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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31)화 (831/1,004)

831화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

한편으로 소년은 월령안이 옆에 있어 주자 점차 안정적으로 변해갔다. 월령안의 보살핌 속에서 소년은 정신이 맑을 때, 사의 문수의 진찰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월령안은 이 때문에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그녀는 번거로운 것이 싫지 않았다. 또 소년을 위해 힘과 정신을 쏟는 것도 싫지 않았다. 그녀는 소년이 자신을 가두고 있어 치료에 진척이 없을까 봐, 그래서 소년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할까 봐 두려웠다.

육장봉의 명령이 있자 사의 문수는 소년의 병에 매우 신경을 썼다. 서남의 상황을 안 뒤, 사의 문수는 또 소년의 병세에 맞게 월령안에게 처방전을 작성해 주었다.

처방전은 무려 열 장에 달할 정도로 길었는데 아주 귀한 약재들이 필요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황제의 국고에서도 다 구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월령안은 처방전을 보고 사의 문수에게 한 달만 시간을 준다면 처방전의 약재를 모두 구해 오겠다고 장담했다.

사의 문수는 월령안이 이토록 통쾌한 것을 보고 처방전에 사적인 물건을 적지 않은 것을 몰래 후회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지 않아도 월령안은 알 수 있었다.

의원이란, 신의든 사의든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손불사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면서 의원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월령안은 대범하게 사의 문수에게 앞으로 필요한 약재가 있다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했다. 세상에 있는 것이라면 그녀는 반드시 구해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사의 문수에게 이 약재를 어떻게 쓸 것인지, 심지어 누구에게 쓸 것인지도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사의 문수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녀는 줄 것이다. 다만 전제는 사의 문수가 최선을 다해 그녀의 조카를 치료하고 조카의 병세도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인재에게 줄곧 대범했다. 사의 문수가 그녀에게 가치를 증명해 주기만 한다면 뭘 원하든 그녀는 모두 구해 줄 것이다.

사의 문수는 하마터면 월령안에게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는 손불사, 그 무림인들에게 추앙받는 신의가 왜 월령안을 위해 목숨을 거는지 드디어 알게 되었다.

월령안의 이 통 큰 성미를 보면 그도 기꺼이 월령안을 위해 목숨을 걸게 될 것 같았다!

육장봉이 압력을 가할 필요도 없이 사의 문수는 가슴팍을 두드리며 월령안에게 장담했다.

“소공자는 저한테 맡기세요. 제가 있는 한, 소공자는 분명 점점 더 좋아질 거예요.”

그는 소년의 병을 완치하지는 못해도 소년이 죽지 않도록 할 수는 있었다.

사의 문수의 확답을 듣자 월령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는 방금 가족을 찾았고 이 가족은 그녀를 매우 의지했다. 월령안은 지금 온통 이 소년밖에 보이지 않고 소년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 열두 시진 동안 소년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지경이었다.

사실상 그녀는 이렇게 하고 있었다.

귀시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틈을 타서, 육장봉이 있는 틈을 타서 월령안은 모든 일을 육장봉에게 맡기고 소년을 보살피는 데 집중했고 소년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장만하는 데 신경 썼다.

월령안은 누군가에게 잘해 준다고 하면 하늘의 별까지도 따 주는 사람이었다.

그때, 육장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녀는 오라버니의 아들을 찾았고 또 이 아이가 이토록 불쌍하니 월령안은 소년에게 더더욱 극진했다.

먹는 것과 입는 것 모두 하나같이 모두 월령안이 손수 준비한 것이었다. 월령안은 또 소년을 위해 손수 옷까지 만들어 주었다. 육장봉은 이를 알고 질투가 나서 어쩔 바를 몰랐다. 육장봉은 소년이 자기를 도발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착각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착각이든 아니든, 육장봉은 월령안이 조카가 생긴 뒤, 그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 * *

수횡천은 귀시를 토벌한 무림 고수들을 데리고 일정을 앞당겨 돌아왔다. 또 그다지 좋지 않은 소식도 가져왔다.

