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화 월령안의 조카
월령안이 앞으로 다가와 두 사람을 위해 변명했다.
“그들과 상관이 없어요. 제가 귀시의 실력을 과소평가하여 무모하게 들어온 거예요.”
“당신의 책임은 내 아직 묻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사정할 정도로 한가한가 보오.”
남상권은 월령안을 흘겨보았다. 그러나 월령안의 말을 듣고 좌, 우 호법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다.
“일어나거라.”
“교주, 감사합니다. 마님, 감사합니다!”
좌, 우 호법은 남상권에게 예를 올리고 또 월령안에게 예를 올렸다. 그들의 말투는 한결 가벼워졌다.
월령안은 화가 나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하룻밤 사이에 당신들은 육삼한테서 나쁜 것만 배웠군요.”
“헤헤……. 우리는 육삼 형한테서 중요한 것만 배웠습니다.”
좌, 우 호법은 헤벌쭉 웃으며 월령안의 뒤에 섰다. 월령안이야말로 그들의 주인인 것처럼 한껏 아부했다.
남상권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월령안의 품에 안긴 사람을 가리키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건 무슨 물건짝인가?”
‘월령안이 이 물건짝 때문에 자기의 안위도 개의치 않고 몸으로 칼을 막은 건가?’
“오라버니의 아이예요.”
월령안은 육장봉의 불쾌함을 눈치챈 듯, 품 안의 소년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오라버니의 아이라고? 확실하오? 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황실에는 당신 오라버니의 애가 있다는 기록이 없었소.”
황실에서도 월씨 가문 가주가 정해지기 전에 월씨 가문 사람들이 핏줄을 남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변이 생겨서 핏줄이 있다 해도 보내져 월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두어 놓고 키우며 평생 자유를 주지 않을 것이다.
“애 어머니는 그때 황실에서 우리 오라버니를 감시하라고 파견한 감시자예요.”
귀시가 내놓은 소식은 아주 자세했다. 그녀도 조사해 보니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
“저도 산에서 보았는데 이 아이의 생김새는 오라버니와 매우 비슷해요. 그의 팔목 안에 배꽃 모양의 표기가 이는데 그 그림은 오직 저와 오라버니만 그릴 줄 알아요. 그래서 전 이 애가 우리 오라버니의 핏줄이라고 확신했죠.”
귀시가 내놓은 소식이 정확하지 않고 그녀가 알아본 바로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어찌 이런 모험을 하며 산으로 왔겠는가.
하물며 그녀는 죽음을 아주 두려워했다.
“자기가 관리하는 공공제물을 직접 훔친 것이었군. 그래서 세상을 속이고 황실도 속인 거였어.”
남상권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거칠게 월령안의 품에서 소년을 들어냈다. 그리고 월령안 뒤에 있는 우호법에게 안겨 주었다.
“잘 안거라.”
“육장봉, 살살 해요!”
월령안은 조급해져서 그가 강호를 거닐 때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의 눈이…….”
남상권의 거친 행동에 소년의 몸을 감싸고 있던 빙천사 겉옷이 미끄러 떨어졌다. 그러자 소년의 텅 빈 두 눈이 드러났다.
“없어요!”
월령안의 눈이 붉어졌고 목소리도 살짝 떨렸다.
“그의 다리도 없어요.”
“미안하오.”
남상권은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의 어깨를 가볍게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몰랐소.”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귀시에서 자랐어요.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최고의 행운이에요.”
그녀는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었다.
앞으로 그녀가 있는 이상, 이 아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반드시 잘 보호할 것이다.
육장봉이라는 인간형 살인 병기가 있으니 귀시의 필살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좌, 우 호법더러 소년을 데리고 산을 내려가라고 명령한 뒤, 육장봉은 월령안과 함께 산꼭대기로 추수를 데리러 갔다.
