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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23)화 (823/1,004)

823화 공작령(孔雀翎)

지오 방장은 두 손으로 합장했으나 멀리하는 기색이 있었다.

그들 소림과 무당은 자기 몫의 일만 할 뿐이지 월령안과 귀시 사이의 은원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도, 개입하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방장의 이 말씀이 있으니 전 안심입니다."

월령안은 지오 방장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척,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장 장문인은 차마 더 두고 볼 수가 없어 월령안을 쿡, 찔렀다.

"계집애, 여우 같긴."

월령안은 이 기간 동안 줄곧 귀시와 시간을 끌고 있었다. 하루 안에 얘기를 마칠 일을 무림대회가 끝나기까지 시간을 끌었다.

최일이 몰래 무림맹을 떠나 월령안의 구원병을 찾으러 갔다는 것을 몰랐다면 그도 귀시의 사람들처럼 월령안이 각 대문파의 인원들을 기다리는 줄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월령안의 진정한 필살기는 최일이었다!

그 나약하고 무공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서생이었다.

월령안은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그녀는 장 장문인과 지오 방장 등 사람들을 무림맹 밖으로 배웅했다.

돌아선 그녀는 얼굴의 웃음기를 지웠다. 그러자 차갑고 살기가 넘치는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의 뒤에 있던 추수 역시 저도 모르게 온몸이 긴장해지며 고도의 경계심을 유지한 채, 월령안의 명령을 기다렸다.

"한(韓) 장주가 깨었느냐?"

월령안은 걸으면서 물었다.

"어제 깨었습니다. 깨어난 후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의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게 하며 아가씨를 뵙겠다고 난리를 칩니다."

추수는 단숨에 대답했다.

"명검산장에 진장지보(鎮莊之寶)가 있다고 했지?"

월령안의 입가에 냉소가 피어올랐다.

상인이니 탐욕스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 장주가 그녀의 약을 그리도 많이 먹었으니 약값이라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녀가 귀시의 사람들과 만나려면 손에 맞는 병기가 부족했다.

마침, 명검산장의 진장지보가 그녀와 인연이 있었다.

명검산장의 진장지보는 강호에서 암기의 우두머리로 소문난 공작령(孔雀翎)이었다.

공작령은 둥근 통처럼 생겼고 시동이 걸리면 깃털 모양의 칼날이 튀어나온다고 한다. 칼날은 무지개빛으로 공작새가 꼬리를 펴듯 눈부시게 빛을 뿜는다. 적이 눈부시다고 느낄 때,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었다.

소문이라고 한 것은 지금까지 강호에서 공작령을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작령을 만들기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공작령은 복잡한 암기가 아니라서 시간만 충분히 있다면 그 어떤 무기 제조 경험이 있는 대가들도 다 공작령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범을 그리는데 가죽을 그리기는 쉬워도 뼈를 그리기는 어려운 법이다.

만들기 어려운 것은 공작령이 아니라 공작새 깃털 모양의 칼날이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공작령의 칼날은 모두 철강으로 만들었는데 날카롭고 반짝거리며 만지기만 해도 피를 보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철강을 만드는 기술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래서 명검산장의 공작령은 진강지보가 되었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었다.

월령안은 명검산장의 사람들더러 공작령을 가지고 와서 한 장주와 '바꿔'가라고 했다. 명검산장의 사람은 당연히 거절하며 분분히 월령안더러 사람을 너무 괴롭힌다고 했다.

명검산장의 질책에 대해 기꺼이 인정했다.

"제가 사람을 괴롭히는 게 맞아요. 그런들 절 어쩌실 건가요? 전 상인이지 자선당을 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네 장주가 무림맹에서 제 것을 먹고, 마시고, 지내는데 제가 보수를 요구하는 게 뭐 어때서요? 물론, 전 비록 상인이나 강매하지는 않아요.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어쨌든 당신네 장주가 하루라도 더 머무르면 제가 받을 보수는 더 늘어날 거니까요. 전 손해 보지 않아요."

