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2화 최일의 대책
최일이 추수를 데려가라고 한 것은 추수가 여인이기 때문이었다.
세상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여인을 깔보았다. 귀시의 사람들이 추수가 월령안의 호표라는 것을 알면서도 추수가 여자라고 낮잡아 볼 것이다.
귀시가 월령안이 추수를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할 것이라고 최일은 얼마간 확신이 섰다.
"눈속임으로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한다는 말인가요?"
월령안은 오른손을 왼손의 손등에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가볍게 왼손을 손등을 두드렸다.
이건 그녀가 뭔가를 결정하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하는 버릇이었다.
"그렇죠. 눈속임으로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이죠."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월령안이 그가 말하려는 것을 알아챌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최일 얼굴의 미소는 저도 모르게 활짝 번졌다. 그러나 미소를 짓던 최일은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내가 왜 기뻐하는 거지? 령안과 내가 아무리 암묵적으로 통하는 게 있은들 무엇하리? 령안은 이미 철저하게 날 거절했잖아. 나한테는 일말의 기회도 없다고…….'
최일의 눈에 씁쓸한 시선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고개를 살짝 떨구고 다른 사람에게, 특히 월령안에게 시선에 드리운 허탈함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월령안은 이 일에 고심하고 있어 최일의 우울한 기분을 눈치채지 못했다.
"누구의 사람을 쓸 건가요?"
최일은 씁쓸한 얼굴로 마음을 억지로 다잡았다.
"무림맹의 사람들은 이미 감시당하고 있어요. 각 대문파의 사람들이 조금만 움직여도 귀시가 눈치챌 거예요. 그들은 어두운 곳이 아닌 밝은 곳에 있을 수밖에 없어요. 육 대장군 수중의 정예병들이 어떤가요?"
눈속임을 하여 겉과 속이 다른 작전을 한다. 그러면 당연히 누군가 겉에 나서야 했다. 각 대문파의 사람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그들로 귀시의 사람을 현혹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작용은 귀시의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에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귀시의 화력을 흡수해 가면 육장봉 수중의 정예병들에게 시간과 기회를 벌어 주는 것이었다.
가볍게 손등을 두드리던 월령안의 행동이 늦어지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전 육장봉 수중의 정예병을 움직일 수 없어요."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서는 안 되었다.
육장봉 수중의 정예병은 조정의 정예병이었다. 조정의 병사와 군마는 조정에만 쓰일 수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수 있다 해도 그러면 안 되었다. 그러지 않으면 황제는 더더욱 그녀를 봐주지 않을 것이다.
"저는 움직일 수 있어요! 제가 지금 경성으로 돌아갈게요. 그때가 되면 제가 직접 지휘하여 당신과 함께 귀시를 토벌하러 올게요!"
최일은 이 말을 하면서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그가 황제에게 상주서를 올리는 순간부터 무림맹에서 그가 맡은 임무는 끝났다. 월령안이 그에게 그녀와 육장봉의 깊은 인연을 말해 주었을 때, 그는 떠났어야 했다.
다만 그는 아쉬웠다. 그는 월령안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쉬웠고 더 이상 월령안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호응을 받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월령안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너무나 기뻤다.
그는 자기가 이렇게 하는 것이 그와 월령안 모두에게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이 그더러 가라고 하기 전에 그는 먼저 월령안과 연락을 끊을 자신이 없었다.
그는 이토록 은밀하고 또 비겁하게 남았다. 마치 귀퉁이에 숨어드는 벌레처럼 몰래 월령안을 훔쳐보기만 할 뿐 감히 그녀 앞에 나타나지 못했다. 그녀가 그를 보고 쫓을까 봐 두려웠다.
분명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여전히 자신을 빠져들도록 내버려두었다.
이 며칠간 그의 마음은 줄곧 고통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월령안을 볼 수 있음에 즐거워하고 한편으로는 자기의 비겁함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는 줄곧 매듭을 짓고 싶었으나 항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지금 그는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월령안의 안전을 위해서 그는 반드시 떠나야 했다.
최일의 제안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최일의 계획이 성공하지 못해도 월령안은 여전히 원래 계획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잠깐 생각한 뒤, 월령안은 최일의 제안을 동의하였다.
이 일은 빠를수록 좋았다. 아무리 아쉬워도 최일은 꾹 참고 변경으로 돌아갈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번에 떠나면 언제가 되어야 월령안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했다.
최일은 월령안더러 배웅하게 하지 않았다.
그는 월령안에게 그의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번 생에 월령안은 한 여인이 한 남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를 좋아할 수 없다고 해도 그는 월령안에게 실패하고 퇴폐한 남자가 아니라 영원히 완벽한 최일이고 싶었다.
아쉽고 아픈 마음을 안고 최일은 변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무림맹을 떠나는 그 순간, 그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무림맹을 떠날 때,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은 것이 돌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가 월령안을 보면 차마 떠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 * *
상인으로서 월령안은 협상하는 것에 능숙했다.
그녀가 지금 우세에 처했음은 물론이고 열세에 처했더라도 협상하는 자리에서 자기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일의 계획이 있으니 월령안은 귀시와 급히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일고여덟 날 동안 인내심이 있게 천천히 시간을 끌었다.
