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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08)화 (808/1,004)

808화 황제가 최일에게 맡긴 일

"아쉬움이 없다면 됐구나."

최 승상은 최일이 마지못해 대답하는 것이 아닌 것을 확인했다.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있던 불만마저도 사라졌다.

"폐하께서 네가 돌아온 것을 알고 계신다. 내일 이부에 가서 복명하고 모레 황궁에 가서 폐하를 만나거라."

"예, 아버지."

최일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시선을 살짝 내려 눈 속의 모든 감정을 숨겼다.

다시금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여전히 수려하고 우아하며 탁월하고 품위 있는 귀공자의 모습이었다.

"방에 돌아가 편히 쉬어라. 정신을 차려야 폐하를 만나지. 폐하께서 너에게 따로 시킬 일이 있으시다."

결국은 자신의 아들이었다. 최 승상은 떠나기 전에 최일의 어깨를 다독이며 한마디 암시했다.

최일은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묻지 않고 대답만 했다. 최 승상을 문밖까지 바랜 뒤, 방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방 안으로 돌아와 피에 젖은 바지를 벗고는 허전한 미소를 지었다.

설령 월령안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그는 변경에 달려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번에 만나지 못하면 다음번을 기약하면 되었다.

하인을 불러들이지 않고 최일은 스스로 상처를 처치하고 나서야 누워 쉬었다.

* * *

최일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누워 쉴 때, 황제는 황궁에서 화가 나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월령안은 일부러 그랬을 거야! 짐은 그녀에게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하라고 했지, 시종일관 경성에 단 사흘만 머무르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 사흘밖에 못 머문다는 유언비어는 도대체 어디서 흘러나온 것이냐? 설령 짐이 사흘이라고 말했다 해도, 어제는 사흘이 채 안 됐잖아. 왜 그리 빨리 떠났단 말이냐?

진짜 화나네. 이렇게 가 버리면 모르는 사람들은 짐이 각박한 줄로 알 거 아니냐. 고작 욕 한마디 하려고 일개 여인을 천 리 길도 마다하고 황궁에 불러들이고, 또한 쉴 틈도 주지 않고 쫓아 버렸다고."

와그작……. 와그작…….

조계안은 연탑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꼬아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는 아삭아삭한 배를 한 접시 안고서 맛있게 먹었다. 가끔 황제에게 시선을 주기는 했지만, 그것은 마치 바보 천치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전함과 수군을 임대하는 일도 그렇지…… 분명 월령안이 공부에 갔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 아니야. 그런데 이 여자는 일을 벌여만 놓고는 아무것도 상관을 안 하는구나. 간다고 하더니 진짜 그냥 가버리네. 너무 책임감이 없는 거 아니야?

황숙이랑 친조손처럼 감정이 깊다고 하지 않았어? 변경을 떠난 지 반년이 다 지나 돌아와서도 염 황숙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더구먼. 어찌 염 황숙에게 문안 인사 한마디도 하지 않느냐? 이런 게 무슨 친조손이야. 짐이 보건대 그 여자는 그냥 이익이 없으면 거들떠보지 않는 거야!"

와그작……. 와그작…….

조계안은 배 한 개를 다 먹어 치우고 씨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더니 계속해서 다음 배를 집어 먹었다.

"그리고…… 자기를 호송해서 변경에 돌아온 사람이 황성사에 갇혔잖아. 그런데도 한마디 묻지 않고 가 버리다니. 너무 무정하잖아. 네가 최일이 귀경길에 있다고 말했는데도 그냥 갔어……. 네가 말해 봐. 월령안이 너무 냉혹하고 무정한 거 아니야? 이렇게 눈에는 오직 이익만 있고 냉혹하고 무정한 사람을, 장봉이는 도대체 어디가 좋다는 거냐?"

황제는 한바탕 비난을 퍼부었지만 조계안의 호응을 얻지 못하자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계안, 뭐 하는 것이냐? 짐이 너에게 묻고 있지 않느냐?"

와그작……. 와그작…….

조계안은 두세 입만에 수중의 배를 먹어 치우고 씨를 던져 버렸다.

