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6화 저년을 잡아라!
“사람을 풀긴 왜 풀어? 화살을 쏘아야지! 화살을 쏘아서 저들을 죽여야지!”
뚱보 악인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뛰어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난 저 월씨 년을 산채로 살을 발라서 구울 거야!”
그러나 그가 펄쩍 뛰자마자 말라깽이에게 따귀를 맞았다.
“네가 뭘 알아! 살아 있는 월령안은 죽은 월령안보다 더 가치가 있어. 월령안을 잡는다면 월씨 상사는 우리의 것이 된다고. 앞으로 우리는 돈 때문에 귀시에 숨어 있을 필요가 없다고!”
이 말은 물론 월령안이 의심하지 않도록 그녀를 속이는 말이었다.
그들의 소주도 월씨였다. 월령안이 죽는다면 그들의 소주가 바로 주나라에 있는 월씨 적계(嫡系)의 유일한 핏줄이 될 것이다.
소주의 능력으로 월씨 상사를 이어받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그래서 월령안은 반드시 죽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귀시의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감히 월령안을 죽이려고 하지 못하자 모든 화력을 추수에게 집중시켰다.
추수가 가뿐히 혈의인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을 보고 말라깽이는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어두운 곳에 숨어 있던 궁수들더러 추수에게 활을 쏘라고 하고 다시 혈의인더러 추수를 공격하라고 했다.
월령안은 한 혈의인을 쓰러뜨린 뒤, 과감하게 명령을 내렸다.
“추수, 철수해!”
귀시의 사람은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다.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월령안은 소년을 안고 날 듯한 속도로 산을 뛰어 내려갔다.
사람을 안고 뛰는데도 월령안의 발걸음은 아주 안정적이었고 일말의 당황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산 아래까지만 가면 그녀를 맞이하는 사람이 도착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귀시의 사람이 산꼭대기에 사람들을 매복시킨 것처럼 월령안도 자기의 사람들을 산으로 공격하게 안배했었다. 이번 기회에 귀시의 각 세력을 모조리 무너뜨리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소년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 그녀가 인내심 있게 귀시의 사람들과 시간을 끌었다면 그녀의 사람들이 산으로 쳐들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들이 산을 내려가지 못하게 하거라!”
말라깽이는 월령안이 소년을 안고 뛰는 것을 보자 피를 흘리는 몸의 상처도 잊은 채, 재빨리 일어나 비틀거리며 쫓아갔다.
“저자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거라. 반드시 월령안과 저 아이를 잡아야 한다. 기억해, 꼭 산 채로 데려오거라, 산 채로!”
“네!”
혈의인은 명령을 듣고 빠른 속도로 월령안을 뒤쫓아갔다.
달리는 속도로만 비하려면 월령안은 당연히 이 혈의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혈의인들이 월령안을 접근하려고 할 때마다 월령안은 돌아서서 그들에게 암기를 쏘았다.
월령안 수중의 비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안에 있는 암기는 한 번, 또 한 번 끊임없이 나왔다. 혈의인들이 월령안을 한참 쫓아 달리자 태반이 죽고 다친 것은 물론이고 따라잡지도 못했다.
물론, 월령안이 이토록 손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이산에서 만나기로 한 귀시의 공로도 있었다.
이산을 오르내리려면 넓지 않은 오솔길밖에 길이 없었다. 혈의인들이 월령안을 쫓으려면 이 작은 오솔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 넓게 분산되지 못했다.
사람들이 한데 있으니 암기가 발사된 후, 피할 수 있는 확률도 퍽 낮아졌다. 그래서 월령안을 뒤쫓던 사람들은 한참 뒤쫓았지만 따라잡지 못했다.
아쉽게도 월령안이 차지한 지리적 우세는 산허리까지밖에 이어지지 못했다.
“흩어져!”
“포위해, 도망치지 못하게.”
