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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35)화 (835/1,004)

835화 해적

월령안이 몸을 일으켰을 때, 장평은 몸을 웅크리지 않고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를 본 월령안은 지금 떠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떠나기 전에 월령안은 또 약속했다.

"금방 올게."

아쉽게도 장평은 전처럼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고 걸어 나갔다.

추수는 이 도련님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월령안이 있을 때에는 그나마 괜찮았으나 월령안이 곁에 없다면 다른 사람이 그와 가까이하기만 해도 몸을 웅크렸고 만약 누군가 그를 건드린다면 사람 소리 같지 않은 날카로운 괴성을 질렀다.

그래서 월령안이 떠나자 추수도 묵묵히 문가로 물러서서 눈으로만 소년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추수는 계속해서 지켜보지 못했다.

소년은 비록 볼 수 없었으나 아주 민감했다. 추수가 오래 지켜보면 소년도 덩달아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추수는 월령안이 장평이라고 이름을 지은 이 소년이 그녀의 시선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월령안이 떠나가자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무심결에 바퀴 의자 손잡이를 만지며 옅은 색의 입꼬리를 슬쩍 올려 비웃음을 드러냈다.

'육 대장군이 가자마자 천궁각의 소각주가 찾아오다니. 월령안의 매력은 참 대단한걸!'

* * *

천궁각의 소각주가 다녀가게 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공숙소화도 월령안에게 안부를 물을 여유가 없었다. 월령안이 나오자마자 공숙소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월씨 가문에서 주문한 배가 압류되었어."

"무슨 배요?"

월령안의 발걸음이 멈추더니 일시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오 년 못 본 사이에 공숙소화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전보다 몸집이 많이 크고 단단해졌으며 오 년 전처럼 마르고 음울해 보이지 않았다.

이 오 년 동안 공숙소화는 잘 지낸 듯해 보였다.

"네가 천궁각에서 주문한 그 배 몇 척 말이야. 우리가 띄워서 시험해 보는데 관부에 강제적으로 압류해 갔어."

공숙소화의 커다란 몸집이 월령안 앞으로 다가가니 뒤로 보면 마치 월령안을 품에 안은 듯했다. 밖에서 지키고 있던 육삼은 본능적으로 쳐들어왔다. 그리고 이 장면을 본 그는 오해하고 말았다!

"뭐야?"

"무슨 일인가요?"

월령안과 공숙소화는 동시에 육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육삼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월 낭자의 의심을 피할 수 있지?'

육삼은 바짝 긴장해졌다. 그는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꾹 참고 더듬거리며 한마디 했다.

"저…… 소인은 귀한 손님께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지 물으러 들어왔습니다."

"용건이 이것뿐인가요?"

월령안은 흘깃 육삼을 흘겨보았다.

육삼은 몸을 흠칫 떨더니 한쪽 무릎을 꿇으며 사죄했다.

"소인…… 소인의 실책입니다. 낭자께서 벌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그의 얄팍한 수가 월령안의 눈을 속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정말 그의 탓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대장군이 모든 다른 마음을 품은 남자가 마님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으라고 명령을 내렸고 그는 대장군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뿐이었다.

"먼저 나서서 벌을 받겠다고 하시니 그럼 벌을 받으세요. 제 기억에는 당신네 장군이 항상 달리기를 벌로 내렸었죠. 저도 다른 벌을 내리지 않을게요. 당신네 장군처럼 달리기를 벌로 내릴게요."

'역시 육장봉의 사람은 역시 육장봉의 사람이구나. 내 옆에 있어도, 내가 아무리 잘해 줘도 마음은 항상 육장봉에게 가 있어.'

월령안은 육장봉이 자기의 일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이 육삼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그녀는 원래 적당한 이유를 둘러대서 육삼을 멀리 보내려고 했다. 지금 육삼이 그녀의 손에 걸려들었으니 그녀도 봐줄 필요가 없었다.

