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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30)화 (830/1,004)

830화 사의도 치료할 수 없는 몸

월령안은 피를 토하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꽉 악물었다. 입가에서 피가 흘렀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하늘이 자기를 가지고 논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자기의 노력으로 미래에 대해 희망이 생겼을 때마다 운명은 또 그녀에게 큰 타격을 안겨 주었다.

그녀는 아직 오라버니가 남긴 핏줄을 있다는 것에 기뻐하지도 못했는데 타격은 한번 또 한번 그녀를 강타했다. 그녀는 월씨 가문이 전생에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월령안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던 거야? 왜 날 이렇게 대하지? 난 행복을 소유할 자격조차 없는 건가? 가정을 꾸릴 자격조차 없는 건가? 가족이 생길 자격조차 없는 건가?’

월령안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상황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화를 낸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거라고 끊임없이 속삭여서야 마음속의 살인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마님, 어떤 쪽의 정상을 원하시는 건가요?”

사의 문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며 월령안과 거리를 유지했다.

교주는 아주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월령안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 살기는 교주와 막상막하였다.

월령안은 그를 힐끗 보고 침대에 누운 소년을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쪽으로 치료하실 수 있는데요?”

사의 문수는 월령안이 침착한 것을 보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공자 체내의 독은 방법이 없어요. 소공자 체내에는 열몇 가지 독이 섞여 있어서 저는 분별조차 해낼 수 없어요. 그 독들이 소공자 체내에서 미묘한 평형을 유지하면서 독극물이 발작해 죽는 것을 막고 있어요. 치료를 하여 그 평형을 깨뜨린다면 소공자는 빠르게 죽어갈 수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만반의 확신이 생기기 전에는 치료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말썽이야! 무림에서 으뜸가는 사의인 내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치료해 달라고 사정해도 거들떠보지 않던 내가, 먼저 나서서 변명해야 하는 지경이 되다니. 강호는 참 어려워, 사의 죽네.’

치료하지 않자니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고, 치료하자니 십중팔구는 지금 바로 죽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월령안은 사의의 뜻을 알아듣고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키고 다시 물었다.

“독을 해독하지 못한다면…… 정상인처럼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되나요?”

“그건…….”

사의 문수는 난감한 얼굴을 했다. 그의 시선이 크게 흔들리더니 감히 월령안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녀 뒤에 있는 육장봉은 더더욱 바라보지 못했다.

월령안의 강압적인 질문에 그는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마님, 그게…… 전 이쪽 병을 잘 치료하지 못해요. 아니면, 약왕 손불사에게 물어보실래요? 제 기억 속에 그 노친네가 이런 마음의 병을 잘 치료했던 것으로 아는데.”

그는 사의지 착실한 의원이 아니었다.

‘마님은 이 ‘사’가 무슨 뜻인지 모르시는 건가? 난 환자를 치료할 때, 환자의 생사도 신경 쓰지 않는데 어떻게 마음의 증상을 치료할 수 있겠어?’

“손불사는 변경을 떠날 수 없어요.”

월령안도 손불사를 찾아오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번, 변경에 갔을 때, 그녀는 비록 노인을 만나지 못했으나 노인의 상황이 아주 악화되어서 손불사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소년을 변경으로 보낼까?

월령안의 시선은 소년의 창백한 얼굴에 머물렀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변경에 들어가 황제의 손에 들어가면 황제는 가장 먼저 월씨 가문 사람을 감금하는 곳에 데려가 이 아이가 스스로 죽든, 살든 내버려 둘 것이다.

아이를 변경으로 보내는 것은 죽으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같았다.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마님, 소공자의 상황은 심상치 않습니다. 아니면 마님께서…….”

‘이 아이가 마지막 시간을 즐겁게 보내게 해주시지요.’

사의 문수는 말하다가 갑자기 죽음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육장봉의 살기 가득한 시선과 마주했다. 그는 깜짝 놀라 몸을 흠칫 떨고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끝장이군. 교주께서 화나셨어.’

“아니면 뭐죠?”

월령안은 한참이나 기다렸으나 사의 문수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재촉했다.

육장봉은 말하지 않고 살인적인 시선으로 사의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는 입을 조심하라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사의 문수는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는 덜덜 떨며 말했다.

“아니면, 제가 한번 해 볼까요?”

사의 문수는 말하면서 잊지 않고 몰래 육장봉을 훔쳐보았다. 육장봉이 시선을 거두는 것을 보자 그제서야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혜롭게 대처해서 큰 봉변을 피했군.’

사의 문수는 몰래 땀을 훔쳤다.

‘위험했어, 강호만 삼십여 년 떠돈 내가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군.’

“마음의 병을 잘 치료하지 못하신다면서요?”

월령안은 모든 정신을 소년에게 집중했으나 그녀가 죽은 사람도 아니고 방안의 이상한 분위기를 어찌 발견하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그녀는 사의 문수가 소년을 치료하기 싫어하는 속내를 꿰뚫어보고 육장봉의 손을 빌려 사의 문수에게 압력을 가했을 뿐이었다.

사의 문수는 그녀가 아는 의원 중에서 손불사를 제외하고 의술이 가장 고명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순불사를 데려오지 못하는 이상, 사의 문수가 최선의 선택지였다.

그녀는 원래 어떻게 해야 사의 문수가 소년의 병을 치료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하던 참이었다. 지금 육장봉이 압력을 가했으니 그녀는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었다.