산허리에 도착하자 산길은 갑자기 넓어졌다. 그리고 산허리에는 거대한 평지가 있어 월령안을 뒤쫓던 혈의인들은 이 기회에 바로 흩어져 월령안을 겹겹이 둘러싸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혈의인들이 흩어져 끊임없이 피하자 월령안은 지리적 우세를 잃었다. 연속 몇 번 암기를 쏘았지만 한 번도 적중하지 못했다.
그러나 월령안 수중에 든 암기의 따끔한 맛을 본 혈의인들은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월령안 암기를 소진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끊임없이 거짓 공격을 하며 월령안을 유도하여 암기를 발사하게 했다.
월령안은 상대의 전략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상대가 거짓 공격을 하는 것이 맞았으나 그녀가 암기를 발사하여 물리치지 않는다면 상대의 거짓 공격은 진짜 공격으로 될 것이다.
월령안은 암기를 발사하며 혈의인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그녀의 암기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그녀가 만약 강하게 공격한다면 이 혈의인들의 수비를 뚫고 산을 내려갈 확률이 얼마나 될지 묵묵히 생각해 보았다.
월령안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돌더니 각종 가능성을 계산해냈다.
그러나 이 혈의인들의 몸에 닿아서는 안 되는 기이한 푸른색 피를 떠올리자 그녀가 성공할 가능성은 삼 할밖에 되지 않았다!
‘실수다!
난 그 뚱뚱하고 마른 형제들 손에 독이 있는 피를 품은 사사가 있을 줄 생각하지 못했어.
아니지!
그 두 형제 손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왜 전에 황금당에게 억눌린 거지?
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의 모든 피에 독이 있는 혈의인은 황금당의 살수보다 훨씬 강하잖아. 만약 정말 싸운다면 황금당의 살수들은 이 혈의인들의 상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어.
손에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서 그 두 형제는 왜 황금당의 말을 들은 거지?’
월령안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녀가 깊게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말라깽이의 말대로 그녀 수중의 암기의 수는 한계가 있었다.
그녀의 짐작대로라면 그녀는 아직 열 발 정도 더 쏠 수 있었다. 만약 번마다 한 사람씩 적중한다면 그녀는 내려갈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 혈의인들은 바보가 아니어서 그녀에게 그럴 기회를 줄 리가 없었다.
그녀는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대책을 생각하면서 억지로 혈의인의 방어를 뚫지 않았다. 혈의인은 월령안 수중의 암기가 소진되기를 기다리느라 급히 손을 쓰지 않았다. 양측은 이렇게 평지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누구도 먼저 공격하지 않고 서로 간을 보았다.
그러나 양측의 대치는 오래가지 못하고 산 아래서 격투 소리가 들렸다.
혈의인은 고개를 돌려 힐끗 보고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월령안의 품에 안긴 소년이 달빛에 팔목을 드러낸 것이 보였다.
달빛 아래서, 소년은 옥처럼 새하얀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죽여라’는 손짓을 했다.
혈의인은 눈빛이 살짝 변하더니 먼저 월령안을 덮쳤다.
“월씨 가문의 구원병이 왔다. 다들 기다리지 말고 함께 덮쳐서 사람을 잡아들이자!”
“덮쳐!”
월령안을 둘러싸고 있던 혈의인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명령을 듣자 그들은 하나같이 월령안 수중의 암기도 개의치 않고 죽을 듯이 월령안을 덮쳤다.
그들의 행동을 보니 전혀 산 채로 잡아들이려는 것 같지 않았다.
“날 잡고 싶다면 너희들에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부터 보아야지!”
달빛 아래서, 소년을 안은 월령안은 시선이 냉혹했고 눈빛이 확고했다.
그녀는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모든 암기를 발사하여 성공적으로 두 사람을 넘어뜨렸다. 월령안은 그 틈을 타 허리춤의 허리띠를 풀어 휘둘렀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허리띠가 날아가면서 그 안에 숨겨졌던 가루가 바람에 흩날렸다.