귀시의 그 두 형제의 수하들은 월령안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월령안은 추수와 상대방이 지독한 접전을 벌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산허리에 도착하자마자 산꼭대기에 불이 난 것이 보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마구 번지며 순식간에 하늘로 뻗쳐가 검은 하늘을 빨갛게 물들였다.
“추수야!”
월령안은 안색이 급변하며 다리가 나른해지더니 하마터면 굴러떨어질 뻔했다. 다행히 육장봉이 반응이 빨라서 그녀를 끌어당겼다.
“걱정하지 마오. 아무 일도 없을 것이오.”
월령안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발걸음을 멈췄다.
“우리 어서 산을 올라요. 추수가 아직 산 위에 있어요.”
그녀는 지금 당황해서도 조급해해서도 안 되었다. 추수가 그녀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오, 내가 가겠소!”
육장봉은 월령안을 안아서 그녀를 옆의 좁은 산굴 안에 앉혔다.
“잘 숨어 있으시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오지 마시오.”
월령안에게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고 육장봉은 훌쩍 뛰어오르더니 산꼭대기로 날아갔다.
월령안은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가다가 육장봉이 눈 깜짝할 새에 산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다시 되돌아왔다.
육장봉이 손을 쓰는 이상, 그녀가 걱정할 것은 없었다.
지금 그녀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일각도 지나지 않아 육장봉은 추수를 들고 돌아왔다.
“죽지 않았소.”
육장봉은 마치 병아리를 든 것처럼 추수의 옷깃을 잡고 들고 있었다. 가면을 썼더라도 그의 짜증 가득한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산굴에 도착하자 육장봉은 추수를 땅에 던져 버렸다.
“내가 육삼에게 신호를 보냈소. 그가 곧 올 것이오.”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우리 그냥 추수를 데리고 산을 내려가면 안 되나? 도대체 얼마나 싫어하길래?’
육장봉은 실제 행동으로 월령안에게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월령안이 추수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신하자 육장봉은 피풍의를 벗어 월령안에게 덮어 주었다. 그리고 생각하다가 또 겉옷을 벗어 월령안에게 함께 덮어 주었다. 그리고 사람을 산굴 안쪽으로 끌어들였다.
“밤이 깊어 날이 차오. 감기에 들지 마시오.”
“추수가…….”
‘밤이 깊어 날이 차다는 것을 알면서 추수를 동굴 입구에 두나요?’
“육삼이 있잖소.”
육장봉은 세심하게 겉옷을 매 주고 또 월령안 앞에 서서 산굴 밖의 밤바람을 막아 주었다.
“사실 전 옷을 적게 입지 않았어요.”
그녀는 춥지도 않았다. 피풍의에 겉옷까지 정말이지 너무 과했다.
“겉옷이 없잖소!”
‘아무리 많이 입어도 적은 것이지.’
“앞으로 겉옷을 함부로 남에게 벗어 주지 마시오. 춥잖소!”
“그 겉옷은 보온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어쩐지 피풍의를 벗고 또 겉옷을 벗어 준다 했어. 내가 겉옷을 조카에게 준 것이 못마땅한 거로군. 이 남자는 한결같이 참 속이 좁아.’
다른 일이라면 그녀는 육장봉의 말에 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독 이 일만은 안 되었다.
월령안은 겉옷을 여미면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걔는 남이 아니에요.”
그는 그녀의 친조카이지 오라버니의 유일한 핏줄이었다.
그때, 그녀의 오라버니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북요로 가는 모험을 택했고 결국 북요에서 죽었다.
그녀 어머니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녀의 오라버니는 그녀를 위해 죽은 것이었다. 그녀는 오라버니에게 목숨 하나를 빚졌다.
“물론 그는 남이 아니오. 그리고 그는 귀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람이오.”
부모 없는 애가 귀시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월령안이 이 생각을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월령안은 이미 이 아이를 자기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보호하고 있었다.
월령안은 굳은 얼굴로 언짢은 내색을 했다.
“육장봉, 당신도 그 애의 모습을 보셨죠? 그 애가 귀시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산꼭대기의 큰불이 너무 공교롭게 붙었소.”