“제가 한번 시도는 해 보죠.”

사의 문수는 육장봉을 슬쩍 훔쳐보고 눈물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

최근, 강호는 지내기 어려웠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사양도 하지 않고 덥석 읍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렇다면 사의께 제 조카를 잘 좀 부탁드립니다.”

사의 문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난 왜 자꾸 내가 속임수에 당한 기분이 들지? 증거도 있지만 감히 말을 못하겠네.’

* * *

월령안은 사의 문수에게서 확답을 듣자 소년을 요양할 곳을 찾는 데 착수했다.

소년의 온몸에는 독이 퍼져 있어 몸이 아주 허약했다. 사의 문수는 기후가 따뜻한 곳을 찾아 요양해야 한다고 했다. 기후의 변화로 인해 소년의 몸이 불편해지는 것을 막아 주기 위해 사계절이 봄처럼 따뜻한 곳이 가장 좋다고 했다.

월령안은 속으로 생각해 보다가 서남을 선택했다.

서남은 약재가 풍족한 곳이었다. 그녀는 또 양 토사와 사이가 좋아서 소년을 서남에 보낸다면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육장봉은 의견이 없었다. 서남은 월령안의 근거지였다. 조카를 서남에 보낸다면 월령안이 직접 다녀올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항상 변수가 존재하는 법이다.

소년이 깨어난 뒤, 누구도 자기를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누구라도 그를 가까이하기만 한다면 그는 겁을 먹은 새끼 짐승의 소리 같은 비명을 질렀다.

만약 누가 소년한테 억지로 접근한다면 그는 놀라서 경련을 일으켰다.

오직 월령안만 제외하고!

소년이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월령안이었다.

심지어 소년은 월령안의 존재를 발견하고 먼저 월령안에게 기어가기도 했다. 월령안이 그에게 걸어온 뒤에 그는 마치 불안한 새끼 짐승처럼 월령안의 옷자락을 꼭 잡고 다가가고 싶으나 또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하는 불쌍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육장봉에게는 소년이 그에게 도발하는 것으로 보였다.

육장봉은 어떤 생각에 잠긴 듯, 사의 문수를 바라보았다.

“저 아이는 확실하게 보지 못하지 않느냐?”

‘그런데 왜 월령안이 나타날 때마다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거지?

왜 난 이 꼬맹이에게 도발당하는 기분이 드는 거지?

내가 너무 의심이 많은 건가?’

“이건……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의 문수는 하마터면 또 무릎을 꿇을 뻔했다. 육장봉의 불만을 눈치챈 그는 쩔쩔매며 해명했다.

“소공자는 볼 수 없으나 들을 수는 있습니다. 심지어 저는 소공자의 청각이 아주 예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미세한 목소리의 차이로 사람을 분간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분간하는 것까지는 난 몰라. 난 눈이 없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거든.’

“그런 거냐?”

육장봉은 사의 문수를 힐끗 보며 물었다.

사의 문수는 다리를 떨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마……도요.”

‘내가 말도 못 알아듣고, 사람 말도 못 할 정도로 학대당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 나한테 더 난감하게 굴지 말라고!’

육장봉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이 대답에 만족하지 않았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들이 들어오자마자 그 소년은 월령안의 존재를 알아챘다. 그는 월령안이 입을 열기도 전에 밖으로 기어 나왔다.

월령안은 그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질까 두려워 말도 하지 않고 급하게 침대로 걸어갔다.

그 소년은 바로 월령안의 옷자락을 잡고 ‘무서워 죽겠으나 말은 안 하겠다’는 불쌍한 모습을 했다. 보기에는 청각이 뛰어난 것 같았으나 육장봉은 소년에게서 도발, 그리고 위험의 기운을 느꼈다.

그렇다, 위험한 느낌이었다!

이 세상에서 육장봉더러 위험을 느끼게 하는 사람은 손에 꼽혔다.

지난번, 육장봉더러 위험을 느끼게 한 사람은 북요 대장군 신호였다.

그가 신호를 위험한 인물로 생각한 것은 소년 시절에 신호를 당해내지 못한 것으로 인해 생긴 심리적 음영 때문이었다.

이 소년은 지금의 그가 위험을 느낄 만한 사람이었다. 이 소년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그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증거를 내놓을 수 없었다.

월령안은 어떻게 되어도 이 소년을 믿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또다시 월령안에게 이 얘기를 한다면 오히려 월령안의 반감을 살 것이다.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사람을 시켜 감시할 수밖에 없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허리를 안고 월령안의 품 안에서 웅크린 채, 애처로운 얼굴을 한 소년을 바라보며 계획을 세웠다.

월령안이 소년과 함께 있는 틈을 타서 육장봉은 사적으로 사의 문수를 찾아갔다. 그리고 사의더러 그 소년을 잘 감시하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한다면 반드시 먼저 손을 써 소년이 월령안을 해치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네, 교주.”

사의 문수는 비록 통쾌하게 대답했지만 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고작 열 살밖에 안 된 데다가 눈도 없고 다리도 없고 말도 못 하며 심지어 사람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소년이 어떻게 위험하다는 거지? 이 일이 마님과 연관된 것이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게 분명해.’

물론, 속으로 생각한 것은 생각한 것이고 사의 문수는 교주에게 혼날까 두려워 이 생각을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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