"네, 마님."

육삼은 달려야 한다는 말을 듣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별장이 크지 않아 열 바퀴를 달려도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육삼은 이 안도의 한숨을 너무 길게 쉬었다!

월령안은 생긋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별장이 좀 작으니 이산을 열 바퀴 달리세요."

"나, 낭자……."

육삼은 눈을 크게 뜨고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 낭자는 진심인 건가? 이산이 얼마나 큰지 낭자도 직접 다녀오셨으면서 모르시는 건가?'

열 바퀴는커녕 한 바퀴만 달려도 지쳐서 숨이 찰 것이다.

"지금 낭자라고 불러도 늦었어요."

월령안은 입만 웃으며 육삼을 바라보았다.

"물론, 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튼 당신은 몸만 여기에 있을 뿐이니까요."

육삼은 몸을 흠칫 떨더니 아주 서운해하며 말했다.

"낭자, 아닙니다."

그는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뻔뻔스럽게 월 낭자의 옆에 남을 수 있었다. 그러면 장군이 시킨 임무도 완성할 수 있었고 또 추수와 함께할 수도 있었다.

월령안은 낮은 소리로 비꼬았다.

"최일의 일은 누가 육장봉에게 보고한 건가요? 제가 이산에서 귀시와 만날 때, 육장봉이 그토록 제때 나타난 것은 또 누가 알려 준 거죠?"

육삼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소용이 있겠는가?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 옆에는 몇 사람밖에 없었다. 추수와 무림맹의 사람들은 절대 그녀 몰래 그녀의 일을 상세하게 육장봉에게 보고할 리가 없었다.

이런 일을 할 사람은 육삼밖에 없었다.

비록 육삼의 보고로 육장봉이 제때 온 덕분에 그녀가 목숨을 건졌다고 하지만 육삼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육장봉이 알면 안 될 일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육삼이 그녀에게서 녹봉을 받으면서 몰래 육장봉에게 소식을 전해 주는 행위는 주인을 배신하는 것과 무슨 다른 점이 있다는 말인가?

"낭자, 소인은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육삼은 억울한 얼굴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전혀 모른다는 듯 정직한 얼굴을 했다.

역시 그 소리였다. 그는 맞아 죽더라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이 증거가 없는 데다가 만약 증거가 있다고 해도 그는 끝까지 모르쇠를 댈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뻔뻔스럽게 월 낭자 곁에 남겠어? 월 낭자 곁에 있지 못한다면 어떻게 추수와 함께할 수 있겠어? 아직 추수에게 허락의 말도 듣지 못했는데.'

"그래요, 믿을게요. 제가 말했잖아요, 뛰지 않아도 된다고요. 아무튼 전 당신의 주인도 아니고 상전도 아니니 당신을 어찌할 수가 없죠. 안 그래요?"

월령안은 육삼과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관부도 아니니 증거로만 말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육삼이라고 생각한다면 육삼인 것이었다. 육삼이 스스로 결백을 밝힐 수 있는 증거를 내놓는다 해도 소용없었다. 더구나 육삼은 아무것도 내놓을 수 없었다.

"낭자……."

육삼은 더 변명하고 싶었으나 월령안은 이미 육삼을 빙 둘러 가서 공숙소화더러 앉으라고 했다.

"월씨 상사가 주문한 배가 압류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이에요? 자세히 좀 얘기해 봐요."

월령안은 엄숙한 얼굴을 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육삼은 돌아서서 두어 마디 변명하려고 했으나 월령안을 보고 묵묵히 입을 닫았다. 그리고 일어나 공손하게 물러났다.

'열 바퀴를 뛰라면 뛰지 뭐. 월 낭자가 하루 안에 다 뛰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열 바퀴라면 천천히 뛰면 되겠지? 하루가 안 된다면 열흘…… 다 뛰고 나면 난 여전히 그 착한 육삼이야.'