두 눈과 두 다리를 잃은 아이는 확실히 아주 불쌍했다. 그러나 오늘 밤의 일에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너무나 많았다.
“귀시의 그 뚱뚱하고 마른 두 형제는 천목신교에서 가르친 것이오. 그들에게는 이렇게 많은 사사를 키울 능력이 없소. 오늘 이산의 사람들은 절대 그 두 형제가 훈련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오.”
“그 사사들이 두 형제의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 오라버니의 아이와 상관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귀시의 소주는 귀염이에요. 황금당의 사람들도 북요의 말을 들으니 귀시에서 오늘 밤 사용한 사람들은 북요 사람일 가능성이 커요.”
월령안은 귀시의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 이 일과 조카가 연관되었다고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 잊지 마세요. 오라버니의 애는 겨우 열한 살이에요. 열한 살짜리 소년이 뭘 할 수 있겠어요?”
그에게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절대 다른 사람에게 두 눈이 파이고 두 다리가 잘리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겨우 열한 살이었다. 그는 아직 아이였다.
“귀염은 북요가 귀시에 세워 둔 꼭두각시요. 그녀는 귀시에 있는 북요의 세력만 대표하지 실제로는 귀시와 아무런 상관이 없소.”
육장봉은 월령안이 금방 조카를 되찾고 가슴 아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그녀가 아이에 관한 그 어떤 불리한 말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유장봉은 화제를 돌려 북요의 일을 꺼냈다.
“내가 북요에 있던 이 한 달간 많은 재미있는 것들을 알아냈소.”
“뭘 알아내셨는데요?”
월령안이 묻자마자 산굴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대장군!”
“교주!”
“마님! 어디 계세요?”
육삼은 천목신교의 사람을 데리고 찾아왔다. 월령안은 마음속의 호기심을 억누르고 산에서 내려간 뒤에 다시 말하자고 생각했다.
“추수!”
육삼은 들어오자마자 땅에 누워 있는 추수를 보더니 월령안과 육장봉에게 예도 올리지 않고 다급히 추수부터 살펴보았다.
“갑시다.”
육장봉은 슬쩍 훑어보더니 월령안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추수는 육삼에게 맡길게요.”
월령안은 육삼의 곁을 지나며 한마디 하고 육장봉과 함께 산을 내려갔다.
그녀는 그 아이가 걱정되었고 또 육장봉이 북요에서 뭘 알아냈는지 알고 싶었다.
두 사람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이미 자시를 넘긴 후라 온 세상이 캄캄했다. 천목신교의 사람들은 이산에 남아 현장을 살펴보고 있어 당분간 그들은 아직 이산을 떠날 수 없었다.
천목신교의 안배를 받아 월령안 일행은 이산에서 멀지 않은 별장에 들어갔다.
별장에 들어서자 소년을 데리고 돌아온 우호법이 월령안에게 보고했다.
“마님, 사의(邪醫)가 이미 소공자를 살펴보았는데 소공자가…….”
우호법은 잠시 멈칫하더니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월령안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으나 침착하게 대답했다.
“바로 말씀하셔도 상관없어요. 가장 나쁜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녀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소년의 파인 두 눈과 잘린 두 다리를 봤을 때부터 그녀는 이 아이의 처지가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알아챘다.
“사의는 소공자 체내에 수십 가지의 맹독이 있는데 독마다 모두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소공자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입니다.”
우호법은 생각하다가 월령안에게 사의가 진찰한 결과를 말하지 않았다. 소공자가 약인(藥人 - 몸에 약, 독을 실험당한 사람.)이고 명이 길지 않다는 사실을.
그러나 우호법이 말하지 않아도 월령안은 알아들었다. 그녀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약인인가요?”
우호법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몰래 생각했다.
‘역시 우리 교주 마님다우시군. 침착하시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월령안은 피를 왈칵, 토하더니 혼절했다.
월령안의 속마음이 그녀가 나타낸 것처럼 차분하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