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824)화 (824/1,004)

824화 이산에서의 만남

"월 가주는 역시 현명하군."

장사 옆에 서 있던 몇몇 귀신 가면의 남자들이 손을 비비며 음탕한 얼굴로 월령안에게 덮쳤다.

"그럼 우리는 사양하지 않겠네!"

"전 저를 어찌 해 보려는 사람이 가장 싫어요!"

월령안은 뒤로 물러서며 추수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저자들을 죽이거라!"

월령안 뒤에 서서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않던 추수가 별안간 칼을 뽑더니 교룡(蛟龍)처럼 훌쩍 뛰어오르더니 칼을 휘둘러 베기 시작했다.

휙-!

"으악……."

검광이 번뜩이자 선홍색 피가 용솟음쳤다. 월령안은 옆으로 몇 걸음 물러서며 싫은 내색을 했다.

"저자들 얼굴의 가면이 너무 흉측하구나. 보기 싫게."

팍!

추수는 명령을 듣고 손을 돌려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귀시 사람들 얼굴의 귀신 가면이 산산조각이 났다.

전체 과정은 한순간이었고 추수는 손에 검을 든 채, 사뿐히 땅에 내려왔다. 솟구치는 피는 "팍"소리와 함께 땅에 흩뿌려져 누런 땅을 붉게 물들였다.

"지금, 제가 비수를 가지고 산에 올라도 되겠죠?"

월령안은 생글거리며 앞으로 다가와 장사의 손에서 비수를 가져갔다. 그리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산을 올랐다.

퍽!

월령안이 두어 걸음 걸어가자 우두머리인 장사가 땅에 넘어졌다. 그의 목 옆으로 가늘고 긴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월령안과 추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산 위로 걸어 올라갔다. 바람이 불면서 두 사람의 옷자락이 소리를 냈다.

* * *

이산 산꼭대기.

귀시의 졸개가 뚱보 악인과 말라깽이를 위수로 한 귀시 세력에게 월령안과 무림맹의 동향을 보고하고 있었다.

"월령안이 데려온 여자 호위가 산자락에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월령안은 지금 호위를 데리고 산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이변이 없는 이상, 한 시진 뒤에 그녀들은 산꼭대기에 도착할 것입니다.

여러 대인들의 예상대로 무당, 소림을 위수로 한 무림의 각 대문파에서 집결한 사람들이 무림맹주 수횡천의 인솔 하에 빠른 속도로 귀시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소식에 의하면 그들은 우리가 월령안과 협상하는 기회를 빌려 귀시를 공격할 것 같습니다.

천목신교의 좌우 호법이 무림맹에서 돌아간 뒤, 아무런 기척도 없습니다. 교 중 모든 고수가 밖에서 임무를 실행하고 있고 되돌아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천목신교와 월령안은 사이가 틀어진 것 같습니다. 천목신교는 월령안을 도와 우리를 대적하지 않을 듯합니다."

"천목신교가 손을 쓰지 않고 무림의 그 몇몇 노친네들만 있다면 조심할 필요가 없겠군."

뚱보 악인은 윗몸을 훌렁 벗은 채, 호피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왼쪽 다리를 구부려 의자를 밟고 있었으며 손에는 익지 않은 듯한 고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포악하게 고개를 물어뜯고 또 싫은 내색을 하며 뱉어냈다.

"퉷, 이 사람 고기는 연해야 맛있는데. 그 월씨한테 찍힌 뒤로 난 좋은 고기를 먹은 적이 없어. 입으로 인의 도덕을 외치는 무림 정파 녀석들을 모조리 죽인 뒤, 난 반드시 신선하고 연한 사람 고기를 찾아야겠어."

말라깽이는 뚱보 악인을 발로 찼다.

"먹을 생각만 하지 말고 다시 한번 둘러 봐. 빠뜨린 것이 없는지."

