하는 게 아니었나? 왜 이렇게 상냥하게 달래는 거지? 약을 억지로 먹이면 되잖아?'
사의 문수는 아주 궁금했으나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옆에 선 채, 월령안이 참을성 있게 소년을 달래는 것을 바라보았다. 소년이 지쳐서 조용해지자 월령안은 그제서야 소년에게 약을 먹였다.
약을 마실 때, 소년은 여전히 매우 반항적이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상냥할 때는 정말 상냥해도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정말 매정했다.
소년이 반항해도 월령안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달래는 것으로 소년에게 약을 먹일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자 월령안은 추수에게 눈치를 주었다.
추수는 그 뜻을 깨닫고 소년이 한눈판 사이, 소년의 잠혈(睡穴)을 눌렀다.
사의 문수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잠혈을 누를 수 있으면서 왜 저더러 약을 달이라고 한 건가요?"
'바지를 벗고 방귀를 뀌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이잖아?'
월령안은 눈에 물기를 머금은 채, 울먹이는 말투로 말했다.
"낯선 사람은 다가갈 수 없으니 이 약에 장평이가 신경을 쓰는 동안 추수가 손을 쓰기 편하게 한 거예요."
그녀는 평소에도 장평에게 약을 먹였다. 장평은 비록 거부반응을 보였으나 매번 받아 마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시려고 하지 않았다. 장평이가 그녀 손에 든 약의 작용을 아는 것이 분명했다.
'왜 나를 평생 속이지 않는 거야? 난 평생 속아도 상관없는데.'
월령안은 직접 소년을 안아서 침대에 눕혔다. 조용히 잠든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선의 서글픔이 점점 다행스러움으로 바뀌었다.
월씨 가문에는 나약한 아이가 없었다. 상처를 받고 속셈이 있는 소년으로 자라는 것이 두려워할 줄밖에 모르는 것보다 나았다.
장평이는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속셈이 있고 꿍꿍이가 있으며 심지어 고모인 그녀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어도 괜찮았다. 그녀는 오직 이 아이가 월 삼낭처럼 멍청하게 살지 않고 그의 새 이름처럼 명이 길고 평안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 고모는 아주 이기적이야. 난 너의 목숨을 살릴 수는 있어도 네가 마음대로 살게는 할 수 없으니까.'
"아가씨?"
추수는 걱정스럽게 불러 보았다. 그녀의 눈에 걱정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육삼이 여러 번 그녀더러 도련님을 조심하라고 일깨워 주었었다.
그녀는 도련님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아가씨의 상처받은 얼굴을 보니 도련님에게 진짜 문제가 있구나 싶었다.
생각해 보니 그도 그럴듯했다.
귀시에는 착한 사람이 없었다. 만약 도련님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 말조차 알아듣지 못한다면 진작에 귀시에서 굶어 죽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도련님의 몸에는 예전의 상처만 있을 뿐, 새로 생긴 상처도 없었고 손가락의 굳은살도 두껍지 않았다. 비록 고생을 했어도 몇 년 전의 일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추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