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820)화 (820/1,004)

820화 무림맹의 선택

지오 방장은 월령안에게 붙잡을 여지를 주지 않고 바로 떠나갔다.

그가 이렇게 떠나자 남은 사람들은 난처해졌다. 특히 가장 열정적이던 구 장문인과 정 장문인 몇몇은 더더욱 서로를 바라보며 난감한 얼굴을 했다.

지오 방장의 떠남은 마치 커다란 따귀처럼 그들의 얼굴을 호되게 때려 놓았다. 그들은 창피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깊게 생각하기도 전에 월령안이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림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가 며칠 전에 최 대인과 소림에 대해 얘기를 나눴어요. 전 그때 언제쯤이면 소림처럼 좋은 땅 백 무를 가지고 있으나 세금 한 푼 안 낼 수 있겠냐고 웃으며 말했었죠. 대대손손 걱정할 필요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손들은 부유한 집에서 인간 세상의 부유함을 누릴 수 있으니 말이죠."

지오 방장은 소림사의 주지 방장이었다. 소림사의 스님들은 조정에서 부양하고 있어 지오 방장은 돈이 부족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부심을 지킬 밑천이 있으나 자리에 있는 다른 장문인들에게는 뭐가 있는가?

지오 방장의 고결한 품성을 따르고 싶다면 우선 밑천이 있어야 했다.

월령안은 농담을 하듯 부럽다는 말을 마치고 또 우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게도 전 꿈에서만 생각할 수 있어요. 이번 생은 물론이고 다음 생, 다다음 생에도 저한테는 이렇게 좋은 팔자가 놓이지 않을 거예요. 제가 재산을 마련하려면 직접 두 손으로 노력해야 해요. 여러분들, 아닌가요?"

"월 낭자의 말이 맞아요. 우리는 소림사와 달라요. 우리는 자기의 재능으로 재산을 모아야 해요."

지오 방장이 떠나가자 마음이 흔들렸던 장문인들은 월령안의 말을 듣고 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월령안이 말한 것처럼 지오 방장은 그들과 달랐다. 지오 방장은 월령안이 내놓은 돈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이 시기에 도도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옆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천목신교를 떠올리자 장문인들은 월령안 앞에서 거드름을 피울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지오 방장이 떠나는 모습을 본 그들은 더 이상 염치없이 흥정할 수 없었다. 몇몇 대문파의 장문인들도 나서서 말했다.

"월 낭자, 우리 무림의 각 대문파가 손을 잡는 일은 우리끼리 말해도 소용없소. 우리는 맹주의 말을 들어야 하오. 오늘의 만남은 여기까지 하는 것이 어떻겠소?"

지오 방장이 떠나자 그들은 너무나 창피해졌다. 그들은 도저히 월령안과 조건을 따질 염치가 없었다. 그래서 수횡천에게 넘기기로 했다.

서로 의형제이니 창피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날 저녁, 수횡천은 월령안을 찾아왔다!

그러나 수횡천이 입을 열기도 전에 월령안이 웃음을 터뜨렸다.

"장문인들은 참 마음도 급하시네요. 수 오라버니, 이렇게 급히 오셨으니 어떻게 절 설득하실지, 어떻게 천목신교와 이 임무를 빼앗을 것인지 생각해 두셨어요?"

수횡천은 멍해졌다.

"천목신교에게서 빼앗는다고?"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전 이미 천목신교와 약속했다고요. 아니에요?"

"뭐?"

수횡천은 경악한 얼굴을 했다.

"언제의 일인데? 넌 줄곧 소림, 무당의 수장들을 설득해 힘을 합쳐 귀시를 없앤다고 하지 않았어? 왜 천목신교와 이 일을 얘기한 거지?"

"최근의 일이에요! 전 지금 천목신교와 얘기 중이에요."

전에는 모두 그녀가 소림과 무당에게 사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주도권은 그녀가 잡고 있었다.

"수 오라버니, 먼저 돌아가서 잘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절 설득해서 천목신교를 포기하고 당신들 무림맹을 선택하게 할 것인지. 생각을 다 하기 전에는 우리 이 얘기를 하지 말죠. 물론, 오라버니에게는 하룻밤의 시간밖에 없어요. 내일 진시(辰时 - 오전 일곱 시에서 아홉 시)까지 절 설득하지 못하면 전 천목신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하나같이 모두들 그녀가 거드름을 피우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라도 그녀는 진짜처럼 하여 사람들이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들 것이다.

"령안……."

수횡천은 불안하게 입을 열었다. 월령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수 오라버니, 상업계에서는 상업 방식으로 얘기를 해야죠. 우리는 지금 거래를 하고 있는 거예요."

월령안은 오른손을 들어 밖으로 안내하는 손짓을 했다.

수횡천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처음으로 월령안에게 쫓겨나게 되었다. 이 기분은 정말 좀……

그러나 그가 깊이 생각하기 전에 월령안은 그를 내보냈다.

"수 맹주, 여기로 오시지요."

문밖에서 지키고 있던 추수도 똑같이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그를 마당 밖으로 내보냈다.

수횡천은 마당 밖에 서서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가 령안의 심기를 건드렸나?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아니지, 내가 했었지. 그런데 내가 한 일은 령안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던가? 지금 상황은 완전히 령안이 원하던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왜 령안은 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날 쫓아내는 거지? 도대체 왜?'

수횡천은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가 잘 돌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수횡천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자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똑똑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그가 이해 못해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수횡천은 돌아서서 또 돌아갔다. 그리고 월령안의 말을 곧이곧대로 구 장문인 등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다.

구 장문인 등 사람들은 수횡천이 이토록 빨리 돌아온 것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그러나 수횡천의 말을 듣고 장문인들은 모두 멍해졌다. 입가에서 맴돌던 아부의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수횡천의 체면조차도 봐주지 않는다는 건가?

