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3화 떠나는 뒷모습
“정말 괜찮으세요?”
월령안은 육장봉과 깍지 낀 손을 가볍게 흔들며 발끝으로 땅 위의 돌멩이를 툭툭 찼다. 그리고 사악한 웃음을 띠며 물었다.
“주나라와 북요는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오. 폐하께서는 날 쓰셔야 하오.”
그에게 이용 가치가 있는 이상, 황제는 기분이 아무리 언짢아도 참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이 형제도 크게 의리가 강하지는 않네요…….”
월령안은 동정 어린 얼굴로 육장봉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둘은 따뜻한 말을 주고받았지만 가치가 새겨져 있는 관계였다.
“폐하께서는…… 드물게 의리 강하신 황제시오.”
육장봉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월령안의 손을 잡고 풀숲 사이의 그네로 걸어갔다.
“제왕은 정과 의리가 있을 수 있으나 한 제왕에게 정과 의리를 중히 여기라고 요구할 수 없소. 수횡천이 정과 의리를 중히 여기지? 만약 폐하가 수횡천 같다고 생각해 보시오.”
월령안은 퉁명스럽게 육장봉을 흘겨보았다.
‘지금은 수 오라버니 얘기를 할 때가 아니잖아요.’
육장봉은 가볍게 웃으며 풀숲의 그네를 가리켰다.
“가서 앉소, 내가 밀어주겠소.”
“당신이 준비한 거예요?”
월령안은 한눈에 이 그네가 금방 세운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천목신교는 거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절대 이런 귀여운 물건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그렇소.”
이 그네 틀은 그가 이틀 전에 사람을 시켜 준비한 것이었다.
정원 가득 핀 꽃을 바라보던 육장봉은 춘일연의 배나무숲에서 그네를 타던 월령안이 떠올랐다.
그때 이후로 그의 머리에는 정원 가득 핀 꽃은 바로 그네를 타는 월령안이라고 인식되었다.
“좋네요, 나중에…….”
‘장평이를 데리고 그네 타러 와야겠어요.’
월령안이 말을 채 맺지 않았는데 육장봉에 의해 높이 밀렸다.
“이건 내가 당신을 위해 준비한 그네요. 당신 말고 그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 되오. 알겠소?”
“제 말은…… 나중에 많이 타겠다고요.”
월령안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양측을 잡고 있었다. 그녀는 높게 올라가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운 넘치게 육장봉을 재촉했다.
“더 높게요, 좀 더 높게요.”
“그래, 더 높게.”
육장봉은 월령안이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 힘을 주어 월령안을 더 높게 밀었다.
“전…… 날고 있는 것 같아요.”
허공까지 올라간 월령안은 다리를 흔들며 즐겁게 소리를 질렀다.
육장봉의 무뚝뚝한 얼굴에는 미소가 걸렸다. 그는 월령안을 더욱 높게 밀었다.
“그럼 더 높게 날아 보시오.”
‘그네를 타고 월령안의 기분이 크게 좋아질 줄 알았다면 진작에 데리고 그네 타러 올 것을 그랬어. 월령안이 매일 장평이라는 애와 시간을 보내지도 않게 하고 말이야. 그 애를 보면 우울하고 죽을 정도로 괴로울 게 뻔한데 억지로 웃으며 애를 달래야 하다니. 정말 가슴 아파 죽겠네.’
월령안은 크게 웃었다.
“제가 날아간다면 당신은 어떡해요?”
그네가 흔들리자 월령안의 치맛자락도 바람에 나풀거렸다. 마치 공중에서 춤을 추는 오색나비처럼 생생하고 눈부셨다.
“날아간다면 내가 쫓아가면 되지.”
‘아무튼 ‘끈’이 내 손에 있는데 월령안이 아무리 높이 날아올라도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어.’
그는 비록 월령안을 꽁꽁 숨겨 두고 혼자만 보고 싶었지만 월령안의 ‘날개’를 꺾고 싶지 않았다.
그는 월령안이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고 마음껏 ‘날아오르기’를 바랐다.