월령안이 귀시와 협상하는 기간에 무림대회도 막을 내렸다.
이번 무림대회는 평범하나 또 가장 평범하지 않은 무림대회였다.
이번 무림대회에서 무림맹주인 수횡천에 도전하는 사람이 없었고 수횡천도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 무림맹주 자리를 연임했다.
그러나 이번 무림대회에서 젊은 무림 고수들이 크게 빛을 발했다. 많은 재주가 뛰어난 인물들이 나왔는데 무림 비무 일등을 거둔 무당 제자 장소계(張少啟)가 가장 뛰어났다.
장소계는 무림 비무에서 구전 구승으로 무림 비무 일등을 차지했다. 천궁각에서 그를 위해 제작한 병기를 가질 뿐만 아니라 천기각의 집필인에게 쓰여져 무림지에도 실리게 되었다.
이것 말고도 월령안은 월씨 가문 책 점포에서 대본을 쓰는 서생이 밤새 무림맹에 달려와 장소계가 강호를 누비며 행한 영웅 사적들을 기록하게 했다.
그리고 또 월령안은 월씨 가문 책 점포에서 이 대본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꾼더러 각 다루에서 장소계의 강호 사적을 읊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장소계는 이번 비무로 뛰어난 무구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하루아침에 온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장소계는 수줍음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러나 월령안의 약속들을 듣자 저도 모르게 흥분되어 귀 끝이 빨개졌다.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나같이 샘이 나 어쩔 줄 몰랐다. 특히 한 수 차이로 장소계에게 패배한 숭산(嵩山) 제자 엄세주(嚴世舟)는 부럽다 못해 눈까지 빨개졌다.
딱 한 수 차이였다!
딱 한 수 차이로 그는 이등이 되어 하루아침에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칠 기회를 잃었다.
"너 이 자식, 운이 참 좋아."
엄세주는 절대 자기가 장소계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너무 무심한 탓에 적을 만만히 보고 일등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장소계에게 진 것이었다.
만약 그가 이득이 이렇게 많은 줄 알았더라면 피를 토하도록 맞아도 쉽사리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운도 실력의 일부분이야. 월 낭자가 말했어."
장소계는 입을 벌리며 웃었다. 그의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우리는 패배자가 질투에 눈이 빨개지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고 했어. 이것도 월 낭자가 말한 거야. 난 월 낭자가 말을 참 잘한다고 생각해."
"너 이 자식, 작작 까불어. 다음번에는 운이 이렇게 좋지 못할 줄 알아. 다음 일등은 반드시 나야."
염세주는 절대 질투가 난다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말이지 너무도 질투 났다.
비록 오 년 뒤, 무림대회는 또 열릴 것이고 그도 일등을 할 기회가 있다지만 앞으로의 일등은 무림 비무 첫 번째 일등이 아니었다. 아무리 강하고 능력이 있어도 장소계의 첫 번째 일등처럼 가치 있지 않았다.
그는 이 몇 년간 열심히 무예를 닦지 않은 것이 정말 후회되었다. 그래서 한 수 차이로 장소계 이 자식에게 진 것이었다.
"엄 사형, 연습 잘해. 그때 가서 내 사제에게 진다면 더욱 체면이 안 서잖아."
장소계는 수중에 든 병기를 뽐내듯 흔들었다.
소년은 의기양양했다. 그의 눈에는 말하지 못하는 뿌듯함과 기쁨이 들어 있었다.
월령안은 장 장문인과 지오 방장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우연히 장소계와 엄세주가 장난치는 모습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장 장문인, 방장, 전 당신들이 저한테 아주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제가 무림의 고요함을 깨뜨리고 강호 전체를 피바람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런데 보세요……. 저들은 두려워하지 않아요. 심지어 기대하고 있죠. 아닌가요?"
마치 군인에게 혈기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강호 사람도 승부욕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무도의 길은 진보가 아니면 후퇴였다. 평범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지만 평범해진다면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 것이다.
장 장문인과 지오 방장은 월령안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힐끗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늙은 것이지요."
겉으로의 평화를 유지하는 한이 있더라도 변하려 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방장, 별말씀을요. 바로 당신네 대가들이 있기 때문에, 당신들이 그들의 후방을 안정시키고 그들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두려움 없이 밖에서 뛰어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월령안은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의 시선에는 이 나이대의 사람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듬직함과 침착함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포권하고 두 사람에게 예를 올렸다.
"무림대회가 이미 끝났으니 저도 두 분을 잡지 않겠습니다. 앞으로의 일은 두 분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귀시의 약속대로 사흘 뒤에 이산(黟山)에서 만날 것이다.
이산의 산꼭대기는 모두 돌을 쌓아 마치 깎아서 만든 것 같은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가파르고 험준했다. 산봉우리 아래는 자욱한 안개 때문에 마치 선경과 같이 깊이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산은 아주 아름다웠지만 또 아주 위험했다. 산에 오르내리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길목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월령안이 미리 사람들 잠복시키는 것은 허황된 생각이었다.
귀시의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를 이산으로 정한 것은 월령안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월 시주를 도와 귀시를 없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