"뻔뻔스러워!"

"비겁해!"

"간상배!"

명검산장의 사람은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차를 들고 홀가분한 얼굴로 말했다.

"욕하세요. 아무튼 당신들도 욕이나 두어 마디 할 뿐이지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이 아니에요? 지금의 명검산장은 예전의 명검산장과 다르죠. 더 이상 강호의 유일한 병기 공급원이 아니게 되었는데 명검산장이 예전처럼 어디를 가나 떠받들릴 거라고 생각한 건가요?"

월령안은 다리를 꼬고 앉아 어르신처럼 말했다.

"제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범씨 가문의 강호소진(江湖小鎮)은 이미 열렸어요. 보세요, 명검산장이 없는 무림맹은 여전히 그 무림맹이에요.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어요. 마찬가지로 명검산장이 없는 강호소진도 전혀 지장 받지 않고 열렸어요. 명검산장의 처지가 어떤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명검산장에 준 타격이 부족하다고 여긴 것인지 월령안은 또 비꼬는 얼굴로 덧붙였다.

"정신 차리세요! 당신네 명검산장이 누리던 영광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되었어요."

명검산장의 관리인은 얼굴이 퍼레져서 죽일 듯이 월령안을 쳐다보았다.

"너…… 도대체 어찌할 생각이냐?"

그들 명검산장이 이토록 애매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 다 누구 때문인데?

월령안이 아니었다면 그들 명검산장은 여전히 무림에서 유일무이하고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명검산장일 것이다!

"전 공작령을 원해요."

"꿈 깨!"

"그럼 당신네 한 장주의 시신을 거둘 준비를 하세요!"

"네가 감히!"

"제가 감히 못할 건 없죠."

월령안은 다리를 거두고 단정하게 앉았다.

"제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당신네 한 장주는 제자를 받지 않았어요. 그는 명검산장, 심지어 강호 전체에서 가장 대단한 병기 제조 대사예요. 공작령이 없는 명검산장은 여전히 명검산장이지만 한 장주가 없이는 당신네 명검산장이 계속 명검산장으로 불릴 것 같아요?"

"공작령은 절대……."

명검산장의 관리인은 화가 나 얼굴이 굳었다. 그가 거절하려고 하는데 옆에 있던 청색 옷의 남자가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허락해!"

청색 옷의 남자는 한 장주의 친조카였다. 명검산장의 준 후계자이기도 했다. 소장주가 폐인이 되었다 여겨지자 그의 지위는 높이 치솟았다. 관리인도 그의 체면을 얼마간 봐주어야 했다.

관리인은 고민되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공작령이 없다면 그들은 철강 제조 방법을 알아낼 가능성이 더욱 없어지는 것이었다. 철강이 없다면 명검산장은 어떻게 다시 일어나겠는가?

"그러나는 무슨! 장주가 가장 중요하다. 장주가 없다면 우리는 어차피 공작령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산에 있다면 땔감 걱정은 필요 없는 법.

월령안이라고 영원히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없고 그들 명검산장도 영원히 열세에 처해 있을 리 없었다.

청색 옷을 입은 남자는 죽일 듯이 월령안을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증오로 가득했다.

월령안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그녀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괴롭히고 망가뜨리려는 사람은 많았다. 하나 더 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명검산장의 장주마저 안중에 두지 않는데 후계자 자리조차 확보하지 못한 장주 조카를 신경 쓰겠는가?

그녀는 소년의 가난함을 괴롭히지 말라는 말 따위를 마음에 둔 적이 없었다.

그녀가 미움을 살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은 척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소년이 연약할 때 때려 죽이지 않는다면 그가 커서 대단한 사람이 된 다음에 손을 뻗으라는 말인가?

