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화 무림맹의 환영
진주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젊은 최 대인이 강남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마님을 만나러 간 것도 마침 마님이 성 밖에 있고 입성하는 길에 명월산장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었어. 너는 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마."
"내가 뭐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는 거야. 분명 네가 머리가 있으면서도 생각을 하지 않는 거야."
십이는 화를 냈다.
"최일이 무슨 마음이 품고 있는지 변경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너 최일이 우리 마님한테 청혼했던 것도 잊었어? 지금 우리 마님과 함께 밤낮으로 어울릴 기회가 생겼잖아. 네 생각에 그가 이 기회를 놓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도 말했지만, 그분은 우리 마님이야. 젊은 최 대인은 정인군자인데 어찌 유부녀에게 매달리겠어?"
진주는 마뜩잖은 표정으로 십이의 팔에서 자기 팔을 빼내었다.
다 큰 두 남자가 들러붙어서 팔짱을 끼다니 이게 무슨 꼴인가.
진주에게 미움을 받은 십이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군."
진주는 기회를 틈타 달아나 버렸다. 이때 최일이 마차에 올랐다. 진주는 그에게 한마디 말하고는 말 등에 뛰어올랐다.
"출발!"
이때가 돼서야 십이도 정신을 차렸다.
"아니지. 우리 마님은 아직 우리 마님이 아니잖아. 최일이 아무리 정인군자라 해도 의심을 살 일이 없잖아! 진주, 진주…… 너 좀 기다려……."
십이는 급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가 막 쫓아가려는데 육사가 잡았다.
"됐다. 됐어. 진주가 너를 놀린 거야. 걔도 잘 알고 있어. 아니면 자발적으로 젊은 최 대인을 따라 마님 찾으러 가겠다고 나서지도 않았지."
"날 놀려?"
십이는 육사에 이어 육오도 바라보았다.
"아닐 거야?"
"그랬어?"
"난 모르겠는데?"
"아무튼 나는 몰라."
육사와 육오는 하늘을 바라볼 뿐 십이를 보지 않았다.
십이는 화가 잔뜩 났다.
'괘씸해.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고.'
* * *
월령안은 밤도와 변경을 떠났다. 그리고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가을 무렵에 무림맹에 도착했다. 이제 무림대회가 열리기까지 반달이 남았다.
지금의 무림맹은 황량했던 지난날을 벗어던졌다. 집을 짓고 길을 닦는 일꾼들이 오가고, 돌과 목재를 나르는 마차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길에서 머슴꾼의 의논 소리와 부러워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월령안은 가는 내내 원래 황폐했던 땅에 화초와 나무를 심고 적지 않은 도로 표지도 설치한 것을 보았다. 그녀 얼굴의 미소는 점점 더 커졌다.
추수는 과연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더 잘해냈다.
소육자는 월령안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무림맹의 경계비에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월령안 일행이 보이자 나는 듯이 달려왔다.
"월 누님, 월 누님……."
소육자의 고함 소리는 하도 커 하마터면 월령안이 타고 있는 말을 놀라게 할 뻔했다.
월령안은 말을 달래면서 속도를 늦추고 소육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소육자는 숨 가쁘게 달려왔다. 얼굴은 땀범벅이 되었지만 밝게 웃고 있었다.
"월 누님, 드디어 오셨군요. 조금 더 기다리면 울 뻔했어요."
올해의 무림대회는 예년과 전혀 달랐다.
설령 월령안이 상세한 계획을 만들어 주었다고 해도 그녀가 직접 진두지휘를 하지 않으면 그들은 전혀 자신감이 없었다.
다행히, 월령안이 드디어 왔다.
* * *
월령안은 무림맹에 도착해서, 위로는 무림맹 맹주 수횡천부터, 아래로는 뒤쪽 한담 물고기에 이르는 모든 이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녀가 도착한 것을 경축하기 위해 한담 물고기는 반이나 희생되었다.