“귀시의 사람이 모조리 죽었다. 그런데 우리 손에 죽은 것은 아니야. 우리와 싸우다가 갑자기 하나하나 몸이 터지더니 죽어 버렸어.”

수횡천은 월령안과 이 얘기를 하면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을 했다.

그가 겁을 먹어서가 아니라 그날의 장면은 정말이지 너무 구역질이 났다.

누구라도 목숨을 걸고 결투하는 중에, 사람의 살점이나 뼛조각들이 얼굴 가득 튄다면 모두 깜짝 놀랄 것이다.

그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놀라서 손을 쓰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간이 작은 사람들은 즉석에서 토하다가 혼절하기도 했다.

소림사의 몇몇 무승들은 가장 덤덤했다. 그들은 핏덩이가 얼굴에 잔뜩 묻어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제자리에 앉은 채, 염불을 외웠다.

“갑자기 폭발해 죽었다고요? 모든 사람이요? 먼저 죽었던 사람들도 전부 다 폭발했다는 건가요? 시신도 없이?”

월령안은 비록 조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나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수횡천이 중요한 일로 그녀를 찾는다는 것을 안 월령안은 힘을 들여 소년을 안정시킨 뒤, 부랴부랴 수횡천을 만나러 왔다.

수횡천의 말을 들은 월령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전에 죽었던 사람들의 시체도 전부 터져버렸어. 전부 핏덩이로 되었어. 온전한 사람 모양이 하나도 없었어.”

수횡천은 그들이 귀시에서 본 장면을 떠올리자 또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살아 있던 수백 명이 거의 동시에 터져 고깃덩이로 되는 장면은 잔인하고 무서웠다. 또 그 피 냄새는 코를 찔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몸에도 모두 피와 살이 잔뜩 묻은 것이었다. 마치 피바다에서 기어 나온 것처럼 돌아와서 수십 번을 씻었지만 몸의 피비린내는 가시지 않았다.

수횡천은 한동안 피를 보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 피뿐만 아니라 닭 피, 개 피…… 빨간색을 띠는 것이라면 모두 보고 싶지 않았다.

월령안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살아남은 사람은커녕 시신조차 없군요. 그 말은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네요. 우리는 비록 귀시를 없앴지만 커다란 걱정거리를 남겼다는 거네요? 아니요, 우리는 귀시를 없애지 못했어요. 우리가 없앤 것은…… 그들이 드러낸 염명경 귀시예요. 우리는 진정 귀시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 귀시의 핵심을 건드리지조차 못했어요.”

“어……. 우리는 귀시에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어.”

수횡천은 부자연스럽게 코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최 대인은 귀시에 남았어. 그가 있다면 뭐라도 좀 알아내지 않겠어?”

“네, 최일이 있다면 걱정할 것은 없죠.”

육장봉은 간만에 수횡천이 마음에 들었다. 수횡천이 풀이 죽은 것을 보고 그는 대범하게 수횡천을 곤경에서 구해 주었다.

“귀시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일 것이오. 최일이 알아내면 좋지만 알아내지 못해도 내가 있지 않소?”

전에 귀시를 지배했던 사람들은 황금당이었고 황금당 당주는 월씨 가문 사람이었다. 황금당이 무너졌다.

그러나 이는 월씨 가문 사람들이 귀시에 대한 지배권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월씨 가문 사람들은 더욱 깊이 숨었고 귀시에 대한 지배도 더욱 깊숙해졌다.

귀시의 사람들이 자폭한 것이 가장 좋은 증거였다.

귀시 배후의 사람들은 이런 방법으로 월령안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귀시 사람들의 생사는 월령안에게 달린 것도, 귀시 사람들에게 달린 것도 아닌 자기들에게 달렸다는 것을.

월령안은 멍해졌다가 정신을 차리고 이마를 탁, 쳤다.