그녀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간상배였다. 그러나 동시에 신용을 지키는 대상인이기도 했다. 그날 오후, 명검산장에서 공작령을 보내왔고 월령안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사람을 풀어 주었다.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월령안은 한 장주에게 약 한 그릇을 더 보내 줘 한 장주가 일을 벌이지 않고 조용히 떠나게 했다.

물론, 월령안은 한 장주를 순순히 풀어주었지만 그녀는 분란의 불씨를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공작령의 일은 한 공자께 감사드려요. 앞으로 한 공자께서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절 찾아오셔도 됩니다."

월령안은 명검산장의 모든 사람들 앞에서 웃는 얼굴로 한 장주의 조카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사람들에게 한 공자의 도움으로 공작령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암시했다.

이것이 가장 뻔뻔한 일은 아니었다. 가장 뻔뻔한 것은 월령안이 또 생글생글 웃으며 덧붙인 말이었다.

"아 참, 제가 일부러 당신들을 이간질한 거예요. 믿지 마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돌아서서 떠나갔다. 한 공자에게 해명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한 공자는 화가 나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그는 급히 해명하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우리는 월령안이 이간질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는 속지 않았습니다."

명검산장의 모든 사람들은 비록 이렇게 말했으나 눈빛에는 의심이 담겨 있었다.

한 공자는 만약 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월령안에게 복수를 하기는커녕 명검산장을 물려받는 것도 어려워질 것을 알고 있었다.

* * *

말썽을 피운 월령안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명검산장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추수를 데리고 뒷문으로 빠져나와 이산으로 곧게 향했다.

이산은 무림맹과 하루 반의 여정 정도 떨어져 있었다. 월령안은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이산의 산자락에 도착했다.

이산 산자락에 도착하자 귀신 가면을 한 남자들이 살기등등하게 어두운 곳에서 걸어 나왔다. 이 사람들은 마치 물건을 살피는 것처럼 월령안을 훑어보고 시선을 월령안의 팔목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음산하게 입을 열었다.

"월 가주가 암기에 능하다고 들었네만?"

"귀시의 소식은 이토록 빠르죠."

월령안은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다가가 손, 머리 위, 허리띠에 있던 암기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그녀의 행동은 여유롭고 표정은 자연스러운 것이 마치 살벌하고 극악무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사람이 그녀가 아닌 듯했다.

암기를 모조리 꺼낸 뒤, 그녀는 또 종아리에서 비수를 꺼냈다.

"이건 암기가 아니에요. 제가 가지고 있어도 될까요?"

귀시의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녀도 오만방자하고 스스로를 대단히 여기는 이 귀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귀시의 사람들에게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고 월령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 친척을 대면하러 왔어요. 당신들이 준 증거는 충분해요. 그러나 사람은요? 당신들이 아무나 데리고 나오면 제가 바로 조카로 인정하리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전 피로 친자 확인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당신들이 찔러서 흘리는 피는 제가 믿지 못하겠으니 제가 직접 찌르려고요."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월령안은 비수를 뽑았다.

"피만 흘리게 하는 칼이에요. 칼날도 손가락의 절반 길이밖에 안 되죠. 배도 찌를 수 없으니 사람을 죽이지 못해요."

귀신 가면을 쓴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다가 우두머리인 장사가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살펴보아야겠네."

"마음껏 살펴보세요."

월령안은 대범하게 비수를 상대방에게 건네주었다.

"더럽히지만 않으면 됩니다."

천궁각의 수석 장인이 직접 만든 암기였다. 이 사람들이 문제점을 발견한다면 월령안 그녀는 성을 갈 것이다.

장사는 자세하게 살펴보았지만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재빨리 비수를 월령안에게 돌려주지 않고 야릇한 시선으로 원령안을 훑어보았다.

"비수를 돌려줄 수는 있으나 몸수색을 해야겠군."

월령안이 차갑게 비꼬았다.

"제가 홀딱 벗어야 산에 오를 수 있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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