“이 답에 전 당신에게 만점을 줄 거예요. 자만하셔도 됩니다.”
월령안은 즐겁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마치 은방울 소리처럼 듣기 좋았다.
정원은 월령안의 환희에 찬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별장의 많은 사람들도 들었다.
천목신교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푸근한 ‘엄마 미소’를 지었다.
‘우리 교주께서 이제서야 철이 드는군. 우리에게 곧 교주 마님이 생기겠어.’
별장 전체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사람들의 얼굴마다 기쁨의 미소가 넘실거렸다.
오직 월령안이 장평이라고 이름을 지은 소년만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손톱으로 벽을 힘껏 그으며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데 월령안은 왜 이렇게 즐겁게 웃는 거지? 같은 성씨지만 난 인간 같지도 않게 사는데 월령안은 왜 행복할 수 있는 거지? 월령안은 죽어야 해! 끝없는 욕설과 자책 속에서 죽어야 해!’
끼익…….
손톱이 다시 벽을 그으며 길게 흔적을 냈다.
* * *
육장봉은 아침 일찍 떠났다. 떠나기 전에 그는 배웅해 달라는 핑계로 억지로 월령안을 침대에서 끌어내렸다.
“어젯밤에 배웅했잖아요?”
잠든 지 한 시진도 안 되어 깬 월령안은 난폭해질 뻔했다.
어제, 육장봉은 곧 변경으로 돌아간다는 이유로 월령안더러 자기와 시간을 많이 보내달라고 했다.
월령안도 이번에 헤어지게 되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몰라 장평과 저녁 식사를 한 뒤, 쭉 육장봉과 시간을 보냈다.
육장봉과 산책하며 별을 보고 육장봉과 그네를 타며 귓속말을 하고 마지막에는 직접 주방으로 가 육장봉에게 밤참을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동틀 무렵에야 월령안은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녀는 육장봉이 떠나고 나면 오전에 늦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배웅까지 해야 할 줄이야.
깊은 잠에 들자마자 육장봉에 의해 깨어난 월령안은 원망 가득한 얼굴로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장평이를 찾은 후부터 그녀는 줄곧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어젯밤에 많이 지친 탓에 간만에 단잠이 들었는데 육장봉에 의해 깨어난 것이었다.
‘내가 정말…… 육장봉에게 빚이라도 졌나?’
월령안은 허탈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온몸으로 힘들고 서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하였다. 그는 기분 좋게 월령안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치고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대었다.
“어젯밤에는 당신이 이 시간 동안 날 냉대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고 오늘 아침에 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배웅이오. 게으름 피우지 마시오.”
포동포동한 얼굴이 육장봉의 손에 받쳐진 채로 넋을 잃고 멍하니 있는 그녀의 모습은 늑대가 물어 가기를 기다리는 약하고 힘없는 흰 토끼 같았다.
육장봉은 참지 못하고 꾹 눌렀다. 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이 토끼를 만지는 것보다 더 느낌이 좋았다.
“앗…….”
월령안이 소리를 지르며 화가 난 듯 육장봉의 손을 찰싹, 쳤다.
“손을…… 흔들면…… 침이…… 나오잖아요.”
“이렇게 흔들면?”
월령안이 치는 것은 육장봉에게 간지럼을 피우는 것과 비슷했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얼굴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월령안이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자 생존 욕구가 강한 육장봉은 바로 손을 풀고 월령안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가기 아쉽구려.”
순간, 방 안의 분위기는 즐겁던 데로부터 이별의 우울함으로 가득해졌다.
월령안은 몸을 빼려고 발버둥 치려 했으나 이 말을 듣자 육장봉을 껴안고 얼굴을 그의 품에 대었다.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렇게 조용히 육장봉을 안고 있기만 했다.
육장봉이 변경으로 돌아가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가지 않더라도 내일, 모레는 반드시 떠나야 했다.
상인은 이익을 중히 여기고 이별을 가볍게 여기는 법.
월씨 상사의 가주로서 그녀는 육장봉과 함께 떠날 수 없었다.
