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7화 누가 당신더러 모험을 하라고 했소!
“산 사람이 있었어?”
월령안은 비수를 들고 몸을 돌려 푸른빛이 터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시선에 드리웠던 한기와 살기가 드러났다. 그 눈빛은 손에 든 푸른 피가 묻은 비수와 어우러져 괴이하고도 요염한 분위기를 풍겼다.
월령안은 비수를 움켜쥐고 빠른 속도로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비장의 수를 이렇게 많이 준비해 두었다니. 내가 귀시의 사람들을 낮잡아 보았군!”
월령안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비수를 깨끗이 닦은 뒤, 소년을 업은 채로 뛰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녀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녀의 등에 업힌 소년이 푸른색을 띤 가는 침을 그녀의 허리에 대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조금만 힘을 쓰면 월령안을 망가뜨릴 수 있었다.
소년이 손을 쓰지 않는 것은 머뭇거리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월령안이 그를 업고 산을 내려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길의 한쪽은 돌산이었고 다른 한쪽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이었다. 떨어진다면 시신조차 찾지 못할 것이다.
소년이 손을 쓰지 않은 것은 자기의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월령안은 처음 이산에 오른 것이었다. 비록 산에 오를 때, 길을 기억하려고 애썼으나 안전을 위해 조명 작용을 하는 야명주(夜明珠)를 꺼냈다.
아기 주먹만 한 야명주는 향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든 채로 허리에 걸려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이것이 보통 향낭인 줄 알 것이다.
소년은 월령안이 향낭을 떼내고 물건을 꺼내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 비록 월령안이 또 무슨 물건을 꺼내는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월령안이 꺼내는 물건이 절대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이 갔다.
그는 산 아래에서 왜 월령안이 먼저 암기를 꺼내면서 다른 사람이 몸 수색을 하지 못하게 했는지 알게 되었다.
‘월령안 이 여인은 완전히 비단털쥐잖아. 어디에도 물건을 숨길 수 있는데다가 그것도 죄다 좋은 물건들이야.
월씨 가문의 재산이 어마어마하다더니. 역시 헛소문은 아니었어.’
야명주가 있으니 월령안은 험한 산길이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소년을 업은 채로 재빨리 뛰었다. 소년은 두 눈으로 사물을 볼 수는 없었으나 귀가 아주 영민했다.
바람이 불자 소년의 귓불이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소년은 지금도 손을 쓰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소년은 묵묵히 가는 침을 거두어들였다.
가야 할 길이 아직 멀었다. 그에게는 월령안에게 손을 쓸 기회가 많고도 많았다. 급해할 필요가 없었다.
소년은 마음속의 살의를 억누르고 생기 없는 인형처럼 월령안이 그를 업고 산을 내려가게 내버려 두었다.
야명주가 길을 밝혀 주자 월령안은 소년을 업은 채로,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굴러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길을 벗어났다.
상대적으로 평탄한 풀숲에 들어서자 월령안의 곤두선 신경이 느슨해졌다.
방금 전의 길은 기세가 험난하였다. 한쪽은 또 아득한 벼랑이기까지 했다. 그녀가 빨리 걸은 것은 신심이 넘쳐서가 아니라 멈출 수 없어서였다.
그녀는 한번 멈추면 다시 발걸음을 떼지 못할까 두려웠다.
“역시 산을 오르는 것은 쉬워도 산을 내려가는 것은 힘들구나.”
월령안은 한숨 돌리고 발걸음을 늦추었다. 두어 걸음 간 그녀는 또 등에 업힌 소년이 옷 안에 웅크린 채로 있는 것이 불편할까 걱정되어 멈춰 섰다. 그리고 몸에 묶은 옷을 풀고 소년을 내려놓았다.
“이렇게 업으면 넌 분명 불편할 거야. 내가 널 안고 갈게. 걱정하지 마. 곧 우리를 맞이할 사람들이 올 거야. 앞으로의 길은 아주 안전할 거야.”
