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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14)화 (814/1,004)

814화 불공평한 듯 공평한 운명

최일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월령안이 입을 열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제 어머니는 자결하여 사망하셨어요. 저희 어머니는 겉으로는 강해 보이나 실은 속마음이 여린 분이시죠. 예전에 일들을 좀 겪으셨으나 아버지가 아껴 주셔서 그녀는 크게 고생을 한 적이 없어요. 줄곧 보호를 받았죠. 우리 아버지는 비록 여자가 많았지만 어머니와의 감정은 아주 좋았어요.

어머니의 눈에 저의 아버지는 하늘이었고 기댈 수 있는 곳이었어요. 아버지가 없이 그녀는 살아갈 수 없었죠. 물론, 아버지 말고 오라버니도 어머니를 매우 아꼈어요. 다른 집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을 아낀다고 하잖아요. 우리 집에서는 오라버니가 어머니를 아꼈어요.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걸려 있었어요.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녀가 행복한 것을 알아볼 정도였죠."

월령안은 손에 든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쏟았다.

최일은 월령안의 말을 자르고 싶었고 월령안더러 말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자신의 감정에 푹 빠져 최일을 바라보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주 행복하셨어요. 그러나 너무 행복하셨던 탓에 조금의 비바람도 견디지 못하신 거예요. 육장봉이 저한테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시신을 돌려준 날, 어머니는 미치셨어요. 그러나 하인은 제가 겁을 먹을까 봐 일찍 저를 안고 나가서 전 보지 못했어요. 전 그때 여덟 살이었어요. 이미 죽고 사는 것이 뭔지 알 나이였죠. 전 아버지를 잃고 오라버니를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전 아주 슬펐고 또 아주 무서웠어요. 밤에 저 혼자 방에서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슬펐죠. 전 하인을 피해 몰래 어머니를 찾으러 갔어요……."

월령안은 눈을 감고 아무런 감정의 기복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밤, 제 어머니는 미친 듯이 제 목을 조르며 일그러진 얼굴로 물으셨어요. 왜 죽은 사람이 내가 아니냐고 말하면서요. 어머니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절 위해서, 제 자유를 위해 북요로 간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들은 저 때문에 죽은 것이고 제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죽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죠. 죽어야 하는 사람은 그들이 아닌 저였어야 한다면서요. 그녀는 애초에 절 낳자 마자 목 졸라 죽였어야 했다고, 제가 살아남게 두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셨어요."

마지막까지 말한 월령안의 목소리는 많이 평온해졌다. 그녀는 마치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는 듯, 전혀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월씨 가문의 모든 사람이 죽었는데 왜 저더러 죽지 않냐고 물으셨어요. 어머니는 저더러 죽으라고 하셨어요! 제가 죽어야 그녀는 자유로워지고 월씨 가문의 비극도 끝난다면서요. 어머니는 월씨 가문에서 가장 죽어야 할 사람이 저라고 하셨어요. 제가 죽어야 그녀는 벗어날 수 있고 모든 비극이 끝날 것이라고 하셨죠!"

최일은 자책하는 얼굴로 말했다.

"죄송해요, 묻지 말았어야 했어요."

'당신의 아픔을 끄집어내지 말았어야 했어요.'

"다 지나간 일이에요. 절 보세요……. 지금은 말해도 별로 슬프지 않아요."

월령안은 초점 없는 눈으로 앞을 바라보며 평온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때 전 나이가 어렸고 철이 없었어요. 어머니가 저더러 죽으라고 하는 것을 보고, 절 그토록 싫어하는 것을 보고 전 정말 죽으려고 했어요. 어쩌면 제가 죽는다면 어머니는 말씀하신 것처럼 자유로워지고 모든 비극이 끝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그때 전 아버지와 오라버니에게 곱게 키워져서 아픈 것도, 창피한 것도 두려워했죠. 칼을 들어 자결하고 싶었으나 너무 아플까 손을 쓰지 못하겠더라고요. 독약을 먹으려고 했으나 죽을 때 너무 꼴사나울까 두려웠고요."

월령안은 말하면서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은 우는 것보다 더 슬퍼 보였다. 그녀는 애써 웃었다.

"육장봉이 절 만났을 때는 제가 가장 망연했을 때였어요. 그때 전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었고 어머니의 증오에 슬퍼하고 있었어요. 전 그때 정말 죽고 싶었어요. 만약 육장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전 아마도 이미 죽었을 거예요."

십 년이 넘게 흘렀지만 월령안은 여전히 그때의 기분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때 어머니에게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죽게 했다고, 그녀가 죽어 마땅하다는 욕을 들었다.

그녀는 그때 자기가 죄인인 것만 같았고 죽으면 다 좋아질 것 같았다.

만약 그 해, 그녀가 육장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세상에는 월령안이 없을 것이다.

육장봉은 그녀의 구원자였고 그녀의 희망이었으며 그녀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튿날 바로 정신을 차리셨어요. 어머니는 절 안고 사과하시면서 잘못했다고 하셨죠. 귀신에 쓰였다고, 저더러 그 말을 믿지 말라고, 그건 악몽이었고 지금은 깨었다고요. 모든 것이 지나갔고 앞으로는 어머니가 절 보호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정말 제가 클 때까지 보호하셨어요."