"둘러볼 게 뭐가 있다고? 귀시든, 이산이든 우리 모두 물샐틈없이 경계망을 쳐 두었잖아. 무림 문파가 귀시에 오든지, 아니면 이산으로 쳐들어오든지 우리는 모두 그자들이 집으로 못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고."

뚱보 악인은 비록 이렇게 말하면서도 손에 든 고기를 버리고 욕설을 퍼부으며 떠나갔다.

"철저하게 감시하거라. 절대 조금도 실수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말라깽이는 음산한 눈빛으로 부하를 경고하고 돌아서서 산굴로 걸어갔다.

산굴 안에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책을 들고 조용히 바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 생김새를 볼 수 없었다. 얇은 옷에 가냘픈 몸매를 한 소년의 종아리 부분이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조용하게 바퀴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도자기 같았다. 가볍게 톡, 치기만 해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말라깽이가 산굴에 가까이하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늦추고 허리를 굽혔다.

"소주(少主)!"

말라깽이는 겸손한 자세를 하고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 있었다.

"사람이 왔느냐?"

소년은 고개도 들지 않고 덤덤하게 손에 든 책을 펼쳤다.

"이미 산에 오르는 길이랍니다. 한 시진 뒤에 도착할 것입니다."

말라깽이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마치 소년을 놀라게 할까 두려워하는 듯했다.

"그래."

소년은 가볍게 대답하고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 내 성격 알지? 조금 있다 잘하거라. 들키지 말고."

"네, 소주."

말라깽이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겁을 왜 먹어? 내가 널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소년은 비웃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의 수려하나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고 눈알이 파여져 검은 구멍만 남은 두 눈도 드러났다.

소년은 눈이 없었지만 줄곧 책을 '보고' 있었다. 또 정확하게 말라깽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소년이 눈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산굴이 너무 음산해서인지 소년이 사람을 '볼' 때에는 이상하게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석양의 노을이 비춰 들어와 소년의 몸에 흩뿌려져도 그 음산한 한기를 떨칠 수 없었다.

소년의 목소리는 아주 가볍고 얇았다. 마치 바람이 불기만 해도 흩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말라깽이 귀에는 명을 재촉하는 주문으로 들렸다.

말라깽이는 덜덜 떨면서 또 소년이 놀랄까 봐 두려워하는 듯했다. 그는 감히 크게 움직이지 못하고 몸을 웅크린 채, 마음속의 두려움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꺼져!"

소년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말라깽이가 기다시피 하면서 밖으로 굴러 나왔다.

소년은 말라깽이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갑자기 그는 뭔가 재미있는 일이 떠오른 듯, 손에 든 책을 던지고 미친 듯이 웃었다.

"사랑하는 고모, 우리 곧 만나겠네요. 조카는 정말 아주 기대된답니다. 월씨 가문의 두 가주가 애지중지했던 월씨 가문의 공주님이 제 손에서 망가뜨려져 헝겊 인형처럼 엉망진창이 될 것을 생각을 하니!"

이때, 해가 지고 석양의 끝자락 노을이 산굴에서 옮겨 나왔다. 산굴 전체는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처럼, 또 마치 소년의 그 검은 구덩이 같은 두 눈처럼…….

산허리까지 간 월령안은 순간 음산한 한기를 느꼈다.

월령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발걸음을 멈춘 채, 고개를 들어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묵묵히 옷을 꽉 잡았다.

"아가씨?"

추수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분명 내가 생각이 많았을 거야. 해가 지면 산이 추워지는 것은 당연한 건데…….'

추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돌아왔다.

"산길을 오르기 힘듭니다. 아가씨, 발아래를 조심하세요."

"응."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불안해졌다.

"추수, 좀 있다가 산에 오르게 되면 넌 각별히 주의하거라."

산이 추운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조심한다 해서 나쁠 것도 없었다.

그녀는 비록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가지 않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몰랐다.

"네, 아가씨."