이별은 그들에게 더없이 흔한 일이었다. 이번 이별은 처음이 아니었고 또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그녀는 육장봉에게 해 줄 말이 없었고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었다.
육장봉도 말없이 가볍게 월령안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손끝으로 월령안의 머리끝을 감으며 깊은 눈빛을 했다.
한참 뒤에야 월령안이 입을 열었다.
“전 당신을 배웅하고 싶지 않아요. 전 줄곧 이별을 싫어했고 배웅은 더욱 싫어했어요. 어렸을 때, 전 항상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떠나는 것을 배웅했죠. 한 번, 또 한 번……. 매번 전 항상 그들의 뒷모습이 제 앞에서 조금씩 사라지며 점점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았어요.
더 어렸을 때에는 철이 없어서 전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집을 나가려고 할 때마다 그들의 다리를 붙잡고 놓지 않았어요. 울면서 가지 말라고, 절 버리지 말라고 사정했죠. 하지만 소용없었어요. 그들은 한 번, 또 한 번 절 떠났어요. 나중에 그들은 제가 울고 떼를 쓸까 두려워 저 몰래 떠났어요. 자주 제가 잠에서 깨면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보이지 않았어요.
나중에 저는 철들었어요. 제가 어떻게 해도 그들이 떠나는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심지어 전 그들을 배웅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울거나 떼를 쓰지 않고 고분고분하게 어머니와 함께 그들이 떠나는 것을 배웅했어요. 그리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죠.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는 순간부터 전 속으로 언제면 그들이 오는지 기다렸어요. 기대가 있으니 헤어질 때도 그렇게 괴롭지 않았어요. 오히려 기다림의 희열로 가득했죠.”
월령안의 목소리는 아주 가볍고 부드러웠으며 그리움과 서글픔이 묻어 있었다.
“그렇다고 제가 배웅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전 배웅하는 것을 싫어해요. 특히 다른 사람이 떠나는 것을 배웅하는 것은 더욱 싫어요.”
월령안은 육장봉을 꽉 끌어안고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육장봉, 아세요? 제가 평생 가장 많이 본 것이 바로 뒷모습이에요. 전에는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뒷모습이었고 나중에는 영감님의 뒷모습이었고. 그리고…. 당신 것이었어요. 변경에 있는 그 몇 년간, 전 줄곧 모퉁이에 서서 당신이 길거리로 나가는 것을 보고, 당신이 점차 멀어지는 것을 보았죠. 당신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더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어요.
당신의 이혼장을 받고 이 이혼장을 든 채로 당신 앞에 서는 순간, 전 마음속으로 되뇌였어요. 오늘부터 저 월령안은 더 이상 당신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지 않겠다고, 더 이상 제자리에 서서 당신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요. 전 당신들보다 먼저 돌아서서 먼저 떠날 거예요. 당신들이 제 뒷모습을 보게 할 거라고요.”
월령안은 고개를 들어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친밀한 사람의 모습이 조금씩 시야에서 사라지는 기분은 아주 괴로워요. 육장봉, 당신은 그래도 제가 배웅해 줬으면 좋겠어요?”
‘당신을 배웅하더라도 전 먼저 돌아서서 먼저 돌아올 거예요.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당신이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지 않을 거예요. 제자리에서 서서 당신을 기다리는 일은 더더욱 없을 거예요.’
“왜 싫겠소!”
육장봉은 고개를 숙이고 월령안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잠시 뒤, 당신이 먼저 돌아서서 떠나시오. 난 그 자리에 서서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볼 것이오. 당신도 날 기다리지 마시오. 당신이 어디 가든 나 육장봉은 당신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
“당신이 그토록 자신을 모질게 군다면…… 그러면 당신 뜻대로 하죠. 저의 대장군.”
월령안은 가볍게 웃으며 발끝을 들어 육장봉의 턱을 살짝 깨물었다.
깨문 뒤, 월령안은 바로 물러섰다. 그러나 물러서려고 할 때, 갑자기 육장봉에게 와락 안겼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오.”
월령안에게 반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육장봉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고개를 숙여 월령안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월령안이 놀라서 숨을 들이키자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월령안의 입 안을 침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