“조심해, 독이다!”
혈의인들은 큰 적을 만난 것처럼 입과 코를 막고 연신 뒷걸음질 쳤다.
그들은 아픔을 몰랐다. 그러나 이 가루는 다른 작용이 있었다.
월령안은 소년을 꼭 안고 몸을 돌려 겉옷을 벗었다. 그리고 겉옷을 소년의 머리부터 다리까지 꽁꽁 싸맸다.
“무서워하지 마. 난 절대 그 누구도 널 다치게 하지 못할 거야.”
달빛 아래에서 소년을 감싼 겉옷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늘고 긴 선이 달빛 아래에서 별빛을 만들어냈다.
“빙천사(冰蠶絲)다! 칼도 뚫지 못하고 물불도 스며들지 못한다는 빙천사!”
혈의인은 소년 몸 위의 옷을 보자 깜짝 놀라 움직이는 것을 잊어버렸다.
이게 무슨 집안 말아먹을 망나니인가?
빙천사로 옷을 만들다니? 그것도 긴 겉옷을!
빙천사는 비쌀 뿐만 아니라 아주 희귀했다. 빙천사로 만든 호갑이라도 더없이 귀한 보물이어서 무림인들이 미친 듯이 빼앗는 것이었다. 그런데 월령안은 참…….
이 옷을 입은 이상, 월령안은 그들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혈의인뿐만 아니라 월령안 품에 안긴 소년도 월령안이 이토록 돈을 막 쓸 줄은 몰랐다.
그러나 동시에 월령안이 그들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들켰을 것이다!
빙천사의 보호가 있는 이상, 월령안은 검이 무심결에 품에 안긴 소년을 찌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는 혈의인들이 가루약을 피하는 틈을 타 품에 안은 소년을 등에 업고 옷소매로 질끈 묶어 고정시켰다. 그리고 비수를 든 채로 산을 내려가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어서, 저년을 잡아라!”
혈의인은 월령안이 도망치는 것을 보자 가루약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재빨리 뒤쫓아가 월령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욱 두려웠다.
“너희들이 손 쓰기를 기다렸다.”
달빛 아래에서 비수를 든 월령안의 얼굴은 숙연하고 침착했다. 그녀는 덮치는 혈의인들을 조금도 피하거나 숨지 않고 상대했다.
푸슉!
혈의인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월령안은 손에 든 비수를 상대방의 가슴팍에 깊게 꽂아 넣었다.
“이? 이럴 수가?”
혈의인은 칼을 든 채, 고개를 숙여 자기의 가슴팍을 찌른 비수를 내려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한낱 연약한 여인이!
등에 아이를 업은 연약한 여인이!
어떻게 전혀 다치지 않고 그의 앞까지 쳐들어와 비수를 가슴팍에 찔렀단 말인가? 또 그는 왜 전혀 이것을 느끼지 못했다는 말인가?
“너희들 행동이 느려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냐?”
월령안은 비수를 빼서 신속하게 뒤로 물러섰다. 혈의인의 피가 그녀에게 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늦어졌다고?”
혈의인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정지된 채로 칼을 들고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 보였다. 또 달리는 자세를 취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어떻게 달려도 월령안 앞에 도착하지 못했다.
분명 두세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지척이 천 리인 것처럼 아무리 뛰어도 뛰어올 수가 없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다른 사람들은 그처럼 자기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그곳에 서서 월령안이 잡초를 베듯, 장난감 같은 칼로 그들을 하나하나 죽이는 것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월령안의 비수에 찔려 죽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들이 어떻게 한낱 연약한 여인의 손에서 죽어 가는지 알지 못했다.
월령안이 혈의인을 모조리 참살할 때, 그녀의 등에 업혔던 소년이 손가락 끝을 살짝 움직였다.
펑!
푸른색 구슬이 그의 손가락 틈에서 날아와 소리를 내며 공중에서 터졌다. 그러자 푸른색의 이상한 빛이 흩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