추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통쾌하게 대답했다.

"가자!"

월령안은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의 모든 일을 떠올려 본 뒤, 아무런 빈틈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자 그제서야 찌푸려졌던 미간이 풀어졌다.

가을날은 낮이 짧고 밤이 길었다. 해가 진 산에는 어둠이 더욱 빨리 찾아왔다.

한 시진 뒤, 이산 전체에 어둠이 드리웠고 산꼭대기의 횃불만이 어둠 속의 유일한 빛이 되었다.

그러나 이 빛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상한 한기를 불어넣었다.

이어진 횃불들은 마치 쩍 벌린 야수의 입처럼 모든 것을 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산꼭대기에 올라간 월령안은 허상에 현혹된 토끼처럼 제 발로 늑대의 입으로 들어갔다.

적어도 귀시 사람의 눈에는 월령안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자기를 잡기 기다리는 토끼였다.

"월 가주, 드디어 왔군그래!"

말라깽이와 뚱보 악인은 산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뒤에는 살벌한 인상을 풍기는 장사가 열 명 남짓 서 있었다.

월령안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온통 악의로 가득했다. 불빛 아래서 그들의 두 눈은 마치 야수처럼 악한 섬광을 내뿜고 있었다.

"제가 늦게 온 건가요?"

상대는 사람이 많고 세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악인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마치 보지 못한 것처럼 조용한 정원을 거닐 듯, 유유하게 말라깽이와 뚱보 악인 쪽으로 걸어갔다.

"잘 왔어!"

말라깽이는 눈을 휘며 악의로 가득찬 시선으로 월령안을 훑어보았다.

"월 가주에게 의자를 내오거라!"

"됐다! 다 오래된 친구인데 추억 얘기는 언제 해도 되지. 급하지 않아. 너희들 사람을 데려오거라. 난 먼저 너희들 수중에 있는 사람이 내가 원하는 사람이 맞는지 확인해야겠다."

월령안은 비수를 꺼내 손으로 가지고 놀았다.

"피로 친자 확인을 할 것이라는 말은 너희들도 들었을 것이다. 우리 먼저 확인하고 다른 얘기를 하자."

"사람을 데려오너라."

말라깽이는 따지지 않고 통쾌하게 대답했다.

뚱보 악인은 불쾌하다는 듯이 고함을 질렀다.

"왜 저년의 말을 들어야 해? 지금은 우리 말대로 해야 하는 게 아니야? 월씨가 사람을 확인하겠다면 우리의 규칙대로 몸에 구멍이 뚫린 다음, 우리가 맛보게 해야지."

그러나 말라깽이와 월령안은 모두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월령안은 귀시의 사람과 처음 접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뚱뚱하고 날씬한 이 두 형제 중에서 제대로 말하는 사람은 말라깽이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끼긱…… 끼긱……

귀시의 졸개가 어두운 곳에서 육중하고 오래된 나무로 만든 바퀴 의자를 끌고 나왔다.

나무로 만든 바퀴 의자는 울퉁불퉁한 산길에서 '끼긱' 소리를 냈다.

바퀴 의자에는 검은색 천으로 몸을 감싼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앞의 검은 몸집을 보자 월령안은 심장이 묵직하게 아파오는 것이 느껴졌다. 비수를 쥔 손은 저도 모르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바퀴 의자에 앉은 사람을 보자 그녀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바퀴 의자의 사람이 정말로 오라버니의 자식이라면, 자기 보호 능력이 전혀 없는 어린애가 부모의 보호도 없이 귀시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이 몇 년간 그는 많은 고생을 했겠지?'

월령안은 그와 점점 가까워지는 바퀴 의자를 바라보며 기대되기도 하고 겁도 났다.

오라버니의 핏줄을 본다는 것에 기대가 되었고 또 그녀가 보고 싶지 않던 장면을 보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부모의 보호가 없는 아이가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힘든지 그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