소년의 손에 든 침은 마침 월령안의 허리를 찌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월령안이 업는 데로부터 안는 자세로 바꾸자 소년은 침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빙천사로 만든, 칼도 못 뚫고 물불도 스며들지 못하는 겉옷을 꼼꼼하게 소년의 몸에 덮어 주며 그의 안전을 확보했다.
소년을 안은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등 뒤의 심연 같은 산을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왜 쫓아오는 병사가 없지? 그 푸른 불빛이 무슨 신호였는지 모르겠어.”
월령안에게 업힌 소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혼절한 듯했다. 그러나 꽁꽁 뒤덮인 겉옷 안에서 그의 입가는 살짝 위로 올라가 비웃음을 흘렸다.
‘걱정하지 마. 네가 찾는 병사들이 곧 쫓아올 테니.’
월령안은 오래 머무르지 않고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는 소년을 안은 채로 계속해서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바로 이때…….
슉, 슉.
공중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렸다. 월령안이 고개를 들어 보니 검은 그림자들이 산꼭대기에서 날아왔다. 목표는 바로 그녀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 두 형제의 손에 도대체 비장의 수가 얼마나 더 있는 거야?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에는 왜 계속 남 밑에서 기었대?”
월령안은 하늘을 덮은 검은 그림자들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하늘이 어두워 허공에 몇 명이 있는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소리만 들어도 많은 사람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산 위에서 날아 내려왔다. 그녀는 그들을 속도로 이길 수 없었다.
그녀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는데 지금 그녀가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쿵! 쿵!
월령안에게 깊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산 위에서 날아온 검은 그림자들은 하나하나 그녀의 앞에 착지했다. 월령안이 산에서 내려갈 수 있는 길은 모조리 막혀버렸다.
“움직여!”
“솩!”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착지하자마자 몸에 두른 날개 작용하는 연을 벗고 등에서 칼을 들었다. 그리고 월령안과 그녀의 품에 안긴 소년에게 칼을 휘둘렀다.
“월령안을 잡아들이거라!”
사람들은 수법이 아주 잔혹했다. 그들이 휘두르는 칼마다 치명적이었는데 살려 둘 생각 따위는 전혀 없어 보였다.
월령안은 무공에 강하지 않았다. 다만 몸집이 보통 사람들보다 날렵할 뿐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치명적인 공격을 펼치는 데다가 소년까지 안고 있으나 월령안은 반격할 기운이 없었다. 허둥거리며 피할 뿐이었다.
연속 뒷걸음질치다 보니 더 이상 물러날 길도 없었다. 월령안은 품에 안긴 소년을 보고 양측의 실력 차이를 가늠해 본 뒤, 타협하기로 결정했다.
“너희들이 원하는 사람은 나다. 이 아이를 풀어 주면 너희들 조건이 무엇이든 내가 들어 주겠다.”
이 사람들은 입과 코를 모두 막고 있었다. 그녀가 약을 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그녀의 암기도 소진된 상황이었다. 만약 그녀 혼자뿐이라면 어떻게든 시도해 보겠지만 지금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반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월령안의 타협은 그녀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미안하다. 우리 대장은 살려 두지 말라고 했다!”
그 사람의 목소리는 잔혹했다. 전혀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았다. 말하는 사이 그의 손에 든 칼이 월령안의 품에 안긴 소년에게 휘둘러졌다.
“오늘 밤, 너희들은 모두 죽어야 한다.”
월령안은 빙천사의 겉옷이 있는 이상, 칼이 소년의 몸을 베어도 치명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팠다!
칼이 그의 몸에 닿는다면 피가 나지는 않겠지만 매우 아플 것이다.
그래서 칼이 소년을 베는 순간, 월령안은 생각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소년을 품에 안아 보호했다. 그리고 등으로 소년에게 향하던 칼을 막아냈다.
소년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들을 수 있었다. 그도 느낌이 있었다.
