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811)화 (811/1,004)

811화 편지가 스스로 자백하네요

"으음…… 당신네 대장군께서 괜한 생각을 하셨군요."

그녀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육장봉이 특별히 사람을 보낸 것은 무슨 뜻일까.

제 발이 저려서인가 아니면 그녀를 얕잡아 보아서인가.

그녀는 조롱을 받은 것 같았다.

"대장군께서는 마님께서 대장군을 믿고 계신 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여론의 힘이 세고 대장군께서 멀리 북요에 계셔 마님 옆에서 지켜 주지 못하니, 혹시라도 소인배들이 농간을 부릴까 두려워 소인에게 한번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육일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그는 미리 월 낭자가 물을 말을 예상했었다.

이 문제는 그가 예상한 일이라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소인배는 없었어요. 조왕 전하께서 저에게 적지 않게 말해 주더군요."

월령안은 손에 든 편지를 만지작거리며 즐거워했다.

"조왕은 말하기를, 당신네 장군 마음속에서 주나라 강산이 으뜸, 현음 공주가 그다음, 당신네 형제들이 세 번째라 하더군요. 저는 세 손가락 안에도 못 든대요. 당신네 장군께서는 반드시 타협할 것이고 반드시 귀염에게 장가갈 거라고 했어요. 저더러 어서 빨리 다른 사람을 찾으라 하더군요. 당신네 장군한테만 목을 매지 말라고 했어요."

육장봉이 '소인배'라고 말했다. 그럼 그녀가 일러바쳐도 별문제 없을 것이다.

조계안은 황제의 친동생이어서 그녀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조계안을 어찌할 수가 있을 것이다.

"마님, 조왕 전하의 말을 절대 듣지 마십시오. 대장군의 마음속에서 마님은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능합니다."

육일은 아부하며 말했다.

"주나라 강산, 현음 공주, 그리고 고락을 함께하는 당신네들이 대장군의 마음속에서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능하겠죠."

'육일도 어디가 꿀리는 건가? 육장봉은 도대체 무슨 미안한 일을 한 거야?'

육일은 또 아부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마님, 이건 좀 다릅니다…… 앞으로 대장군과 평생 함께하면서, 밤낮으로 함께 지내며, 가장 가까운 사람은 마님뿐이죠. 오직 마님 한 명뿐입니다."

월령안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당신네 대장군이 북요 황제의 제안을 줄곧 거절하지 않았죠? 심지어 그가 희망을 품게 한 거 아닌가요?"

"어……."

육일은 깜짝 놀랐다.

"마님, 마님께서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육일은 말을 내뱉는 순간, 몹시 후회했다. 하지만 내뱉은 말은 쏟아진 물과 같아 다시 회수할 수 없었다.

"지금 그냥 어디 꿀리는 데가 있는지, 제가 화낼까 두려워 줄곧 저를 추켜세워 주었잖아요.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네 대장군이 천 리 길을 마다하고 보내온 편지고요."

월령안은 손에 든 편지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당신네 대장군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세요? 만약 아무 일도 없다면, 그의 도도함과 거만함으로, 간절하게 편지를 써서 해명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당신더러 직접 저를 찾아 전하라고 했겠어요?"

월령안은 편지를 번쩍 들어 보였다.

"이 편지가 바로 스스로 자백한 거잖아요. 이는 당신네 대장군이 제 발이 저리다는 증거죠."

"마님, 대장군께서 제 발이 저린 일 때문이었군요. 소인하고는 상관없었습니다."

육일은 몰래 한숨을 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마님, 대장군을 만나시면 꼭 대장군께서 찔려서 한 행동 때문에 들통 난 거라고 말해 주세요."

그는 이 시기에 월 낭자에게 편지를 전하는 것은 고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애초에 이 일을 떠맡지 말아야 했다.

물론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걱정이세요.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네 대장군을 믿는다고요."

육장봉의 친위대는 모두 참 재미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육삼이 그나마 교활한 셈이었다.

