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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29)화 (829/1,004)

829화 화는 홀로 오지 않고 복은 함께 오지 않는다

월령안이 다시 일어났을 때는 다음 날 오시였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침대 근처에 앉아 있는 육장봉을 보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어떻게 되었죠?”

“웃고 싶지 않을 때는 웃지 않아도 되오.”

육장봉은 월령안을 부축해 일으키고는 옆에 있는 물잔을 월령안의 입가로 가져갔다.

“당신은 하루 밤낮을 꼬박 잤소. 당신의 몸이 너무 허약하오.”

“네.”

월령안은 가볍게 응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육장봉이 먹여 주는 대로 꼴깍꼴깍 물을 마셨다. 그런데 물을 마시다가 갑자기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울음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떨구고 있었다. 마치 처음 만났을 때, 월령안이 그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그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던 것처럼.

육장봉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물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월령안의 어깨를 가볍게 끌어안고 투박하게 월령안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오. 당신은 자책할 필요가 없소.”

그 아이를 보호해야 할 사람은 그 아이의 부모였다.

낳지 말아야 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가 그 아이를 보호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이를 낳았다. 잘못한 것은 월령안이 아니라 아이의 부모였다.

“제 잘못이에요.”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더욱 크게 훌쩍거렸다.

“육장봉, 제 어머니의 말이 맞았어요. 제가 화근이고 악귀예요. 어머니는 절 낳지 말았어야 했어요. 저만 없었다면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죽지 않았을 것이고 월씨 가문도 망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라버니의 아이도……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겠죠.”

그녀는 줄곧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 또 한 번,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일에서 모두들 그녀는 죄인이라고 알려 주었다.

월령안은 애써 울음소리를 억눌렀다.

“육장봉 아세요? 월씨 가문에서는 저처럼 작은 아이가 태어난 적이 없어요. 월씨 가문의 아이들은 나이 차가 가장 많아서 다섯 살을 넘기지 않아요. 그 뒤에 누군가 임신을 해도 낳지 않아요. 저는 유일한 예외였어요. 그런데 예외인 제가 모든 사람을 해쳤어요.”

그녀가 없었다면 그녀의 오라버니는 모험을 할 필요도 없이 안정적으로 다음 월씨 가문 가주로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오라버니가 있었다면 오라버니의 아이가 귀시에서 자라더라도 이 지경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월령안은 육장봉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온몸이 떨리도록 울었으나 울음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감정을 억누르는 데 익숙해졌고 홀로 슬퍼하는 데 습관되었다.

육장봉은 마음이 아파 월령안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당신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죽음은 당신과 상관이 없소. 월씨 가문이 몰락한 것도 당신과 상관이 없소.”

“당신은 몰라요…….”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는 통곡하는 듯했다.

“제가 바로 그 계기예요. 월씨 가문의 수비를 연 계기요. 제가 없었더라면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북요로 가서 모험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들이 북요로 가지 않았다면 사단이 나지 않았을 거예요. 월씨 가문도 이렇게 힘없이 무너지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이미 십 년 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십 년 전, 육장봉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나쁜 놈을 무찌르며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데리고 돌아온 대영웅이었다.

십 년 전, 육장봉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신이었고 그가 하는 모든 말을 그녀는 믿었다.

십 년 전, 육장봉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고 그녀는 믿었다.

십 년 전, 육장봉은 그녀더러 울지 말라고 했고 그녀는 그렇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녀는 점점 더 도망치기 힘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여태까지 그녀는 어머니가 한 말을 줄곧 잊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녀야말로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말.

육장봉은 월령안의 등을 가볍게 다독이며 그 어떤 위로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총명한 사람일수록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며 끝까지 매달리는 법이다. 쉽게 다른 사람의 설득을 듣지 않았다.

총명한 사람은 자신들에 대해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이었다.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자신하며 자기의 판단을 자신한다.

그래서 육장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월령안을 안은 채로 그녀가 울게 내버려 두었다.

월령안의 감정이 천천히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 뒤, 육장봉은 입을 열었다.

“내가 이번에 북요에서 알아낸 소식이 있는데 들어 보지 않겠소?”

“뭘 알아내셨는데요?”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슬픈 감정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는 있었다.

모든 힘을 빼면서 엉엉 운 뒤, 월령안은 서서히 감정을 가라앉혔다. 또 다른 일을 신경 쓸 기운도 생겼다.

“사월이라고 하는 신비한 조직을 알아냈소.”

육장봉은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며 비꼬듯이 말했다.

“사월이라고요? 숫자를 셀 때의 그 사?”

월령안은 슬프던 것도 잊은 채, 정신을 북돋웠다.

직감이 그녀에게 사월의 ‘월’이 월씨 가문의 ‘월’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소.”

육장봉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십여 년 전에 북요에는 갑자기 사월이라고 불리는 신비한 조직이 나타났소. 사월 조직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비롭고 비범했소. 지금까지 그들의 내력을 알아낸 사람은 없소. 다만 그들이 갑자기 큰돈과 보석을 들고 북요로 와서 돈과 보석으로 길을 개척해 북요에서 신속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만 밝혀졌소.”