월령안이 움직이자 그는 월령안이 뭘 하는지 알아챘다.
소년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며 비웃음을 흘렸다.
‘역시 멍청해! 서로 죽고 죽일 줄밖에 모르던 월씨 가문 사람들이 월씨 성을 가진 것을 살리다니. 월령안은 역시 곱게 자랐어. 천진난만하고 멍청해. 이런 멍청한 여인은 언젠가 죽기 마련인데 내 손에 죽는 게 다른 사람 손에 죽는 것보다 낫겠지?’
그러나 칼날이 월령안의 등에 닿으려는 순간, 귀신 가면을 한 그림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월령안!”
그 사람은 큰 소리로 고함을 치더니 손을 움직여 돌멩이를 발사했다. 그 돌멩이는 칼을 잡은 사람의 손등을 강타했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칼을 잡은 사람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에 있던 칼도 말을 듣지 않고 떨어졌다.
검은 그림자가 번개같이 눈 깜짝할 새에 월령안의 앞까지 쳐들어왔다. 칼날이 떨어지는 순간, 그 그림자는 칼 손잡이를 잡고 손을 돌려 월령안을 찌르려던 사람을 찔렀다. 동시에 월령안을 한쪽으로 밀치며 월령안을 습격하던 사람을 차버렸다.
“멍청하긴. 누가 당신더러 모험을 하라고 했소!”
“육, 아니…… 남상권!”
월령안은 그 사람을 보더니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당신이 어떻게 오셨어요?”
‘육장봉이 북요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여기에서 나타난 거지?
언제 돌아온 거지?
난 왜 아무런 소식도 들은 게 없지?’
‘남상권? 계획이 변했군.’
빙천사 겉옷에 둘러싸인 소년은 이 이름을 듣자 귀 끝이 살짝 떨렸다.
소년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손에 든 푸른색 침을 자기의 팔목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뽑아서 버렸다.
침을 찌르자 소년의 오관이 한데 찌푸려지더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다음, 소년은 혼절했다.
“기다리시오!”
귀신 가면을 쓴 육 대장군이자 남 대교주는 월려안에게 흉악한 시선을 보내고 그녀를 자기의 뒤로 잡아끌었다. 그리고 살수들을 향해 달려갔다.
남상권이 팔을 들어 칼을 휘두르자 살수들은 마치 무처럼 하나같이 땅에 픽픽 쓰러졌다.
월령안은 옆에 서서 남상권의 용맹한 자태를 보며 부러운 시선을 했다.
‘역시 절대적인 실력이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군,’
그러나 월령안은 부러워하기만 할 뿐이었다.
사람의 정력은 한계가 있었다. 그녀는 모든 정력을 장사에 쏟아부었으니 무예를 익힐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하늘에서 내려온 살수들은 무려 스무 명 남짓했다. 남상권의 무공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일각 정도 소요해서야 모든 사람을 처리했다.
남상권이 전쟁터를 처리하자마자 천목신교의 좌, 우 호법이 격투소리를 듣고 쫓아왔다.
“교주!”
달려온 사람을 보자 월령안은 육장봉이 왜 이 시기에, 남상권의 신분으로 이산에 나타났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의 옆에는 모두 밀고자들만 가득했다. 그녀가 조금만 움직여도 육장봉이 바로 알고 있었다.
“너희들이 참 제때에 왔구나. 너희들이 구조할 때는 시체가 이미 땅에 파묻힌 뒤겠구나.”
남상권은 손에 든 칼을 던지며 독기 서린 눈빛을 했다.
그가 조금만 늦게 왔다면 월령안은 죽거나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가 이 둘더러 월령안의 안전을 보호하라고 했는데 이 둘은 이런 식으로 월령안을 보호한 것이었다.
정말 쓸모없는 놈들이었다!
“교주께서 벌해 주십시오.”
천목신교의 좌, 우 호법은 한마디도 변명하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사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