그녀는 그게 악몽이 아니라는 것도, 어머니가 자기를 싫어하고 미워하며 죽은 것이 그녀이기를 바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아꼈고 또 남편과 아들의 말대로 그녀를 잘 지켜 주었다.

그래서 그녀가 크자 그녀의 어머니는 자결했다.

그녀는 속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줄곧 마주하기 싫어했다.

그래야만 그녀는 스스로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했으며 자신은 죽어 마땅한 사람이 아니라고 설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일은 눈물에 씻긴 뒤 더 또렷해진 월령안의 눈을 보면서 마음이 욱신거렸다.

그는 드디어 자기가 어디에서 졌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평생 육장봉을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부터 이미 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월령안이 처음부터 그를 거절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니, 월령안이 거절한 것은 그가 아니었다. 월령안이 거절한 것은 육장봉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었다.

최일은 포기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으면 친구조차 될 수 없을 것이다.

최일은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령안, 미안해요. 그리고 전 당신이 그때 육장봉을 만났다는 것이 아주 기뻐요."

'또 그때 당신이 만난 사람이 제가 아니라서 아쉽군요.'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바로 운명이었다.

불공평한 듯하다가도 또 아주 공평했다.

"저도 그때 육장봉을 만난 것을 아주 다행으로 여기고 있어요."

그녀처럼 피 맺힌 원수를 등에 업고 족쇄를 겹겹이 짊어져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육장봉은 그녀를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육장봉의 몇 마디 안 되는 말은 그녀의 죽고 싶은 마음을 없애 주었다.

"아 참, 천기각의 집필인은 어찌 된 일인가요?"

최일은 다시 한번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성공했다.

월령안도 더 이상 예전의 일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

사실상, 최일이 묻지 않았다면 더구나 최일을 포기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녀는 이미 다 자라 냉정하게 그때의 일을 마주할 수 있었지만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녀는 기분이 울적해졌다.

최일이 천기각의 집필인 얘기를 꺼내자 월령안이 대답했다.

"육장봉의 사람이 보내온 거예요. 저도 천기각을 생각해 보았으나 아시다시피 전 강호에서 천기각의 사람을 움직일 만한 인맥이 없어요."

정확히 얘기하면 천목신교의 남상권이 천기각의 사람을 보내온 것이었다.

"대장군께서요? 그분은 천기각의 사람과 잘 아는 사이래요?"

천기각은 항상 높은 곳에 있었다. 그들은 비록 무림의 일을 기록했으나 자기들을 무림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육장봉이 천기각의 사람을 초대해 오려면 잘 알기만 해서는 안 되었다.

"제가 육일에게서 들은 바로는 천기각의 각주(閣主)가 육장봉에게 인정을 빚졌다고 하더군요. 육장봉이 제가 무림맹에 있다는 말을 듣고 천기각에 편지를 보내 집필인을 파견하라고 했대요."

월령안은 구체적인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육장봉이 천기각의 집필인을 찾아온 것은 최일의 앞에서 뽐내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육장봉의 소식은 아주 빨랐다. 멀리 북요에 있으면서도 최일이 그녀를 도와 범씨 가문을 대적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가 소식을 전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녀가 가장 먼저 의심한 사람이 바로 육일이었다.

비록 육삼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어 가장 의심스러웠지만 육삼은 지금 추수와 연애를 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또 하루빨리 그녀의 허락을 받아 추수를 맞이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육삼이 몰래 육장봉에게 그녀를 고자질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육장봉도 참 질투가 많았다. 북요에 있으면서도 최일을 누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육장봉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천기각의 집필인이 있으니 그녀가 무림의 각 대문파를 움직이는 것은 훨씬 쉬워졌다.

"육 대장군께서는 참…… 인맥이 넓으시네요."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씁쓸했지만 최일은 진심으로 찬사를 보냈다.

육장봉은 이번에 정말 월령안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전에 남북을 돌아다닌 적이 있어요. 젊음의 혈기로 많은 사람들과 척도 졌고 인맥도 맺었지요. 그때 서역에 있을 때, 육장봉을 아는 사람도 많았어요. 전 그의 차가운 성격으로는 친구가 없을 줄 알았는데 친구가 많더라고요. 별별 친구들이 다 있었어요."

육장봉 얘기가 나오자 월령안의 시선은 부드러워졌다. 말투도 편한 것이 다정함과 행복함이 묻어 있었다.

최일은 이렇게 생각했다.

'월령안은 육장봉 얘기를 꺼낼 때 자신의 표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를 거야.'

월령안은 육장봉을 애인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가족으로 여겼고 유일한 존재로 여겼다.

누구도 월령안 가슴속의 육장봉 자리를 대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성은 이성이고 감정은 감정일 뿐이었다.

최일은 자기가 조금의 기회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육장봉을 떠올리며 행복한 얼굴을 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속이 씁쓸해졌다.

그는 차를 마시는 행동으로 시선에 드리운 씁쓸함을 감추었다.

"무림맹의 일이 끝나면 당신은…… 북요로 갈 건가요?"

"가기 전에, 폐하께서 추진하시는 해운 장정(章程)이 나오기 전에 상선(商船)을 타고 바다에 한 번 다녀오려고요."

일 할의 세금으로 바다를 건너는 것이라……. 돈을 쓰고도 시끄러운 일이었다. 비록 그녀 스스로 제기한 일이었지만 바다에 나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조정의 풍향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당연하게 이 기회를 틈타 조정의 명령이 발표되기 전에 바다에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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