"내일 진시 전까지 그녀를 설득할 방법을 찾아야죠. 그런데 하룻밤의 시간밖에 없는데 이 시간 동안 무슨 수를 생각해 내겠어요? 월 낭자는 천목신교와 협력하기로 마음을 먹고 일부러 우리를 난감하게 구는 것이 아니에요?"

몇몇 장문인들은 서로서로 바라보며 일순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에게 기회를 준다고는 했지만 하룻밤 사이에 정말 해낼 수 있을까?

* * *

무당의 장 장문인과 소림의 지오 방장은 뭇 장문인들과 함께 수횡천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줄곧 그들의 동향을 주목하고 있었다.

월령안이 수횡천의 체면을 봐주지 않고 무림맹과의 합작을 응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장 장문인은 이를 갈았다.

"월령안은 도대체 무슨 뜻인 건가? 자네는 전에 그녀가 일부러 천목신교를 들먹여 우리들에게 위기감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금 보니……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데? 난 왜 월령안이 정말로 천목신교와 손을 잡을 것 같지?"

지오 방장이 대답하기 전에 장 장문인이 또 말했다.

"내가 제자들에게 듣기로는 천목신교의 사람이 월령안과 관계가 아주 각별하다고 하네. 혹시……."

장 장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당의 제자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장문인, 천목신교의 좌우 호법(護法)이 찾아왔습니다. 수 맹주께서는 지금 몇몇 장문인들과 함께 그들을 접대하고 계십니다. 소인더러 장문인과 방장께 보고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천목신교의 좌우 호법이 왜 갑자기 왔느냐? 그들이 뭘 하러 왔다더냐?"

장 장문인은 벌떡 일어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 그러자 무당의 제자는 깜짝 놀라 어찌할 줄 몰랐다.

"장문인, 제자는 모릅니다."

"넌 왜 아무것도 모르느냐."

장 장문인은 싫은 티를 내면서 다리를 들어 휘청거리며 제자를 차는 시늉을 했다.

"모르면서 멍하니 여기서 뭘 하는 것이냐? 얼른 나가서 알아보지 않고."

무당의 제자도 아주 협조적이었다. 옷자락조차 발길에 닿지 않았지만 몸을 돌려 뛰어올랐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네, 네, 네, 소인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사부님 조급해하지 마세요. 이 일은 조급해하셔도 소용없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도망치고 말았다.

장 장문인은 웃으며 욕했다.

"저 자식."

돌아서서 지오 방장이 평온한 표정으로 염주를 튕기는 것을 보고 장 장문인은 저도 모르게 화가 났다.

"저기요, 민머리, 지금이 어떤 시기인데 아직도 염불을 외우고 있나? 말 좀 하면 안 되나?"

지오 방장은 손을 멈추더니 평온한 얼굴로 반문했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무림의 각 대문파의 생사존망이 걸린 시기지."

장 장문인은 지오 방장의 맞은편에 앉아서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민머리, 그 생각을 못했다고 말하지 말게나. 월령안과 천목신교가 손을 잡는다면 천목신교는 반드시 이름을 크게 날릴 것이네. 심지어 월령안이 말한 것처럼 사교를 무림 대종파로 바꿀 수도 있지. 그때로부터 무림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것이네."

지오 방장이 말했다.

"그런들 또 어떤가?"

"무림에 큰 변화가 일어날 텐데 우리가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 몸만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장 장문인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오 방장은 여전히 흔들림 없이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빈승과 무슨 상관이 있나?"

장 장문인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우리 좀 정상적으로 대화를 할 수는 없나?"

'오래 알고 지냈는데 이 민머리는 아직도 이렇게 숨기면서 말을 한다니까.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네.'

지오 방장은 한숨을 내쉬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소림에는 백만 무의 좋은 밭이 있네. 세금을 낼 필요도 없지. 천하 사묘(寺廟)의 스님들도 백만 명은 되네. 무당도 수십만 무의 세금을 낼 필요가 없는 좋은 밭이 있지. 사람도 수십만 명에 달하고."

"무슨 뜻인가?"

장 장문인은 어리둥절해졌다.

지금 무림의 변화를 얘기하고 있지 않았던가?

왜 두 양대 문파의 제자와 밭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지오 방장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월령안은 상인이네. 그러나 그녀는 황제를 위해 일을 하니 황제의 사람이지. 최 대인께서는 조정 명관(命官)이자 황제의 사람이고. 그녀와 최 대인이 소림에 대한 감탄이 정말 두 사람이 사적으로 감탄하고 부러워한 것이라고 생각하나?"

장 장문인의 안색이 돌연 변했다.

"자네 말은…… 조정이 우리에게 불만을 품었다는 건가?"

"주나라와 북요가 수십 년을 싸우면서 국고가 소진되었네. 삼 년 전, 황제는 육 대장군이 계속해서 전쟁을 치를 수 있게 하려고 월령안을 맞이하게 했지. 그 전쟁에서 비록 우리가 이겼지만 북요를 철저하게 무너뜨리지 못했네. 지금, 육 대장군이 북요에서 보름 가까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전쟁이 나겠지!"

장 장문인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 전쟁이 난다면 내정은 너무 혼란스러워서는 안되네. 귀시를 없애는 것은 월령안만의 생각이 아니라 조정의 태도기도 하네."

그는 원래 그 생각까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안이 일부러 각 장문인과 소림에 관한 말을 한 것이 그를 일깨워 주었다.

귀시를 멸하는 것은 조정의 결정이었다. 그들의 선택은 그들의 입장을 결정지을 것이다.

그리고 천목신교는 이미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금, 그들이 선택할 때가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