물론 월령안은 두세 마리밖에 먹지 않았고 그 외의 것은 소육자가 그녀를 환영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모두 먹어 치웠다.
"월 누님, 드디어 오셨군요. 좀 더 늦게 오면 뒤쪽 한담의 물고기가 넘쳐날 뻔했어요."
소육자는 입가에 기름기가 번지르르하게 먹었다.
"알고 계시죠? 그 물고기들은 아주 빨리 자라잖아요. 그런데 맹주께서 우리가 잡아먹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 물고기들이 누님 몸에 좋다면서 남겨두겠다고요. 반년이 넘도록 잡지 않고 자라기만 하니까, 한담에는 온통 물고기들뿐이었어요. 매번 볼 때마다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이었다고요. 오늘 한 광주리 가득 건져서 그나마 괜찮아졌어요."
월령안은 빙그레 웃으면서 골려 주었다.
"다 먹지 못하면 어포를 만들어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잖아요."
"월 누님, 그건 안 돼요. 이 생선은 기름이 많아서, 어포로 만들려고 햇볕을 쬐면 껍질과 뼈만 남아 먹을 게 없어요."
소육자는 말하면서도 입으로 생선을 뜯고 있었다. 그는 수횡천을 흘끔 쳐다보았다.
수횡천은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여 월령안에게 다가가 소곤소곤 말했다.
"월 누님, 맹주께 좀 얘기해 주세요. 한담의 고기가 자라지 않는 거도 아니잖아요. 드문드문 우리도 좀 먹게 하라고 하세요. 우리가 남겨두면 되잖아요."
"걔 말을 듣지 마. 그 자식이 먹기 싫은 거야."
수횡천은 소육자에게 경고 어린 눈빛을 보냈다.
소육자는 금세 억울함을 호소했다.
"내가 언제 먹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저 먹고 싶어요. 아주 먹고 싶어요. 먹고 싶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에요."
"지난번에 왔을 때 소육자가 생선을 너무 먹어 토하고 싶다고 했죠. 그리고 더는 먹고 싶지 않다고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월령안도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아니 물론 그때는 너무 먹어서 토할 지경이었죠. 하지만 너무 오래 먹지 않으니 계속 생각났단 말이에요."
소육자는 억울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누구도 그를 위로해 주지 않았다.
육삼은 못된 심보로 소육자의 발을 꼭 밟았다.
"월 낭자, 소육자는 이제는 물고기에 질렸대요. 하지만 추수는 아직이거든요. 한담에 물고기가 많으면 제가 이따금 추수에게 몇 마리씩 먹여도 괜찮죠?"
"입 닥치세요! 전 물고기를 싫어해요!"
추수는 마침 물고기를 집으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그 옆에 있는 반찬을 집었다.
육삼은 가슴이 아파 말했다.
"요즘 눈에 띄게 몸이 축났어요. 잘 보양해야 해요."
그는 요즘 줄곧 무림맹에 있었다. 추수가 들락날락 바삐 보내며 나날이 야위어도, 그는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제가 언제 야위었다고 그래요? 당신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추수는 육삼을 모질게 흘겨보았다.
육삼은 순간 풀이 죽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애처롭게 월령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월령안는 저도 몰래 실소하고 말았다.
그녀는 추수가 감히 물고기를 집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한 젓가락 크게 집어서 추수의 그릇에 놓았다.
"수 오라버니는 농을 친 거예요. 그렇게 많은 고기를 어떻게 나 혼자서 다 먹겠어요. 추수는 확실히 여위어서 좀 보양해야겠다. 육삼, 임무를 줄게요. 이틀에 한 번씩 뒷산에 가서 고기 한 마리를 잡아 추수에게 먹이세요."
육삼은 그릇을 내려놓고 곧게 앉았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아가씨, 전 필요 없어요……."
추수는 연신 거절했으나 월령안에게 저지당했다.
"먹으라면 먹어. 물고기가 많잖아. 나도 매일 물고기만 먹고 싶지 않아."