"마님, 영명하십니다."

육일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월령안에게 과장되게 큰 예를 올렸다.

그의 임무는 월령안이 육장봉을 믿게 하는 것이었다. 월령안이 육장봉을 믿는다고 하니, 그는 임무를 완성한 셈이었다.

과정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까.

"농담은 이제 그만하세요."

월령안은 탁상을 두드리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전쟁이 임박한 건가요?"

갑자기 화제가 바뀌자 육일은 잠시 뜸을 들여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마님은 어찌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건가요?"

"당신네 대장군은 북요인들을 상대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거예요. 현음 공주도…… 마찬가지고요."

북요에 있는 월씨 가문의 정탐꾼이 보고한 바에 의하면, 현음 공주는 결코 연약한 여인이 아니었다.

현음 공주는 여장부였다. 그녀는 북요에서 수년간 활동하면서 북요 황제라 할지라도 쉽게 그녀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전에 그녀와 육장봉은 마음이 어지러워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북요 황제가 귀염과 결혼하라고 육장봉을 강요하고, 육장봉도 이에 대해 승낙하지도, 거절하지도 않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것과 결부해 육장봉과 현음 공주가 짐짓 기회를 타서 북요에 머문다는 것을 눈치챘다.

육일은 확신에 찬 그녀의 표정을 보고 숨길 수 없음을 알았다.

"마님, 싸움을 할지 안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소인이 알기로 북요는 최근 금나라와 왕래가 잦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장군과 현음 공주가 북요에 남은 이유가 아닙니다. 그들이 북요에 남은 것은……."

월령안이 말을 이었다.

"첩자! 맞나요?"

"마님, 영명하십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일도 마님을 속일 수가 없군요."

육일은 티가 나지 않게 또 한 번 월령안을 추어올렸다.

"현음 공주께서 누군가 북요에 군대 소식을 전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분이 제때에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우리의 국경 병력 배치 상황이 아마 북요에 건너갔을 것입니다."

육일은 북요에 소식을 전한 사람이 변방을 지키는 장령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월령안에게 말하지 않았다.

상황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형편없었다. 그래서 육장봉은 어쩔 수 없이 북요에 남아 적을 유인하려 했다.

무림맹에 수횡천이라는 고수가 있기에 육일은 감히 오래 남을 수가 없었다. 그는 월령안의 의혹을 풀어 준 다음, 곧 도망쳤다.

떠나기 전, 육일은 맏형의 책임감으로 육삼을 위해 두어 마디 좋은 말을 했다.

"마님, 셋째는 속셈이 많지만 사람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못된 심보도 없고요. 군대에서도 여태껏 한 번도 기생을 찾지 않았습니다. 유(柳) 대재자처럼 기루를 집으로, 기루의 아가씨를 마누라로 삼지 않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육일은 육삼을 위해 좋은 말을 하면서도, 유경장을 끌어내어 두어 번 밟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유경장이 변경에서 한 일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주우림은 그날로 박차를 가해 북요에 편지를 보냈다.

유경장은 운이 좋았다. 당시 육장봉은 북요에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유경장은 운주 현령이 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육일은 몰래 유경장을 밟아 주고서 육삼의 일을 빌려 육장봉의 마음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 육씨 가문 친위대는 대장군과 마찬가지입니다. 대충이나 '그럭저럭'이라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안 좋아하면 그만이지만, 일단 좋아하면 평생입니다. 셋째의 폐백은 저희 형제가 마련할 것입니다. 마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셋째는 앞으로 꼭 추수 낭자에게 일편단심일 것입니다. 절대 추수 낭자를 서럽게 하지 않을 테니까 마님께서는 마음 놓고 셋째에게 맡기십시오."

월령안은 화가 나서 콧방귀를 뀌었다.

'좋은 생각만 하는군. 우리 추수는 아직 시집가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는데.'

* * *

육일이 돌아간 뒤, 월령안은 변방 장령들의 이름을 적어 보았다. 그리고 또 그들의 출신, 인척 관계를 상세하게 적었다.