“제가 외골수였네요. 알아내긴 뭘 알아내요. 그들은 비록 사람을 죽여 입을 막았지만 숨기지 않았어요. 또는 저한테 숨기지 않았어요. 당신 말이 맞아요. 최일이 알아내면 가장 좋겠지만 알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살짝 알려 줘요. 이번 일에서 당신은 개입하지 마세요. 당신은 이런 작은 공로가 아쉬운 것은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살길을 남겨 주면 안 되나요?”

“내가 이런 작은 공로가 아쉽지 않은 것이오? 아니면 당신은 이번 공로를 최일에게 넘겨주고 싶은 것이오?”

육장봉에게는 군공(軍功)이 있으니 당연히 이런 작은 공로는 아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아쉽지 않은 것은 그렇다 해도 월령안이 최일을 위해 그에게서 공로를 빼앗아 준다면 그는 몹시 심기가 불편할 것이다.

‘최일 그 녀석이 월령안을 포기하지 못한 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 폐하께서 다른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황제의 바둑돌이 되다니. 최일은 좋은 물건이 아니야. 월령안 앞에서나 착한 척하는 거지.’

월령안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강남에서의 범씨 가문 세력은 점점 강해져요. 범씨 가문에서 한낱 부윤인 최일을 안중에 두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최일은 너무 젊어요. 경력으로 승부하자면 단기간에 위로 오를 수가 없어요. 위로 오르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입을 막을 수 있는 공을 세워야 해요.”

그녀는 최일을 위해 육장봉에게서 공로를 빼앗은 것이 맞았다.

심지어 최일도 자신이 육장봉의 공로를 빼앗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육장봉의 사람을 데리고 귀시로 가서 적을 토벌했지만 공로를 자기가 받아 안았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월령안도 최일이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공로를 빼앗으려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최일이 강남에서 재직하고 있을 때, 범씨 가문이 강남에서 최일 모르게 강호 마을을 지었다. 여기서 강남에서의 범씨 가문 세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최일도 이를 보고 마음으로 새겼다.

그래서 최일은 공을 세울 기회가 생기자 꽉 붙잡은 것이었다.

최일은 아버지가 승상이니 누구도 감히 그의 공을 빼앗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공로가 충분하다면 승진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공을 크게 세우고 거기에 최 승상까지 더하니 강남 총독(總督)의 자리도 쳐다보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최일은 그녀를 위해 공로를 빼앗으러 갔다. 그녀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러려니 해도 발견한 이상, 당연히 최일을 밀어줘야 할 것이다.

육장봉은 이 말을 듣고 비록 불쾌했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일이라면 내가 좀 가르쳐 주지.”

‘사월’이라는 신비한 조직을 알아낸 공은 충분히 최일을 강남 총독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할 수 있었다.

“이 일은 당신이 최일과 말하세요. 전 당신네 남자 사이의 일에 끼어들지 않을래요.”

월령안은 싫은 내색을 하며 말했다. 마치 방금 전, 최일에게 공을 주자고 한 사람이 그녀가 아닌 듯했다.

“알겠소.”

육장봉이 대답했다.

“믿겠소.”

“믿으신다니 됐어요. 굳이 강조하실 필요 없어요.”

월령안은 뾰로통한 얼굴로 육장봉에게 눈을 부릅떠 보였다.

“네, 부인.”

육장봉은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의 눈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자기의 부인을 아끼는 것 말고 또 어떻게 하겠는가?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더니 무언의 호흡이 둘 사이를 오갔다.

수횡천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분명 자리에는 세 사람이 있었는데 왜 그는 자기가 군더더기로 느껴지는 걸까?

수횡천은 오래도록 참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 왜 난 알아듣지 못해?”

그는 지금 그가 입을 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과 육장봉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그가 전혀 모르는 말을 하는 것을 보자 마음이 이상하게 괴로웠다.

그는 그와 월령안 사이에 항상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벽을 무너뜨리려고 애를 썼으나 그 벽은 점점 더 두꺼워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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