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화 당신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소
월령안은 수횡천이 자신에게 넘겨준 일이 엉망진창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학술에는 전공이 있다. 수횡천에게 힘든 일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환영연을 마친 뒤 월령안은 잠시 쉬고, 추수를 불러 그녀에게 무림대회 준비 상황을 물어보았다.
월령안은 식사 자리에서 수횡천의 말을 듣고 일의 진척이 순조롭지 않다는 것을 짐작했다. 하지만 추수의 보고를 듣고서야 그녀는 알게 되었다.
일은 진척이 어려운 게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 단계였다.
월령안은 어떻게 해도 생각조차 못 했다. 무림대회가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았는데, 추수는 몇 개 문파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림대회에 참가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여러 대문파 사이 관계, 각 문파 책임자들의 취향을 알아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심지어 그녀가 가장 중요시하는 무림마을마저도 짓지 못했다.
그녀가 쓴 계획 및 중요한 사항들을 추수는 하나도 완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겨우 무림산장을 새롭게 단장하고, 길을 닦고, 나무를 옮긴 것이냐?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오…… 아니다. 객잔(客棧)은 반밖에 짓지 못했지. 사람이 투숙할 수도 없게."
월령안은 추수가 바친 사업 진척 보고를 보고 하마터면 손에 든 책자로 추수의 얼굴을 칠 뻔했다.
"추수, 이것이 바로 네가 두 달 동안 한 일이냐?"
추수는 급급히 변명하려 했다.
"아가씨, 수 맹주께서……."
"허!"
월령안은 차갑게 코웃음을 터뜨리며 추수의 말을 끊었다.
"수 오라버니가 어떤 성격인지는 내가 잘 알아. 그렇기 때문에 너를 보낸 거 아니야?"
"제 잘못이에요. 아가씨, 벌을 내려 주세요."
시간은 하루하루 지나는데 월령안이 분부한 일을 추수는 반도 완성하지 못했다.
그녀도 조급하다 못해 스스로 손을 써서 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이고 모두 다 직접 한다 해도 얼마 할 수가 없었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어디서 찾은 것이냐?"
밖에서 한 바퀴 휙 돌아보고도 월령안은 문제의 본질을 알 수 있었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충 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능률이 높지 않았다.
처음에 그녀는 사람들이 이 일이 다 끝나면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늑장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그녀가 생각을 많이 한 것이었다.
밖에 사람들은 일을 서둘러야 한다는 자각이 전혀 없었다.
추수는 고개를 숙였다.
"강호 떠돌이 협객들이에요. 수 맹주께서 그들의 생활이 어려우니 일 좀 시켜 주고 먹고살게 해 주라고 하셨어요."
"수 오라버니는 일거리를 좀 주고 밥만 먹여 주면 된다고 했잖아. 그럼 그들에게 소일거리를 좀 주면 되잖느냐. 모든 일을 그들에게 맡기면 어떻게 해? 무림대회가 코앞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을 일일이 다 가르쳐 줄 시간이 어디 있느냐?"
월령안은 추수에게 불만이 있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주인이 부하들의 어려움까지 모두 헤아려야 한단 말인가.
"내 곁에 이리 오랫동안 있으면서 연줄로 일을 하지 않고도 이익을 챙기는 걸 보지 못했어? 이런 작은 일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냐?"
그녀는 일을 추수에게 맡겼다. 그녀가 요구하는 것은 결과이지 변명이 아니었다.
"그저 삯일꾼들일 뿐이야. 이익을 챙긴다고 해서 몇 푼이나 되겠어? 만일 이로 인해 무림대회에 영향을 주면 그야말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은 거야. 이런 도리도 모른단 말이냐?"
"제가 잘못했어요. 아가씨께서 벌을 내려 주세요."
추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목소리가 떨리고 더 이상 불복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월령안은 탁, 하고 손에 쥔 책자를 탁상 위에 내던졌다.
"그 사람들은 모두 가서 나무를 심게 해라. 다 심으면 가꾸는 일을 시켜. 사람이 많으면 열 명, 스무 명이 나무 한 그루를 가꾸게 해. 품삯을 그래도 주거라."
월령안은 일부러 말투를 강하게 했다.
"객잔은 일단 짓지 마. 이미 지은 객잔 두 개를 정리해서 사람이 묵을 수 있게 만들어. 나머지 시간에는 전력으로 무림마을을 건설해야 한다. 무림마을의 모든 일을 잘게 쪼개 읍이나 마을의 십장이나 이장(里長)을 찾아가 시세보다 두 배 높은 품삯을 주고 열흘 내에 일을 마치라고 요구해."
그녀는 추수가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특별히 한마디 강조했다.
"잘 기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청하든, 어떻게 주야로 일을 하든 상관없어. 반드시 열흘 안에 내 요구대로 다 끝내야 한다. 알아들었어?"
추수가 낮은 목소리로 일깨워 주었다.
"아가씨, 객잔을 짓지 않으면 아마 잠자리가 모자랄 거예요."
월령안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초청장을 각 대문파들에 보냈어? 너는 몇 사람이 올지 알아? 설령 객잔을 다 지었다고 해도 잠자리가 자라겠어? 예전에 무림맹에 객잔이 없어도 여전히 무림대회를 열었었어. 지금은 다만 숙소만 부족할 뿐이다. 무슨 상관이냐?"
추수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사실 정말 무림대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지 몰랐다.
수 맹주는 초청장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해마다 무림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모든 대문파들에서 사람을 보낸다고 했다.
인원수에 대해서…… 무림대회에 매번 온 인원수는 모두 달랐다.