육장봉은 말하면서도 잊지 않고 월령안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

이렇게 오래 울었으니 월령안의 목이 아프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이 일들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해도 월령안의 건강보다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계속 북요에 남으시면서 주나라로 돌아오지 않으려고 하셨던 이유가 바로 이 사월이라는 조직을 알아내셨기 때문이었소. 이 단서를 따라 조사하다 보니 어머니는 그때 고종 황제가 북요로 직접 전쟁을 나섰다가 참패한 것이 이 사월이라는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소. 청주의 그 노친네들이 신속하게 궐기한 것도 사월의 지지를 벗어날 수 없었소. 심지어…….”

“심지어, 제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죽음도 사월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가요?”

월령안은 찻잔을 들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소.”

육장봉은 월령안의 명석함으로는 분명 알아챌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그 사람들이 바로 감금된 곳에서 도망쳐 나온 월씨 가문 사람들이라는 건가요?”

설산 꼭대기에서 황금당 당주가 죽기 전에 했던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는 말을 듣고 그녀는 짐작했었다. 월씨 가문 사람들이 감금된 곳에서 도망쳐 나와 어두운 곳에서 작지 않은 세력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녀는 그들이 이십여 년 전에 이미 도망쳐 나왔고 근거지를 북요로 삼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육장봉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요…….”

월령안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웃음은 우는 것보다 더 표정이 구겨져 있었다.

“월씨 가문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짓이 바로 서로 죽이는 거예요.”

찻잔을 잡은 월령안의 손이 새하얗게 되었다. 그녀는 비참한 얼굴로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월씨 가문 사람들이 자식을 늑대처럼 키운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는 월씨 가문 사람들은 자식을 고(蠱)처럼 키운 거예요. 월씨 가문이 원하는 것은 늑대 왕이 아니라 고 왕인 것이죠. 우리는 모두 월씨 가문의 고예요. 서로 죽이고 마지막에 살아남은 사람이 고 왕이 되죠. 월씨 가문 사람의 몸에는 모두 고 왕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은 죄가 있다고요!”

육장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월령안을 품에 안고 소리 없이 위로했다.

월령안은 세상사에 너무 훤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다. 이럴 때, 그녀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도 아무 힘도 없는 것이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았다.

이번에 그녀는 흐느끼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육장봉에 기댄 채, 동상처럼 조용히 있었다.

한참 뒤에야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육장봉, 전 당신의 걱정이 이해가 되고 당신의 의심도 이해가 되어요. 그러나…… 그는 제 오라버니의 아이예요. 전 그를 믿을래요.”

그녀는 오라버니에게 목숨 하나를 빚졌다. 그녀는 갚아야 했다.

“결과가 어떻든 전……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눈을 감았다. 눈가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월…….”

육장봉은 눈썹을 찡그리며 얼굴을 굳혔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월령안이 말했다.

“마치 제가 그때 당신에게 시집갔을 때처럼 결과가 어찌 되든 저 월령안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손을 풀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있던 찻잔이 “팍” 소리와 함께 깨져 산산조각이 났다.

육장봉은 그녀를 힐끔 보고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월령안의 선택을 동의하지 않으나 존중했다.

또 그가 옆에 있기도 했다.

그가 있는 이상, 누구도 월령안에게 상처 주지 못할 것이다. 그 자신마저도…….

* * *

화는 홀로 오지 않고 복은 함께 오지 않는 법.

월령안을 어렵사리 오라버니의 유일한 핏줄이 온몸에 맹독이 있고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사의 문수(文修)는 또 그녀에게 이 아이는 말도 하지 못하고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했다.

벙어리도, 귀머거리도 아니고 바보는 더더욱 아니라고 했다. 그는 외부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도 있으나 어려서부터 정상적인 환경에서 생활하지 못한 탓에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도, 또 어떻게 말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마도 마음의 병일 것입니다.”

사의 문수는 월령안과 이 말을 할 때, 긴장된 표정으로 말하면서 계속해서 월령안의 표정을 살폈다. 월령안이 어제처럼 견디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두려운 것은 월령안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교주가 우호법을 귀양 보낸 것처럼 그도 귀양 보낼까 두려운 것이었다.

서역은 비록 상인들에게는 황금의 길로 불렸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인들에게 그랬다. 일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서역은 황폐하고 위험한 곳이었다.

아무튼, 그는 그토록 가난하고 낙후한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곳에 희귀한 약재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 천목신교는 권세가 있었다. 천목신교의 유일한 의원으로서 그는 원하는 약재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데 왜 굳이 나서서 모험하겠는가?

‘너무 앞서갔나?’

사의 문수는 이마를 탁, 치고 조심스럽게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마님, 또 물어보실 것이 있나요?”

‘절대 피를 토하시며 쓰러지지 마세요.

교주께서 바로 옆에 계시는데 제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교주께서 발견하시기 전에 시신을 없애고 흔적을 지울 수 없죠…… 아니, 먼저 사람을 깨워서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해야지.’

“그 애는…… 회복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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