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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18)화 (818/1,004)

818화 제가 말해도 될까 모르겠어요

장 장문인이 또 물었다.

"령안 조카, 어떻게 천기각의 집필인을 모셔 온 것인지 우리들에게 말해 줄 수 있나? 우리 이 늙은이들은 매우 궁금하다네."

"저한테 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천기각의 각주와 아는 사이예요. 제가 그한테 부탁하여 각주에게 말을 전하게 했어요. 무림에서 큰일이 벌어질 것이니 각주께서 집필인을 보내셔서 기록하지 않으시겠냐고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보신 바와 같이 천기각에서 집필인을 보내온 거예요."

월령안은 가벼운 얼굴로 말했다. 마치 이 일이 더없이 쉬운 일이라는 듯했다.

자리에 있던 장문인들은 천기각의 집필인을 움직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무림에서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 한마디에 그들을 불러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천기각은 점괘에 능했다. 그리고 자기들의 점괘 실력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절대 누군가의 초대로 움직이는 법이 없었고 필요할 때만 나타나고는 했다.

언제가 필요한 때인지는 천기각의 각주만 알고 있었다.

월령안이 전갈을 보냈을 뿐인데 천기각의 각주가 집필인을 보내왔다는 것을 보면 월령안의 인맥이 얼마나 넓고 얼마나 체면이 서는지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장문인들은 월령안의 보는 시선에마저 존경심을 담았다.

그들은 돈 많은 상인의 미움을 사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으나 무림에서 인맥이 두터운 사람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장문인들의 안색이 하나씩 변하는 것을 보았다. 장 장문인은 절대 자기도 따라서 으쓱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얼굴의 미소는 저도 모르게 활짝 번졌고 목소리도 퍽 친근해졌다.

"령안 조카, 자네가 말한 큰일이 우리의 무림대회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겠지? 이건 별로 큰일이라고 할 것이 못 되네. 적어도 천기각의 집필인을 불러올 정도의 큰일은 아니지. 자네가 말한 큰일은 다른 일을 가리키는 것이지?"

장 장문인은 속으로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횡천과의 약속을 떠올리자 장 장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일부러 물었다. 월령안이 그의 질문에 어쩔 수 없이 대답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건……."

월령안은 난처한 얼굴을 했다. 월령안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장 장문인이 미리 알지 못했더라면 그도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지만 차마 말을 하지 못하는 지오 방장은 차마 이 장면을 볼 수 없어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는 손으로 염주를 굴리며 염불을 외웠다.

출가한 사람으로서 그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지 않았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뛰어나갈까 두려웠다.

"말할 수 없는 건가?"

장 장문인은 다시 한번 뻔히 알면서 물어보았다.

월령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이 일은 천목신교과 관련되어 있어 제가 말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월령안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했을 때 유독 어린 얼굴을 한 그녀는 이 순간 만큼은 정말 여리고 풋풋해 보였다.

적어도 사정을 아는 장 장문인과 지오 방장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길게 생각하지 않고 의아하게 물었다.

"월 낭자, 뭘 하시려는 건가요? 왜 사교인 천목신교와도 관련된 것이죠?"

"그건…… 그래도 천목신교와 관련된 일이니 제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적합하지 않겠죠?"

월령안은 말솜씨가 뛰어났다. 그녀는 일부러 반만 말하고 뜸을 들였다.

장 장문인이 다시 부추겼다.

"말하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나. 령안 조카, 자네는 무림인도 아니니 천목신교의 사람들이 모두 좋은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것이네. 비록 그들은 이 몇 년간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일은 하지 않았어도 사기를 치는 일은 적잖게 했다네. 자리에 있는 사람들 전부 자네 선배고 나이도 훨씬 많으니 자세하게 얘기해 주게나. 자네가 그 사악한 무리에 속지 않도록 우리가 잘 살펴봐 주겠네."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월 낭자, 말씀해 보세요. 우리가 살펴볼게요."

다른 장문인들도 시선에 드리운 호기심을 거두고 '나는 궁금하지 않으나 모두 널 위하는' 착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들은 연기가 미숙했다. 월령안은 몰래 스스로를 꼬집고 나서야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있었다.

"선배님들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저 얘기할게요? 그러나 선배님들께서 꼭 비밀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월령안은 이 말이 허튼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번째 사람이 아는 이상, 세상에는 비밀이 없었다. 더구나 이곳에는 열몇 명이나 있는데 어찌 비밀이 지켜지겠는가?

"월 낭자,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절대 말하지 않을 거예요."

여러 장문인들은 연신 장담했다.

"시름 놓고 말씀을 하세요. 우리는 그저 살펴만 볼뿐이에요."

월령안은 사람들의 '열정적인' 독촉을 못 이겨 머뭇거리며 말했다.

"사실 선배님들께 말씀드리지 못할 것도 없어요. 선배님들도 아시다시피 귀시에는 악명 높은 악마, 악인을 잔뜩 거두어들였죠. 이 사람들 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천목신교에서 나온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대외적으로 천목신교의 이름을 걸고 강간과 약탈을 일삼으며 나쁜 짓이라는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녔죠. 그러면서 천목신교의 명성을 더럽혔고요. 전 천목신교와 손을 잡고 이 악마들을 없애 버리고 싶어요. 무림과 백성들을 위해 해를 제거하는 셈으로요."

"귀시의 사람에게 손을 쓴다고?"