공숙소화는 육삼을 훑어보고 월령안의 맞은편에 앉았다.

공숙소화가 이번에 다급히 인맥을 잔뜩 동원하여 월령안이 묵는 거처를 알아낸 것은 월령안에게 소식을 전해 주기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숨기지 않고 사건의 전말을 빠짐없이 월령안에게 들려주었다.

"너 전에 우리더러 나머지 화물선 몇 척을 빨리 만들어내라고 했잖아. 우리가 급히 만들어서 열흘 전에 다 만들어냈어. 화물선이 제조된 뒤, 우리는 가까운 바다를 선택해 시험해 보려고 했어.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배를 띄워 볼 때, 바다를 순찰하는 수군을 만나게 된 거야.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나도 몰라. 그때 양측이 바다에서 충돌이 생겼는데 우리 쪽 사람은 수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어. 수군은 우리 사람들과 배를 함께 압류했어. 지금 사람과 배 모두 강남으로 데려갔어. 총독부에서 대외적으로 내놓은 소식은 강남 수군이 해적을 잡았는데 추후에 참수하고 배는 몰수하여 공유화한다는 거야."

엄밀히 말하자면 이 일은 월령안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을 해결할 수 없었다.

사람이든, 배든, 그들은 지금 뾰족한 수가 전혀 없었다.

조금이라도 방법이 있었더라면 그는 월령안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총독부? 총독부에서 이번 일을 한 거란 말이에요?"

'우연인가?'

그들이 최일을 도와 강남 총독의 자리를 도모하자 강남 수군이 그들의 사람과 배를 압류하고 해적이라는 누명을 씌웠다.

"그래! 자세히 알아보니 강남 총독이 조정에서 해상 경계를 강화한다는 것을 알고 직접 병사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 수군을 훈련시킨 것이었어."

공숙소화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조정에서 갑자기 수군을 훈련시키고 해상 경계를 강화하는 것은 월령안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월령안은 냉소를 지었다.

"정말 공교롭네요!"

강남 총독은 직접 수군을 데리고 해상 훈련을 하다가 마침 천궁각의 배가 시험 운행하는 것을 마주치고 또 해적으로 오해해 공격했다. 이게 만약 우연이라면 그녀는 손바닥으로 장을 지질 것이다!

"령안, 이 일은…… 우리 천궁각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 우리가 배를 잘 보호하지 못해서 예정대로 너에게 넘기지 못했어. 하지만 이번 일은 정말 우리 천궁각에서 해결할 수가 없어."

공숙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이 도대체 누가 누구한테 연루되었는지 그와 월령안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배는 그들 천궁각의 손에서 잃어버린 것이어서 그들에게 책임이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지금 월령안더러 사람을 살려 달라고 사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숙소화는 마음속으로 불만이 약간 있더라도 부드러운 말투로 월령안과 의논했다.

"령안, 이렇게 하는 게 어떤가 봐봐. 만약 네가 화물선 세 척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전에 주문한 그 큰 배까지 우리 천궁각에서는 목재값만 받고 다른 것은 하나도 받지 않을게. 네가 우리 천궁각의 시험 운행한 장인들을 구해 줘. 그들은 모두 우리 천궁각의 오래된 사람들이야. 우리는 그들을 절대 모르는 척할 수 없어."

사람과 배를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결과였다. 그러나 공숙소화는 일이 사람 뜻대로만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숙소화는 또 덧붙였다.

"그 배 세 척을 돌려받지 못한다면 손해는 우리 천궁각에서 책임질게. 우리는 전에 네가 주문했던 큰 배를 보상으로 줄게. 네가 전에 물었던 약정금도 그대로 돌려줄게."

상인은 상업적인 방식으로 얘기를 한다고 이는 그들 천궁각에서 책임져야 했다. 피할 수 없을 바에는 월씨 상사에서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먼저 입을 여는 것이 더 나았다.

그러나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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