"수박씨를 까면서 극 구경을 하잖아요. 안 보이세요?"

"너…… 지금 짐을 구경하고 있었다는 것이냐?"

황제는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래졌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짐의 속을 썩이는군.'

조계안은 또 배 한 개를 꺼내 계속 먹으려다가 잠시 멈추고 황제에게 건넸다.

"반나절이나 이야기했는데 목은 안 아프세요? 하나 드세요."

황제는 말문이 막혔다.

'이 얼간이 동생은 지금 내가 화나 있는 게 안 보이나?'

"왜 멍하니 있으세요. 앉으세요!"

조계안은 황제의 냉담한 얼굴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옆으로 조금 옮겨 앉더니 옆에 빈자리를 두드리며 황제더라 앉으라고 눈짓했다.

황제는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이 초간 머뭇거리다가 조계안의 옆에 앉으면서 그의 손에 있던 배 접시를 빼앗았다.

"짐은 목이 아파 하나로는 부족하다."

"이반반, 폐하께 배 두 광주리를 가져다드려라."

조계안은 손에 쥔 배를 한 입 베어 물고 높이 소리쳤다.

"전, 전하……!"

구석에 서서 없는 척하던 이반반은 지명될 줄을 모르고 있다가 부들부들 떨면서 나왔다.

황제와 조계안이 화낼 때는 그를 부르지 않으면 안 될까 싶었다.

그는 요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말 억울했다.

"짐이 돼지냐. 두 광주리씩이나."

황제는 조계안을 힐끗 흘겨보며 배를 집어 먹었다.

"말해 봐. 너 어젯밤에 월령안에게 뭐라고 말한 거야. 월령안이 왜 갑자기 놀라서 밤중에 도망을 쳤냔 말이다."

월령안이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조계안이었다. 그녀가 밤중에 떠난 원인은 십중팔구 조계안이었을 것이다.

와그작……. 와그작…….

황제와 조계안이 배를 먹는 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졌다.

"그냥 장봉이 북요에서 결혼을 강요당한 일을 말했어요. 아마 월령안이 무엇인가 짐작했겠죠."

"무엇을 짐작했는데?"

황제의 눈빛이 살짝 번뜩였다. 배를 먹는 동작마저 한 박자 느려졌다.

조계안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전쟁할 때가 되었다고요. 월령안은 육장봉을 도와 뒷걱정을 없애려는 거예요."

어젯밤 그는 월령안이 왜 그토록 육장봉을 신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육장봉이 다른 여인과 결혼할 수 있다고 하는데도 육장봉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늘 그녀가 밤중에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조계안은 알게 되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을 신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충분히 영리하고 냉정해서 쉽게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황제가 한마디 물었다.

"그녀가 추측한 것이냐, 아니면 네가 말한 것이냐?"

조계안은 황제에게 눈을 흘겼다.

"월령안이 바보인 줄 아세요? 이런 뻔한 일을 어찌 생각하지 못하겠어요?".

"짐은 네가 지금 나를 비웃는 거 같구나?"

그는 바보였다. 주우림이 이 말을 할 때, 그는 북요에서 육장봉을 붙잡아 두려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조계안은 웃으며 말했다.

"마음속으로 알면 되죠. 입 밖으로 내뱉으면…… 제가 그 앞잡이들처럼 위로해 드릴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황제는 우울해졌다.

손에 쥔 배가 갑자기 쓰게 느껴졌다.

* * *

최일은 '폐하께서 너에게 따로 시킬 일이 있으시다'라고 한 아버지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곧 알게 되었다.

황제는 그더러 조정을 대표해 월령안과 월씨 가문 상사의 전함과 수군 임대에 대해 협의하라고 했다.

황제는 그가 조정을 대표해 월령안과 협의한다는 사실을 특별히 강조했다.

황제는 이 점을 각인시키기 위해 한마디 덧붙였다.

"월령안은 지금 무림맹에서 수횡천을 도와 무림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단시일 내에는 그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급히 굴지 말고 천천히 가도 된다."