장문인들은 그만 얼이 빠졌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이건 정말 큰일이네요. 그러나 월 낭자께서 천목신교와 손을 잡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 아닌가요? 천목신교 사람들은 얘기가 통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천목신교의 남 교주는 이득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에요. 몇 마디 말로 그를 움직이게 할 수는 없어요. 월 낭자, 그들에게 속지 마세요."

무림의 해를 제거하기 위해 천목신교가 움직일 것이라고 그들은 믿지 않았다.

월령안과 천목신교 사이에는 분명 말할 수 없는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림의 해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 상인인 월령안은 물론이고 그들 같은 강호인들도 이득이 없는 일은 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더 이상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

"여러 선배님들께서 모르시는 게 있는데 전 강호맹에 강호 집시(集市 - 시장)를 열 생각입니다. 누군가 무슨 일을 처리하고 싶으나 나서기 불편할 때, 또는 처리할 수 없을 때, 강호 집시에 돈을 내고 임무를 내놓는 것이지요. 그러면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또 보수도 적당하다면 임무를 맡는 것이지요."

월령안은 잠깐 멈추었다. 이 사람들이 무림 집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게 시간을 준 뒤에야 말을 이었다.

"무림을 위해 해를 제거하고 귀시에 몸을 숨기고 있는 악마들을 제거하는 것은 제가 준비한 첫 번째 임무였어요. 공교롭게도 저의 그 친구는 천기각 각주와 친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천목신교의 남 교주와도 아는 사이예요. 그 친구는 제가 무림 집시에 귀시의 악마를 제거해 달라는 임무를 내놓을 생각이라는 것을 알자 우리더러 이 임무를 천목신교에 남겨 두자고 말했어요."

월령안은 힐끔 훑어보았다. 자리에 있는 장문인들이 하나같이 표정을 숨기고 있는 것을 보자 그녀도 따라서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천목신교는 이 몇 년간 줄곧 과거의 형상을 벗어 버리고 진정한 무림의 대종문, 대문파가 되고 싶어 했어요. 이번 일은 천목신교에게도 기회예요. 천기각 각주가 집필인을 파견하여 오게 한 것도 천목신교가 백성들을 위해 화근을 없애고 악의 수령을 제거한 뒤, 사교로부터 올바른 길로 들어서는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일 것이에요."

월령안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믿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말을 믿고 있었다.

만약 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면 그녀는 정말로 이 방법을 사용하여 천목신교의 사람들로 귀시의 사람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천목신교의 사람을 쓴다는 것은 더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의미했고 무림 집시도 열릴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심지어 무림의 각 대문파의 세력을 화합할 기회도 놓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돈보다, 무림의 화합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것은 귀시를 없애는 것이었다.

장 장문인과 지오 방장은 월령안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월령안이 천목신교와 손을 잡을 것이라는 말을 듣자 동시에 서로 바라보며 소리 없이 눈빛으로 질문을 주고받았다.

'월령안의 이 말에 진실성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두 사람은 또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들도 월령안이 하는 말이 진심인지 가짜인지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순간 그들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월령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군영각은 다시 짧은 정적에 잠겼다.

그러나 이번에 이 적막을 깨뜨린 사람은 월령안이 아니라 생각이 빠른 정 장문인이었다.

"천목신교의 변화를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은 집필인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일이네요. 다만 이 일은…… 월 낭자께서 사실대로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낭자께서 각주에게 말씀드린 것인가요? 아니면 각주가 스스로 점괘를 쳐서 맞춘 것인가요? 이미 바꿀 가능성이 없는 것인가요?"

만약 바꿀 수 있다면…….

만약 바꿀 수 있다면 정 장문인은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그들 같은 소문파가 궐기할 수 있는 기회였다.

모두들 이렇게 가난한 상황에 어쩌다 돈을 벌 기회가 생겼다. 비록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천목신교 그 나쁜 놈들도 할 수 있는데 그들이라고 왜 못할까.

다시 말해, 가난해 죽게 생겼는데 목숨을 거는 것이 뭐가 대수인가?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도 모두 자기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림 전체를 위해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

무림의 평화를 위한 것이고 무림을 위해 화근을 제거하는 것이다.

정 장문인은 생각할수록 이것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월령안이 대답하기 전에 또 말을 이었다.

"월 낭자, 천목신교가 무림의 정통 문파가 되는 것은 무림의 중대사가 맞긴 합니다. 그러나 무림의 소문파가 무림 대종문이 되는 것도 무림의 중대사가 아닌가요? 낭자의 그 친구가 천목신교의 교주와 아는 사이라고 한다면 우리도 낭자와 잘 아는 사이죠. 안 그래요? 무슨 일이 있다면 우리 잘 아는 사람들끼리 맞대면 얘기가 더 잘되겠죠?"

"정 장문인의 말이 맞습니다. 월 낭자, 우리 모두 잘 아는 사이고 우리는 또 여기에 앉아 있으니 무슨 일이 있다면 잘 의논해 봅시다."

정 장문인의 말은 생각이 영활한 소문파 장문인들의 열정을 순식간에 불러일으켰다.

그렇지!

천목신교가 이 기회에 무림의 대문파가 될 수 있다면 그들 같은 소문파들도 이 기회를 잡아 신세를 고칠 수 있었다. 어쩌면 무당, 소림 등 문파와 어깨를 겨눌 수 있는 대문파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전에 이 소문파는 기회가 없어 그럭저럭 먹고 마시며 죽기를 기다렸으나 지금 기회가 왔는데 잡지 않는다면 너무나 아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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