"변방 방어도(防禦圖)를 손에 넣을 수 있고 변방 병력 이동도 알 수 있는 사람은 이 세 명뿐이군."

월령안은 세 사람 이름에 동그라미를 쳐 표시했다.

"이 중 한 사람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병사에서 시작해 천천히 기어 올라오고 육씨 가문과 원한이 있군. 이 사람은 무장 가문에서 태어나 육장봉과는 경쟁 상대이고, 이 사람은 주우림과 마찬가지로 문(文)에서 무(武)로 바꾼 사람이네. ……지금 알고 있는 정보로 봐서 육씨 가문과 무슨 원한이 있는지는 알 수 없구나. 하지만 폐하께서 변방으로 이동시켜 육장봉 수중의 사무를 인계받게 했다면, 설령 육씨 가문과 원한관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폐하의 사람일 것이다."

월령안은 세 장령의 정보를 보고 나서 붓을 한쪽에 던져 버리고 웃었다.

"이러니 육장봉이 폐하를 믿으면서도 병권을 확실하게 장악하려 하지. 인계받은 세 명을 보면 나라도 마음 놓을 수가 없겠어."

월령안은 가볍게 탄식하고 말았다.

"조정의 일은 나도 당신을 도와줄 수가 없네요. 육장봉, 스스로 살길을 도모하세요."

그녀는 세 장령의 정보가 적힌 종이를 태우고 방으로 돌아갔다.

* * *

이튿날 아침 일찍, 월령안은 문파 명단을 적은 종이를 들고 수횡천을 찾아갔다.

"수 오라버니, 이 문파들은 우리가 반드시 초청해야 해요. 그리고 그 문파의 책임자가 수제자를 거느리고 오게 하는 게 가장 좋아요. 위에 적은 몇십 개 문파 외에 오라버니께서 앞으로 잠재력이 있거나 명성이 높은 문파를 열몇 개 정도 더 골라야 해요.

……원래는 많은 작은 문파를 초청해 무림대회가 성대해 보이게 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리 좋은 방법인 것 같지 않군요. 어떤 사람이든 모두 무림대회에 참석할 수 있다면 그 가치가 떨어질 거예요."

"아미(峨眉)? 무당(武當)? 소림사(少林寺)? …… 명검 산장? 이 문파들을 다 초청해야 해?"

수횡천은 명단을 쥔 손을 살짝 떨고, 눈빛도 흔들리면서 감히 월령안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는 이 일을 해낼 수가 없었다.

"아미, 무당, 소림사…… 등은 강호에서 역사가 유구하고 동시에 가장 권위적이며 가장 명성이 높은 문파들이에요. 만약 그들이 참가하지 않으면 무림대회는 그 의미를 잃게 돼요. 명검 산장은 병기 제련에 능한데, 평소에는 보기 어렵잖아요. 만약 우리가 명검 산장을 초청할 수 있다면 무림대회가 더 빛을 발하게 될 거예요. 그러나 아미, 무당, 소림사 같은 대문파가 참가한다는 소식만 전해지면 명검 산장도 아마 거절하지 않을 거예요."

모두 강호에서 살아가잖는가. 부딪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명검 산장이 아무리 거만하더라도, 오래된 세력의 체면은 봐줄 것이다.

"아미, 무당, 소림사……. 이 문파들은 무림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지 수십 년이 되었어. 우리 초청에 아마 응하지 않을 거야."

수횡천은 고개를 숙이고 감히 월령안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고는 그녀가 적은 각 대문파를 위에서 아래로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검 산장, 청성파(靑城派), 점창파(點蒼派), 곤륜파(崑崙派), 전진파(全眞派), 화산파(華山派), 숭산파(嵩山派), 형산파(衡山派), 항산파(恒山派), 태산파(泰山派), 촉중당문(蜀中唐門), 냉풍보(冷楓堡)…… 이런 문파들도 아마 오지 않을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