무림맹도 이를 집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충 어림짐작해 가장 많이 참가했었을 때의 인원수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됐다. 일 보러 가!"
그녀가 너무 서둘렀던 것이다.
그녀는 무림맹의 사무가 간단하고 인간관계가 단순한 것을 보고 그저 추수 한 사람만을 보내고 관리인조차 보내지 않았다.
추수는 싸움은 잘하지만 사업 처리에 있어서는 미숙했다. 상천처럼 처세에 능하지 못했고 자신감이 다소 부족하여 과감하지 못했다.
이것은 결정권자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예, 아가씨."
추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기분이 가라앉은 채로 물러갔다.
건물 밖, 육삼은 입구에서 서성거렸다. 걱정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수시로 목을 길게 빼 들고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추수가 나오자마자 곧장 다가가서 물었다.
"왜 그러시오? 월 낭자가 많이 혼냈소?"
추수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육삼 옆을 지나갔다.
육삼은 다급하게 쫓아갔다.
"무림맹의 일이 제대로 성사되지 못한 건 당신 잘못이 아니오. 추수, 자책하지 말고 월 낭자에게 잘 설명해 보시오. 월 낭자도 이해할 거요."
추수는 건물 밖 화단에 앉아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었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앞뒤를 재면서 결단력이 없었던 거예요. 관성의 일은 그렇게 복잡했지만 상천은 멋지게 해냈잖아요. 상천에 비하면 저는 무림맹과 같은 이리 간단한 일도 제대로 처리 못 했어요. 저는 역시 너무 뒤처져요."
육삼은 급히 위로했다.
"아니오……. 당신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소. 당신은 비록 장사에서 상천보다 뒤처지지만, 싸움에서는 상천보다 낫잖소. 당신이 월 낭자 옆에 있으면, 월 낭자는 안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지. 장사할 줄 아는 사람은 많지만, 당신보다 무예가 높고 또한 월 낭자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적을 거요."
"많지 않지만 적지도 않아요. 상천은 능력이 뛰어나 아가씨 곁의 유능한 조력자예요. 저는 다만 무예만 좀 있을 뿐 수시로 대체될 수 있다고요."
추수는 허전함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육씨 가문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상천은 아가씨를 도와 육씨 가문 아래위를 모두 잘 달랬어요.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어요. 그 사람들이 아가씨를 괴롭히고 아가씨가 주는 돈을 받으면서도 더럽다고 나무라는 것을 보기만 했어요."
육삼은 잠자코 있었다.
이 말을 그는 정말 받을 방법이 없었다.
그 역시 육씨이고 그때 당시 월 낭자의 득을 보면서도, 그녀가 상인 출신이라 그들 가문의 장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전 정말 쓸모가 없어요."
추수는 말하다 보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니, 울지 마시오. 울지 마시오. 어찌 쓸모가 없다고 말하오. 내 마음속에서 당신은 예쁘고도 유능하다오. 혼자서 몇십 명을 당할 만큼 유능하다오."
육삼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며 손수건을 꺼내 추수의 눈물을 닦아 주려다가 또 감히 손도 대지 못했다.
월령안은 마침 수횡천을 찾아가 무림대회에 참가할 문파를 확인해 보려던 참이었다. 육삼이 허둥지둥하며 추수를 위로하는 것을 보고 잠깐 멈칫했다.
'관두자. 아무리 바빠도 딱 지금이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내일 수 오라버니를 찾아가야지.'
부드러운 달빛 아래 그림자가 한데 겹친 두 사람을 보고 월령안은 뒤돌아섰다. 그녀는 마치 나타난 적 없는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 * *
월령안은 그날 밤에 수횡천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가하게 있을 새가 없었다.
거처에 돌아온 그녀는 기억하고 있던 강호의 각 대문파들을 모두 열거했다. 대략 이십여 개 문파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명성이 있는 문파들이었다. 작은 문파들은 대부분 들어보지 못했기에 수횡천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무림대회를 조직하는 데는 대문파들이 와서 분위기를 띄워 주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를 받쳐 주는 소문파들이 없어서도 안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파들의 우월감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는가.
대문파의 품격을 누구에게 보여 줄 것인가.
월령안은 손이 가는 대로 적었다. 적어도 열 개 이상의 대문파 책임자를 무림대회에 초청해야 했다. 그 외에 서른 개 내지 오십 개 소문파를 초청해 대문파를 도와 목소리를 높이도록 해야 했다.
그녀는 소문파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초청을 받으면 꼭 올 것이다. 그러나 대문파는 말하기가 어려웠다. 설령 온다 해도 책임자가 오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의 무림맹은 예전과 비길 바가 아니었다.
지금의 무림맹주는 이름뿐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거물도 힘들면서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 자리를 다투려 하지 않았다.
"감정 호소로 안 되면, 이익을 내세울 수밖에 없지."
월령안은 바빠서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종이에 적었다. 또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모두 적었다.
이렇게 바삐 보내다 보니 한밤중이 되어서야 그녀는 도저히 지탱할 수가 없어 잠을 청하려 했다. 바로 이때,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창가에 비친 검은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소인 육일입니다. 마님을 뵈러 왔습니다."
집 밖의 검은 그림자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는 무림맹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끌까 두려워 애써 목소리를 낮추었다.
"육일이라고요?"
월령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오세요!"
"육일, 마님을 뵙습니다."
육일은 창문으로 방안에 뛰어들었다. 월령안에게 예를 올린 뒤 편지를 올렸다.
"마님, 이는 대장군이 보낸 편지입니다. 대장군께서는 소인더러 마님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님께서는 바깥의 소문을 믿지 마십시오. 대장군은 마님을 제외하고, 누구에게도 장가가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