"하지만……."
추수는 걱정스럽게 수 맹주를 보았다.
그녀는 수 맹주가 뒷산 한담어를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소육자는 훔쳐 먹으려다 수 맹주에게 반죽음이 되도록 맞았다.
수횡천은 담담하게 말했다.
"뒷산의 물고기는 령안이의 것이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
"이제는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지."
월령안은 추수가 심리적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말머리를 돌렸다.
"수 오라버니, 뒷산의 물고기를 잡아서 담수에 넣어 둬도 오래 보존하지 못하나요?"
"보존할 수 없어."
수횡천은 월령안이 무엇을 묻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어서 말했다.
"예전에 네가 나더러 변경에 물고기를 보내라고 했었잖아. 아직도 방법을 생각하는 중이야. 걱정하지 마. 내가 방법을 생각해서 꼭 물고기를 변경에 보낼게."
수횡천은 변경에 머물면서 월령안이 염 황숙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 잘 알고 있었다.
월령안이 변경에 물고기를 보내는 것은 바로 염 황숙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일까요? 얘기해 보세요. 우리 함께 방법을 생각해 봐요."
변경에 물고기를 보낼 데에 대해서는, 그때 그냥 한마디 언급했을 뿐이었다.
변경 쪽에서 줄곧 물고기를 받았다는 소식이 없자 그녀는 수횡천이 잊은 줄로만 알았다.
"물의 문제야. 한담의 물을 떠서 담아 놓으면 얼마 안 가 바로 더워져. 그 물고기는 더위를 전혀 견디지 못해."
수횡친은 눈썹을 찌푸리고 수심에 잠긴 표정이었다.
"시험해 봤어. 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물고기가 살아서 변경까지 가기는 힘들어."
"얼음으로도 안 되나요?"
월령안이 물었다.
"그 물고기는 너무나 여려. 얼음을 많이 넣으면 너무 추워 죽고, 적게 넣으면 수온이 높아 죽어."
그는 얼음으로 아무리 반복적으로 시험해도 적합한 온도를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한 번씩 찾아도 도중에 얼음을 바꾸면 또 안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물고기를 변경에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월령안은 잠자코 있었다.
'참 이 생선은 너무 민감하네.'
"다 요리해서 얼음으로 얼려 변경에 보내면요?"
월령안은 마음을 접지 못하고 또 물었다.
수횡천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되물었다.
"음식을 황궁에 들여보낼 수 있어? 혹시라도 도중에 누군가 손을 대면 어쩌지?"
"맞는 얘기예요."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요. 변경에 물고기를 보내는 일은 다시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어요."
"령안, 미안하다."
수횡천은 자책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감히 월령안을 보지 못했다.
그는 월령안에게 많은 폐를 끼쳤다.
월령안이 모처럼 그에게 부탁했는데, 그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이게 무슨 미안할 일인가요. 수 오라버니, 우리는 한집안 식구잖아요. 이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어요. 제가 언제 오라버니한테 예의를 차리던가요?"
"내가 너에게 많은 폐를 끼쳤잖니. 무림대회에 관한 일은…… 결국 또 너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어."
수횡천은 처음으로 무림대회를 조직한 게 아니었다. 그는 본래 여태껏 쌓은 경험에 월령안이 쓴 상세한 계획까지 더하면 쉽게 준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월령안이 무엇이나 다 적어 주고 심지어 추수까지 보내 그를 도왔는데도, 그는 여전히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가 무능해서 이 무림맹주의 자리에 합당치 않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제가 돈을 안 버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오히려 수 오라버니께 감사하고 싶어요. 저에게 강호 호걸들과 사귈 기회를 만들어 주었잖아요."
그녀가 무림맹에 온 것은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림대회의 일을 맡으면서 번거롭고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무림의 여러 문파들과 접촉하기에 편리했다.
무림 여러 문파 사람들과 익숙해지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면 그들의 힘을 빌리기도 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