최일은 미심쩍었다. 사실 황제는 이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이 말이 나오자 그는 황제가 자기를 비웃고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일은 묵묵히 황제를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변경에 돌아온 사흘 동안 적지 않은 일들을 전해 듣게 되었다.

황제는 얼마 전에 월령안에게서 손해를 보았다. 지금은 기분이 나쁠 때일 테니 적게 말하기로 했다.

전함과 수군 임대는 모두 작은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황제의 '비웃음'이 있었으므로 최일은 급히 떠나지 않았다.

먼저 공부, 병부, 호부, 추밀원과 소통해 사실의 자초지종을 파악한 다음 각 부서의 이익을 조정했다.

전함은 공부 산하의 조선소에서 제작하고, 수군은 병부에서 관리하며, 호부는 모든 수익과 지출을 관리했다. 이 세 부서는 어느 것도 버려서는 안 되었다.

추밀원은 전국의 군사를 장악하고 있으므로 역시 버려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추밀원 혼자 독식하게 할 수는 없었다.

최일은 공부와 병부, 호부, 추밀원을 조율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그들은 이번 일에 대해 추밀원이 선두에서 책임지고 공부와 병부가 협조하며 호부가 감독하는 데 동의했다.

추밀원이 주도하기에 임대료의 삼 할을 가지기로 했다. 공부와 병부는 협조하기에 각각 임대료의 이 할을 차지하기로 했다. 그중 두 부서는 일 할을 내놓아 군선 제작 연구와 수군의 보상 및 장례에 사용하기로 했다.

나머지 삼 할은 국고에, 다시 말하면 호부의 소유로 했다.

이런 분배 방식에 대해 처음에 호부는 동의하지 않았다. 호부상서가 볼 때, 각 부서는 단독적인 수입을 가져서는 안 되었다. 모든 수입은 국고에 귀속시켜야만 했다.

공부가 전함을 연구하든, 병부에서 수군을 양성하든, 모두 호부에서 돈을 가져갔다.

호부의 돈을 가지고 일을 하는데 왜 이익을 나눠야 하는가.

그러나 결국에는 최일에게 설득되었다. 이유도 간단했다.

그들은 앞으로 공부에서 군선을 개진하고, 수군이 해상에서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기를 기대해야 한다. 만약 공부, 병부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을 주지 않는다면 당연히 조선소에서 새 군선을 연구하지 못하고 출항한 수군이 용맹하게 적을 무찌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월씨 가문 상사가 다시 조정의 전함과 수군을 임대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은 호부상서뿐만 아니라 황제도 설득시켰다. 이 분배 방식은 황제가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동의했다.

황제가 동의하자 모두 이견이 없었다.

네 부서의 이익 배분을 잘 조율하고 나자 최일의 다리 부상도 거의 낫게 되었다. 그는 그제야 황제의 '비웃음'을 신경 쓰기 않고 한마디 보고한 뒤 호위를 거느리고 무림맹으로 떠났다.

진주 등 몇 사람은 최일과 동행하기로 했다.

십이, 육사, 육오도 가고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용돈은 벌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황제는 북요와 주나라가 다시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을 염려했다. 그렇게 되면 군대에서도 준비해야 하므로 그들이 변경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십이 등 몇은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부러운 마음으로 진주 몇 사람을 배웅했다.

배웅하는 그날, 십이는 진주를 잡고서 귀엣말을 했다.

"최일 저자는 사악한 욕심을 가지고 있어. 이번에 변경에 돌아온 것도 우리 마님 때문이야. 그렇지 않았으면 첫날 돌아오자마자 우리 마님을 만나러 달려가지 않았을 거야. 진주, 지금부터 마님을 보호하는 어려운 임무를 너에게 맡길게. 기억해. 꼭 최일을 잘 지켜봐야 해. 최일이 마님에게 접근할 기회를 주지 말고, 그가 마님의 비위를 맞추게 내버려 두지 마."

"사악한 욕심이라는 말은 이렇게 쓰는 게 아니지. 게다가 최 대인은 폐하의 명을 받들고 일하러 가는 거야. 십이, 네가 너무 생각이 많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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